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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중개사 Report : 해방 후 성수동 개발사, 수제화거리에서 명품거리로
옛 성수동 수제화 · 피혁거리였던 성수카페거리의 모습 | |
하진중개사 REPORT ( 글, 사진 두하진 ) | |
성수동 특별보고서 | " 성수동은 강남지역과의 높은 접근성, 넓은 대지, 낮은 지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필연적으로 나타날수 밖에 없었다. " 젠트리피케이션 :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개발로 인해 활성화되면서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면서 기존에 거주하던 저소득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 |
새로운 부(富)의 축으로 : 성수동 편
본격적인 성수동 개발의 시작점
토지구획사업과 영동대교의 건설
1966년 뚝섬 일대에서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자 오늘날의 부동산업체인 집장사들이 들어와 여기저기에 기와집을 지었는데, 여기에는 비교적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영동교부근 성수동일대 - 출처『성수동; 장인, 천 번의 두들김』(2015), 48쪽 -
토지구획정리사업과 집장사들의 진출, 그리고 성수동이 산업공단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치솟는 지가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성수동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뚝섬유원지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유원지 부근에는 영동대교가 1970년 8월 13일에 착공하여 1973년 11월 8일에 완공되었다. 영동대교는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청담동을 잇는 폭 25m, 연장 1,040m의 6차선 다리이다. 이 다리는 종래 '영동교'라 하였는데 1984년 11월 한강상의 교량을 모두 '대교'로 통일함에 따라 영동대교로 이름이 조성되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강남 또한 아파트 건설에 힘입어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었으며 강남과 연결이 되는 영동대교로의 건설로 인해 강남과의 접근성이 용이해지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수동의 개발을 가속화하는 것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의 성수동이 있기까지 바로 이 '영동대교'의 역할이 톡톡히 했다는 점을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성수동 수제화산업의 메카
구두거리 · 피혁거리의 발자취를 따라서
옛 구두거리, 피혁거리로 들어가는 길 성수동 카페거리 초입길, 젊은 사람들로 붐빈다.
현재 MZ세대들이 즐기는 곳으로 많이 찾고 있는 명소인 성수동 카페거리와 뚝섬유원지는 사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도 즐길거리와 놀거리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1934년 경성교외궤도주식회사에서 경성궤도주식회사로 기동차사업을 이관하여 면허를 받고 동대문에서 왕십리 간의 별선을 건설하여 기동차를 운영했었다. 이 기동차 운영으로 알려져 있던 경성궤도주식회사에서 조선시대의 나루터였던 뚝섬유원지를 동뚝섬역 600미터 되는 지점 한강가에 유원지, 수영장, 어린이 놀이터 등을 만들어 피서객에게 즐길거리와 편의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 뚝섬유원지에서 여름이면 시민들이 수영을 즐기고 뱃놀이로도 유명했다.
기동차길과 경원선길(1963), 성동문화원 제공
이렇게 기동차가 생기고 사람들이 오가며 쉽게 뚝섬유원지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지만, 1986년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강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현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강시민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한강유람선의 선착장이 마련되어 있다. 해방이 되면서 뚝섬의 기동차는 미군정의 조치에 따라 적산시설로 몰수되었고 이후 경영악화로 인해 서울시에서 인수하여 시운영체제로 운영하다 노후와 수송력의 부족을 원인으로 1961년에 경성궤도의 폐지를 결정하였다. 지금의 성수동 경동초등학교의 전신인 뚝도공립보통학교가 과거 뚝섬유원지의 여름경찰서가 있던 곳에 세워졌다. 이 학교는 목조건물로 지어졌으나 을축년 대홍수 때 물에 떠내려가 지금 경동초등학교의 위치에 가건물을 지어 수업을 하였고 그 터가 지금 많은 젊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성수동 핫플로 알려져 있는 성수카페거리 초입에 위치한 경동초등학교이다.
뚝도공립보통학교가 있었던 현재 경동초등학교의 유치원 건물
1980년대 전후 성수동 1가와 성수동 2가에 걸친 성수동 공단은 지가상승과 공해문제 등으로 대규모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하였으며, 반면 폭발적인 주택수요로 공장 이전지에는 대부분 공동주택이 입지 하였다. 이렇게 성수동은 1990년대가 되면 서울 시내의 대표적 주공 혼합지역이 되었다. 1990년대 성동구의 제조업체 약 31퍼센트가 성수동에 밀집, 집중되었을 정도로 비교적 저렴한 노동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노동력 확보의 용이성이 컸다. 성수동은 이처럼 도시 내 공업지역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성수동 지역은 한강의 수운을 통한 화물운송의 집산지로서 물류운송의 중심부가 된 후 공장들이 들어오면서 공업기반이 형성되었다.
성수동 공단의 풍경 - 출처 매일경제신문 1993년 4월 1일 -
그 후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공장들의 입지가 가속화되었고, 공장배후지에 주거지역이 들어서며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수동은 도심부와 강남 등이 인접한 지리적인 이점, 한강변의 수로와 교통망의 구축, 평탄한 지형과 공업용수 공급의 용이성 등 여러 요인들에 의해 오늘날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으로서 자리매김 할수 있었다. 성수동의 제조업 산업은 1970~80년대에 가장 많이 자리를 잡았으며,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가죽, 인쇄, 섬유 등의 제조업들이 들어서면서 피혁거리, 수제화타운 등 성수동만의 독특한 경관이 나타났다. 금강제화, 에스콰이어와 같은 구두회사가 성수에 본사를 두고 그 주변에 수제화 하청업체들이 나타나며 유독 성수동에서 수제화산업이 특화산업으로 발전했다. IMF의 위기를 겪으며 다소 규모가 큰 제조공장 및 기업들은 공장과 본사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켰다. 중소규모의 수제화 기업만 성수동에 남아 수제화산업을 이끌었다. 성수동 피혁거리는 이름에 맞게 피혁을 판매하는 부자재 판매점이 즐비했으며 피혁거리의 부자재 판매점들이 외부인에게 수제화 특화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오랫동안 이어 유지될 것 같았던 우리나라 수제화산업에도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수제자를 양성하고 어디 수제화집에서 근무했다는 것이 꼬리표로 남았을 정도로 성수동 수제화산업 안에서는 나름 문화가 있었고 그것이 대대로 오랜 시간 내려왔다. 신발의 대규모 공장 제작으로 신발 공급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수제화만 고집하지 않았다. 수제화시장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게 되었다. 이태리나 일본처럼 대를 이어받아 수공예를 이어가는 장인산업을 최고로 치며 장려하는 문화가 아니라는 한계점 때문에 점점 수제화 공장들이 폐쇄하거나 이전하며 점차 사라져만 갔다. 수제화거리에 있던 그 자리에 수제화상점이 사라지면서 다른 상점들이 입점하기 시작했다.
개성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있는 곳에서
명품거리로 탈바꿈
주변으로 중랑천과 한강이 흐르고, 남쪽으로 강남과 인접해 있으며 지하철 2호선, 분당선이 성수동을 지나가고 2호선의 성수역과 뚝섬역, 분당선의 서울숲역이 위치한다는 장점과 성수대교와 영동대교가 인접하여 강남으로의 이동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성수동 개발을 점점 더 가속화하였다. 수제화 거리와 피혁거리에 수제화가게가 아닌 점점 개성 있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강남과 가깝다는 입지적 장점과, 한남동처럼 언덕이 많지도 않으며 쭉뻗은 대지에 고급주거상품이 들어서면서 이에 따라 그 주변 상권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젊은 사람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소규모의 카페와 특색 있는 음식점으로 채워지기 시작해 점점 더 스케일이 큰 대기업들이 건물을 매입하고 입점하고 있다.
'디올성수' 매장의 모습 - 출처 디올 홈페이지 -
이 피혁거리가 카페거리로 변화하다 못해 아주 큰 변화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2022년 이태리 명품 브랜드인 '크리스찬디올'에서 '디올성수'라는 아주 큰 단독건물로 카페거리 중심에 입점한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기도 했고 현재에도 이 디올에서 운영하는 카페를 방문하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릴 정도로 유명세를 타면서 주변 임대료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로부터 공업지대로 알려져 있던 이곳에 명품 브랜드가 단독건물로 입점했다는 사실은 이미 압구정로데오, 청담동의 명품거리처럼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첫 발걸음이었다.
현재 공사중인 명품브랜드 발렌티노 건물
2022년 디올성수가 들어선 후, 이에 따라 다른 명품 업체들도 함께 움직였다. 2023년 연무장길 근방에 입점한 샤넬 매장 그뿐만 아니라 에르메스와 루이비통도 성수동에서 팝업전시회를 열었으며 또한 샤넬매장의 바로 건너편에 '발렌티노'도 현재 입점을 위해 공사 중이다. 이 처럼 카페거리에 이어 고급 명품브랜드들이 너도나도 성수동에 입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주변의 주택들도 변화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남동과 청담동 등지를 살펴보면 가격이 높은 소비재들을 소비할 소비력과 구매력을 갖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변으로 고급 상권이 형성된다.
서울숲을 끼고 있는 갤러리아포레와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아파트의 모습
2024년 공시가격 순위를 살펴보면 작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1위의 자리를 이어오고 있는 더펜트하우스청담(PH129) 그리고 2위에는 청담동 에테르노청담, 그다음 3위 한남동의 나인원한남 4위 한남 더힐 다음으로 5위에 성수동 1가 아크로서울포레스트가 올랐다. 마찬가지로 7위에 성수동 1가 갤러리아 포레가 올랐는데, 이처럼 10위권 안에 성수동의 두 대장 아파트가 올라가 있는 만큼 성수동에도 고급주택시장으로서의 입지를 굳게 다지고 있으며 주변 주택 가격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성수동의 남은 과제 성수전략지구
2009년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된 5개 재개발 구역 중 장기간 멈춰있었던 성수동 일대 재정비 사업이 재개된다. 서울시는 한강과 직접 연결되는 공원을 품은 수변친화 주거단지로 조성하여 정원도시 서울, 그레이트한강 프로젝트를 실현한다. 서울시는 '성수전략정비구역'의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한강변을 주거공간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공 유하는 '수변친화 감성 주거단지'를 목표로 추진된다.
한강과 바로 마주보고 있는 성수전략정비구역, 1~4구역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 출처 서울특별시 -
서울시는 성수전략지구 '한강과 연결된 수변문화 주거단지'로 재탄생할 '성수전략정비구역'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안)을 마련했다. 지정 이후 12년 만에 재개하여 창의적인 도시·건축 디자인 적용 및 층수 제한 폐지, 심의 통한 유연한 높이 계획부터 단지와 한강을 잇는 데크로 수변경관명소와 연결한다. 국제공모로 혁신적 문화시설도 조성하기로 했다. '정원도시 서울', '그레이트한강' 실현할 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신속한 사업을 위한 행정지원을 약속했다. 10년 이상 정비사업 추진이 지연되어 온 사업을 재개하기 위해 지역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최근 정책과 제도를 반영하여 각 지구별로 사업 추진이 가능한 정비계획 변경(안)을 마련해 전략지역 4개 지구 주민협의체 회의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한 압구정 재건축 단지와 연결되는 다리를 건설하여 강남과 서울숲을 연결하는 보행길로 걷는다는 캠페인으로 강남접근성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전망이다. 청년과 첨단이라는 혁신축으로 바이오, 의료,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와 같은 첨단기업들의 많은 자본이 지속하여 유입되면서 창조적 지식기반산업의 중심지로서 젊고 생기가 넘치는 부(富)의 흐름이 성수동으로 이동하는 만큼 고급주거단지와 고급상권으로 변모하고 있는 성수동의 미래를 앞으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