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찌 그에게 성사를 주지 않으리오
양정환 신부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한국교회 초기 신자들은 고해성사의 보속으로 종아리를 맞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승훈의 세례가 1784년에 있었고,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은 1794년 우리나라에 오셨습니다. 평신도 지도자들이 ‘가성직제’ 로 성사를 집행할 때도 열렬했던 신자들이니 진짜 신부님이 드리는 미사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바라는데, 신부님은 우리말을 모릅니다.
양반은 한자로라도 성사를 볼 수 있었지만,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성사를 볼 수 없었습니다.
성사를 보겠다고 며칠씩 먹지도 못하고 잠도 거르며 걸어온 신자들.
고해성사의 소중함을 얼마나 깊이 깨달았기에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천신만고 끝에 찾아온 이들에게 성사를 주지 않을 수는 없고, 사제가 못 알아듣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신자가 보속이 무엇인지는 알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알아들을 수 없는 신자는 보속을 듣는 대신 종아리를 걷고 매를 맞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매를 맞아 아파서가 아니라 죄를 용서받은 기쁨 때문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신부님의 일기에 그때 그 모습이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나는 피로에 지쳐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열의에 찬 고해자가 또 왔다.
내가 어찌 그에게 성사를 주지 않으리오.
그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난 후 나는 조금 전의 피로가 씻은 듯 가신 것을 느꼈다.”
* 하느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심을 안다면, 우리가 그분의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