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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그들이 바라본 '오노 세레머니'
2002.6.12.수요일
딴지 월드컵 취재반
미국과 1-1로 비겼다.
뭐 워낙 다른 매체에서 기사들은 많이들 접하실 터이니 잡설은 집어치우도록 하고... 안정환의 '오노 세레머니'에 대한 해외 언론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아, 그 전에 잠깐 보너스로, 요즘 돌아다니고 있는 사진 몇 개. 뭐 다들 보셨겠지만 혹시라도 안 본 독자들을 위해서 올리는 것이니, 이거 뭐 이미 본 거라고 머라고 하지들 마시라.
그리고 다들 보셨겠지만 닭대기리가 골을 넣다...
국어사전 사진도 돌아댕기는데, 기발한 합성이었다. 하하. 박수를 보낸다. 이것두 뭐 다들 보셨겠지? 주영준(judangiii@lycos.co.kr)씨의 작품이었다.
자, 우선.. AP 기사부터.
한국 선수들 반미 제스추어를 하다 Korean players do anti-U.S. gestures 정부측의 당부를 염두에 둔 탓인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월요일 미국과의 경기에서 반미 시위를 피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후반전 중반, 스트라이커 안정환은 이을용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넣어 동점을 만들었다. 붉은색의 6만 이상의 홈팬들은 광란에 휩싸였고, "oh, oh, Korea"를 외쳤다. 그리고 나서 안은 필드의 한쪽 코너로 가서 한국인들이 "오노 세레머니"라고 부르는, 스피드 스케이팅을 흉내내는 제스추어를 취했다. 대여섯명의 팀메이트들이 그와 합세해서 앞뒤에서 마치 얼음위에서 달리는 듯한 자세를 했다. 그 세레머니는 미국인 아폴로 안톤 오노를 조롱하려는 의도였다. 오노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김동성이 반바퀴를 남겨두고 오노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실격당한 후에 금메달을 받았다. 한국 선수단 대표는 편파적 판정이라고 믿었고 항의의 뜻으로 올림픽 폐막식을 보이코트 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 사건은 한국인들 사이에 반미감정을 자극했다. 안정환은 "우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것 때문에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골 세레모니로 그것을 풀고 가라앉히려 했다. 게임을 이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안의 세레머니는 홈 관중들 사이에서 엄청난 호응을 불러 일으켰고, 그들은 "안정환, 안정환"을 연호했다. 만족스러운 표정의 히딩크 감독은 트레이드 마크인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는 제스추어를 했다. 한국 정부 관리들 사이에서 "오노 세레머니"에 대한 코멘트는 나오지 않았다. 이태리의 페루지아에서 뛰는 안(25)은 거스 히딩크의 팀에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그는 필요할때마다 한국팀에 스파크를 제공해왔다. 월요일 경기에서도 안은 한국이 지고 있을때 또 한번 빛났다. 55분에 교체로 들어온 안은 12분 후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경기중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반미시위를 우려해 김대중 대통령은 경기장에 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희호 여사와 20여명의 비서진과 함께 티비로 경기롤 보았다. 한국팀이 골을 넣었을때 김은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고 박선숙 대변인이 이야기했다. 그는 "모두가 잘 했다. 비속에서의 열띤 응원이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남은 경기에서도 좋은 경기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대변인은 전했다. |
영국쪽의 BBC 온라인의 기사 중 세레머니와 관련된 짤막한 부분.
그러나 (골기퍼는) 78분 안정환의 스치는 헤딩슛을 막지 못했다. 그 골로 한국 팬들은 기쁨으로 광란 상태가 되었다. 뒤이은 세레머니에서 안정환은 스피드 스케이터를 흉내냈다 - 미국 동계올림픽에서 빼앗긴 스케이트 금메달을 한국인들이 잊지 않았음을 세계에 보여주는 생생한 묘사였다. |
가디언 지의 경기 minuite by minuite 의 안정환 부분은 이렇다.
78분 골! 한국 1 - 1 미국. 전기뱀장어 (주 - 전광석화같고 요리조리 잘 미끄러져 들어간다는 뜻) 안정환은 수비 뒤에 처져 있다가 순식간에 나오며 프리킥을 머리로 받아 골을 넣었고, 스타디움 전체를 자리에서 일어서게 만들었다. 그는 스피드 스케이터를 연상케하는 세레모니를 했는데, 미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스케이팅 선수를 교묘하게 암시하는 것이었다. 정치! 좋아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
가디언지는 축구경기에 정치가 드디어 등장했다는 것을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뒤에 나오겠지만 미국 언론들은 애써 그런 인상을 지우려 하는데 반해, 가디언지는 이 점을 크게 부각시킨다.
아래는 가디언의 기사 하나. "코메디 정치를 선보인데 대해 한국인들에게 경의를" 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스피드 스케이팅을 하는 한국 선수들이 Why the speed-skating South Koreans are Harry Pearson 최근 거실에 있는 벽난로를 인부들이 뜯어내는 중이었다. 그래서 월드컵 기간의 첫 열흘등안 나와 내 파트너, 그리고 딸, 이렇게 세명은 가구, 강아지, 그리고 Garth Crooks와 함께 침실에서 지냈다. 전 Spurs의 포워드였다가 BBC 리포터로 변신한 그는 물론 우리하고 늘 함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꼭 그랬던 것처럼 느껴졌다. 86년 월드컵때 나는 사우스 쉴즈에 있는 한 술집에 있었다. 마이크 채넌이 권위자 역할로 화면에 나타나자, 한 성난 노동자가 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 나왔다. 영국에서 브라이유 언어로 얘기하는 딱 한 사람!" (주 - 브라이유는 점자를 가리킴. 그 언어로 얘기한다는 건 무슨 말인지 도대체 못 알아먹는다는 뜻인듯) 가스는 채넌과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는 목소리가 더빙된 것 같은 이상한 인상을 주었다. 이런 어려운 시절에는 영웅이 필요하다. 다행히 월드컵은 그런 영웅을 만들어내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아주 특별하고 예상하지 못한 작은 액션 하나가 우리 모두를 흥분시키는 것이다. 4년전 프랑스에서는 유고슬라비아 감독 슬로보단 산트라치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채웠다. 그의 유고 팀이 독일과의 16강전에서 동점을 깨고 득점했을 때, 산트라치는 덕아웃에서 기뻐서 뛰어나오다가 겨우 5야드 걸어나와서 허벅지 뒷근육을 다치고선 그 자리에서 엉거주춤 꼼짝도 못했다. 내가 있던 리용의 프레스 센터에서는 몇분동안 웃음소리가 그치지를 않았다.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 사진기자들, 그리고 텔레비젼 스텝들은 웃으며 모두 일체감을 느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우리 삶을 그렇게 밝게 해 주곤 하던 사람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령 예를 들어 일본과 한국의 경기장 관리인들은 희한한 패턴으로 잔디를 깎아 '아니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도대체 왜 저렇게 깎았지?'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했다. 반면에 94년 미국에서 나왔던 전동식 차량에 탄 뚱보가 아니라, 이번에는 들것을 드는 사람들이 다들 날씬하고 민첩하고 효율적이었던 점은 좋았다. 블래터 회장은 이 상황을 재빨리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축구가 전세계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면 내 생각엔 적어도 경기장의 의료진 4명 중 한명은 폴란드 수비진보다 더 느리고 우왕좌왕해야 한다. 이것이 가져올 건강과 안전상의 걱정보다는 "야 저놈 선수 있는데까지 가면 그 사이에 부러진 다리도 다 낫겠다"하는 팬들의 씹는 기쁨이 훨씬 클 것이다. 그것 말고는 즐거워할 것들이 꽤 많았다. 어제 한국팀의 스피드 스케이터 스타일의 골 세레머니 -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김동성의 실격에 항의하는 의미인 - 가 그 한 예다. 한국의 그것은 내 생각에는 월드컵 사상 첫번째 정치적 골 세레머니였다. (물론 Home Championship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위일즈, 북아일랜드 간의 대항전. 100여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1984년 이후로 중단되었다) 에서는 그런 적이 있다. 1967년 데니스 로는 토니 겜멜(Celtic FC의 전설적인 축구선수)을 쫓아다니며 가부키 수업에서 배운 기술을 이용해 Highland Clearances (18세기말 양을 기르기 위해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거주민들을 쫓아냈던 정책 - 주)에 대한 분노를 마임으로 표한 적이 있다) ITV의 베리 베니슨은 "저한테는 좀 품격이 떨어져 보이네요"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것은 축구선수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가는 특징이 있다. 주말쯤 되면 멕시코 선수들이 텍사스 합병을 표하고, 스페인이 지브롤터 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결 실패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세레머니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경우처럼, 가장 유쾌한 일들은 덕아웃 주변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일요일 인천에서 열린 경기의 막판, 터키 선수와 코스타리카 코치들은 심판이 없었다면 주먹이라도 날릴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 매우 노력했다. 양쪽에서 네명씩의 건장한 '투사'들이 자그마한 대기심 오스카 루이즈 양편에 갈라서서 마치 심판이 말려서 못 싸우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최고는 요코하마 경기에서 걷어낸 공이 빗맞아 러시아 벤치 쪽으로 왔을때의 괴상한 동작이었다. 로만체프 감독 옆에 앉아있던 뚱뚱한 남자가 볼을 차 내보내려고 하다가 그만 의자에서 떨어져 버렸고, 감독은 한 구석에서 공이 무서워 피하고 있었다. 과잉친절하는 여주인에 의해 마늘빵을 억지로 권유당하는 드라큘라 백작 같았던 그의 모습이 전세계에 방송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벙커'라고 생각하게 된 이 비좁은 공간에서 경기들을 보면서, 지난주 우리를 감쌌던 우울함은 말끔히 가셨다. 스튜디오 안에 있던 친구들은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경기 전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고 계속해서 얘기했다. 내 상황에서는 "드디어 벽난로 선반이 나왔다"는 게 더 반가웠겠지만 말이다. |
한편, 국내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지만, 오노도 이 장면을 보았다 한다. 그가 한 말이 시애틀 타임즈에 실렸는데, 그 해당 부분 전체를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나는 그 친구를 봤는데, 테크닉도 갖추지 못했다"라고 오노는 말했다. 그는 세레머니 이야기를 전해듣고 나서 텔리비젼 리플레이를 보았다 한다. "더 자세를 낮춰야 하고 어깨를 똑바로 펴야 한다." 그 금메달이 아직도 한국에서는 빅뉴스라는 점에 대해 오노는 놀라워하지 않았다. "숏트랙 스케이팅은 거기서는 아주 인기있는 종목이며,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그런 반응이 나온 것 같다. 그러나 내게는 이미 지나간 일이다." 오노는 어제의 "오노 세레머니"에서 무언가 긍정적인게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혹시 스케이팅을 위해서는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테니까." 비록 축구장에서 행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후략) |
영국 쪽에서는 '오노 세레머니'를 즐거워하고 고소하게 바라보는 데 반해서, 미국 언론들은 반미감정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또 특별한 충돌 없이 끝났다는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이다. 뉴욕타임즈의 기사 중에서 이 부분에 관련된 것만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광란의 붉은 바다에서 미국 승점을 건지다 By JERE LONGMAN (전반부 생략) 몇명만이 당황한 빛을 내보였다는 것은 아마도 미국 선수들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60,788명의 관중 앞에서 경기를 했는데, 거의 모두가 붉은 색 옷을 입고 마치 의식을 거행하는 듯한 환희 속에서 홈팀을 응원했다. 한국은 이길 수 있는 찬스가 있었지만 이기지 못했다. 한국은 슈팅수에서 19대 6으로 미국을 압도했고, 미국은 프리델 골키퍼의 페널티 세이브와 최용수의 골 정면에서의 실수 덕분에 패배를 면했다. 에디 포프와 함께 수비진에서 건실한 플레이를 펼친 토니 사네는 "실망스럽다. 80분간 1-0으로 이기고 있었다면 그 경기는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후의 분위기는 가볍고 희망적이었다. 미국팀은 16강에 올라갈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제 무승부 한 번이면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팀만을 상대로 싸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 전체와 맞섰다." 아레나 감독은 말했다. "우리팀을 인정해 줘야 한다." 게임 결과는 팽팽한 국제 관계를 누그러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이 이기면 발생할까 두려워했던 폭력은 나오지 않았다. 반미 감정은 경기 전 드높았다. 솔트레이크 올림픽 1500미터 숏트랙에서 김동성이 실격당하고 미국인 아폴로 안톤 오노가 금메달을 받은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나타나지 않을만큼 보안상의 우려는 심각했다. 만약 반미감정이 폭력으로 나타나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 대통령이 있는 것이 아주 이상한 모양이 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축구 서포터스 붉은 악마의 명예회원인 김은 팬들에게 자제를 당부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제했다. 게임전, 이곳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아담 런스포드씨는 "최선의 결과는 무승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명예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엔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오노 사건에 대한 상처받은 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골이 들어가고 나서 명확해졌다. 78분, 미드필더 이을용이 40야드 밖에서 프리킥을 찼고 그것이 안정환의 머리를 맞고 들어갔다. 안은 아구스 뒤쪽에 서 있다가 그에 앞서 헤딩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골이 들어가자 안은 한쪽 코너로 달려가 스피드 스케이터가 달리는 모션을 취했다. 이 뒤늦게나마 정의가 실현된 것에 열광하는 관중들로 스타디움은 폭발했다. 비록 미국인들은 다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동계올림픽은 계속 종목이 늘어난다." 아레나 감독의 말이다. "아마 다음번 동계올림픽 때엔 얼음 위에서 프리스비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더이상 따라갈 수가 없다." |
워싱턴 포스트 또한 마찬가지다. 1면 첫머리에 나온 기사 중에서 반미감정과 관련된 부분.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음을 다행스러워하는 톤의 기사였다.
올림픽 규모의 월드컵 전투 By Liz Clarke (앞부분 생략...) 그러나 이 게임의 정치적인 함의에도 불구하고 걱정한 것 같은 폭동이나 폭력은 없었다. 근면하고 품위있는 한국인들은 축구장이, 저녁식사 테이블도 그렇듯이, 손님 앞에서 정치적 견해를 쏟아내는 곳이 아니라고 마음먹었음에 분명하다. 마치 한 팬이 손으로 쓴 사인을 들고 있었던 대로 말이다. "No politics! Just Football!"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하더라도,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던 경기장 입구 금속 탐지기 위의 커다란 안내문이 정부의 공식 입장을 분명히 해 주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허용되지 않는 아이템 중에는 폭발물, 칼, 주류, 그리고 정치적 종교적 아이템들이 있었다. 대전에서 온 이우혁(21)씨의 말이다. "한국과 미국인 친구다. 16강이 두팀 다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러니 경기장 안에서는 그런 차분한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스탠드는 붉은 티셔츠의 바다였다 - 한국 응원단 "붉은 악마"의 비공식적 유니폼이었다. 한국 국기는 난간에 걸려 있었고, 관중석의 한 섹션을 다 덮었고, 그리고 걸음마 하는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같이 국기를 흔들어댔다. 흰 셔츠를 입은 적은 수의 미국 팬들은 붉은 풍경 속의 작은 점들 같았다. 한 팬은 이렇게 썼다. "In a Sea of Red, United We Stand." 경기장 밖에서는 반미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양쪽의 팬들이 섞여서 물건을 사고 사진을 찍고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한 한국 락밴드가 연주했고, 바구니짜는 사람들과 도기공, 서예가들이 고대 한국 예술 시범을 보였다. 그 동안, 미국인들은 버드와이저 텐트 주변에 모여들었다. 앵커리지에서 온 존 우드먼(31)씨는, 그 큰 키 위에 커다란 "엉클 샘" 모자를 쓰고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은 나를 잡고 사진을 찍자고 하고 행운을 빈다"고 그는 말했다. 약 일만명의 군과 경찰관 - 거의 관중 6명당 한명꼴 - 들이 군견들과 함께 경계업무를 수행했다. 방패를 든 시위진압 경찰이 입구마다 몇 줄로 늘어서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도 보안상의 문제로 경기장에 나오지 않았다 (후략) |
뉴욕타임즈에 실린, 경기 당일 서울에서 대구로 가며 하루를 스케치한 기사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걸 소개하며, 꽤 잘 쓴 글이니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By GEORGE VECSEY 서울, 한국, 6월 10일 - 낡은 서울역은 오전 6시부터 시끌벅적하다. 붉은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남쪽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조용히 줄을 선다. 구호도, 깃발도, 응원도 없다. 교회 피크닉에라도 가는 듯한 분위기다. 포장된 한국스타일 스시 (김밥 - 주)가 잔뜩 쌓여 있지만 먹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이다. 던킨 도너츠는 정확히 6시 30분에 열렸다. 나는 거기서 플레인 도넛 하나, 쵸콜렛 도너츠 하나, 그리고 향 좋은 블랙 커피를 마신다. 코리아 타임즈의 1면은 반미 분위기에 대한 기사이다. 도대체 이 아폴로 오노가 누구인지? 대구로 가는 열차는 7시 정각에 출발한다. 철도의 가치를 아는 곳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한강을 지난다. 미시시피강처럼 넓지만 훨씬 조용히 흐른다. 고층 아파트. 주차된 차들. 큰 도시. 어디에나 있는 그물 덮인 골프 연습장. 계단식으로 된 논. 그들은 한치의 땅이라도 이용한다. 허수아비를 무시하고 논에서 군것질하고 있는 흰 왜가리들. 자그마한 논 안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농부들. 테니스 선수가 백핸드 치는 것처럼 같은 동작으로 계속 모를 심고 있는 나이든 여자. 솟아있는 푸른 산들. 교외에서도 보는 고층. 땅을 아끼기 위해 수직으로 올라가는 논밭. 동네마다 거대한 교회 십자가. 노란 첨탑. 녹색 첨탑. 쇠첨탑. 벽돌 첨탑. 나는 미니 디스크 플레이어를 꺼낸다. 고향에 대한 노래를 모아놓은 CD이다. Toots and the Maytals의 "Almost Heaven, West Jamaica". Elly Stone이 노래하는 "Marieke". McGarrgles의 "Jacques et Gilles". Neil Diamond의 노래 " Brooklyn Roads". 나는 붉은 색 "Korea Fighting" 옷을 입고 빅게임에 가는 그 모든 한국인들을 생각해본다. 한국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날인가. 골리앗을 꺾을 수 있는 기회. 카트를 민 사람이 복도를 지나간다. 소다, 물, 쥬스, 오렌지, 포장된 음식들, 삶은 계란. 내 옆에 앉은 한국인은 핸드폰으로 얘기를 하는데 거의 들리지도 않을만큼 조용한 목소리이다. 한국인들은 '포트 워싱턴 라인'을 타고 핸드폰으로 떠들어대는 미국인들만큼 자기 중심적이지 않다는 나의 지난 2주간의 관찰을 확인시켜준다. 시골의 새 제방들. 선로 보수차량들. 건설 노동자들. 고속 철도를 위한 시설로 보인다. 철도를 축소하는 대신 오히려 더 건설하는 나라를 상상해보라. 어느덧 높이 뜬 태양. 버스를 기다리며 파라솔을 든 여자들. 작은 도시, 페인트칠된 타일 지붕들, 오래된 스타일, 이제는 고층 건물의 그늘 아래로 밀리는 그 건물들. 더 높아지는 산. 비오면 넘치는 논밭, 침적토, 콘크리트 고가. 거친 환경은 강한 사람을 만든다. 대구가 가까워진다. 1988년 올림픽 축구를 보러 열차를 타고 이곳에 온 적이 있다. 경기 후 FIFA 관계자, 통역담당 미스터 안, 미스 조와 함께 동양 맥주를 마시러 갔었다. 그들은 프랭크 시나트라 사진과 음악이 있는 바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들은 구어체를 배우는 데에 아주 열심이었고 친절했다(게다가 미스 조는 아주 귀여웠다). 대구는 그때보다 두배로 커진 듯하다. 열차는 역으로 접어든다. 붉은옷 팬들의 물결이 쏟아져 나온다. 구호도, 깃발도, 적대적인 것도 아무것도 없다. 어깨에 노트북 가방을 멘 미국인을 위해 사람들은 자리를 비켜준다. 여기저기서의 공손한 절. 그렇다. 코리아 파이팅이다. (주 - 구호는 호전적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뜻) 역사에는 안내 데스크가 있다. 데스크의 남자는 영어로 길을 가르쳐준다. 코너로 데려가서 버스타는 곳을 가르쳐준다. 국수를 파는 곳들. 아직도 이른 시간. 관성의 법칙에 따라 그냥 지나쳐가지만 나중에 후회할 것을 나는 안다.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일리노이주 노스북에서 온 조세프 백과 그의 아들 마이클을 만난다. 그들은 무늬없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미스터 백의 부모님은 아직 한국에 살고 있다. 누구를 응원하냐고 물었다. 그들은 웃었다. 이기는 쪽이냐고 묻자 그들은 다시 웃었다. 미국에 있는 멕시코 팬들과 비슷하다. 뿌리는 깊숙히 흐른다. 버스는 체증을 뚫고 나가는데 한시간 정도 걸린다. 패션 산업 때문에 대구는 한국의 밀란이라 불린다. 그러나 '두오모'나 '라 스칼라'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버스는 꽤나 교외로 달린다. 아름다운 새 스타디움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버스의 기사는 나가는 곳을 놓쳤다. 고속도로에서 뒤로 후진한다. 차들은 우리를 피해 지나간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이윽고 버스는 스타디움 앞에 멈춰선다. 붉은색의 수천명 안파가 웃고 끄덕이고 비켜준다. 작은 규모의 연좌시위가 어디선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을 만난다면 미국에서는 그 누구도 아폴로 오노를 기억 못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미국대표팀 아레나 감독은 오노의 종목이 스노우보드라고 생각한다.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안쪽에 들어서자 밝은 옷을 입은 여종업원들이 인사한다. 유일하게 나쁜 지적 하나. 국수와 생선의 나라에서, 프레스 센터의 음식만은 마요네즈와 흰빵으로 만들어진 끔찍한 서양식 쓰레기 음식이다. 나는 스낵을 한 봉지 사고는, 롱맨(주 - 동료 뉴욕타임즈 기자 이름임)이 반만 먹기를 희망해본다. 게임까지 세시간이 남았다. 한국팀이 힘겹게 1-1 동점을 만들고 나자 기자들은 기사를 송고하고는 도심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역으로 돌아온 붉은옷의 팬들은 지쳤지만 만족스러워 보였다. 위대한 국수의 신은 이제 내 편이다 - 커다란 국수 한접시가 겨우 $1.60이었다. 두명의 자원봉사자가 나를 플랫폼으로 안내해 준다. 한국 게임에 찬사를 보내자 한 명이 영어로 농담을 한다. "임산부는 보지 말아야 할 게임이었다." 한국에서는 가이드들조차 기사에
써먹을 좋은 말을 해준다. 훌륭한 나라이다. |
딴지 월드컵 취재반
최내현(asever@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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