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문사라는 스파이 기관을 양성하여, 일본으로 나라가 넘어가는 것을 막아보고자 하였던 것이다.
19세기 말엽은 한국 등 극동이야말로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으로 세계제일의 무법천지가 된 시대여서 못된 인간들인 스파이(간자)들의 활동도 그만큼 심했다.
이 익문사의 책임자는 이용익으로서,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으로 쫓겨났을 때 왕비를 장호원으로 모시고 임금과 왕비의 교신자 역할을 맡으며 청국 황제에게 청국군의 파병을 상주한 인물이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정부고위관리들과 외국공관원들의 동정, 국사범과 외국인들의 범죄행위 감시, 학교 및 종교 회사 법인의 반국가 행위, 외국의 침략행위에 대한 사전 정보 포착 등을 망라하고 있어 오늘날의 스파이 기관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더욱이, 이들은 황제에게 친서를 보낼 때 붓으로 묵서를 쓰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오징어먹물로 글을 쓰는 등 치밀성을 두어 오늘날의 간첩과 거의 흡사했다.
- 서울대학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가 1997년 12월 [한국사론] 38권에 연구 발표! (당시 문서를 증거물로 내놓았음)
이 익문사가 해방 후, 다른 이름으로 개정된 것이 안기부다.
19세기 말엽은 물론, 해방 후인 20세기 중반에도 한국은 한국전쟁이나 4. 19 의거 등 엄청난 전쟁이나 난리를 겪었던 시기였으므로 무법천지이긴 그때와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정부 측에서는 필연적으로 강하고 영민한 자들을 모아 그들을 앞세워 정치권과 국가권력을 보호하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이 안기부다. 한국의 스파이 기관!
한국이 이처럼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법보다는 주먹과 총칼이 앞서는 사회풍토가 정착된 것도, 이 나라가 19세기 말엽부터 극히 최근인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법보다는 주먹에 의지하는 깡패 풍토였던 천하의 사람이 못살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버릇이 그대로 남은 것이다.
안기부의 처음 책임자는 바로 김두한이었다. 1960년대만 해도, 한국이 아주 혼란하고 깡패철학이 지배하는 사회였기에 에전에 조폭이었던 사람을 책임자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이름은 중앙정보부, 1961년 6월에 정식 창설)
그러나, 김두한이 국회의원이 되고 난 후, 계속 조폭을 앉혀두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하여 몇 년 지난 1960년대 중반부터는 다른 자를 기용하였는데, 이번에는 군인이 주축이었다.(당시 한국사회는 살벌한 군인천하였음. 3공에서 6공까지 대통령은 전부 군인 출신이었다.)
이때, 다시 이름을 바꾸어 이름을 국가안전기획부로 바꾸었다. (이때는 책임자를 박정희의 조카사위이자 육사 8기 출신인 김종필로 바꾸었음)
한국의 스파이 기관을 대표하는 [안기부]라는 이름도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다.
김종필 중령은 미국의 CIA 를 본따, 한국 정보기관을 비로소 정보기관답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정희는 안기부에 숫제 [생사여탈권]을 주다시피 하여, 안기부의 권한을 무한정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엄청한 지원과 특권이 있었기에, 한국 안기부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극동의 첩보기관 중 중국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아주 좋지 않은 이름도 남기게 되었다.
그것은 한국 안기부가 독일의 게슈타포 이상 가는 악질 스파이 기관이었다는 오욕을 남기게 된 것이었다.
안기부의 주요 임무는, 당시 가장 무서운 적이었던 북한을 견제하고 동향을 탐지하여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면 그것을 악용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어서 안기부원들은 정치와 결탁하여 천하의 몹쓸 짓을 상습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1) 선거 때마다 재벌이나 지주들을 찾아다니면서 협박과 위협으로 돈을 뺏는 것(정치헌금) 2) 어느 특정 정치인이나 당(주로 여당)의 이득을 위해 정적이나 반체제인들에 대한 린치와 살해. 3) 반공을 내세워 국가시책에 반대하는 자들을 체포하여 수용소(주로 삼청교육대)로 보내어 그 곳에서 수용자들을 핍박 감시하는 일 - 악명높은 삼청교육대 조교들은 거의 안기부 출신어었다. 4) 반국가사범이나 정적에 대한 납치 및 지독한 고문(고문 경관 손근안도 안기부 출신이었음) - 바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있던 남산 지하실고문은 유명하다. 독립기념관 밀랍인형의 고문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낫지는 않았다. 일본인들만 고문한 거라고 착각하는 거야말로 큰 오산이다. 박종철도 이런 고문 받다 걸레처럼 되어 죽었음. 바로 보안사 고문이라고도 한다.
이런 짓거리들을 하면서, 한국의 안기부를 국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안기부는 이처럼 잔인한 짓을 서슴없이 하므로, 창설된지 40년 가까이 되도록 여태 한번도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도 외국경찰에 잡힌 적이 없었다. 수틀리면 영원히 입을 봉해 버리니 그럴 수밖에...
악명높은 첩보부일수록 유능한 첩보부라는 서양속언이 있는데, 한국의 안기부도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안기부는 이처럼 비인간적 단체였기 때문에, 그 출신 대통령도 역시 무자비했다. 안기부 출신 대통령이 꼭 한 명 있다. 바로 광주학살의 살인마인 전두환이다. 그는 안기부와 보안사에서 배운 인간경시 철학을 통치이념에 충실히 이행했던 것이다.
현재 안기부는 거듭나기를 시도하고 있다.
6공 이후, 92년부터 명실상부한 세대교체로 군사정부 아닌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깡패 소굴] [동양의 게슈타포]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인간이기를 포기한 집단인 스파이 양성기관이 양심적 인간들로 바뀌면 아무래도 질이 떨어지는 것일까? 96년 동해시 북한 무장공비 잠수함 침투도 사전에 포착하지 못했을 정도로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전에는 보트로 들어오는 무장간첩들도 척척 잘 잡아낸 정보기관이...
5공 시절, 안기부의 전성기에는 그 치밀함과 정보력에 미국의 CIA도 감탄하여 한국의 스파이 양성 노하우를 배워갔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엔 인간성을 따지기 때문인지 정보력이 약해져 스파이 기관으로는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첫댓글 처음에도,60년대 중반에도 이름은 중앙정보부 였던걸로 기억하는데...안기부란 이름은 5공때 부터 사용하지 않았나요?
글쓴저자는 안기부가 익숙했나봅니다.
해안 간첩침투는 감시는 국정원담당이 아니건만... 게다가 게슈타포는 스파이조직이 아니라 정치경찰조직 스파이조직은 따로 있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