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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仁壽峰,810.5) : 고려시대 負兒峰. 조선시대 仁者樂山 仁者壽)에서 유래.
만경대(萬景臺,800.6) : 고려시대 개성 천마산 국망봉에서 유래, 나중에 만경봉.
용암봉(龍巖峰, ) : 고려시대 미로봉이라 불렀는데. 용(龍)모양의 바위가 있는 봉.
노적봉(露積峰,715.5) : 고려시대 적석봉(積石峰), 그후 이슬이 쌓이는 봉.,노적봉.
이슬이 쌓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곡식을 한데에 쌓아 둔.,노적가리.
.................의상능선(어영청., 담당 구역)......................
의상능선(의상~ 용출~ 용혈~ 증취~ 나월~ 나한~ 문수)
의상봉(義相峰,501.5) : 신라 의상대사 수도처 전설에서 유래.
용출봉(龍出峰,571) : 용이 솟아 오르듯 뾰족하여 붙여진 지명.
용혈봉(龍穴峰,581) : 북한산성 축성 후, 용에 관한 이름 중 하나.
증취봉(甑炊峰,593) : 증봉(甑峰:시루봉), '시루가 불타는 봉우리'.
나월봉(蘿月峰,688) : 고려 개성 천마산 나월봉 달모양에서 유래.
나한봉(羅漢峰,715.5) : 문수사 천연동굴 내 오백나한에서 유래.
문수봉(文殊峰,727) : 봉우리 아래 고려 예종때 문수사에서 유래.
보현봉(普賢峰,722) : 문수봉과 나란히 있어.,보현보살에서 유래.
..........산성 주능선 10봉(금위영 담당)..................
일출 월출 기룡 반룡 시단 덕장 복적 성덕 화룡 잠룡.
북한산성 축성(1711년) 이후 주로 "용"자를 붙혀.,명명.
일출봉(日出峯) 617 : 월출봉 (月出峯) 600 : 해와 달을 나란히 이름 붙힘
기룡봉(起龍峯) 588 : 반룡봉 (盤龍峯) 583 : 용틀임 & 웅트림 형상을 묘사.
시단봉(柴丹峰) 607 : 해돚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해몰이(紫霞:자하)와 반대
덕장봉(德藏峯) 586 : 복덕봉 (福德峯) 594 : 모든 봉우리가 읍(인사)을 하는 형상.
석가봉(釋迦峯) 598 : 현재 칼바위 능선. 불교와 관련된 석가봉은 문수사에서 유래.
성덕봉(聖德峯) 631 : 불교용어와 관련된 봉우리 이름으로 북한산성 축성 직후.,지명.
화룡봉(化龍峯) 644 : 잠룡봉 (潛龍峯) 701 :
두 봉 사이에 구 대동문( 현재 대동문)이 있어
조선시대 북한산성 축성 후., 용(龍)을 넣은 지명.
..............................산성 내 6봉.....................................
기린봉 (麒麟峯) 472.1 : 산세가 기린을 닮은 봉(정상 : 북장대).
장군봉 (將軍峯) 431 : 고려 말, 최영장군 지휘소( 중흥사 서쪽).
등안봉 (登岸峯) 463 : 중흥사 후면에 있다.
귀암봉 (龜巖峯) 520 : 거북이 바위가 있다고 하여 명명.
그 곁에 태고대(천해대)가 있고 아래에는 태고사,
그리고 태고사 옆(傍)에는 봉성암이 있다.
상원봉 (上元峯) 684 : 아래에 행궁(行宮)이 있다.
임금이 머무르는 봉우리란 뜻의 상원봉이라 부른다.
휴암봉 (鵂巖峯) 594 : 올빼미 바위가 있어.,명명.
휴암봉 아래 부왕사(扶旺寺)지 저산시대 사찰터.
......................산성 밖 봉우리들.........................
족두리봉(鷲峰, 367.3) : 예전엔 수리봉(鷲峰:취봉)이라 부름.
멀리서 보면 마치 족두리 같다고 하여 최근에 붙혀짐
향로봉(香爐峰, 527.4) : 탕춘대성 방향에서 바라보면
향로처럼 생겨 붙혀짐(향림사 뒤에 있어 향림사 후봉)
관봉(冠峰) : '갓바위' 관봉 또는. 불암(佛巖:부처바위)
향림사 위에 있어 '향림사 후대'라고 부르기도 했던 곳.
비봉(碑峰,560.3) : 신라 진흥왕이 부아악을 국경으로
삼는다는 순수비(巡狩碑)가 있는 곳이라 명명된 비봉.
승가봉 : 신라 경덕왕 15년 '수태'가 세운 승가사에서 유래.
사모바위 : 사모관대의 사모(絲帽)에서 유래
석가봉(釋迦峰, 598) : 문수사에서 유래되었다.
석가모니 문수보살 보현보살 3불상을 의미하며
현재, 석가봉은 '갈바위능선'으로 불리우고 있다.
형제봉(兄弟峰,462.2 삼각측정지점) :
2봉 높이가 엇비슷 연이어 있어 형제봉.
영봉(靈峰,604) : 산에서 숨진 영혼을 기리는 곳.
즉, 산악인의 영(靈)이 머무는 봉우리라 하여 영봉.
영장봉(545m) : 망운봉(望雲峰)또는 염장봉이라고도 부름
사기막봉(555m) : 사기막능선 중간(정상에 산불감시카메라)
숨은봉(768m) : 1970년 고려대 OB 산악회가 숨은벽(Hidden Face)
암벽코스를 개발하여 숨은벽이라 명명. 그 정상을 숨은봉이라 한다.
파랑새봉(710m) : 파랑새능선 정상(일명: 장군봉)
파랑새능선은 파랑새 산악회에서 코스 개척후 명명.
이 외, 시루봉, 상장봉, 문필봉, 응봉(332.9m)등이 있다.
...................북한산 계곡....................
장춘동 계곡 (長春洞) : 수문 에서 보리사까지
옥류동 계곡 (玉流洞) : 보리사에서 만경봉 아래까지
청계동 계곡 (淸溪洞) : 보리사에서 법용사 앞까지
노적동 계곡 (露積洞) : 법용사에서 노적사 아래까지(진국교)
영천동 계곡 (靈泉洞) : 진국교에서 노적봉 영천굴까지
백운동 계곡 (白雲洞) : 진국교~용학사 갈림길 / '백운동문'
중흥동 계곡 (重興洞) : 용학사 갈림길에서 중흥사 앞까지
규룡동 계곡 (叫龍洞) : 중흥동 계곡 위에서 월출봉 아래에 있음
용계동 계곡 (龍溪洞) : 중흥동 계곡 위에서 일출봉 아래에 있음
용암동 계곡 (龍巖洞) : 중흥동 계곡 위에서 용암봉 아래에 있음
은선동 계곡 (隱仙洞) : 중흥동 계곡 위에서 만경봉 아래에 있음
잠룡동 계곡 (潛龍洞) : 잠룡봉~ 중흥동(대남문~ 중흥사앞)
용유동 계곡 (龍遊洞) : 증취봉 아래에서 법용사 갈림길까지
자하동 계곡 (紫霞洞) : 유선대 아래. "저녁노을이 지는 계곡".
부왕동 계곡 (扶旺洞) : 부왕사(扶旺寺)~ 용학사. 현재 청하동.
부왕동 계곡 (扶王洞) : 부왕동암문(扶王洞暗門)에서 삼천사까지
청수동 계곡 (淸水洞) : 청수동암문(가사당암문)에서 백화사(중골).
청수동 계곡 (靑藪洞) : 석가현(보국문)~ 정릉천 / 현재 '청수장' 유원지.
청담동 계곡 (淸潭洞) : 사기막골 초입 계곡이며, 출렁다리에서 창릉천까지.
.....................................................................................................
산성 안 계곡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이름이 전해온다.
계곡을 구간 별로 주소를 붙이듯 세분화시켜 놓았다.
그 설명이 모호해 현재 개념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북한산에는
지금의 번지만큼
자세하게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 사용.
현재, 북한산 계곡 옛지명이 사라져가고 있다.
하류에서부터 장춘동, 옥류동, 청계동, 백운동,
용계동, 구룡동, 잠룡동 구간 별., 불리우던 계곡.
계곡 구간마다 운치가 담긴 옛 지명.
지금도 '백운동문'이라는 각자(刻字)가
용화사에서 노적사 가는 바위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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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교량........................
백운교(白雲橋) - 보리사 앞에 있다(현 새마을교)
청운교(靑雲橋) - 법용사 앞에 있다(현 법용교)
강선교(降仙橋) - 노적사 아래 있다(현 진국교)
봉황교(鳳凰橋) - 여기담 아래 있다 (없어짐)
환선교(喚仙橋) - 반룡담 아래 부왕동입구에 있다 (현 돌다리)
언룡교(偃龍橋) - 항해루[현 산영루] 아래에 있다 (없어짐)
...........'북한산'., 8대(臺)...........
의상대(義相臺) - 의상봉 아래에 있다.
원효대(元曉臺) - 원효봉 아래에 있다.
요초대(瑤草臺) - 원효대 아래에 있다.
태고대(太古臺) - 귀암봉 아래 (현재 천해대)
소요대(逍遙臺) - 동장대 옆 (시단봉 옆, 591.8m)
법왕대(法王臺) - 보국사 남쪽에 있다.
곡룡대(曲龍臺) - 보광사 왼쪽에 있다.
유선대(遊仙臺) - 부왕사 앞쪽 (휴암봉 아래)
.......................................................
상기, 지명 대부분은 조선 숙종때
북한산성 축성 당시 축성 책임자였던
도총섭 성능 스님이 쓴 '북한지'에서 인용.
아직도 북한산 43 봉의 이름과 위치는 혼란스럽다.
옛 문헌, 구전 등 현재의 지명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즉, 고려 말과 조선 숙종 재위 축성 당시 지명이 다른 때문.
칠성봉, 가사봉, 상원봉, 장군봉, 휴암봉,석가봉. 등
비봉능선 '관봉(冠峯)과 불암(佛岩)'의 지명도., 모호.
관봉은 고몽전쟁때 왕건의 관을 모신 곳이라 일명 불암.
산,봉,악,대,덕,령,치,고개
(山,峰,岳,臺,德,嶺,峙,古介)
현재, 북한산에 관한 옛 문헌으로는
조선 숙종때 성능이 쓴 북한지가 유일.
현재까지 전하는 지명은 대부분., 북한지 지명.
그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뒤바뀐 지명의 흔적들.
그래서, 북한산의 지명은 아직도 베일 속 수수께끼.
북한산은 92%가 고양시
강북구는 8%를 차지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루왕 5년 (132)
“5월 2일에 북한산성을 쌓았다” 기록
고구려 본기 영양왕 14년 (603년).
“신라의 북한산성 공격이 있었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다”. 라는 기록.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6년 (555년)
“왕이 북한산을 순행하여 강역을 확정하다”
이외에도 조선왕조실록 세종조 및 숙종, 영조대
북한산 및 북한산성에 관한 약 200 여 기록이 표기.
1900년대 외국인 사진 자료 속에는 북한산이라고 표기.
2008년 7월 30일 문화일보 - 강북구청장 기고.
"일제 잔재 청산에 관심이 덜한 것 같아 아쉽다.
우리 산과 땅의 본래 이름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매년 1000만 등산객이 다녀가는 삼각산, 북한산을 포함.
1915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발표한
'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조사 보고서'를 발표한 후부터.,북한산.
강북구는 삼각산 이름을 되찾으려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단지 북한산, 삼각산 이름이 단체 간 유불리와 관계없다면
이부분을 우선적으로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만경봉, 백운봉 남쪽에 있다.
높고 빼어나며 기이하고 웅장함이
인수봉과 더불어 자웅을 다툰다.
노적봉, 만경봉 서쪽에 있다.
높이 우뚝 솟아 올라 노적 같다
고려 중흥동 옛 석성이 이곳에 있다.
용암봉은 만경봉 남쪽에 있다.
일출봉은 용암봉 앞에 있다.
월출봉은 일출봉과 더불어 나란히 우뚝 솟아 있다.
기룡봉은 월출봉 앞에 있다.
반룡봉은 기룡봉 옆에 있다.
시단봉은 반룡봉 남쪽에 있다.
위에 동장대가 있고,
아래에 어수재가 있다.
덕장봉은 시단봉 남쪽에 있다.
여러 봉우리들이 모두 둘러서서
인사하는 것 같아 그 이름 지어졌다.
복덕봉은 덕장봉 남쪽에 있다.
그 형세와 기상이 덕장봉과 더불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또한 이름 지어졌다.
석가봉은 동문 밖 청수동 위에 있다.
성덕봉은 석가봉 서쪽에 있다.
화룡봉은 성덕봉 옆에 있다.
잠룡봉은 화룡봉 근처 서쪽에 있다.
보현봉은 대남문 밖에 있다.
문수봉은 보현봉 서쪽에 있다.
봉우리 아래에 문수굴이 있고,
굴 안에는 물맛이 좋은 샘과
다듬어 만든 석상으로
문수와 더불어 오백나한이 있다.
나월봉은 환희봉 남쪽에 있다.
증취봉은 나월봉 서쪽에 있다.
용혈봉은 증취봉 서쪽에 있다.
용출봉은 용혈봉 서쪽에 있다.
미륵봉은 용출봉 서쪽에 있다.
원효봉은 수구 위에 있고, 원효암이 있다.
영취봉은 원효봉 위에 있다.
시자봉은 백운대 아래에 있다.
올라가 다다르면 넉넉히 북한의
한 성안의 형세를 다 살필 수 있다.
기린봉은 노적봉 아래에 있다.
장군봉은 중흥사 서쪽에 있다.
고려 때 최영이 머물렀던 곳이라.,장군봉.
등편봉은 장군봉의 위, 중흥사의 뒤에 있다.
구암봉은 동장대 아래에 있다.
상원봉은 문수봉 북쪽에 있다.
휴암봉은 남장대 북쪽에 있다.
...............
...............
마지막으로
정조 9년(1785)의
조선왕조실록 내용이다.
북한산성 안찰 어사., "신기(申耆)"
산성안의 민간인 및 승병의 생활,
북한산성 현상황 및 문제점 보고서
북한산 봉우리와 성문을 설명하는 대목.
"성첩의 주위(周圍)는 백운봉(白雲峰)으로부터
오른쪽으로 돌아 영취봉(靈鷲峰)에 이르기까지
산세가 높고 험준하여 본래 성을 쌓지 않았으나
백운봉과 영취봉 사이의 움푹 들어간 곳에는 두 건성(乾城)이 있고,
영취봉 산허리에서 비로소 성이 시작되어 북문(北門)에 이르렀는데
문루(門樓)는 갑오년의 재변(災變)을 치른 뒤에도 중건(重建)되지 않은 채
문의 자물쇠는 오랫 동안 잠겨져 있고, 홍예문(虹예門)은 아직도 완전합니다.
북문에서부터 솟아 올라가 원효봉(元曉峰)을 이루었는데,
높고 뾰족하여 성이 끊어졌으며, 돌을 깎아 계단을 이루었습니다.
원효봉의 오른쪽은 단애(斷崖)로서 깎아지르듯이 내려갔고
곁에 층성(層城)을 끼고 있으며,층성 아래에 암문(暗門)이 있습니다.
암문에서 돌아 내려가 평지(平地)를 이루었는데,
곧 북한 산성의 도수구(都水口)입니다.
양쪽 바위가 깎아 세운 듯하고,
좌우에 있는 성(城)의 모퉁이는
바위에 이르러 그쳤으며,
물은 그 사이로부터 나옵니다.
수구(水口)에서 대서문(大西門)으로 돌아 솟아올라 의상봉(義相峰)이 되었고,
의상봉에서 용출봉(龍出峰)· 용혈봉(龍穴峰)· 시루봉(甑峰)· 나한봉(羅漢峰)· 가사봉(袈裟峰)을 거쳐
문수봉(文殊峰)의 높고 깎아지른 곳에 이르러 성이 끊겼으며,
협곡(峽谷)을 지나간 곳에 성을 쌓았습니다.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는 국령사(國靈寺)의 암문(暗門)이요,
시루봉과 나한봉 사이는 원각사(圓覺寺)의 암문(暗門)이며,
가사봉과 문수봉 사이는 가사암문(袈裟暗門)이요,
문수봉 오른쪽에 문수봉 암문이 있는데,
지금은 대남문(大南門)이 되었으며,
문선(門扇)의 대접철(大접鐵)은
탈락(脫落)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대남문 오른쪽은 보현봉(普賢峰)이요,
보현봉 아래에 대성문(大城門)이 있는데
경진년(1760년)에 영구히 폐쇄(閉鎖)한 뒤부터
문루(門樓)와 처마가 퇴락(頹落)하였습니다.
석가봉(釋迦峰)에 이르기 전에
암문 한 곳이 있고,...(현재 : 보국문)
석가봉의 동쪽이 대동문(大東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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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1781) 무렵에 간간이 보수한 뒤에
지금까지 5년 동안에 애당초 한줌 흙이나
한 조각 돌의 역사(役事)가 없었고,
치첩(稚堞)의 무너진 곳에 대해서는
관할(管轄) 안의 승도(僧徒)가
감히 앉아서 보기만 할 수 없어
돌을 쌓아 가려서 임시 변통을 했습니다.
체성(體城) · 여성(女城) · 성랑(城廊)· 문루(門樓)의
무너진 곳 및 성문의 철물(鐵物)이 탈락한 수효도
역시 별단(別單)에 기록하였습니다.
금성탕지(金城湯池)의
중요한 곳이 장차 쓸모 없이 될 터이니,
전란에 대한 대비를 위하여 마땅히 지금
고쳐 개혁하는 방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북한산에대한 이렇게 자세한 정보는 처음 접하는것 같군요...
놀랍네요..
역사의 뒤안길에서 바라본 옛 조상님들의 발자취가 새
전체가 43봉인데 나는 몇봉이나 갔다왓는지 한번 헤아려 보아야 겠군요...
역사적 배경을 알고 산을 다니면 더 의미있는 발걸음이 될것 같군요..
시력도 좋지않으신데 자료수집및 편집하는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북한산 43봉은 지명 자체가.,우리나라 역사박물관.
지명 하나마다 의미를 새기면서 올라보면 놀라워요.
특히, 용암문~병풍암~만경대~위문' 칼날암릉 바위길.
그외에도 모든 봉우리들이
지명에 담긴 의미와 다 걸맞아요.
배려 깊은., 덕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