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은 고려 충목왕 4년 (1348년) 시기에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는 경천사에 세워진 석탑이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위치되어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다.
이 탑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고려 말기 친원 권문세족들이 지었다. 회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조성 이후 미신 · 반(反)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3층 탑신부까지의 하층부 불교관련 도상들의 파손이 많았다. 1902년 세키노 다다시의 조사보고로 폐사지에 있다고 알려졌고, 1907년 순종의 가례식에 참석한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에 의해 불법적으로 해체·반출되었다. 반출 이후 호머 헐버트·어니스트 베델의 비판 기고를 비롯한 비난 여론이 일자 1916년 조선총독부는 석탑 반출 사실을 조사하고 1918년 11월 15일 한반도로 반환하였다. 반환 후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방치돼 있다가, 1960년에 수리해 경복궁에 세워졌고, 1962년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다. 1995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보존처리되다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현재에 이른다.
형태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基壇)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돌리고,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에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제2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장식 부조
고려시대 탑파에 장식한 부조로서 중요한 것이 이 탑의 부조이다. 기단과 탑신의 각부에는 십이지상(十二之相)의 불상·보살·천부(天部)·나한(羅漢)·비구형(比丘形)의 각종 군상이 장려하게 조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륜부(相輪部)·옥개(屋蓋)·기둥 두공 등 목조건물의 세부를 변화있게 조각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여기 부조는 원(元)의 표현 형식이 혼입(混入)되어 있음을 보이는데 원공장(元工匠)이 직접 가담하여 만든 전형적인 기준작(基準作)으로서 중요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드문 대리석으로 만든 불탑. 게다가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한국적인 불탑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화려한 장식이 특징인데 원나라의 양식을 도입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그 기원이 고려 후기 친원 권문세족들이 지은 것이라 그렇다. 훗날 세조 때 만들어진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다. 아니, 실물을 보면 재질이나 외관이 유사하다.
본래는 개성의 경천사라는 절에 있었는데 다나카 미츠아키라는 일본인이 일본에 무단반출해갔다가 어니스트 베델의 활약으로 조선은 물론 일본 내에서도 반발여론이 들끓었다고 한다. 다나카 미츠아키는 일본궁내대신으로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가례에 참석하려고 왔다가 경천사지 석탑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순종 황제가 하사했다고 사기치고 대놓고 무단으로 해체해 갔다고 한다. 이후 총독부(당시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는 한반도가 지속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반환을 요구했다.
첫댓글 개성에 있던 경천사 10층석탑이 유리건판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인이 10층석탑을 해체하여 일본으로 가져가면서 탑을 많이 회손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온 석탑은 시멘트로 복원하여 경복궁 경내에 전시되다가 시멘트가 박락되기 시작하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10년동안 복원작업을 하였습니다. 시멘트를 모두 제거하거 그 자리에 에폭수 수지를 이용해 원형을 복원하였습니다. 지금은 대리석인지 에폭시 수지인지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일부 기단석은 강원도 원주지역에서 가져온 대리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탑을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길에 세웠는데 0.1도 우측으로 기울었다고 합니다. 옥개석을 망실해서
복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경천사 10층석탑은 원각사지 10층석탑과 쌍뚱이 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문화에 10이라는 숫자를 잘 사용하지 않는 문화에서 경천사 10층석탑은 아(亞)자형 기단석 위에 아(亞)자형 3층 탑을 쌓고 그 위해 사각형 7층탑을 쌓았습니다. 3과 7에 대한 사람의 염원을 담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탑신의 각 면에서 3불, 5불, 영산회, 그리고 서유기에 인물이 등장하며 전통목조건축물을 부조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복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2020년까지 보수작업을 마치고 3차원 입체 스켄작업을 거쳐 복원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수하고
복원하는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문화재를 보수하고 복원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하여 인프라구축이 시급하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