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현대사회에는 2천 년 가까운 간격이 존재한다.
예수와 사도들이 가르친 것은 세례,주기도문 그리고 성찬식이다.
주일성수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수께서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가르치지 않았다.
물론 사도들이 예수 부활을 일요일로 보았다는 설명도 있다.
주일은 321년 콘스탄틴이 법률로 공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도신경,부활절,성탄절 그리고 추수감사제 등등은 사도들도 모르는 것들이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당연히 추가된 것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전통과 행사가 추가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암묵적으로 초기 기독교와 구별하고 있다.
현대교회는 결코 2천 년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사람은 모국어로 씌여진 문장에 가장 감동받는다고 한다.
특히 역사,문화 그리고 지리적인 동질감을 갖고 있으면 직관적으로 즉시 이해된다.
그래서 본문(텍스트)의 예로써 적절한 것이 한국 현대소설,현대수필 등이다.
예수님의 비유도 당시 청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것들이었다.
주로 땅,농업 그리고 종(노예)과 관련된 비유가 많은 이유가 되겠다.
성서는 아쉽지만 텍스트로 읽을 수는 없다.
성서를 텍스트화하기 위해서 원어를 공부하는 분들도 있다.
그것은 분명히 찬성할 만한 노력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항은 당대의 배경지식이다.
이렇듯 원어와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이라면 이미 텍스트의 의미는 상실한 것이다.
첫댓글성경 안에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공존합니다. 성경 전체를 콘텍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죠. 변개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인 텍스트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역사에 따라 응용될 수 있는 각각의 신앙행태인 콘텍스트가 성경 안에 있습니다. 획일화의 오류에 빠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성경 안에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공존합니다. 성경 전체를 콘텍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죠. 변개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인 텍스트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역사에 따라 응용될 수 있는 각각의 신앙행태인 콘텍스트가 성경 안에 있습니다. 획일화의 오류에 빠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물론 그렇습니다.그런데 제가 말하려는 취지는 번역성서를 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콘텍스트적 이라는 것입니다.내용을 덧붙이려는 찰나에 한방 먹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