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 (다니엘 11장 1절 – 45절) 11:2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 3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4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13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거느리고 오리라 14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15 북방 왕…21 그의 왕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23 소수의 백성을 가지고 세력을 얻을 것이며… 24 그가 평안한 때에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에 들어와서… 노략하고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흩어 주며 계략을 세워 얼마 동안 산성들을 칠 것인데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 29 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나… 30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면서 맺은 거룩한 언약에 분노하였고 자기 땅에 돌아가서는 맺은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을 살필 것이며 31 군대는…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32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36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룰 것임이라 37 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39 무릇 그를 안다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여 여러 백성을 다스리게도 하며 그에게서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 주기도 하리라… 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 (개역개정)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이 늘 착각하는 것은, 어떤 정치적 권세와 경제적 재산이라는 양면의 힘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과 역사 속에서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된 사람 중의 하나가 솔로몬 왕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신앙적인 지혜뿐만 아니라, 왕으로서 많은 이들이 원하는 정치적 권력의 힘, 경제적 부요, 쾌락적 향락, 세계적 명성, 뛰어난 지식을 자랑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도서를 통해 자기 살아온 한 생애를 회고하기를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1:14)고 고백했습니다. 왜 이런 고백을 한 것일까요? 사람들은 솔로몬을 대단히 신앙적이면서도 성공한 인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록 그가 국가 부강을 힘쓰고 애썼지만 이로 인한 지나친 야욕과 효율성의 추구가 독재 정치를 빚어냈고, 결과적으로 이 때문에 12지파 공동체의 신앙적 전통과 특성을 붕괴시켰고, 하나님을 믿는 민족 공동체 안에 이방의 우상숭배를 깊이 뿌리 내리게 한 인물이자,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하여 대립하는 민족 분단의 씨앗을 제공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과거 기독교 역사나 오늘날의 교회 역시 이 솔로몬과 같은 성공적 신앙 양태를 추종할 때, 그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공동체와 민족이 타락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발견하여 깨닫고 돌이키는 이들이 복됩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은 다니엘이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10:1)인 주전 536년에 “힛데겔”(10:4) 강가에서 금식기도를 하는 중에 본 마지막 4번째 묵시(10-12장)의 내용입니다. 바사(페르시아) 제국에 이은 헬라(그리스) 제국의 등장과 분열, 그리고 이 중에 유대 땅을 사이에 두고 싸울 두 왕국의 각축전 및 적그리스도의 표상인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인 에피파네스에 대한 묵시 내용입니다. 1.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고대 근동은 제국들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앗수르 제국이 바벨론 제국에 망하고, 바벨론 제국(주전 609-539년)은 바사(페르시아) 제국에 망하고, 바사 제국(주전 538-331년)은 헬라(그리스) 제국에 망하고, 헬라 제국은 분열을 거듭하다가 로마 제국에 망하게 됩니다. 근대 제국의 역사 역시 그렇듯이, 그 어느 때도 영원한 제국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강대한 제국을 꿈꾸지만, 하나님의 통치 섭리에 거부하는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서 솔로몬이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1:2-4)라고 고백한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오늘의 본문은 “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도와서 그를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11:1)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메대와 바사 연합군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신흥 강국으로 등장하게 된 사건의 이면에 하나님의 통치 섭리가 있었음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러면서 이어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11:2)며, 먼저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 제국의 몰락을 짧은 한 문장으로 “보라, 바사에서…왕들이…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11:2)라고 계시합니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연약할 때가 아니라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이며, 그 힘에 미혹된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곧 선동하여서 자족할 줄 모르는 탐욕으로 영역을 넓히고자 “헬라 왕국을 칠 것”이지만, 이로써 함께 파멸의 길로 치닫는 것이 역사의 진리라는 하나님의 경고가 이어집니다. 한 제국의 몰락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제국의 등장을 예고하는 사건이 됩니다. 헬라제국을 일으킨 알렉산더 대왕을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11:3)고 예언합니다. 그가 받은 참으로 부러운 큰 축복이면서도,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11:4)라는 말씀처럼 심판을 자초하는 저주였습니다. 그는 주전 331년에 바사를 멸망시키지만, 불과 32살 때인 주전 323년에 급사하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은 제국의 분열이 어떻게 계시됩니까?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11:4). 이 예언대로, 알렉산더의 후손들은 다 살해되고 그 수하의 장군들에 의해 4개의 국가로 분열됩니다.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영역을 차지한 셀류쿠스 왕조, 애굽과 팔레스틴 영역을 차지한 프톨레미 왕조, 마케도니아 영역을 차지한 카산더 왕조, 비두니아와 소아시아를 차지한 리시마쿠스 왕조입니다. 이 중에 초기에 가장 강성한 왕조는 애굽을 중심으로 한 “남방”의 프톨레미 왕조였기에, “남방의 왕들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11:5)라고 계시합니다. 초기에는 “북방”의 셀류쿠스 왕조가 미약하여 “남방”의 프톨레미 왕조에 복속되다시피 했지만, 힘을 얻으면서 대항 세력이 되자 이들 간의 갈등과 싸움이 서로 이어지는 사건이 본문에서 “남방 왕”과 “북방 왕”의 전쟁으로 예언됩니다. 싸움을 반복하던 두 나라가 서로 화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11:6). “몇 해 후”는 프톨레미 1세로부터 50여년 후인 주전 250년으로, 골치 아픈 싸움의 종식을 위해 남방의 프톨레미 2세(주전 283-247년)가 자기 딸인 베레니케를 북방의 셀류쿠스 1세의 손자인 안티오쿠스 2세(주전 261-246년)에게 시집을 보내 정략결혼으로 우호 조약을 맺습니다. 그러자 안티오쿠스 2세의 전 왕비였던 라오디케가 자기 신변의 위협을 느껴 주전 246년에 왕을 살해하고, “공주” 곧 새로운 왕비와 그 관련된 자들을 모두 살해한 후, 자기 아들을 셀류쿠스 2세(주전 246-225년)로 세우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11:7-8)라며, 남방의 프톨레미 2세가 죽고 프톨레미 3세(주전 246-222년)가 등극하자, 그 해에 누이의 원수를 갚고자 북방의 셀류쿠스 왕조를 공격할 것이 예언됩니다. 프톨레미 3세에게 수모를 당한 셀류쿠스 2세가 주전 242년에 애굽을 침공하지만,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11:9)며, 주전 240년 간신히 목숨만을 건진 채 퇴각하는 완패를 당합니다. 북방의 셀류쿠스 2세에게 두 아들이 있었지만, 큰 아들인 셀류쿠스 3세(주전 225-223년)는 소아시아 전쟁을 치르다 살해되고, 동생인 안티오쿠스 3세(주전 223-187년)는 주전 219년에 팔레스틴을 점령하고 이어서 애굽을 공격합니다.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11:10). 북방의 공격에 밀리다가 전열을 가다듬은 남방의 프톨레미 4세(주전 222-203년)는 주전 217년 완승을 거두어 빼앗겼던 팔레스틴 땅을 되찾습니다.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11:11-12). 전쟁에서 대승한 프톨레미 4세는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들어가서는 안 될 탈환한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를 들어가 더럽혔고 심지어 자신을 신격화하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급사하게 됩니다. “북방”의 안티오쿠스 3세는 전쟁 참패의 수모를 주변국의 정복으로 회복하고, 프톨레미 4세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프톨레미 5세(주전 205-180년)가 7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당시 로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마케도니아 연합군과 함께 공격하여 주전 198년에 팔레스틴까지 장악합니다.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11:13-16). “영화로운 땅”은 하나님의 거룩한 땅인 유대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북방의 애굽 공격에 유대 땅에서는 이 기회를 하나님이 아닌 이방 나라의 술수와 군사적인 힘을 빌어서 애굽에서 독립할 기회로 여겼습니다. 이것을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11:14)고 경고합니다. “포악한 자”는 북방의 폭력적인 힘을 의지한 자들을 지칭하며,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은 자기 교만에 빠져 이것을 마치 하나님이 주신 기회나 되는 것처럼 여겨서 외세의 군대에 합세하여 들고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오히려 이것이 그들에게 치명적인 죄악과 심판을 자초하게 될 것이 경고됩니다. 2. 권력에 도취된 왕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북방”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3세는 로마가 카르타고와의 전쟁(주전 202년)과 마케도니아의 전쟁(주전 197년)에서 승리하자 위협을 느끼고 “남방” 애굽의 공격을 멈춥니다. 그는 애굽과의 정략 결혼을 시도하여, 자기 딸인 클레오파트라를 프톨레미 5세에게 주어 거짓 화친조약을 맺고 애굽을 수중에 넣을 계략을 세웁니다. 그러나 딸이 아버지를 배신하여 남편인 프톨레미 5세로 로마와 동맹을 맺게 함으로써, 안티오쿠스 3세는 군대를 돌이켜 지중해 연안을 정복하는 것으로 명예를 회복하고자 합니다.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11:17-19). “한 장군”은 로마의 루키우스 스키피오 장군으로, 주전 190년 안티오쿠스 3세와의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로 모든 전쟁을 멈추고 “수치”를 안고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는 군비를 재확충하여 재기를 시도하지만, 반란군에 의해 살해를 당함으로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들 셀류쿠스 4세(주전 187-175년)는 아버지가 로마에 패하여 떠맡은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헬리오도루스를 재무장관 격의 세금 징수 책임자로 세워 돈이 될 만한 것은 다 걷어 들이게 했습니다. “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11:20). “압제자”는 ‘조공을 수집하는 자, 토색하는 자’라는 의미이며, “아름다운 곳”은 돈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조차 몰수 계획을 세웠지만, 이에 반발한 본토의 민중 소요사태에 헬리오도루스는 주전 175년 셀류쿠스 4세를 반역하여 살해합니다. 이제부터 등장하는 인물이 적그리스도의 표상인 안티오쿠스 4세(주전 175-163년)인 에피파네스입니다. 다니엘이 본 첫 번째와 두 번째 묵시에서 “작은 뿔”(7:8,8:9)로 상징된 적그리스도적인 존재입니다. 그를 가리켜서 “그의 왕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11:21)라고 예언합니다. 대 종말 직전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결정적인 구약의 표상이 될 그를 “비천한 사람”으로 표현한 것은, 신분이 비천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이 비천하다는 것입니다. “비천한” 그의 인격을 한 마디로 어떻게 표현합니까?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룰 것임이라”(11:36). 본래 그는 아버지 안티오쿠스 3세가 로마와의 전쟁에 패배하여 항복하자, 14년간 로마에 인질로 있었던 인물입니다. 자기 형인 셀류쿠스 4세의 장자인 데메트리우스를 속여서 로마로 불러들여 대신 볼모로 남겨놓고 조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반역으로 형이 죽게 된 소식을 듣고 주변국의 도움을 받아 헬리오도루스를 처단하고, 에피파네스는 안티오쿠스 4세라는 이름으로 주전 175년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비천한 사람”이라는 것은,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가 아니라는 의미이자, 권모술수로 왕위에 오른 것처럼 그가 하는 모든 일은 “거짓”이었기 때문입니다. “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그에게 넘침으로 말미암아 패할 것이요, 동맹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 그와 약조한 후에 그는 거짓을 행하여 올라올 것이요, 소수의 백성을 가지고 세력을 얻을 것이며”(11:22-23)라는 것은, 그의 추종 세력이 “소수의 백성”뿐으로 그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세력이 “넘치는 물 같은 군대”처럼 많았지만 다 제압하게 됩니다. 심지어 유다의 제사장으로 보이는 “동맹한 왕”조차도 그를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헬리오도루스가 막판에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예루살렘 성전 몰수 계획을 중지시켰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장차 유대 땅과 예루살렘 성전이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서 철저하게 짓밟히는 빌미를 주는 사건이 됩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선전 포고도 없이 공격하거나 동맹을 맺어놓고 방심한 틈에 공격을 일삼는 그의 속임수를 “그가 평안한 때에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에 들어와서, 그의 조상들과 조상들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11:24)라고 밝힙니다. 자기 지지 세력과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 썼던 그의 속임수를 “그는 노략하고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흩어 주며, 계략을 세워 얼마 동안 산성들을 칠 것인데,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 무릇 그를 안다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여 여러 백성을 다스리게도 하며, 그에게서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 주기도 하리라”(11:24,39)고 밝힙니다.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아낌없이 재물과 자리를 나눠주는 이러한 광적인 호의가, 순수한 애정이라기보다 자기 세력 구축을 위해서 행할 일시적인 수단의 속임수라는 것입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과거 아버지 때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고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한 후 “계략을 세워”(11:25) 주전 170년에 애굽을 침략합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남방 왕인 프톨레미 6세의 측근들을 이간질하여 왕을 배신하는 내란을 일으키게 할 것을 “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멸하리니, 그의 군대가 흩어질 것이요, 많은 사람이 엎드러져 죽으리라.”(11:26-27)며, 이로써 애굽을 2개 왕국으로 분할하여 멤피스를 중심으로 프톨레미 6세가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프톨레미 7세가 다스리는 조약에 서명하게 합니다. 그러나 안티오쿠스 4세는 서로 경쟁과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거짓말이었고, 프톨레미 6세는 후에 서로 힘을 합해 북방에 대항하면 된다는 생각에 결국 이 계획은 실패하게 됩니다. “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하고자 하여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니라”(11:26-27). 권력에 도취된 왕들은 기만과 거짓을 일삼기에 바빴습니다.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11:24) 또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니라”(11:27), 나아가서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룰 것임이라”(11:36)는 선언은, 인간이 어떤 “계략을 세워”(11:25) 움직일 때 그들의 의도대로 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상황일 뿐,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도대로 되지 않게 하신다는 주권적인 통치 섭리에 대한 다니엘서의 신학적인 진술입니다. 3. 주님을 대적하는 자의 최후가 무엇입니까? 북방의 왕인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인 에피파네스가 두 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며 성전을 모독할 것인가를 어떻게 계시합니까? “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그는 마음으로 거룩한 언약을 거스르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본토로 돌아갈 것이며”(11:28). 이것은 첫째로 주전 169년에, 애굽을 정복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며 유대 땅을 정복하고는 온갖 가증한 짓을 행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종교적 박해로서, 예루살렘을 헬라적인 도성으로 만들고자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어 신성시되는 “거룩한 언약”인 율법과 여러 규례들을 철폐하게 했습니다. 또한 정치적 박해로서, 아론의 후손이어야 할 대제사장을 “자기 마음대로” 자신들을 지지하는 다른 지파 사람으로 교체해버렸습니다. 둘째로 주전 167년에 다시금 애굽을 공격하지만, 배후에서 시리아를 견제하는 로마의 위협으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다시금 예루살렘을 짓밟게 됩니다. “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나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니, 이는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면서 맺은 거룩한 언약에 분노하였고, 자기 땅에 돌아가서는 맺은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을 살필 것이며,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11:29-31). “작정된 기한에”는 애굽에 대한 침략을 빌미로 예루살렘을 짓밟게 되는 것이, 믿는다는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때를 나타내는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깃딤의 배들”은, 로마가 구브로(키프러스) 섬에 있던 로마 휘하의 마케도니아 함대를 통해 남하하는 북방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의 군대를 저지하자 퇴각하면서 다시금 유대 땅에 분풀이를 하게 됩니다. 이때 군대를 성전 남문에 주둔시켜 “성소”가 군화에 짓밟혀야 했고, “매일 드리는 제사” 곧 상번제를 금지하고,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 곧 제우스 신상을 번제단에 세워 숭배하게 했습니다.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을 살필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 안티오쿠스 4세의 헬라화 정책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을 돕고 중용했다는 것이며, 결국 이러한 것들은 유대 독립 전쟁인 마카비 혁명의 도화선이 되게 됩니다.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11:32-33). 종말론적인 혼란의 시대에는 적그리스도적인 이들의 “속임수”에 미혹되어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가 다수가 있는가 하면,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소수가 있을 것을 예언합니다. 마카비 혁명이 한 순간은 성공하겠지만 실패할 것과, 그것은 많은 사람이 몰려오면서 하나님의 힘보다 그 힘으로 혁명을 성취하고자 속게 될 것과, 따라서 이 혁명에 참여하는 다수가 신앙적인 이유보다 이러한 자신들의 이권과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될 것을 “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며”(11:34)라고 예언합니다. 언제나 의로운 이들은 암흑의 시대에 자기 사명의 역할에 충성하지만, 또한 칼에 맞아죽고, 화형을 당하고, 귀향을 가거나, 재산을 몰수당하는 고난을 겪을 것이 예언됩니다. 그러나 “여러 날 동안”이라는 표현을 통해, 한시적인 사건임을 밝히는 희망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이러한 고난이 주어지는 은혜의 축복과 희망을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11:35)고 예언합니다.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의 독립 전쟁인 마카비 혁명을 진압하고자 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것을,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11:45)고 예언합니다. 8장에서도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8:25)고 한 예언처럼, 안티오쿠스 4세는 주전 164년에 마카비 형제의 혁명적 봉기로 셀류쿠스 왕조의 세력을 몰아내자, 이 소식에 충격을 받고 페르시아에서 내장이 뒤틀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변에 만연한 적그리스도적인 죄악의 신앙 양태를 지켜보면서 그것이 영원하리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한시적인 상황이라고 보십니까?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11:24). 인간이 온갖 속임수의 계략을 계획할지라도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니라”(11:27)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룰 것임이라”(11:36)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때를 분별하여, 거짓된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가들이 “거짓말”과 “속임수”로 “모든 사람을 충동”하는 미혹으로 믿는 자들을 함께 “타락”시키고자 하는 죄악에서 깨어있어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야망과 탐욕의 성취가 아닌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지혜로운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신앙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최고의 성취다’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묵시가 단순히 대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끝없이 패역을 일삼는 신앙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징계의 심판이 단순한 징벌이나 저주가 아니라, 이로써 주님의 백성들이 자각하고 각성하여 만연한 죄악을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초청하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보다보면, 예언인지 역사인지가 좀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보수적 견해는, 장차 일어날 일을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히 성취된 것으로 봅니다. 진보적 견해는, 이미 일어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예언 형식을 빌어서 장차 일어날 사건으로 기록하면서, 이로써 우리가 과연 하나님이 정해놓은 목표로 가고 있는 역사인가 다시금 되돌아보며, 또한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방향과 역사의 길을 걷고 있는가를 직시할 것을 계시한 것으로 봅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로서, 무엇을 바라보며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가를 깨닫고 겸손히 순종하는 올바른 신앙인들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