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통금이 지난 시각이었다. 용호동으로 이어지는 삼거리에는 대연파출소가 있었다.
밤만 되면 단골 손님은 수대생이었다. 하도 애먹이는 놈이 많아 학장님이 일개 파출소장에게 이렇게 당부할 정도였다.
"졸업하면 여자 고무신만한 어선을 타고 오대양으로 나갈 젊은이들인데 젊은 혈기로 술 취해서 유리창 한 장 깼다고 너무
갈구지 말고 그냥 보내줘요. 유리창 값은 학교에서 물어줄 테니!"
그날밤도 어떤 간큰 놈이 파출소 앞을 지나가면서 고성방가를 했다.
"수대생 연애는 마도로스 연앤데 붙기만 붙으모 사모아로 가더라!"
파출소 안에는 신삥 순경과 방법대원이 당직을 서고 있었다.
"저놈 잡아라!" 방법대원 두 명과 신삥 순경이 빈 권총집을 털럭거리며 잡으러나왔다.
애먹이는 놈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육상 선수였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연동 삼거리 일대는 온통 시금치밭이었다. 택지개발을 하려고 바둑판처럼 길을 닦아놓았다.
쫓고 쫗기는 추격전이 벌어졌으나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도망가는 놈이 누루새끼처럼 뒤를 낼름낼름
돌아보며 추격자들에게 약을 올렸다. 그러자 방법대원들은 화가나서 돌맹이를 집어들고 녀석의 달구지를 겨냥해 던졌다.
"이거 맞으면 뱀에게 뒷다리 물린 개구리 신세 되겠는데!"
녀석은 붙잡힐까 봐 앞만 보고 전력 질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땅속으로 푹 꺼지고 말았다.
그날밤은 달이 휘영청 밝았다. 달빛에 비친 시금치 잎사귀가 희끗희끗 빛났다.
그런데 시금치밭 군데군데에는 임시로 구덩이를 파놓고 거름으로 쓰려고 분뇨를 저장해 놓은 똥통이 있었다.
그 당시 화장실 뒤지는 대부분 신문지였다. 똥통 위로 달빛에 반짝이는 신문지는 시금치 잎과 구별하기 어려웠다.
녀석은 앞만 보고 질주하다 똥통에 빠진 것이다. 똥통에 빠진 녀석은 마치 구름 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따뜻하고 푹신한 감각이 그럴수없이 편안했다. 천천히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똥통의 깊이가 머리까지 깊었다면 녀석은 그날밤 기분좋게 천국으로 갔을 것이다.
그런데 어깨까지 잠겼을 때 바닥에 발이 닿고 말았다. 그러자 구름방석에서 구릿한 냄새가 났다.
"아뿔사! 내가 너무 까불었구나!"
뒤쫓던 신삥 순경과 방법 대원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도망치던 놈이 갑자기 사라지다니?
사라졌던 녀석이 허우적거리다 똥통에서 기어나왔다. 전신에 걸쭉한 팥죽 같은 똥물을 뒤집어쓰고.
녀석은 제풀에 화가 났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를 통금 좀 어겼다고 돌팔매질을 해 잡으려고? 파춣소로 갑시다!"
저 똥걸레가 파출소에 가겠다니, 신삥 순경은 큰일났다 싶었다. 똥물을 파출소에 뿌려놓으면 누가 감당할 것인가?
"보소 학생, 내가 촌에서 커서 잘 아는데 똥독 오르모 큰일이요. 먼저 똥물부터 씻거소."
방범대원들도 거들었다. "오늘 일은 전적으로 학생이 잘 몬했소. 우리도 피곤한데 고성방가만 안 했어도 잡으러 안 왔을 낀데.
똥통에 빠지모 물왕대복이 터진다 쿠던데 앞으로 학생이 선장되모 괴기 억수로 마이 잡것다. "
"씨그럽소 고마. 죄를 지었으모 벌을 받아야지. 나는 파출소로 가야겠소."
녀석이 똥물을 질질 흘리며 파출소로 향하자 신삥 순경은 이놈 악질이구나! 좋은말해서는 안 되겟다. 싶었다.
"이 봐요, 학생, 자꾸 고집부리모 가로수에 당그라맬꺼요. 소장님 출근할 때까지 안 풀어줄거요! 그라이 내 말 듣고 빨리
바다에 들어가 똥물부터 씻으소. 그라모 내가 오토바이 타고 가서 떡뽁이 사다 줄게. 똥통에 빠지모 엣날부터 떡잔치를
해야 뒷간 귀신이 안 잡아간다 했소!"
가로수에 당그라맨다는 말에 녀석은 안 되겟다, 싶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진짜로 떡잔치 해 주요?" 그러자 순경이 반색을 했다. "그럼, 해주고 말고요. 내가 공전앞 떡볶기집에가 서 금방 사올께."
녀석은 어기적어기적 용호만을 향해 발길을 돌렷다.시월을 바닷물은 차디차서 잇몸이 덜덜 떨렷다.
멀리서 떡볶이를 사오는 신삥 순경의 오토바이 소리가 추위를 견디게 했다.
그 얼마 후에 대연동에 남부경찰서가 생겼다.
( 부경대 신문에 기고한 필자의 " 30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그 냄새가" 에서 추린 글.
첫댓글 해군 통제부 목장 똥통에 빠진 넘도 있는데...
해군 함정에 기어들어오려는 넘을 현문 당직병이 소화 호스로 물줄기를 쏘아 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