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일상을 살아가면서 문득 깨닫거나 느꼈어도
그냥 지나쳤을 삶의 조각들을 훈훈하게 그려낸 삶의 이야기!”
첫 장편소설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를 속속들이 체험했다. 그래도 지난 이 년간 이 소설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게 한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날로 메마르고 거칠어가는 이 시대에 타인을 배려하고 따뜻이 감싸주고 대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사랑을 주는 사람들을 보면 참! 그 마음씨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곤 한다. 또한 자기가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씨도 참으로 아름답다. 이 소설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 사회는 희망으로 정화(淨化)되어 갈 것임을 믿는다.
[작가소개] 소설가 허묵음
자유업에 종사하던 오십 대 후반, ‘인생 2막’은 글 쓰는 삶을 살기로 뜻을 세우고 책 읽기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육십 대 중반에 자유업을 접고, 책 읽기와 시와 산문 습작과정을 거쳐 독학으로 소설 쓰기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저서로는 단편소설모음집 「그 여인의 초상」과 산문집 「스친 인연 기억하기」, 장편소설 「그날이 올 때까지」 등이 있다.
[이 책 본문 中에서]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하루 일에 지친 몸을 추스르며 걸어가는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언제나처럼 마음은 편안했다. 집에 가면 가족들이 있고, 단 한 시간이지만 공부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일과 공부는 그가 마음먹고 있는 오십 대 이후의 한 차원 높은 삶을 위한 것이므로, 그는 다른 것에 눈 돌리지 아니하고 날마다 일과 공부에 최선을 다했다. 그날 일과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새벽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작은 냄비에 담아놓은 국을 데워 밥을 말아 한술 뜨고 집을 나오는 시각은 다섯 시였다. 지하철역까지 삼십 분을 걸어가면 다섯 시 반에 출발하는 첫차를 탈 수 있었다. 첫차임에도 객실 좌석의 삼 분의 이 정도는 승객들이 앉아있었고, 그들은 모두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는 듯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의 행색(行色)을 보면, 남자는 모자와 잠바 차림에 튼튼한 운동화를, 여자는 벗고 입기 편한 옷에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무릎 위에 작은 백팩을 올려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첫눈에도 일하려고 출근하는 근로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은 이처럼 이른 새벽부터 각자의 삶의 공간에서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민수는 여느 때처럼 휴대폰에 이어폰을 꽂고 알람 시간을 맞춘 후 잠을 청했다. 다음 내려야 할 역까지는 사십 분을 가야 하는 거리였으므로, 부족한 잠을 조금이라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역에서 내려 회사 버스로 다시 건설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이십 분을 더 차를 타긴 하지만, 버스 안에서는 소소한 소음 때문에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작업이 시작되는 시간은 일곱 시였다. 서둘러 작업모와 작업복을 챙겨 입은 민수는 건설 현장 사무소 앞에 죽 늘어선 동료들과 함께 현장소장의 간단한 작업지시를 듣고서 작업 현장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
“이 글을 다 읽어갈 때쯤이면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당신의 작은 소식 하나를 전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여기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이 있다. 이 책은 독자의 오랜 기대에 대한 허묵음 작가의 성실한 응답이자 상실과 회복에 관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미사여구를 배제하고 언어의 낭비 없이 담백하게 써내려간 쉽게 읽히면서도 섬세하고 중량감 있는 문장들로 독자들에게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겐 그런 날이 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난 사람인 것 같은 날 이제 내게는 살아갈 희망도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만 같은 때가! 그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밑바닥에 다다르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것들도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즉, 내 곁에 누가 머물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허묵음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400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