주제: 익숙한 낯설음
먼저 ‘익숙하다’ 의 정의를 인터넷에 쳐보니 ‘어떤 일을 여러 번 하여 서투르지
않은 상태에 있다.’ ‘낯설다’는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 였다. 나는 주제를 보자마자 게슈탈트 붕괴현상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용어는 실제 사용되는 학술적 용어나 이론은 아니고, 일본의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서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만들어져 유행한 용어로, 관련 매체를 통해
한국으로 유입되어 일부 팬들 사이에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게슈탈트 붕괴(독일어: Gestaltzerfall)는 지각 현상으로, 정리된 구조(Gestalt)에서
구성이 분리되어 각각의 부분을 인식하는 현상이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친숙했던
단어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면서 일시적으로 단어의 의미를 잊어버리게 되는 현상
을 말한다. 문자, 얼굴 등 주로 시각적인 부분에서 발생하지만 청각 및 촉각 등에서
도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신고 있는 양말을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저것이 왜 양말이지? 저걸 왜 양말이라고 부르지? 라고 생각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
다. 이는 특정 단어를 오랜 시간 바라보면 문자로서가 아닌, 의미를 갖지 않는
선(線)의 집합체로 보이게 되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아무생각없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기다릴 때 종종 게슈탈트붕괴현상을 느낀다.
나는 그저 멍 때리다가 별생각이 다드는구나..하고 넘겼는데 이런 현상이 있다는 것
에 놀랐다. 이밖에도 내가 실제로 익숙한 낯설음을 느꼈던 경험을 말해보자면,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먹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 먹고,
오전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고, 오후수업을 마치고 저녁
을 먹고, 과제를 끄적이다가 야식을 먹는다. 먹는 것은 익숙한 일이지, 낯설게
느껴진 적은 없다. 자장면, 칼국수, 냉면, 우동, 쫄면 등은 내가 즐겨먹는 면 요리들
이다. 이 요리들의 맛은 대부분이 알고 있다. 자장면은 자장 맛이고 우동은 따뜻
하고 냉면은 시원하고 쫄면은 매콤하다. 익숙하게 아는 맛이다. 이 면 요리들은
젓가락으로 먹는다. 하지만 같은 면 종류인 스파게티나 파스타는...? 일반적인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시키면 포크를 준다. 포크로 돌돌말아 먹는 것이 스파게
티의 묘미이다. 예전에 같은 면 요리인데도 젓가락을 사용하여 스파게티를 먹는
사람을 보고 순간적으로 낯설게 느꼈던적이 있다. 반대로 포크로 자장면과 우동을
먹는 사람을 봤다면 누구나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사는 동네
얘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경기도 일산에 살았다. 지금은
제주대학교에 재학 중이라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여전히
일산에 있다. 나는 한 달에 한번, 최소한 두 달에 한번 이상 일산에 올라가서 가족,
친구들과 주말을 보내고 제주도로 돌아온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적어도 6년
이상을 걸었던 동네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등교하던 길, 그리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하교하던 길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기숙사에서 입던 옷들을
넣은 캐리어를 끌고 걷는 길이다. 분명히 내 학창시절을 걸었던 익숙한 길이지만,
제주도에 있다가 한 달 만에 걷는 동네는 분명히 낯설었다. 새로운 떡집이 생겼고,
놀이터에 그네가 새로 생겼다. 내가 등교할 때 자주 사먹던 빵집은 주인아주머니가
바뀌어있었다. 분명히 내게 익숙했던 동네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새롭고 낯설게
느껴졌다. 이밖에도 나뿐만아니라 모든 수험생들이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을 준비하면서 시중에 있는 문제집이란 문제집은 다 풀고,
수능시간표대로 공부하면서 모의고사도 보고, 몇 번이고 복습한 기출문제에 익숙
해져있었지만 막상 수능시험장에 가서 받는 시험지는 낯설기만 했던 경험도 있다.
반대로 낯설었던 것이 익숙해지는 경우도 많다. 대학생활을 한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한 학기 8개정도의 강의를 들으며 나름대로 레포트를 몇 번 써봤다
고 느꼈는데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 아 엄청 어렵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내 경험을 살려서 조금만 고민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았다. 처음에
접한 낯선 레포트 주제도 고민하고 찾아보고 쓰다보니 익숙해진 것 같다.
‘익숙한 낯설음’ 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흔한 현상이다.
평생 불려온 이름이 낯설어지기도 하고, 자기가 살던 동네가
낯선철학하기.hwp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익숙한 낯설음을 갑작스레 맞이한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왜 이러지?’라는 생각과 함께 낯설음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설음
만큼이나 익숙함도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려운 레포트 주제가 익숙한 하나의 어절
이 된 것처럼, 생소한 어떤 것이 나도 모르는 새 익숙한 것이 되어있기도 하다.
어쩌면 인생이란 낯설어짐과 익숙해짐의 반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댓글 도입부의 게슈탈트붕괴는 예전에도 한 번 과제물에서 본 내용인데 묘하군요. 전체적인 맥락만 보고, 그 세부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 그 세부적인 것들이 구체적으로 다가올 때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 낯설음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는 순간 부분의 의미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