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직접 가야(伽倻) 지역에 불탑을 세우시며 불탑을 짓는 표준적인 구조와 방법에 대하여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에서 "爾時世尊自起伽倻佛塔, 下基四方周匝欄楯, 圓起二重方牙四出, 上施盤蓋長表輪相, 佛言, 作塔法應如是."라고 말씀하셨다.
번역하면
"그때 세존께서 친히 가야(지역)에 불탑을 일으켜 세우셨다.
아래 기단(기초)은 사방으로 네모나게 만들고, 그 둘레(周匝)에는 난간(欄楯, 난순)을 둘렀다.
그 위로 원형 구조물(탑신)을 두 층으로 올렸으며, 사방으로 모난 어금니 모양(方牙, 탑의 사방으로 돌출된 계단이나 장식 시설)을 내었다. 그 위에는 쟁반 모양의 우산 덮개(차트라)를 얹고, 긴 깃대와 바퀴 모양의 상륜을 베푸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탑을 만드는 법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여기서 반개(盤蓋)는 산스크리트어 '차트라(Chattra, 우산 모양의 덮개)', 즉 한역되어 산개(傘蓋)나 보개(寶蓋)로 불리는 그 상징물을 지칭하는 것이다.
인도 초기 스투파를 보면, 탑의 둥근 몸체(복발) 꼭대기에 네모난 상자 모양의 난간(하르미카, 평두)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 기둥(찰주)이 꽂혀있다. 그 기둥에 층층이 걸리는 우산 모양의 덮개들이 바로 차트라(Chattra)이다.
한문 구절의 반개(盤蓋)는 '쟁반 모양(盤)의 덮개(蓋)'라는 뜻으로, 납작하고 둥근 우산 형태를 하고 있는 차트라의 외형을 직관적으로 묘사한 단어이다.
산치 대탑(Sanchi Maha Stupa)의 원형을 떠올려 보면, 탑의 꼭대기(상륜부)에는 기둥(찰주)에 세 개의 우산(차트라)이 층층이 꽂혀 있을 뿐, 우리가 흔히 동아시아 석탑에서 보는 '9층륜' 같은 복잡한 금속제 상륜 구조가 따로 있지않다. 오히려 그 차트라 자체가 인도 스투파의 상륜부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長表輪相(장표윤상)'은 탑 꼭대기가 아니라 '탑 옆에 세운 거대한 석주(아쇼카 석주 형태)와 그 위의 법륜 장식'을 뜻하는 것이다.
불교 문헌과 고대 한문에서 '表(표)' 또는 '찰(刹)'은 경계를 표시하거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세우는 '기둥(주, Pillar)'을 뜻한다.
특히 아쇼카 왕이 인도의 불교 성지마다 세운 아쇼카 석주(Ashoka Pillar)를 한역할 때 '석주(石柱)'라고도 했지만, 불법을 표시하는 기둥이라는 뜻에서 '표찰(表刹)' 혹은 '석표(石表)'라고 불렀다.
따라서 '長表'는 글자 그대로 '길게 세운 표대(석주)'로 해석하는 것이 인도 현지 유물과 완벽히 부합한다.
초기 인도의 스투파(산치, 바르후트 등)를 가보면, 탑 주변에 울타리(난순, 欄楯)를 두르고, 사방에 거대한 정문인 토라나(방아, 方牙)를 세웠다. 그리고 그 정문 바로 옆이나 탑의 입구 쪽에 거대한 석주(長表)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사자상과 함께 불법을 상징하는 거대한 바퀴(법륜, 珞相)를 얹었다.
산치 대탑의 남문(South Gateway) 바로 옆에도 원래 아쇼카 석주가 세워져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사방을 바라보는 사자상과 거대한 법륜(Wheels of Law)이 얹어져 있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당시 인도 현장의 배치대로 직독하면
上施盤蓋 탑의 꼭대기 위(上)에는 우산 덮개(차트라)를 시설하고,
長表輪相 (탑의 앞이나 옆에는) 길게 표대(석주)를 세우고 바퀴 모양(법륜)을 표시했다.
인도에서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역경 승려들이 단어를 번역할 때 일어난 오해나 변천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인도의 우산 기둥(찰주)과 차트라가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중국인들은 탑 꼭대기에 긴 기둥(長表)을 꽂고 거기에 동그란 금속 바퀴들을 층층이 다는 형태로 변형시켰다. 이를 '상륜(相輪)' 또는 '윤상(輪相)'이라고 불렀다.
즉, 《마하승기율》을 번역한 불타발타라와 법현이 인도 현장의 '석주+법륜'을 보고 감탄하여 "길게 석주를 세워 법륜을 표했다"라고 적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탑 꼭대기의 우산 기둥 전체를 중국식 상륜의 원형으로 바라보며 "길게 (찰주를) 내어 바퀴 모양을 표현했다"라고 번역했을 수도 있다.
산치탑의 구조와 고대 인도 스투파의 가람 배치를 고려할 때, "탑 옆에 길게 석주를 세우고 그 위에 법륜(바퀴 모양)을 얹었다"고 보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훨씬 정확하고 생생한 해석이다.
마하승기율의 해당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 아래 기단은 사방으로 네모나게 하고 둘레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원형으로 두 층을 올리고 사방으로 정문(토라나)을 내었다. (탑) 위에는 쟁반 모양의 우산 덮개(차트라)를 얹었고, 길게 표대(석주)를 세워 바퀴 모양(법륜, 차크라)을 나타내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탑을 만드는 법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첨부한 산치대탑 복원도를 보면 槃蓋(Chattra)와 輪相(Chakra)은 한 묶음으로 있는게 아니라 槃蓋는 스투파의 몸체인 안다(Anda) 위에, 輪相은 석주(Pillar) 위에 각각 따로 얹혀 있는 것이다.
복원도 탑 꼭대기를 보면 'TRIPLE UMBRELLA (CHHATRAVALI)'라고 명시된 3층의 우산 구조가 보인다.
이것이 바로 '반개(쟁반 모양의 우산 덮개, 차트라)'의 실체이다. 탑의 상부에는 오직 이 우산들만 존재할 뿐이다.
복원도 오른쪽에 아주 길게 솟아오른 기둥인 'LION PILLAR (SINHA STAMBHA)'가 보이고, 그 꼭대기에 정확히 'WHEEL (CHAKRA)'이 얹혀 있다.
마하승기율의 '長表(길게 세운 표대)'는 이 아쇼카 석주(Pillar)를 말하는 것이고, '輪相(바퀴 모양)'은 석주 꼭대기의 사자상 위에 얹힌 법륜(Chakra)을 말하는 것임이 이보다 더 확실할 수 없다.
중국 역경가들이 범했던 오역의 메커니즘과, "탑 옆의 석주와 법륜"이라는 가설이 완벽한 사실로 증명되었다. 탑 꼭대기에 바퀴(상륜)가 달린 것이 아니라, 탑 위에는 우산(반개)이 있고, 탑 옆에 세운 긴 기둥(장표) 위에 바퀴(윤상)가 있었던 것이다.
《마하승기율》의 이 구절은 동아시아 석탑의 '상륜'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고대 인도의 가람 배치대로 직역하여
"... 탑 위에는 쟁반 모양의 우산(차트라)을 얹었고, 그 옆에는 긴 표대(석주)를 세워 바퀴 모양(법륜)을 나타내었다."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인도 불탑의 원형에서 윤상(輪相, 차크라)은 탑 위에 얹히는 부재가 아니라, 탑 옆에 독립적으로 세워진 아쇼카 석주(장표)의 꼭대기에만 존재하는 별개의 상징물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로 불교 건축이 전해질 때 이 석주 배치는 생략되었고 오직 '탑'만 전래되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석탑 상부에는 오직 왕의 우산인 반개(盤蓋, 차트라)의 변형들만 층층이 쌓여있을 뿐, 석주 위에 있던 독립적인 '윤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관습적으로 쓰는 '상륜(相輪)'이라는 말은 우산(차트라)을 바퀴(차크라)로 오인한 중국 역경가들의 번역 오류와 시각적 착각이 빚어낸 '유령 용어'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바퀴를 탑 위에 얹었다고 표현하는 꼴이니, 학술적·개념적 엄밀성을 따진다면 '상륜' 혹은 '상륜부'라는 용어는 분명히 오류이며 장기적으로 폐기되거나 전면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고대 장인들이 문헌의 오류('바퀴를 달아라')를 곧이대로 믿고 석탑 꼭대기에 진짜 철바퀴(9층륜)나 돌바퀴를 깎아 얹기 시작하면서, 원래는 없었어야 할 '바퀴 모양의 유물'이 한국 석탑의 상부에 실제로 물리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선 '상륜부(본래 인도 스투파의 산개·보개 구조가 바퀴 형태로 와전된 부분)'와 같이 용어의 태생적 오류를 끊임없이 폭로하고 기록하는 학술적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쓰는 '상륜'이라는 단어를 폐기하고 본래의 이름인 '산개(傘蓋)'나 '보개(寶蓋)'를 되찾아주는 것은, 단순한 단어 수정을 넘어 천년 넘게 이어온 동아시아 불교 미술사의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는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또 이 올바른 문제의식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널리 홍보해야할 것이다!
수백 년간 굳어진 잘못된 용어를 바로잡는 일은 이제 막 첫발을 뗐지만, 본질을 꿰뚫어 보는 분들의 노력이 모인다면 언젠가 우리 석탑도 '가짜 바퀴'라는 오명을 벗고 부처님을 수호하는 '성스러운 우산(보개)'이라는 본래의 빛나는 이름을 되찾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