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단식, 이웃사랑과 하느님 사랑 사순절이 되면 종이 사순 저금통과 단식재 봉투를 받는다. 평소에 자동이체로 자선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는데 자선을 또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든다. 사순절은 주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하느님께 돈을 드리는 게 아니라 마음을 그리고 생명을 되돌려 드리는 걸 수련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단식은 한 끼 굶거나 교회법 규정을 지키는 게 아니다. 배고파도 먹지 못하고 억울해도 눈물을 삼키며 일해야 가난한 이웃의 마음과 하나가 되고, 나의 것을 실질적으로 그들과 나누는 것이다. 단식한 만큼 돈을 봉투에 넣는다. 그보다 더 많은 돈이 자동이체 되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지갑을 열고 있지만, 이제 그 봉투에는 돈이 아니라 내 마음과 연민을 넣는다. 이웃사랑과 하느님 사랑을 넣는다.
예수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단식 규정을 무시하신 건 아니다. 사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율법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가난해서 단식을 밥 먹듯 했을 거다. 가진 음식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고, 안식일인데도 밀 이삭을 비벼 까먹어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마태 9,15)” 제자들에게는 스승 예수님과 지상에서 지낸 시간이 고되고 때론 혼란스러웠지만 바로 그때가 신혼여행 같은 때였다. 마귀들이 쫓겨나고 중풍 병자와 다른 병자들이 낫고, 죽은 이가 되살아나며, 오지에서 수천 명이 배불리 먹는 자리에 함께했다. 예수님 덕분에 모두가 온전해지고 행복해졌다. 그 자리에 그 시간에 함께했다. 제자들에게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남을 위한 시간이 가장 행복한 때였다. 내 손으로 돈 벌어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킬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돌아가신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죽어 이웃이 사는 게 하늘나라다. 십자가 위에서 축 늘어진 예수님 몸이 그곳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자가 전한 참된 단식을 실천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8, 6-7)” 남는 걸 줘도 자선이지만 내게도 일용하고 필요한 걸 줬다면 그건 자선을 넘어 내 생명을 나누는 거다. 예수님은 살해당하신 게 아니라 스스로 당신 목숨을 내어주셨다. 내게 필요한 걸 청하는 것도 기도이지만 하느님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게 필요한 걸 다 알고 계신다고 믿고, 내 마음을 확장해서, 옷만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서(요엘2,13) 내 밖에 있는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서 기도한다. 당신을 따라오려면 먼저 자신을 버리라는 예수님 말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내 바람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내 안이 너무 시끄러워서라도 나에게서 탈출해야겠다. 그 단식재 봉투는 내 생명을 나눈 것이고, 이웃을 위한 기도이며, 시끄러운 나로부터 탈출이다.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이사 58,8-9).”
예수님, 주님이 요구하지 않으셔도 제 안이 제 생각과 걱정으로 너무 시끄러워서 저로부터 탈출하고 싶습니다. 주님이 그 탈출 길입니다. 한 줌 먼지로 돌아갈 몸인데 아껴뒀다가 뭐하겠으며, 어차피 다 남의 것이 될 건데 갖고 있어 뭐하겠습니까?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안고 계신 아드님께 더 가까이 있게 이끌어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