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하면 으례 오아시스나 낙타를 연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낙타는 동물원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지만 사막지방에서는
운송수단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옛날 실크로드에서는 카라반들이 무역품들을 낙타에 실어 왕래를 하였으나
육상 통로가 막히게 되자 해상으로 발길을 돌려 해상 실크로드가 열리게 되면서 운송수단이 낙타에서 선박으로 바뀌게 되어
규모도 대량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세리나 부자는 일반 민중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판을 받아온 것임은
성경구절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
왜 하필이면 낙타인가? 사람도 있고 소도 있고 말도 있는데도 말이다.
이스라엘에는 소나 말 보다도 낙타가 더 많았던가?
오늘 뉴스에 의하면 우리나라 관광객(60세)이 이집트에서 패키지 여행중 낙타에서 떨어져 사망했으며 이와 관련해
법원은 해당여행사측이 유족에게 약5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고 한다.
법원은 당시 하나투어가 낙타 체험으로 인한 위험성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A씨에게 미리 알리지 않아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은 점, 현지 낙타 몰이꾼이 낙타 고삐를 놓은 점에 과실이 있다고 봤다고 한다.
중동 7일전쟁이 발발하기 전 배 탈 때의 일이다. 나는 동남아시아 일원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원목을 싣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유럽 전역에서 하역을 하였다. 하역을 마친 다음에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중동으로 가는 짐을 실었다.
당시만 해도 수에즈 운하를 확장하기 전이라 아시아에서 유럽행 선박은 수에즈에 08:00시까지 도착해야만 당일 통과하고
그 이후에 도착하는 선박은 다음날 통과하게 돼 있었다. 수에즈 운하 중간에는 큰 호수가 있어 거기서 오고가는 배들이 서로 비껴갔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데 보통 아침에 수에즈항을 출발하면 점심때쯤 호수에 도착하고 잠시 오는 배들을 기다렸다 출발하면 저녁때가 되어서야 포트세이드를 빠져 나갔다. 항로 폭이 좁아서 원웨이였다. 그러던 것을 전쟁이후 폭을 넓혀 지금은 양방향으로 오고 간다.
아침 내가 탔던 배는 09시에 도착하게 됐으므로 다음날 아침에 도착한 순서대로 열을 지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도록 돼 있었다.
하룻동안 기다려야 하므로 대리점에서 카이로 기자까지 관광갈 사람을 모집하였다. 왕복교통비는 그리 비싸지 않아 피라밋 구경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피라밋과 스핑크스를 구경한 다음에는 피라밋 앞에 줄 서 있는 낙타를 한번 타 보기로 했다. 한번 타고 100여m
가는데 5불이라고 했다. 낙타를 타려면 낙타가 엎드려 있을 때 타야 한다. 등 위에 타고 낙타가 일어서니 상당히 높았다. 몰이꾼이 고삐를 잡고 조금 걸었다. 그러구선 내려 달라고 하니 내려주지 않았다. 5불 더 내면 조금 더 태워 준 다음에 내려주겠다고 했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5불을 더 내는 수밖에 없었다. 높아서 혼자서는 내려올 수가 없었다. 사고가 났던 사람도 낙타가 요동하는 바람에 낙타 등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던 모양이다. 불행하게도 머리를 다쳤거나 치명상을 입었지 않았나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