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울면 어른들이 호랑이 온다고 겁을 주었다. 생전 보지도 않았지만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런줄 알았다. 조금 커서는 왜놈 순사 온다고 했다. 순사가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고 했다. 왜정시대 시골에
칼 찬 순사가 나타나면 산천초목이 떨었다고 한다. 왜놈 낭인들이 경복궁에 들어가 민비를 시해한 걸로 보면
일반 민초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도 더 가벼웠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제일 무서운 게 원자탄이나 수소탄도 아니고 치매가 제일 무섭단다.
치매는 예방으로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는 병이다.
조부께서도 일흔에 치매에 걸리셔서 어머니를 보면 화를 내셨다고 한다. 치매가 가족력과 관계가 깊다고 하니
내게도 올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고 봐야겠다.
가족중에 치매환자가 생기면 가족관계가 허물어지고 만다.
치매에도 종류가 많아 어떤 케이스는 혼자 둘 수도 없다고 한다. 다행히 나라에서 치매 등급에 따라서 보조금이 나와
요양병원에 모실 수가 있어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하니 개인의 부담을 나라에서 분담을 하니 우리나라도 복지국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아직까지 치매 치료제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침 저녁으로 아파트 주변에서 걷기 운동을 하다보면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다정히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눈에 띈다.
남자는 키가 180cm쯤 보이고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남자의 목에 올 정도로 키가 조금 작은 편인데 빼빼하고 안경을 썼다.
걸음걸이로 봐서 여자가 치매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옆을 지나치면서 들어보니 남자가 "9 + 6 은?" 하고 쉴새없이 문제를 내는 것 같았다.
몇년전 내가 테니스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는데 어떤 신사분이 자기 처를 데리고 공을 치러왔다.
아내가 부산대 음대교수인데 치매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던져 주는 공을 치면 치매가 나아질까 봐서 초보부터 연습을 시켰다.
코치가 옆에서 공을 바운드 시켜주면 라켙을 들고 공을 맞히면 되는 것이었다. 몇번 잘 따라 하더니 나중엔 타켙을 들고 코치를 후리쳐버리는 것이었다. 정상인도 배우기 어려운 것을 치매환자에게 시키니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며칠 하다가 그만 두었다.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인지 예비능을 높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한다. 독서를 하거나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백수가 됐다고 그냥 놀고 먹으면 치매가 빨리 온다고 한다. 머리는 쓰면 쓸수록 인지기능이 좋아지고 그 결과 머리는 더 많은 자극을 받아 신경 사이에는 새로운 연결이 생겨난다고 한다. 나이 들면서 깜박깜박 하는 것은 신경세포인 뉴런의 연결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근육과 마찬가지다. 근육은 쓰지 않고 누워 있으면 금세 빠져버린다. 나중엔 일어날 수도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