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후 1:8~11)24.08.04.주일낮설교
일본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대학 시절에 이미 문단에 데뷔하여 주목을 받은 야심 많은 젊은이였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스물여섯 살 되던 해에 아들을 얻었는데,
기형의 뇌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너무도 실망했습니다.
수술을 했지만 뇌가 손상된 아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심신 장애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이 아이와 함께 인생을 서로 배워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아이를 얻었을 때의 충격적인 심리 체험과, 그 이후 아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 계속하여 소설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장애인인 그 아들은 여러 양상으로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문학은 생명, 사랑,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의 영향력은 일본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마침내 1994년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가 사랑을 베풀어 온 그 아들은 뒤늦게 음악적 재능이 발견되어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절망을 뛰어넘어 희망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순간에 좌절하여 쓰러지지만,
어떤 사람은 그 순간부터 새로운 희망을 갖고 참다운 인생을 삽니다.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두 번째 보낸 편지입니다.
본문 말씀은 그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큰 환난을 당했는데 거의 죽음에 문턱에까지 이르렀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이 너무 극심하여 살 소망조차 없을 때,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고통과 고난 속에 있는 바울을 건져 주신 것입니다.
본문 8-10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바울은 자신이 엄청난 고난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자신을 고난 속에서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10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건지셨다, 건지신다, 건지실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과 시련이 닥칠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그 고난과 시련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기하면 안 됩니다. 포기를 선택하면 안 됩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을 바라보고 포기대신 희망을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 9절에서 우리는 <하나님 만>이라는 표현을 주목해야합니다.
바울은 큰 환난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하나님 만>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도>의 신앙이 아닌 온전히<하나님 만>의지한다는 것입니다.
항우와 유방이 중국천하를 두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 둘의 싸움에서 결국 항우가 패배하여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항우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사마천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내가 패한 것은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싸움을 잘못한 것도 아니고, 내가 패한 것은 오직 하늘이 나를 버린 것이다." 했습니다.
맞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능력이나, 스펙이나, 건강이나, 물질 때문에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 은 하늘이 버리지 말아야 이것이 성공입니다.
하늘이 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절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희망을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두 장의 그림을 그렸는데 한 장은 밝게 웃는 얼굴이었고
다른 한 장은 슬프게 우는 얼굴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상자 속에 넣어서 조명시설과 함께 두 개의 눈 구멍을 뚫어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동시에 상자 속의 그림을 보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의 눈에는 밝게 웃는 얼굴이 들어왔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슬피 우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분석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서
보는 시각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웃는 얼굴이 들어왔고, 세상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같이 우는 얼굴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땅을 바라보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희망을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매미가 웁니까? 노래합니까?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의 책에 이런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부인이 시장에 나와 작은 고기만 골라 사길래 상인이 물어보았더니, ‘우리 집 프라이팬이 작아서’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상인은, ‘부인, 고기를 사기 전에 프라이팬을 바꾸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한번 따라해 보세요.
우리는 잘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잘 됩니다.
어떤 여자가 남편과 두 번째 사별하고 믿음직한 남자와 세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새로 맞은 남편은 아내를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행복에 겨워야 할 부인은 몸이 약해지고 얼굴마저 날이 갈수록 창백해져 갔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물었습니다.
“어디 불편한 일이라도 있는 거요?”
그러자 부인은 단지 마음의 병이라고만 대답했습니다.
이에 진실한 남편은 자신이 잘못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어떻게
더 사랑해주면 되겠느냐고 하자 부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당신이 또 죽으면 어떻게 하나요?”
즉 걱정 때문에 몸이 말라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때와 부정적인 쪽으로 갈 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우리는 항상 긍정적으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겐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10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보십시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움을 건지시고 우리와 영원토록 동행해 주십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 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 여 날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바울을 절망에서 살린 것은 바로 기도이었습니다.
바울은 절망을 거부하고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일어서면서
이 편지를 읽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중보 기도를 부탁합니다.
11절입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기도로 일어설 수 있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힘들 때 희망을 갖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극적으로 대비되는 사람은
사울 왕과 다윗 왕입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 군대와 싸우다 패하게 되자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왕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목숨을 자기 스스로 버리는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다윗 왕은 사울 왕을 피해 도피 중에 있을 때
전투에 나가 있는 동안에 아말렉군이 쳐들어와서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다 사로잡아갔습니다. 뒤늦게 마을로 돌아와 그 광경을 본 다윗과 그 군사들은 울 기력조차 없을 정도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낙심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아말렉을 쫓아가 사로잡혔던 가족을 되찾고 아말렉을 전멸시키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러분도 울기력이 없을 정도로 고통 중에 있다 할지라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어려운 문제를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바울처럼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희망을 갖고 믿음으로 삽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