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묘약
옛말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으로 앙갚음을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보복이 이루어져 죄악의 꼬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었다. 이 법의 취지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보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는 역설적인 가르침이다.
세계 역사에서 나라 간에 끊임없이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지금도 우크라-러시아 간에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당파 싸움이 끊이지 않았으며 반대 세력을 죽이거나 유배를 보내곤 했다. 또한 양반 자제들의 서학(천주학)을 받아들여 강학회를 열면서 학문이 종교로 발전하여 계급 사회가 무너지고 전통의 제사 풍습이 사라짐에 보복으로 끔찍한 박해로 수많은 목숨을 잃게 했다.
오늘날의 정치 세력에도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세력으로 갈라져서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계에도 이념이나 사상, 교리 등의 갈등으로 여러 종파로 갈라져 대응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도 ‘두 교황’의 영화처럼 현실의 문제로 비치고 있는 모습이다. 베네딕도 16세 교황이 돌아가신 뒤로 갈등의 늪은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을까 싶다, 교리와 신학의 시대에서 신앙과 현실적인 삶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폭력과 인간 경시의 악습을 없애 버리고 복수와 보복의 늪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쳤다. 그분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약자 편에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니까 권력과 힘의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로부터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었다. 그분은 원수마저 사랑하라고 가르쳤으니 말이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다. 그러나 세상은 정치적 종교적 갈등과 영토의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남보다 먼저 나를 앞세우기 때문에 일어난다. 나보다 약한 자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연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록 내 처지도 어렵지만,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돕겠다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미덕이 이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연료이며 묘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