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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늘 새땅 너는 나의 황금나비
2022년 10월23일 일요일.
제881회. 사드배치 결사반대 김천시민 촛불집회.
따뜻한 커피가 반가운 계절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여기 이 자리에 다시 모였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촛불의 온기 가득한 이곳..
1. 사회자는 이재호 농민회 사무국장.
" 사드 반대 사드 배치 반대 시민 대책위 운영팀이자 김천시 농민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재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사실 약간 이런 것도 버릇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 올라왔을 때는 굉장히 떨렸었거든요.
근데 이제 지금이 한 세 번째 정도 되는 것 같고요 하다 보니까 떨리는 건 좀 없어진 것 같아요.
근데 이거 안 보고는 또 진행이 아직까지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한 5번 정도 하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제881회 불법 사드 철거 김천 촛불집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민중의례를 실시하겠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국선열을 기념하는 묵념>
2. 여는 발언. 맘까페 회장. 최현정님
"공동위원장님들이 바빠서 오늘 참여 못하셔서인지 앞자리가 좀 썰렁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마이크를 잡게 되었네요..
오늘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뒤에 있던 항상 뒤에 있던 정보과 경찰들도 안 보이는데 늘 안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행사를 할 때마다 왠지 뒤통수가 가렵고 또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일들이 별로 유쾌하진 않죠.. 앞으로도 경찰들이 안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김천시에서는 항상 약간 뭔가 약간 선동하는 사람으로 제가 약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전화를 받았는데 시청에서 모 면에서 집회 신고를 낸다는 소문이 있는데 혹시 거기에 가는지 확인하는 전화가 여러번 오기도 하고요.. 뭔가 색안경을 끼고 저를 바라보는 것같습니다.
어제 서울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격돌하는 대규모의 집회가 있었는데, 사실 그 신호를 준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봅니다. 윤석열의 말을 들어보면, 그럼 내가 주사파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미군을 위해서 이렇게 사드를 소성리에 설치한 이것과 그리고 일본의 이권, 일본과 함께 이런 독도 부분에 와서 훈련하는 것 주사파 척결의 문제가 아니고 매국노를 척결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씨가 추운데 끝까지 이렇게 좀 손과 손을 잡고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구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드뽑고 평화심자/불법공사 중단하라/투쟁~~~! 감사합니다."
...
<사회자 중간 발언>
"김천시 농민회에서는 올봄에 통일쌀 모내기 한 쌀을 오늘 수확을 했습니다. 근데 사실 오늘 수확을 해보니까 소출이 많지 않아요. 작년 대비 10에서 한 20프로 이상 소출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쌀값이 떨어집니다. 사실 이 쌀은 농민들에게 땀값이고 핏값입니다. 땀값이고 핏값이면 목숨 값입니다. 농민들이 농사 지은 그 목숨 값을 제대로 보상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쌀값을 정부에 올려달라고 하니 정부에서 하는 대답은 이런 거였습니다.
쌀 수매하는 데 한 1조 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수매한 쌀을 보관하는 데 또 한 1조 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2조 원이 든다고 하는데 그래서 예산 때문에 힘이 든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예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고 생각을 좀 해보니 사실 쌀이 남으면 먹을 수요처를 찾아서 그분들한테 주면 될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쌀 못 사는 데가 저희는 아주 가까운 데 있거든요. 또 북한 얘기하면 아까 제가 얘기했던 주사파 좌빨 이런 얘기 할 수도 있는데 사실 북한 사람들 우리 동포잖아요. 그분들 굶고 있거든요. 쌀이 모자라서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이렇게 수확한 쌀이 만약에 남는다라고 하면 북한에 좀 보내고 북한에는 짧은 지식이지만 굉장히 많은 지하자원이 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히토류 금속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금속들이 굉장히 많은데 만약에 그냥 공짜로 주고 이렇게 펴주기 식으로 주는 비난이 우려가 된다라고 하면 쌀 주고 우리 산업에 필요한 그런 지하자원을 가져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그렇다라고 하면
대한민국 농민도 좋을 거고 또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들도 배고프지 않아서 좋을 거고 또 살아가는 친구들도 그런 금속을 원활하게 공급받는 것만 해도 굉장히 좋을 거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윤석열 정부가 남북대치 관계만 접어준다라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좀 방송 나가는 거죠. 그거 보고 좀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다음 투쟁 발언을 이어갈 순서인데, 한동안 굉장히 몸이 안 좋으셔서 집회 장소에 많이 나오시지는 못하셨어요.
구자숙 선생님 모시고 투쟁 발언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3. 기록팀 구자숙쌤 발언.
"예, 요즘 뉴스 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 힘이 대한민국 사람들을 완전히 혈압 올라가지고 뒤로 넘어가게 만들려고 작심을 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다는 너무 춥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나 그 상황을 보면서 그래도 이게 우리 욕망이 빚어낸 사람인데 사실은 우리의 욕망이 무엇이었던가 우리 욕망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고민하고 돌아볼 시간을 주는 게 아닌가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좀 했거든요.
어쨌거나 지금은 무지하게 절망의 시대라고 생각하는데요. 절망의 시대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노래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 제가 한번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요.
김하기라는 분이 쓰신 완전한 만남이라는 소설에 보면
감옥에서 10년 20년 넘게 수감된 사상범이죠. 이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한 대학생 청년과 같은 방을 썼는데 그 할아버지 중에 한 사람이 운동 시간이 되면 늘 아무것도 없는 꽃밭에 물을 주거든요.
그 추운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꽃밭에 그래서 그 청년이 물었어요. 왜 아무것도 없는데 물을 주느냐 하니까 그 할아버지가 하는 이야기가 나는 이 얼어붙은 땅 밑에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내년 봄에 여기에서 싹이 나서 꽃이 피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그 날을 위해서 지금 물을 주고 있다라고 하더랍니다.
근데 그 할아버지가 그렇게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뭐냐 하면 일제강점기 한 열 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를 따라 백두산에 아버지를 만나러 간 적이 있거든요. 우동 불빛이라고 해서 장작을 떼서 불빛을 비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우동 불빛 아래
수는 적겠지요.
독립군들이 모여서 군사 훈련하고 독립의 그날을 꿈꾸는 모습을 보면서 이 어린 소년의 가슴에 조국의 해방을 위한 희망을 보았거든요. 희망의 불꽃이 피었거든요. 그것을 간직하고 이 사람은
감옥 생활 속에서도 언젠가 통일이 될 이 세상에 내가 하나의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물을 뿌렸거든요.
https://namu.wiki/w/%EC%95%88%EB%8F%99%EA%B5%90%EA%B5%AC%20%EA%B0%80%ED%86%A8%EB%A6%AD%EB%86%8D%EB%AF%BC%ED%9A%8C%20%EC%82%AC%EA%B1%B4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 - 나무위키
1. 개요 유신 정권 당시인 1978년 경상북도 영양군 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농협 에서 불하한 씨감자 문제를 놓고 지역농협이 농민들을 속이자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가톨릭 농민회와 연대하여 보상을 요구하며 투쟁한 사건. 일명 '오원춘 사건'이라고 하며 함평 고구마 사건 과 함께 벌어진 공무원들의 농민에 대해 벌인 대표적인 기만행위이며, 박종상(가브리엘) 신부 구타 유기사건과 함께 1970년대에 벌어진 대표적인 한국 천주교 와 정부 사이의 충돌 사건이다. 참고로 똑같이 오원춘 사건이라 지칭되는 수원 토막살인 사건 과는 다른 사건이다....
namu.wiki
1979년에 그때 우리나라 박정희 독재 시대였어요. 유신 독재시대에 천주교하고 우리 정부하고 한판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누구 때문이냐 카톨릭 농민회의 오원춘이라는 사람 때문이었거든요. 우연히도 이 오원춘이란 사람이 범죄자로 이름이 갚아서 참 기분이 나쁜데 그 당시에는 이 사람 정말 유명했거든요.
이 사람이 뭐 있는 사람이냐 하면 카톨릭 농민에 정말 뭔 직책을 맡았는데, 전라남도 함평의 고구마가 완전 썩은 고구마 싹을 정부에서 배부해가지고 발칵 뒤집어졌을 때 이 사람이 앞장서서 그 보상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타켓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이 한 그 한 달 정도 안 보여서 신부님들이 물었을 때요 당신 그동안 어디 갔었느냐 하니까, 중앙정보부에서 끌려가서 울릉도에 며 끌려다녔다라고 해가지고 신부님들이 그걸 공론화했거든요. 그래서 겨울부터 한 3월까지가 계속 그것 때문에 천주교 쪽하고 정부하고 싸움이 붙었어요.
그때 저는 그때는 한창 좀 신앙심이 있던 때라서 매일 새벽 미사를 나갔어요. 기특하게도 근데 이 새벽 미사를 나가면 신부님이 맨날 강론을 하는데 맨날 오원춘사건 강론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요즘 말로 하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근데 그때 원춘이가 데뷔 전 방송에 한 번 나왔었거든요. 나와서 많은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가 거짓말을 했다. 나 여자 때문에 잠시 잠적을 한 거지 정보부에 끌려간 거 아니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신부님은 계속 그게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도저히 안 돼서 제가 신부님한테 면담을 요청했어요.
그 신부님이 이런저런 증거를 내시는데 그렇지만 텔레비전에 나왔던 그 말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어서 제가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마지막에 그러시더라고요 너도 고문을 하면 뭔 말을 못하겠느냐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가 고마 인정해라 그 사람들 말 받아들여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라고 했거든요.
그렇게 이제 조금 잠잠해지니까 그다음에 일어난 게 뭐냐 하면 yh라고 하는 가발 회사가 있었는데 그 사장이
임금을 몇 개월 체불하고는 돈 다 떼먹고 미국으로 도망 회사 문 닫고 미국으로 도망가니까 이 여공들이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신민당사를 점거했다가 시민당사에 경찰이 쳐들어오니까 저항하다가 그중에 한 명이 죽었지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결국은 신민당 의원들이 농성을 하다가 김영삼 제명이라고 하는 그런 극한까지 몰고 갔는데요. 그때 저는 정말 그 시대에 대해서 절망했거든요. 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다. 얼마나 큰 힘이냐 군인들과 정보부 저 큰 힘에 어떻게 우리가 대항하겠느냐
근데도 참 기특하게 그 시절을 남겨 놓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저 지독한 독재자도 때가 되면 안 죽겠나 때가 돼서 그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이 살았을 동안 뭔 일을 했는가를 이야기해야 안 되나 싶어서 그때 그 신문하고 그때는 카톨릭 신문도 굉장히 했거든요. 그리고 매일같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는 성당 주보도 대단했어요. 그래서 그걸 다 오려가 붙였어요. 다 오려가지고 세상에 어떻게 달라지는가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때가 되면 박정희는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그때가 빨리 온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그리고 그 때가 되니까 너무나 사람들이 좀 뭐랄까 서울의 봄 이러면서 너무나 흥분하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그때 그 사람들에게 학생이었지만 동조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내 친구가 나는 당연히
매일같이 시계탑이 있는 데서 토론회를 하고 또 대자보가 붙고 처음으로 우리의 전두환 이름 신현확 이름 그때 처음. 알았거든요.
마지막 날 이렇게 토론만 하면 뭐 하느냐
스크럼을 짜고 나가자 할 때 내 친구가 내 손을 잡더라고요 난 당연히 따라가리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제가 그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러면서 제가 결심했는 게 뭐냐 하면은 나는 학교 다닐 때만 정의를 부르짖고 막상 직업을 가졌을 때는 비굴한 소시민이 되지 않겠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그래서 그 결심을 했는데요.
그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에 세상은 다시 잠잠해졌죠. 근데 제가 다시 역사를 믿기 시작했는 거 87년 6월 항쟁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냥
학교에서 학생들 흥분하지 않도록 잘 다스려라는 그걸 듣고 토요일날 일부러 대구역에 내렸거든요. 근데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를 보았어요. 그러면서 아 역사가 뒤로 물러가는 줄 알았더니만 그렇지는 않구나, 또 한 번 역사는 이렇게 바뀌는구나 이 물결에 몸을 한번 맡긴 이상은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라는 그러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것이 절망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 대구역에 모였던 그 무지무지한 인파들이 그 흐름에도 희망은 있다라는 걸 보여줬거든요. 그래서 아마 저희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은 그때 보았던 그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부끄럽습니다. 근데 근데 지금 너무 어려운 환경이고 모두가 세상이 이렇게 해서 바뀌겠나 기껏 해봤으니까 그렇잖아요. 군부 독재 물러치고 나니까 그때 군부독재 때는 중앙정보부는 안기부의 힘이 막강했거든요. 그거 물리치고 나니까 이제 검찰의 시대가 왔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러한 힘에는 띄울 수가 없다라는 절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행동들이 많은 제약이 오더라도 역사에 대한 희망을 갖고 그리고 그거를 그냥 가슴 속에 품는 게 아니고 뭔가 하다못해 담벼락에 낙서를 하더라도
하다못해 하늘을 보고 욕을 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이 예전에 하신 말씀이죠. 그렇게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우리의 내일을 다시 희망으로 열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희망을 잃지 말고, 세상에 아무리 춥고 어려워도 이 밑으로는 따뜻한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계절이 있죠. 겨울이 아무리 길고 지루해도 봄은 오고야 말 겁니다. 그래서 이 봄을 기다리면서.. 그러나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고,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자기대로 행동하는 것이 봄을 맞이하는 가장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구호 한 번 외치겠습니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사드 뽑고 평화 심자/.. 감사합니다."
4. 문화공연. 경산에서 오신 가수 박성운님의 무대
< 바위처럼 >
< 공지사항 >
" 소성리 진밭교에서 평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월수금 3개 단체가 나눠서 이렇게 하루씩 맡아서 하고 있는데요. 월요일은 김천에서 담당하는 날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 조금 힘든 부분이 있는데 월요일날 6시 반에 시간되는 분들 많이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 목은 진밭교가 아니고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진행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상으로 오늘 집회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