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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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 1941년 서울 출생. 서울대 및 동 대학원 독문과 졸업, 독일 뮌헨에서 수학.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아니다 그렇지 않다』『아니리』 『처음 만나던 때』 『크낙산의 마음』 『좀팽이처럼』 『물길』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시간의 부드러운 손』, 시선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대장간의 유혹』 『누군가를 위하여』, 산문집 『육성과 가성』 『천천히 올라가는 계단』, 학술 연구서 『귄터 아이히 연구』 등.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독문학). 녹원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