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층 아파트의 발코니 통유리 밖으로 가루눈이 곱게 내리는 아침입니다.
조금의 비낌도 없이 얌전히 내리는, 단아한 일직선의 궤적(軌跡)에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아내를 직장까지 태워다주고 여든두 살 엄마도 관악노인복지관까지 모셔 드리고 돌아와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면서 계해 샘 골방 뒷문을 무엄하게도 내 맘대로 열어젖힙니다. 열어젖히고는 청송녹죽 푸른 대숲에 떨어질 하얀 눈발들을, 그 눈발들의 사각거림을 상상합니다. 상상하는 김에 민들레뿌리차도 염치 불구 한 잔 청해 마십니다.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으니 이번에는 새벽이네 두 뼘 쪽마루에 올라 앉아 앞산 빈 밭에 쌓이는 눈을 상상합니다. 가부좌를 튼 채, 아님 곧추세운 두 무릎을 양팔로 껴안은 채 그 하얀 것들의 자유낙하를 넋 놓고 바라보노라면 ‘원북리 이 某 보살'은 틀림없이 원두커피를 내올 것입니다.
그 행복한 김칫국 상상에 모난 내 심성도 한없이 너그러워져.... 지 딴에는 손님 접대한답시고 물색없이 주춤주춤 일어나 300 원짜리 연주솜씨로 300만 원짜리 기타를 능멸하는. 대낮 聲추행하는 주인사내의 ‘알함브라 궁전의 악몽’ 기타 연주도 그래, 기분이닷! 그 마음속 상상화의 배경음악으로 집어넣습니다.
엊그제 민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찾아가는 것 자체가 민폐임을 뻔히 알면서도 함박웃음으로, 양팔을 벌리며 맞아주는 마음들이 진정임을 믿(고 싶)기에 자꾸만 중부내륙고속도를 달리게 됩니다.
형형색색 주먹밥을 맛있게 마련해준 새벽이엄마의 수고로움이야 지아비 잘못 둔 업보라고 퉁, 치고 넘어가더라도, 뜬금없이 굴러온 짱돌들에 한밤중 남부여대(男負女戴)로 사랑채로 내쫒긴 솔휘네 신세라니....
그래도 이번 1박2일은 이틀째, 박스포장을 도울 수 있어 조금은 마음이 편했습니다.
지게차를 능숙하게 부리는 아침배미의 모습도 참 건강해보였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진이입니다. 앞섶에 조금 때가 묻은 오렌지색 파커를 작업복으로 입고 목장갑을 낀 채 열심히 박스를 포장하고는 갯수를 세어서 차곡차곡 한 켠에 정돈하는 모습이, 담백하게 디자인된 새 포장지마냥 참 순박하고 씩씩해 보였습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를, 작목반 창고 처마 밑에 서서 올려다보며 깊게 들이마시는 공기가 참 신선하다고 생각했음은 그때의 느낌이 신선했기 때문일 겝니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설입니다.
‘몽실언니’를 만들어낸 지난 해도 정녕 잊지 못할 한 해였겠지만 모쪼록 올해에는 좋은 일들만 가은식구들 집마다 가득 했음 좋겠습니다.
특히, ‘몽실이네’에 좋은 기운만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행복에도 ‘질량 불변의 법칙’이 적용된다면 내 몫의 한 줌을 몽실이네에 뿌려주고 싶습니다. 하기사 몽실에미가 워낙 기운이 세고 그 에비는 ‘두 발 달린 희양산’이니 무신 걱정을 하리오마는, 짐짓 표현은 안하지만 이심전심의 애틋한 마음에 내 행복 한 줌을, 내 건강 한 술을 십시일반(十匙一飯) 몽실이네에 얹어주고 싶습니다.
“고수레에∼”
이제 봄이기도 합니다.
올해 고 3이 되는 아들 녀석이 어린이 집을 다닐 무렵에, 같은 동네(광명시 하안동)에 살던 아침배미는 우리 집 꼬맹이들에게 ‘일어나 아저씨’로 불렸습니다.
집에서 간혹 벌이는 술판 어느 허리께에 이르면 순간, 빙의(憑依)가 된 배미가 우리들의 요청에 따라 늘 발작적 ․ 발광적으로 김광석의 ‘일어나’를 불러 재꼈기 때문입니다. (꼬맹이아빠는 ‘발기해“ 악을 쓰고....)
“ ♬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이제 정말 봄입니다.
그 노랫말처럼, 그 힘찬 멜로디처럼, 아니 하루가 다르게 크는 우리 산이, 율이, 재민이, 희산이... 그 가은의 새싹들처럼 우리 어른들도 우후죽순 일어나 작물도 살피고 까페도 살피어 그 씩씩하고 맑은 기운들을, 서로는 물론이고 서울의 좀비들에게도 쬐꼼 나누어 주기를 감히 소망합니다.
가을에는 물론, 이 봄에도,
뻔뻔스럽지만 간.절.히 바라기는.
첫댓글 으흐흐 히 글을 읽는 건지 그림을 보는 건지? 오라버니가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입니다. 누가보면 연애 하는지 알겠네! 하긴 제가 워낙 껄떡새라! 가은의 껄떡새( 떡, 해, 수, 화) 중 하나니...
지금 저 보약 먹는 중 입니다. 이제 클 났어 ,'황' 지둘려 죽었어 ㅋ ㅋ. 보약 먹고 기운이 주체 못하면 어쩌지요?
보약 먹은 힘으로 농사도 짓고, 사랑 하며 살겠습니다. 문일 쌤들에게도 제 행복과 건강을 '이만큼' 전합니다.
지금쯤... 황은.... 어케 됐누? 육즙 쪽쪽 다 빨려 파킨슨 병 걸음걸이로 칙칙폭폭, 가은 읍내를 맴돌고 있는 것 아냐? 애들은 알아 보남?
느닷없는 산행에 가져온 배낭도 못들고 혜국사까정 올라가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ㅎㅎ 시범형의 배낭을 보고 깜짝놀란일이며... 가은의 하이에나부부에게 선뜻 귀중한 장비를 내어주신 윤태형님께도 감솨... 함께 대작하느라 나도 술취하는줄 모르게 만든... 종두님도.. 모두 반가웠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시구요...
희양산의 기가 엄청 세어서 절이 없었으면 산적 소굴이 되었으리란 글을 읽었었는데.... 허걱, 도적이, 그것도 부부로 드림팀을 이루어 봉암사 코 밑에서 무실역행, 실사구시 할 줄이야. 인디언 식 이름- ‘맘에 들면 다 내꺼’ & ‘눈에 띄면 다 뺏어’?
가금씩 오셔서 지친 우리들에게 따뜻한 정과 물질을 나누어 주고 가시는 문일고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말이 없으시나 글은 청산유수네요. 어제저녁부터 오늘 낮까지 새벽이 합격소식에 기뻐서 떡배형이랑 술한잔씩을 마셨네요. 눈이 참 곱게 오는 날입니다.
그날, 새벽이 합격 문자에 나도 거실에서 홀로 원격 축하주 마시다가 불현 듯 떠올린 생각 하나는, 그래도 하늘이 무심치 않아 새벽이가 떡배의 아들로 태어났구나 하는 가슴 쓸어내림. 만에 하나, 순서가 뒤바뀌었으면.... 나무관셈!
"겨울 깊으니 보이는구나 푸른 소나무" 우리 똥간에 붙여 놓은 이철수 판화 한점이, 똥간 작은창 밖에 저렇게 있구먼요. 도도한 기상의 저 나무들, 부드런 눈에 맥없이 쳐저 있고요. 허허 한 없이 부드러워진 내 마음... 루쉰의"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보다 죽여(竹如 ) 선생의 "아침글을 저녁에 싣다"가 쏙쏙 눈에 박히는 것은 그의 삶이 촌부의 마음 속에 깊이 있는 까닭인가 봅니다. 올해도 건강 잘 챙기시구려.
나의 삶이 그대 속에? 하면.... 늬는 숙주. 나는 회충? 에고, 더러 늬 얼굴에 황달이 오고 간혹 속이 더부룩, 메스껍더라도 지발 산토닌은 먹지 마시압.
그 담날 저를 부천에 있는 병원까지 데려다 주심이 어찌나 감사했는지요. 물론 계해 언니 때문이겠지만... ㅋㅋ (이 컴플렉스), 부른다고 먼길 오시는 정쌤은 또 어땠는지... 문경에서 2차 할 수 있었는데... 쌤들의 진한 마음을 가슴으로 콱콱 느낄 수 있는 날이 었습니다.
음, 그날, 내 리트머스를 안 이후, 리트머스가 가장 필 받아있었는데.... 그걸 그대로 바다로 이어가지 못해서 어찌나 아쉽던지.... 쌤들한테 술 많이 얻어먹은 거 복수할 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