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과에 김원찬 교수님이 홈페이지에 학생들을 위해 남기신 글인데..
글쎄요..모두들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글이네요..
이공계쪽 생각하는 분이면 특히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하구요.
꼭 아니더라도 5분 투자론 정도는 가슴깊히 새겨둘 말은거 같네요.
이공계 진학을 목표를 하는분을 위해 사실 진로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관계없지만
자르지 않고 다 긁어(?) 왔습니다.
오늘은 일반적인 이야기 대신, 스누피(SNU, particularly, EE)의 第一苦悶項目인 전공과목공부와 진로에 대해 생각하기로 하자. 모처럼의 긴 연휴만큼 오늘은 천천히 길게 한번 이야기해보자.
우선, 공부라면 일가견이 있는 스누피 식구(참, 스누피 식구면 당연히 스누피로구먼)들에게 학과공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한번쯤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해보고, 그 다음 본론인 진로에 대해 생각키로 하지.
수강자세에 관한 내 지론은 ‘5분 갈림길’이다. 물론 학교생활에서 예습이 왕도임엔 틀림없다. 하루 전에 책을 읽어보면서 궁금한 것 미리 체크해두고 수업을 듣는다면 더 이상 바랄나위 없다. 준비된 사람이 세상을 여유롭게 살 수 있듯이, 수업시간이 재미있고, 궁금증도 풀리니 금상첨화다. 그런 것을 몰라서 예습을 못하는 우리 스누피들도 아니니, 차선책을 제시한다. 수업시간 오분전에 강의실에 미리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책장을 넘기면, 지난 시간에 배운 그림도 보이고, 오늘 배울 내용의 제목도 눈에 들어온다. 그것으로 족하다. 내 조카는 DVD 빌려오면 간추린 장면 먼저 본 후에야 본 영화로 들어간다. 나 자신도 음악회에 가 앉으면 우선 프로그램부터 읽어야 음악 들을 마음이 생긴다. 이런 것이 수업 듣는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칠판에 새 단어가 쓰이면 ‘저건 또 뭐야’ 하며 경계심부터 발동되는 것보다는, ‘아하! 아까 그거’ 하면서 친근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전공개념에 대한 멘털배리어를 없애는 방법이다. 수업시간 50분을 즐기느냐, 50분 동안을 참아야 하느냐의 갈림길은 수업전 오분에 달려있다.
그 다음은 ‘5분 잠들기’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젊은이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조는 사람 혼내 주지만, 나는 오분동안 잠들기를 권한다. (누군가 내 수업시간에 자다가 쫓겨났다고 리플을 달았던데, 아마 딴 이유였을 것이다.) 차라리 오분만 놓치고 나머지 건지는 편이 시간 내내 조는 것 보다 훨씬 낫다. 이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애처롭게 매달리는 것보다 약간의 여유를 갖는게 좋지 않겠는가.
수업시간은 그렇고, 집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내용이 이해가 잘 안될 때는 어쩔 것인가?
내가 권하고 싶은 방법은 ‘5분 동안 입장 바꾸기’이다. 안되는 것에 매달려 더욱 조급해질 필요가 없다. 계속 달라붙는다고 효율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이런 때는 책을 5분 동안 덮고 고개를 한번 치켜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 학생시절에 가장 효과를 본 방법이기도 하다. 상대방과 대화하다가 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땐 어떻게 하나?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쉽게 풀리지 않던가? 책을 읽을 때도 그래보는 것이다. 책이란 것은 창작품이요 대화의 수단이다. 오분만 책을 덮고 생각해보자.
이 개념과 내용을 처음 만들어 낸 사람에게도 어떤 이유가 있었을 테니, 그 ‘발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사람도 무엇인가 강조하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니, 그 ‘전달자’의 입장에서 포인트를 찾아보는 것이다.
짧은 ‘입장 바꾸기’는 내 외로움을 덜어주고 저자와 나를 친구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위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강신청 하기 전에 ‘인생설계 5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내가 인생설계의 어떤 관점에서 이 과목을 신청하려는지....
한 과목을 선택할 당시 어떤 이유로 이 과목을 택했는가의 마음가짐이 한 학기 내내 수강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새 학기마다 어떤 마음으로 과목들을 고르느냐에 따라서 일생의 진로가 바뀔 수 있다. 5분동안의 신중한 시간을 마련한다면 그 이상의 가치로 보답이 올 것이다.
이제 진로 문제로 넘어가자.
우선 일반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나이에 석사 박사과정을 밟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그냥 여기에 머무르면서 계속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중간에 군대를 갔다 오든지 병역 대체 제도를 이용한 후, 유학을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장일단이 있다. 여기 남아 있는 것은 환경의 변화가 크지 않으니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바람직하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분야의 연구실에 들어가지 못해서 불만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정원이라는 개념이 있는 한 어쩔 수 없다. 유학을 가도 이 문제는 마찬가지다.) 이미 익숙해진 리듬에 따라, 사고방식과 이해관계가 비슷한 동료와 선후배와 함께, 비교적 효율적으로 학위 과정을 밟을 수 있다.
그러나 운명에 도전하는 자세로 자신이 의지할 곳도 없는 곳에 몸을 던지는 유학생활도 한번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어느 순간이라도 소홀히 하면 장학금이 떨어질 수 있고, 내 고집만 피우다가는 연구실 자리를 떠나야 할 수도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두뇌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인간적 낭만의 틈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점이고, 우리와 다른 가치관과 사회체계에 접해보는 경험도 값진 것이다.
그러나 오해는 말기를. 유학을 가야 더 차원 높은 연구를 한다거나 귀국해서 더 좋은 자리를 보장받는다는 생각이라면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려해보기를 권한다. 그것은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우리 교수진과 이곳의 시설은 웬만한 외국대학보다 훨씬 낫다. 공연한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연구내용도 그렇고, 논문 발표실적도 그렇다.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가볍게 본다면 그것은 선입관이다.
모두 박사과정까지 마칠 필요는 없다. 석사까지는 코스 성격이 강해서 그다지 큰 부담은 없지만, 박사과정은 ‘연구’라는 특성 때문에 신중한 검토와결심이 필요하다. 연구라는 것에는 원래 정신적/시간적 불확실성이 따르는데, 나중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닌 일에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낭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사논문은 현실적으로 선배와의 경쟁이다. 이미 산업체와 연구소에 진출해 있는 ‘세계 각국의 인생선배’들이 더 막강한 연구비 지원을 받으며, 더 좋은 시설로, 더 경험 많은 사람들과 한 팀이 되어, 이루어낸 연구랑 오직 결과만으로 (Show me the data!) 경쟁하는 곳이 바로 이 논문의 세계이다. 여기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 인간적 고뇌가 들어갈 자리는 더더욱 없다.
그렇지만 ‘실용성’을 너무 의식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Once upon a time, 어느 미국대학에 나비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었단다. 갑자기 경제공황이 닥쳐왔고, ‘실질적 기여도’가 낮은 연구원들이 잘리기 시작했고, 이 나비친구도 잘릴 위험에 놓였지만, 연구비 부담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의 연구가 적용된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미군의 군복 무늬요, 탱크를 그물로 덮을 때 쓰는 ‘자연스런 위장무늬’였고, 이것 덕분에 수많은 젋은이들의 소중한 목숨이 보호될 수 있었단다. 이 인생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한 잃는 것이 없다는 산 교훈인 셈이다.
그런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위험부담이 큰 박사과정을 피해 석사를 마치고 취업하게 된다. 더구나 바로 이 때가 대부분 젊은이의 결혼적령기 아니던가. 직장과 수입이라는 관점이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가오는 때이다.
그렇지만 행여나 이것을 석사과정을 마치고 중간에 ‘포기’한다고 이해할 일은 아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그저 가르쳐주는 것을 ‘배우기’만 했는데, 이제 사회로 진출하기 전 마지막 단계에서, 하나의 테마를 '파고들어'가면서 전문성을 키우고,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자기 '나름대로 해결'해나가는 값진 경험을 얻는 과정이다.
또 이 석사과정에는 보험적 성격도 있다. 나중에라도 박사학위를 받고 싶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참 논의되고 있는 산업체 박사도 그 가능성에 포함되는 것이고.
우리 스누피의 환경특성상 석박사과정으로의 진학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세계적 추세는 학부만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두뇌들이 대학원을 기피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의 현상이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경제가 호황으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힘든 것을 피하게 되는 비가역현상이다.
MIT에 있을 때 내 방을 끈질기게 드나들던 학부학생이 있었다. 성적도 거의 만점에 가까웠고, 기지가 번뜩이는 범상치 않은 백인친구였는데, 놀랍게도 대학원은 ‘관심 밖’이었다. 그의 이야기.
계속 더 배운다는 것은 더 좁은 분야에 매달리는 것이고, 세부사항에 집착하면 시야가 좁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자칫 큰 줄거리를 놓치는 사고방식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내 사업에는 큰 지장이 될것이다. 아까운 성적? 그건 내가 이게 마지막 배움이라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 그런 것뿐이지, 내 아이큐가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대학원에 가서 더 배울 생각을 했다면,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내 사업에는 MIT출신이라는 배경이 늘 따를 것이고, 나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기만 하면 된다.
유학 가서 학위를 따는 것은 우리가 후진사회였을 때 외국 문물을 받아들일 때 효과가 있던 길이고, 유학출신이 요직을 차지했던 것은 그들의 ‘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know-how carrier로서의 기능’을 활용하려는 과도기적 사회현상이었다. 이제 세계는 변하고 있다. 우리는 더 크게 변하고 있다. 꼭 대학원을 가야 전문지식을 키울 수 있는것도 아니고, 유학을 가야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 말단사원이라고 자신을 낮추지 말라. 인생은 긴 것이고, 이것만이 야전사령관이 되는 첫걸음이다.
‘편한 길’ 마다하고 ‘원대한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사업을 일으키는 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젊을 때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 나무는 더 단단해지고, 알찬 열매를 맺는다.
물론 단순히 시작했다는 것이 종착역에 이르는 보증은 아니다. 작은 가지치기를 게을리 않고, 소인배의 소곤거림에 물들지 않고, 언제나 목표의식을 ‘열린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이 필수조건임을 잊지 말 것이다.
가끔 진로에 회의를 느끼는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와 상담하곤 한다. 이때 내가 하는 일은 잠자코 듣는 것이다. 이야기가 아주 길어져도 듣기만 한다. 사실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스누피가 혼자서 그토록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있다면 좋고, 아직 결론은 내리지 못한 상태라면, 스스로 결론에 이르도록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사법고시나 기술고시로 방향을 잡았다면 그리로 밀고 나갈 것이요. 변리사하고 싶다면 그리할 것이다. 학부 마치고 경영대를 가려면 그리할 것이고, CPA 본다면 그리하라고...... 심지어는 4학년에 들어섰는데 한의사 되려고 다시 입시공부를 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역시 격려해줄 수밖에. 스누피 모두가 전기전자분야에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고, 개인의 행복은 중요한 것이다. 어느 분야로 방향을 돌리더라도 여기에서 배운 것이 유용할 것이고, 여기에서의 고민이 그의 인생깊이를 더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따른다. 이곳에서의 막연한 불안감, 패배감 때문에, 또는 이런저런 겁주는 이야기에 질려서, 우선 이곳에서 벗어나고나 보자는 것이 그 이유라면, 그건 분명 잘못된 것이다. 모티베이션이 결여된 진로변경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우리 집안 문제를 우리가 잘 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저쪽 집 문제를 내 어찌 잘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동네에 떠도는 이야기 듣고 저쪽 집으로 옮겨가려고? 그렇게 쉽게 겁에 질리는 민감한 성격이라면 그쪽 집에도 역시 우리집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까지 시간이 별로 오래걸리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다시 우리집을, 이번에는 더 아쉬워하며, 그리워하리라.
우리 스누피의 위치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일이라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차원에서 본다면 스누피 소속원은 일종의 공인이다. 여기 있으면서 제대로 할 생각 없으면 딴 사람에게 자리를 내 줘야한다. 너무 과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의대랑 법대랑 우리 스누피랑 세군데 함께 요새 그 유행하는 동맹파업 한번 해보자. 의대 법대는 몰라도 우리 스누피에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은 엄청날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국제경쟁력이 남아있는 산업이라면 반도체와 정보통신, 그리고 자동차와 조선 그정도이다. 우리 301동이 무너지면 이 양대 축이 무너진다. 믿기지 않는다면 정말로 한달정도 파업해보자.
이런 스누피에게 과감한 진로 변경을(물론 뚜렷한 모티베이션이 있다는 전제하에) 서슴없이 권하는 것은 즉흥적 발상이 아닌 오래전부터의 생각이다. 내가 학교에 처음 왔을 땐 정말 암울한 시기였다. 권력기관 뿐만 아니라, 경제계, 문화계, 심지어는 국책 연구소와 연구조합의 요소요소까지 군출신들에 의해 점령당해 있었다. 원활한 사업수행과 예산확보에 있어서 육사출신 네트워크와의 연결고리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회정의라는 말도 사치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검사위에 판사, 판사위에 육사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그 당시 공대생들의 좌절감을 오늘의 스누피들이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때 내 단골메뉴가 ‘20년 쿠데타’였다. 25명만 전자를 하고, 다섯은 재계로, 다섯은 관리로! (그때 전자과는 35명이었다.) 500명의 브레인이 반도체와 통신 분야에서, 백명의 브레인이 예산기획부서에서, 또 백명의 브레인은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에서,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능력과 치밀함으로 일을 도모해 간다면 저 육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겨우 한웅큼 밖에 되지 않는 입학정원에 무슨 희망이 있었으랴. 학부 졸업 후 대부분은 대학원으로 진학했고, 석사학위 취득 후 소위 육개장(육개월 장교복무로 병역필)이란 석사장교 제도를 활용해 졸업생의 상당수는 유학길에 올랐고, 귀국 후엔 대부분 대학으로 빠져 안주해 버리는 상황이었으니, 쿠데타는커녕 회사마다 서울대 졸업생 구경 한번 해보자는 푸념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 기회가 온 것은 올림픽 이후의 반도체 호황기였다. 중간의 어려웠던 과정에 대해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쨌든 이제 스누피는 거인이다. 서울대내의 웬만한 단과대학보다 더 큰 규모다.
하나의 강의가 서너강좌로 나뉘어 진행되는 가운데 학생들이 군중속의 고독을 느낀다 하고, 서울공대 출신의 희소가치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는 이야기 들을 때 마다, 학부통합과 대폭증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일단의 일원으로서 미안한 느낌이 없지도 않다. 그렇지만 지금이 잘못된 상태라는 생각은 없다.
우리의 목표는 일본에도 눌리지 않고, 중국에도 무너지지 않고, 미국과 당당히 경쟁하는 전자강국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스누피도 아직 모자라고 301동은 너무 비좁다.
우리 스누피의 진로를 단순히 회사나 연구소 또는 학교에 국한 시킬 수 없다. 정치 경제 과학 문화 어느 분야에도 우리 졸업생이 뿌리를 내리는 그 때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진정 균형 잡힌 앞날이 올 것이다.
이제 우리 스누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라. 그것이 남을 해치는 결과만 가져오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옳다.’
우리 스누피들이 누군가. 그 어려운 경쟁을 뚫고 여기 앉아 있는 것 아닌가. 그 바탕능력이 쉽게 녹 쓸리 없다.
통념에 매여 모두가 고속도로 들어선다면, 그곳은 이미 ‘고속’도로가 아닌 것을 우리가 어제그제 보았지 않았나?
각자 자기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어느 진로를 택하건, 살아간다는 것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기운이 빠지고, 고민이 생길 때마다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저 수많은 눈들을 생각하며 새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어려운 일이 닥칠 때 행여나 ‘서울대 출신’임에 은근히 기대고 싶은 생각일랑 아예 접어두기를.
공정한 게임법칙을 어기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비겁함이고, 나 자신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작은 비교’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리면, 그 자체가 보람이요, 그 자체가 행복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큰 나무. 그것이 우리가 되기 원하는 것 아니든가?
(追)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20년 쿠데타 론’을 이야기하던 그 당시이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독기어린’ 얼굴로 내 연구실에 들어섰다. 인사따위는 사치. 곧장 독백으로 들어간다. 선생님 세상을 알기나 하세요? 난 학비마련하려 동생들과 함께 포장마차 한다구요. 그의 기세에 눌려 조용히 들을 수밖에. 새벽 4시면 수산시장에 가야하고, 싱싱한 재료를 깨끗이 손질하고나면 8시, 쉬지도 못한 채 학교로 오게 되죠. 학교 끝나면 서둘러 포장마차로, 7시부터 손님 맞기 시작해 한두시까지 손님 받고, 다음날 영업위해 깨끗이 정리하다보면, 어느 새 또 수산시장 가야할 시간이고.... 결국 수업시간이 졸며 자며 유일한 휴식시간이랍니다. 그렇게 일해도 우리 동생들 앞날은 캄캄합니다. 요점이 뭔데... , 그래서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드디어 한 옥타브 높아진다. 우리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동안 선생님은 편하게 유학이나 하시고, 이제 와서 학생들의 투쟁에 ‘훼방’이나 놀면서, 한가하게 20년 쿠데타 운운하시다니.
훼방? 방해?....... 아하! 그것 때문이로구나! 그 전 학기에 내 과목에서 40%를 F준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한이 맺혔던 것이다. 다섯 번이나 시험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다들 ‘타도 전두환’ 외치느라 날 상대 해주지도 않았으니 나로서도 어쩔수 없었던 일인데.
그 때 짜장면가게 얘기를 꺼냈다. 나라를 위한다고, 내가 짜장면가게 문닫으면, 우리식구 굶게 되고, 그리되면 저 육사 더 날뛰어도 방법이 없다. 짜장면 잘 만들고, 공부 열심히 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으니, 머리에 수건 질끈 동여매고 그깟 전경과 맞서는 것은 일단 짜장면이나 팔고나서 하자했다. 그런데도 짜장면 만들기 포기한 이들에게 F 아닌 B돈 C돈 주라고? 천만에! 그렇게 동생들 위하는 마음이 지극하다면 삼성에 취직하라. 밤낮으로 연구하고, 누구도 흉내못낼 특허 만들고, 수억불 수십억불 수출해보라. 이병철 회장이 개인적으로 저녁초대하면서, 원하는 것 무엇이든 다 들어 주겠다 할 것이다. 그 때 요구하라. 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고. 후배들이 아르바이트 걱정 없이 마음 놓고 공부하게 장학재단 하나 부탁한다고. 또 한 가지. 집안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배움을 포기하고 이 삼성에서 일하고 있는 공원들 위해 야간대학 하나 삼성 옆에 세워달라고.
이 학생 나중에 과학원 입학하고, 지나가던 길에 인사 왔었는데, 그 후론 어찌 되었는지......
첫댓글 "5분 잠들기"를 빼고 전적으로 동의한다......참 좋은 글이다......."5분 잠들기에 대해선 도올 선생의 말에 한표!" .........."젊은이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