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근황을 말씀드리자면 중단했던 사이버대학교 공부를 재기했습니다.
얼마전에 등록금 80만원 넣고 9월에 다시 수업을 듣습니다.
그리고 곧 있으면 이사를 갑니다.
몇 년 동안 고시원생활을 하다가 1년여 전에 200에 20 월세단칸방에서 살다가 이번에는 300에 20 방 두 칸 월세로 옮깁니다.
김경호목사님이 담임목사로 재직중인 들꽃향린교회도 등록했습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인생을 아주 영리하고 똑똑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사람들 만나고, 사이트 돌아다니고,
노동운동을 하네, 민중신학을 하네 막 쏘다녀도,
그래도 자기중심은 부여잡고 살고 있고,
이전에 없었던 <생활인의 자세>가 갖춰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2.
제가 생활인의 자세라고 표현했는데,
이건 좀 막연한 말이고,
이걸 다시 나누면 경제관념, 현실감각 이런 말로 풀어볼 수가 있고,
경제관념을 다시 세분화하면,
꾸준히 열심히 일해서 계속 돈을 벌고,
그 와중에서 나태하고 안살고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하고,
매월 얼마를 벌면 그거 다쓰는 게 아니라 얼마는 또 따로 빼서 저축을 한다는 겁니다.
원래 이런 거는 20대 초중반 그쯤에는 어느 정도 갖춰져서,
20대 후반부터는 정상적으로 취직을 해서 매월 일하고 매월 저축하고 그래야 잘하는 게 아니라,
그게 당연한 건데,
저는 그런 생활인의 자세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
사회인으로서는 매우 미성숙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회생활을 정확히는 27살즈음부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뭐했냐면 병원에서 환자로 있었고,
그 후에는 산 속에서 목탁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나이는 20대 후반인데 생활인의 자세는 이제 막 20살 된 청년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겁니다.
원래 이런 것도 가정교육에 포함되는 건데,
제 동생은 저처럼 정신병환자로 7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걔도 반깡패 양아치로 살다가 군대에서는 고문관소리 들으면서 1년만에 의가사제대하는 뺑끼를 쓰고,
그 뒤는 백수로 처 놀다가 이제와서 이마트에서 피자 만들어파는 점원으로 살고 있고,
우리 부모님은 ... 미안한 이야기지만 두 분 인생을 양아치로 사셨거든요,
부모도 똑바로 안사는데 그 자식들이 제대로 성장할리는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 저도 27살부터 따로 나와서 살면서 중간에 돈 없을 때는 잠깐씩 부모님집에서 신세를 졌는데,
돈을 벌면 어떻게 지출을 하고 얼마씩 뭘 모아야하는지 전혀 배운 적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꾸준히 뭘 하든 월150 이상은 벌었는데,
지나고보면 수중에 남는 게 없어요.
물론 제가 했던 일들이 알바 - 노가다잡부 - 학습지교사 - 공돌이
주로 이런 쪽이라서 근무환경이 열악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살겠다고 덤비면 일을 열심히 했으면 그만큼 통장에 남아야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본인의 씀씀이나 경제관념에 남들에게 없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저도 그게 처음에는 뭔지를 몰랐어요,
만약 알았다면 고치려고 노력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고쳤겠지요.
그걸 바로 잡는데 3년 정도 걸리더군요.
제가 그와중에서도 한다고 또 노력을 했습니다.
방통대 다니다가 관두고, 사이버대학교 다니다가 관두고, 신학교 다니다가 관두고, 영화시나리오 배우다가 관두고,
그리고 사업하다가 말아먹고,
사업하다가 말아먹은 것은 제 경제수준에서 정말 타격이 컸습니다.
1년 동안 빚만 720만원 갚았습니다.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기분상으로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왜 열심히 살았는데 그만큼 결과로 남지 않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답을 찾았습니다.
근성이나 끈기 부족이 아니라 이상주의자로 사는 것 까지는 좋은데 현실감각이 없었던 겁니다.
남에게 훈수는 잘 둘지언정,
자기인생이 어찌 흘러가고 있는지는 보지 못했던 겁니다.
한 마디로 사회인으로 살아가며 돈에 대한 개념이 너무 부족했던 겁니다.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니,
생활의 근간이 흔들리니 그 상태에서 어떤 계획을 세워도 모래위에 성 쌓기나 다름없었어요.
방통대 공부를 하려면 그리고 학점이 제대로 나오려면,
월150 이상을 벌면서가 아니라,
크게 욕심 안부리고 100만원 수준에서 쉬는 날도 있어가며 했어야 옳았고,
사이버대학교 공부를 할 때도 그냥 무작정 시작할 게 아니라 통장에 얼마는 모아두고나서 했어야 했습니다.
특히나 사이버대학교를 맨 처음 시작했을 때는 노가다 일용잡부였는데 그 직업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사람이 일을 해도 당장 자기 필요한 생활비와 용돈만 벌게 아니라,
월급을 타서 거기서 얼마는 쓰고 얼마는 저축하고 얼마는 자기계발비로 돌려야 그게 사회생활을 하는 건데,
노가다일용잡부를 직업으로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그건 잘못된 거거든요.
구로공단이나 이런데서 공돌이로 주6일을 일하더라도 그렇게 했어야 학업도 안전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몰랐다는 것은 한 마디로 스스로가 개념이 없어서 안되는 걸 가지고 잘 되겠지 착각을 한 거였죠.
신학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학습지교사로 한참 잘 풀리고 있었거든요.
갈 깨 가더라도 4년제 학사는 받고, 그리고 3년 코스를 다니든지,
대학원대학교라도 석사 받고 1년6개월 3학기로 가든지,
그게 옳았는데,
주제도 안되는데 연구과정 1년 포함해서 4년코스로 입학했어요.
영화시나리오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의점 알바하면서 집도 절도 없는 고아가 ... 글 써서 남들 직장인처럼 살아야지,
희망을 품는 것 자체가 이것도 개념없는 거거든요.
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될 거 같은 거를 팠어야 되는 거거든요.
제 글 읽어보시는 분들은 영화시나리오니 신학교니 이런 거 보시면서,
속으로 그거는 아닌데 ... 그거 그 계획으로는 힘들텐데 ... 그런 생각하실 겁니다.
저도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 나이로,
27살, 28살, 29살 이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는 거죠.
그 결과가 모조리 실패였습니다.
3.
제가 요즘에 노동운동하는 활동가들을 꽤 많이 만납니다.
40대는 기본이고 많으면 50대, 60대 어른들까지 만납니다.
그리고 ... 말을 좀 섞어보면 상대방에 대해서 느껴지는 게 있거든요.
뭘 느끼냐하면 ... ...
그분들에게서 27살, 28살, 29살 ... 그때 제 과거의 모습을 엿보게 됩니다.
알고 봤더니 노동운동하는 활동가들의 대부분이 백수 아니면 일용직이더라고요.
이 말은 백수로 살다가 일용직으로 일했다가 다시 백수로 살았다가 일용직으로 일했다가 ... ...
거의 그런 식이라는 거거든요.
사람이 말입니다 ... ... 물질이 최고는 아니지만,
월세내고 전기세 내고 자기 용돈 쓰고,
얼마 빼서 담에 얼마라도 저축을 하거나 자기계발비로 돌려야 합니다 ... ...
그래야 계속 배우고 성장할 수 있고,
또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주사라도 맞거든요.
솔직히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장담을 한다는 겁니까?
활동가들을 보니까 ... 누군가는 꼭 해야 할 그런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멋져보이는데,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에 대한 대비는 전혀 안하고 살더라고요.
그건 노동운동을 하는 활동가라서가 아니라 그냥 경제개념이 없는 거거든요.
오죽하면 새기운의 노동자님이 활동가들 정신건강과 경제적복지를 위해서 <레프트119>라는 조직을 따로 만들었겠어요?
나중에 교회 차리면 헌금은 안 걷혀도,
쪽수는 일정수준이상으로 확보가 될 거 같습니다.
제가 활동가들을 위해서 무언가 할 역할이 있으리라고 예상합니다.
그리고 제 말이 노동운동하는 활동가들이 전부 병신이다 ... 그런 흑백논리는 아닙니다.
최소한 키보드로만 좌파노릇 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분들이 훨씬 진실하고 용감한 사람들이거든요.
다만 ...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뜻이고,
이런 부분은 우리가 살면서 조심하자,
그 정도 선에서 이야기입니다.
타인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이야기도 있잖습니까?
이 말은 남을 씹고 까자는 게 아니라,
남의 결점과 잘못을 보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내 인생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예의주시하면서 잘 늙어가자,
그 뜻입니다.
4.
요즘에는 냉정하고 날카로운 사고보다는,
관심사가 어지간하면 수용하고 용인하고 용납하고,
그냥 쓱 넘어가고 모른척해주는 쪽으로 바뀌고 있어요.
이걸 단어로 설명하면 <보신주의>내지는 <회색영혼주의>입니다.
물론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기질이 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보신주의자가 될 수는 없겠지요,
보신주의자가 노동운동하는 현장에 어슬렁거리고 민중신학류 글 쓰고 그런 짓 안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저한테 더 필요한 거는 성격적인 부분에서,
<보신주의> 내지는 <회색영혼주의>가,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생활인의 자세가 갖춰졌으니 앞으로는 이런 쪽 보신주의도 마찬가지로 노력하면 채워지리라 봅니다.
제가 정말 목사가 되어서 민중교회를 할 거라면,
꼭 경제적으로 누굴 돕지는 못하더라도,
말 한 마디라도 ... ...
사람의 영혼을 잘 보듬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자면 저 자신이 남들이 쉴만한 물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테니까요.
첫댓글 생활인 최승현님에게 축복있으라. ㅋㅋㅋㅋㅋㅋ 생활인 일해 두손모음 ㅋㅋㅋㅋㅋㅋ
저는 인제 3백만원 모았는데 일해님은 3천만원 중도금 치루시고 생활인 일해 만세 ㅋ
만쉐이 만쉐이. 이젠 생활인에서 생활의 달인으로 거듭나라 ㅋㅋㅋㅋㅋㅋㅋㅋ
키보드 좌파, 입진보, 이런 말 들을 때마다 찔립니다. 실천하고 참여하는 생활인이 되기 위하여 저도 승현님처럼 자아비판을 해봅니다. 솔직하고, 눈물겹기도 하고, 마음이 따스해지는 얘기 고맙습니다.
오카리님도 만세 ^^*
승현님 팬생겨부럿당 ㅋㅋㅋㅋㅋㅋㅋㅋ
오카리님 팬은 일해님, 최승현 우리 모두 서로가 팬 ^^ ㅋ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후라이팬.... 맛나는 부침개 해주는 사이.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