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 따라 캠핑을 참 많이도 다녔다. 2세대 현대 쏘나타(Y2)에 트렁크 꾹꾹 눌러 담고 팔도를 누빈 기억이 생생하다. 그땐 마냥 신났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항상 땀범벅이셨다. 양손에 6인용 텐트 천막과 폴대, 어깨엔 아이스박스를 맨 채 캠핑 장소를 물색했고, 텐트도 거의 홀로 설치했다. 그러고는 우리가 물가에서 뛰어놀 때 혼자 텐트 안에서 ‘드르렁드르렁’ 주무셨다. 에어컨 고장 난 차로 장거리 운전까지 견디셨으니 얼마나 피곤하셨을까. 그랜드 스타렉스 캠핑카로 호사를 누리다 별안간 아버지가 생각난 이유다. 그때 캠핑카가 있었다면 조금은 덜 힘드셨을 텐데…….
두 손 가벼운 출발
캠핑 전날 밤 짐을 챙겼다. 뭘 챙길까? 오랜만에 큼직한 28인치 여행용 가방을 꺼내 옷가지 몇 개와 수건, 얇은 이불, 그리고 화로와 숯 등을 챙겼건만 아직도 텅텅 비었다. 캠핑카 타고 가려니 1인 캠핑 짐 이래 봐야 펜션 놀러 가듯 가볍다. 20인치 여행용 가방으로 바꿔들자 이제야 딱 들어맞는다. 이 정도면 집에 누워있다가도 즉흥적으로 떠날 수 있겠다.
스타렉스 캠핑카를 마주한 첫인상은 일단 높다. 매일 만나는 스타렉스가 뭐 새로울 게 있나 싶겠지만 시승차는 팝업 루프시스템에 더해 사륜구동이 들어가 지상고까지 높다. 키가 2,090mm에 달해 제법 캠핑카 느낌이 난달까. 그런데 과적 트럭처럼 뒤가 푹 꺼졌다. 캠핑용품이 들어가면서 무게가 늘어났기 때문일 터. 성의 없는 모습이다. 현대차 이름 걸고 파는 공식 캠핑카라면 늘어난 무게에 따른 서스펜션 보강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큰 키만큼 높다란 운전석에 오르면 확 트인 시야에 기분이 좋다. 그러나 대시보드를 보면 실망을 금치 못할 거다. 기본 5천만원을 훌쩍 넘는 비싼 미니밴에 플라스틱 범벅 구형 대시보드라니. 다른 특장차라면 모르겠지만, 레저용으로 사용될 캠핑카라면 고급스러운 신형 대시보드(스타렉스 어반 익스클루시브, 리무진 전용 실내) 정도는 달렸으리라 기대했는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운전대가 고정식이던 이전과 달리 틸트와 텔레스코픽 기능이 들어간 점, 그리고 하이패스 시스템과 통풍시트, 베이지 가죽시트 등 편의사양이 넉넉하다는 점이다.
주행감은 그저 조금 무거운 스타렉스다. 2.5L 디젤 엔진이 2,000rpm부터 46kg·m 최대토크를 끌어내 가속이 무난하고, 차가 요란스럽게 크지 않아 운전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잘 오르던 속도계가 시속 110km에 이르더니 그대로 멈춘다. 11인승처럼 시속 110km에서 속도가 제한된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11인승 스타렉스를 바탕으로 개조돼, 제한이 걸려있다고. 4인승이라 버스 전용도로도 못 타면서 속도까지 낼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승차감도 좋지 못하다. 바닥 충격을 그대로 전달해 방지턱을 만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사리게 된다. 더욱이 천장을 도려낸 캠핑카는 강성이 부족해 고르지 않은 노면에서 차체 비틀리는 소리를 내며, 실내 안 온갖 캠핑 장비도 삐걱거린다. 일반 차가 아닌 특수한 캠핑카라는 걸 생각하며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버튼 하나면 OK
고속도로를 질리도록 달려 인적 드문 강변 캠핑장을 찾았다. 경치 좋은 평평한 곳을 찾아 주차하면 준비 끝. 텐트를 들고 왔다면 설치하는 고생이 뒤따랐겠지만, 스타렉스는 룸미러 뒤편 메인 컨트롤러 버튼 하나만 누르면 팝업 루프가 알아서 천장에 텐트를 친다. 캠핑 시작이다.
2열 시트를 최대한 뒤로 밀고 천장 바닥을 밀어 올리면 제법 그럴싸한 모터홈으로 바뀐다. 시트에 앉아 간이 테이블까지 펴고 창밖을 바라보니 캠핑 온 기분이 절로 난다. 사방에 창문이 펼쳐져 좋은 경치도 훤하다. 괜히 왼쪽 40L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 캔 홀짝이며 분위기 잡아본다.
찬찬히 살펴보면 냉장고 옆으로 개수대와 전기레인지가 달렸고 그 아래로는 식기를 넣을 수납공간이 마련됐다. 모두 ‘간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 만큼 깜찍한 크기지만 야외에선 이런 걸 불편하게 쓰는 게 또 색다른 재미 아니겠나.
얕은 개수대에 쫄쫄 흐르는 물로 설거지하는 것도 야외에선 호사다. 이게 없으면 멀찍이 떨어진 공동 개수대까지 무거운 식기를 들고 걸어가야 하니까. 개수대 물은 스타렉스 옆구리 주입구를 통해 충전할 수 있으며, 청수통 용량은 50L다.
바깥으로 나오자 땡볕이 쏟아진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차 안에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캠핑카 오른편 어닝에 전용막대를 꽂아 빙글빙글 돌려 지지대를 세우면 가로 2,630mm, 세로 2,470mm의 그늘막이 펼쳐진다. 여기에 트렁크 문짝에 붙어있는 접이식 의자 두 개를 꺼내어 펴면 그럴싸한 마당이 된다. 기자는 대부분 시간을 여기서 동료 기자와 함께 고기 구워 먹으며 보냈다. 실내가 좋긴 하지만 고기 냄새 밸 걱정도 있는 데다 아무래도 밖보단 답답하니 말이다. 참고로 어닝은 캠핑 장비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아마의 F45 S 260 모델이다.
편안한 2층 침대
이윽고 해가 저물었다. 땀범벅이 된 옷을 갈아입고 쾌적하게 쉴 때다. 쏠라티급 캠핑카였다면 안에 샤워부스가 마련됐겠지만, 작은 스타렉스는 뒤편에 샤워기 하나 달랑 붙어있을 뿐이다. 그럼 야외에서 알몸을 드러낸 채 후다닥 씻느냐고? 천만의 말씀. 트렁크 문짝에 고정할 수 있는 텐트를 펼치고 그 안에서 씻으면 된다. 물살이 약해 좀 답답하지만 그래도 씻는 데는 무리 없다. 단지 시승차 청수통 위생상태가 좀 걱정될 뿐.
사실 이런 데까지 와서 영화 보고 싶지 않았지만, 시승차에 있는 기능이니 한번 써보기로 했다. 천장에 빔 프로젝터를 달고 2층 벽 끝에 스크린을 펼치니 꽤 낭만적인 나만의 영화관이 탄생했다. 애인과 함께였다면 좋았을 텐데 동료 기자와 함께 보려니 기분이 썩 안 내킨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영화를 기껏 USB에 담아놓고 안 챙겨 왔다. 덕분에 열심히 설치한 프로젝터만 뻘쭘하게 됐다.
드디어 캠핑카의 진가를 누릴 밤이 찾아왔다. 스타렉스는 하나의 거대한 2층 침대 구조로 아래에 두 명, 위에 두 명, 총 네 명이 잘 수 있다. 그러나 이건 네 명 가족 얘기다. 위에는 부부가, 아래는 애들 두 명 잘만 한 크기다. 성인 남자 네 명이라면 서로 부대껴 지옥이 될 테니 차라리 동반석에서 따로 자는 게 낫다. 우리 일행은 두 명이라 1층과 2층에서 각각 넉넉하게 자기로 했다.
1층은 2열 시트와 (주행 중엔 탈 수 없는) 3열 시트를 눕혀서 이으면 평평한 침대로 바뀐다. 등 뒤가 살짝 굴곡져 마치 접이식 침대에 누운 기분이다. 그래도 캠핑에서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한 거다. 텐트처럼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등 배길 일은 없으니까. 오른쪽 슬라이딩 문 열고 모기장까지 치면 잠 잘 준비 끝이다. 이때 모기장을 닫은 채 슬라이딩 문을 닫아버리면 모기장이 부서지니, 반드시 동행에 알려줘야 한다. 동료 기자도 그걸 모르고 문을 닫으려다 기자가 소리 질러 막기도 했다.
2층은 분위기 좋은 숙소다. 1열 센터콘솔과 등받이 어깨 부분을 밟고 올라가는 과정은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일단 올라가면 경치 좋은 잠자리가 펼쳐진다. 발 놓을 부분을 제외한 3면이 모두 모기장으로 뚫려있어 바람이 솔솔 통하고 개방감도 좋다. 폭신한 매트리스 덕분에 1층보다 훨씬 편한 건 당연. 물소리 들으며 누워있자니 잠이 솔솔 쏟아진다. 기껏 마련된 조명 한번 켜볼 새 없이 잠이 들었다. 바닥 판이 얇아 걱정이지만 최고 250kg까지 견딘다니, 웬만한 덩치가 아니라면 문제없다.
그렇게 꿀잠 자는데 동료 기자 코 고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베개를 들어 아래층으로 던지려는 찰나, 통로에 미닫이문이 눈에 들어온다. ‘아 닫을 수 있었구나’ 선루프 닫듯 밀어 올리자 소리가 조금 줄어든다. 이거 참 밤에 쓸모가 많겠다.
쾌적한 아침
새들의 요란한 지저귐과 함께 아침이 밝았다.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는 기분은 자연 속 캠핑의 묘미. 그런데 집에서 잔 듯 개운하기까지 하다. 이 차도 나름 캠핑카라고 잠자리가 편했나 보다.
내려와 보니 동료 기자는 아직 한밤중인 가운데 냉장고가 소리 내며 돌고 있다. 헉, 밤새 냉장고를 켜 놓은 채 잠들었구나. 전압표시장치를 보니 다행히 그대로고, 냉장고도 시원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터리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다. 시승차는 100Ah 배터리 두 개가 달린 데다, 천장에 150W 쏠라 패널까지 마련돼 최대 4~5일 캠핑이 가능하다.
슬슬 시승차 반납 시간이 다가오고 졸린 눈 비벼가며 돌아갈 준비를 했다. 전날 놀고먹은 흔적만 잘 치우면 스타렉스는 걱정 없다. 어닝은 돌려서 넣으면 되고, 팝업 천장은 버튼 하나면 쓱 내려온다. 이 정도면 남들 텐트 천막 접기도 전에 먼저 출발할 수 있겠다.
그랜드 스타렉스 캠핑카는 기동성이 빛났다. 주차만 하면 어디서든 힘들이지 않고도 편안한 쉼터로 변신하며 적당한 크기 덕분에 운전도 어렵지 않다. 누구든 손쉽게 오토캠핑을 즐길 수 있다. 이제 노년에 접어든 아버지께 이만한 선물이 있을까? 그러나 가격을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스타렉스 캠핑카 기본 가는 5,007만원, 모든 옵션을 더한 시승차는 6,277만원이다. 매력적인 대안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