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자락의 잣나무숲
▶ 산행일시 : 2014년 6월 4일(수), 맑음, 산에는 선선한 날씨
▶ 산행인원 : 5명(오기산악회)
▶ 산행시간 : 산에 머문 시간 7시간 30분(10 : 00 ~ 17 : 30)
“순간순간 사랑하고
순간순간 행복하세요.
그 순간이 모여 당신의 인생이 됩니다.”
혜민 스님의 잠언적 에세이인『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나오는 글입니다. 내 진작
혜민 스님의 트윗 팔로워로 수시로 스님의 단편적인 거룩한 말씀을 봅니다. 어떤 때는 세상물
정 모르는 너무 한가하고 태평한 말씀이다 싶어 그만 식상하지만 나중에 보면 나의 변덕 탓이
었습니다.
연일 격무에 시달리다 공짜처럼 생긴 휴일 아닌 휴일인 오늘, 오기산악회는 검단산을 갑니다.
지방선거는 야베스 님이 카톡으로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하지 않으면 그놈들 중에서 제일
나쁜 놈들이 다 해먹는다”는 경구를 보내왔거니와 아침 일찍 덜 나쁜 놈에게 투표하였습니다.
산행들머리는 하남시 에니메이션고등학교 앞입니다. 어느 코스로 진행할까? 검단산 정상 넘
어 수자원공사 쪽 골짜기로 가서 탁족하고 놀다 오자. 아예 고추봉, 용마산, 희망봉 넘어 번
천삼거리까지 가자. 오기가 아니냐.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
입니다.
의론이 분분하다가 오래전부터 김기월 대장님과 노광한 님이 각자 개별적으로 즐겨 찾는 별천
지가 검단산 정상 약간 못미처 팔각정 아래에 있으니 그리 가서 쉬다 오자고 합니다.
내 산행이력에서 이런 때가 있었던가? 한껏 늘어진 걸음입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제목 그대로의 산행입니다. 여느 때 그냥 지나쳤던, 안중에 없었던 초목들을 일일이 들여다보
며 갑니다.
신비롭지 않고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굳이 이생진의 눈을 빌지 않더라도 ‘벌레 먹은
나뭇잎’조차 아름답습니다. 마른 계곡 건너고 무수한 열주의 잣나무숲을 갑니다. 이만한 잣나
무숲은 우리나라 어디에고 좀처럼 찾아보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등로는 어제 내
린 비로 촉촉하여 걷기 좋고, 산들산들 부는 바람은 한층 상쾌합니다.
소나뭇과의 상록 교목인 잣나무는 잎이 다섯 개씩 뭉쳐납니다. 잎이 상록이라고 하지만 잎을
갑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 자제(自題) 중에 『논어』 ‘자한(子罕)’ 편의 ‘세한연후송
백지후조(歲寒然後松柏之後凋)’라는 글이 있습니다. 흔히 이 구절의 해석을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겨울이 되어서야’가 아니라 ‘날씨가 추운 뒤에야’가 올바
르고,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가 아니라 ‘늦게 시든다’거나 ‘뒤에 진다’가 올바릅니
다. 수학자(樹學者)이자 생태사학자이기도 한 강판권이 『선비가 사랑한 나무』에서의 주장
또한 그렇습니다. 강판권은 더 나아가 ‘송백(松柏)’을 ‘소나무와 잣나무’가 아니라 ‘소나무와
측백나무’라고 합니다.
1. 개망초(Erigeron annuus), 국화과의 두해살이풀. 북미가 원산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에
는 화초였습니다.
2. 노루발(Pyrola japonica), 노루발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
3. 노루발
4. 녹음 속으로
5. 잣나무숲
6. 낙엽송숲 사면
7. 먹거리
강판권의 나무 얘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행단(杏壇)’에 대해서입니다. 공자가 제자를 야외
에서 가르친 곳을 ‘행단(杏壇)’이라고 하는데 살구나무가 있는 언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행
단 앞에는 지금 아주 작은 살구나무 한 그루가 살고 있고 그 나무 옆에 꽤 큰 살구나무였을 그
루터기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근거로 행단이 살구나무인 것은 조선 선조 때 노인(魯認, 1566~1622)의 『금계일기
(錦溪日記)』(보물 제311호)에서 확인할 수 있고, 조선 중기 이홍희의 『살구』에서도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살구나무 아래서 거문고 소리를 듣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합니다. “동산에
살구나무가 있는데(圓中文杏樹)/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네(結子正參差) ……”
한편 국립수목원장인 이유미 박사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에서 “중국
에서는 은행나무(銀杏--)를 공자의 행단(杏壇)에 많이 심었는데 이를 본 따서 우리나라에서도
문묘나, 향교, 사찰의 경내에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행
단(杏壇)’을 “학문을 닦는 곳을 이르는 말.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
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나는 이유미 박사의 견해에 줄섭니다.
잣나무숲 가파른 사면을 한 피치 오르면 능선마루입니다. 능선마루 약간 지나다 왼쪽 사면으
로 갑니다. 울창한 낙엽송 숲속입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검단산 명소일 낙엽송 숲입니다.
등로가 미로로 뚫렸습니다. 지능선 오르다 얕은 골짜기 넘고 또 넘고, 등로 옆 널찍한 암반이
오늘 우리가 머물 장소입니다. 과연 별천지입니다.
소나무, 잣나무, 물박달나무가 하늘을 가렸습니다. 암반 주변에는 산수국이 꽃망울 졌습니다.
먹고 마시고 권하고 빈 술병은 늘고, 아울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역사, 교
육, 인문, 지리, 풍수, 종교 등 각 분야를 해부합니다. 그렇지, 군대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멈추니 비로소 보입니다.
산행이 조금 아쉬워 이영상 님과 나와 둘이서 팔각정이 있는 헬기장까지만 갔다 오기로 합니
다. 사면 질러 지능선 두 번 갈아타고 오릅니다. 너른 헬기장 주변 그늘에는 등산객들이 빼꼭
하게 들어찼습니다. 탐방객수로 따진다면 검단산이 유수한 명산 대열에 당연히 낍니다. 검단
산 정상을 눈으로만 오르고 내려갑니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술이 전혀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머릿속이 쇄락해지는 느낌입니다. 하
산! 낙엽송숲 지나 잣나무숲, 소나무숲 차례로 빠져나오자 먹자골목의 닭튀김 냄새가 역겹고,
자동차 경적에 귀가 먹먹합니다.
8. 하남시와 한강
9. 오른쪽은 수락산
10. 하산하기 전 기념사진
11. 하산 길
12. 인동(忍冬, Lonicera japonica), 인동과의 반상록 덩굴성 식물
13. 우산이끼(암그루)(Marchantia polymorpha), 우산이낏과의 이끼.
헛뿌리가 있어 몸을 땅에 고정시키며 암수 딴 그루로 암그루의 끝은 갈라진 우산 모양이고 수
그루의 끝은 둥글다
14. 톱풀(Achillea sibirica),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첫댓글 우산이끼가 조그만 말미잘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이 특이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