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집근처에서 쉽게 대형마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파가 계속되는 시기이지만 식자재 코너에는 신선한 각종 채소들과 철을 잊은 과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재배방식이 현대화되었기도 하지만 해외에서 농산물이 마음껏 들어오기 때문인 것 같다. 전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오고 추운 절기에 중국 동북지방을 순회한 적이 있었는데 온 마을이 꽁꽁 얼어 길은 미끄럽고 눈은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시장을 지나다 보니 귤과 열대과일이 많이 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그 지역에서 출하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였기에 물었더니 당연한 답이 돌아왔다. 중국은 땅이 커서 저 남쪽 베트남근처에서 수확한 과일이 며칠 동안 기차를 타고 오면 이런 시골까지 도착한다는 말이었다. 정말 필요가 있으면 공급이 된다는 생산원칙이 적용되는 것을 보았다. 들판에 나서보면 겨울을 지나는 자연의 모습이 황량하기 그지없다. 푸르른 풀과 나무, 채소는 온데간데없고 메마른 나무들이 죽은 듯이 서있어 도리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을씨년스럽다. 눈은 푸름을 볼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시장을 서성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계절을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사람마다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이 같다. 그래서 어떤 이는 겨울이라도 화분을 정성스럽게 가꾸어 푸른빛을 집안에 머물러 두고 위안을 삼는 취미생활도 볼 수 있다. 가장 악독한 범죄자라도 그 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고등은 양심이다.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문제 속에 들게 되었을지라도 그가 조용히 자신을 보게 될 때는 반드시 후회를 하고 반성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물며 건강한 사람에게 있어 양심의 작용은 인생의 본질을 찾을 때 드러난다. 앞으로만 달려 갈 때는 보이지 않던 자신의 현실과 미래가 조용히 빈들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게 될 때는 복음의 사실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겨울 뜰에서 푸름을 생각하는 것은 의미를 잘 표현하는 시인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현상에서 가치를 찾듯 사람들은 본질에 대한 갈구를 가지고 질문을 숨겨둔 채 하루 또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어느 날 인 듯 하루가 잘 지나고 그렇게 쉽게 한 달이 벌써 지나고 일 년이 쉽게 지날 때 어느 날 내 자신을 생각해 볼 시간을 놓치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겨울 빈들에서 푸름을 구하듯 내 인생의 오늘에서 소망을 찾는 것은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먼저 찾듯이 의미 있는 시간이다. 메말라 보이는 겨울나무를 살짝 꺾어보면 거기에 푸른 속살이 보인다. 겉은 죽은 듯이 보여도 속에는 수분공급이 되고 살아있는 것이다. 결국 봄이 오면 모든 나무들은 일제히 싹을 틔우고 꽃이 피게 되고 결국 나뭇잎이 무성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오직 나무가 땅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지만 얼어버린 땅속에서 존재하고 있기에 현실의 고통인 겨울을 참으며 봄의 축복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은 오직 복음인데 그 원천은 그리스도이다. 지금 나무가 푸르러도 뿌리가 없다면 말라지지만 오늘 메말라 보여도 복음 속에 뿌리박고 있기만 하다면 현실의 문제가 어려운 어떤 경우에도 그는 생명 가진 자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기억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