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엔 눈팅만 하다가 오늘 3개씩이나 올리네요
당분간은 다시 눈팅모드로 돌아갈까 합니다
이 글에다가 덧붙여서 더 쓰고 싶지만 지식도 부족하고 시간도 많이 걸릴거 같아 원문을 그냥 붙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제대로 이해할려면 몇번을 정독해도 부족하지 싶습니다
이글 제대로 이해할려면 삼성에 관한 책 최소한 몇권은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언론에 대해서는 잘 모를테니까요
글쓴사람 내공이 프로수준이라 보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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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어느 분이 조중동 관계에 대해 물으셨는 데
댓글로 달다가 너무 길어서 여기에 본문으로 옮깁니다.
우리가 흔히 대한민국 기득권 세력이라고 말합니다.
재벌-한나라당-조중동-검찰 을 연결해서 말하고, 여기에 목사들하고 예비역 대령연합회 같은 애들이 끼어들기도 합니다. 좀 광범위합니다. 이거 정확히 실체가 뭘까요.
저는 이거 핵심은 이병철하고 홍진기라고 생각합니다.
홍진기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아버지입니다. 일제시대에 판사 였으면, 친일파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홍진기는 해방후 이승만에게 달라붙어 살아남았는 데,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홍진기는 법무부 장관으로 있으며 이승만에게 계엄령을 건의했고,
4.19가 일어나 경찰이 시민에게 발포했을 때, 경찰을 지시하는 내무부 장관이었습니다.
4.19로 세상이 뒤집어진 후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는 데, 손을 써서 빼낸 게 삼성 이병철이었습니다.
이병철이 홍진기를 빼낸 후, 돈을 줘서 만든 게 중앙일보입니다.
현재 중앙일보는 홍씨네 거로 알려져 있지만, 기실 아직도 삼성 이씨네가 주인입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이건희의 지분을 홍씨 명의로 위장해놓고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라고 폭로했었죠.
재밌는 게, 홍진기가 장관으로 있으면서 폐간 시켜 버린 게 경향신문입니다.
경향신문은 나중에 부활했고, 홍진기는 중앙일보를 차렸으니, 두 신문은 악연이 깊습니다.
홍진기는 단순히 이병철의 얼굴마담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의 한 축이었는 데,
자신의 자식들을 여기저기 시집보내 네트워크를 구성합니다.
홍진기는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그 핵심인 중앙정보부장 신직수 와 사돈을 맺습니다.
그리고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집권하자 안기부장 노신영 네에 다른 딸을 시집보냅니다.
이렇게해서 일제시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현재도 로열 패밀리로 살아가는 홍씨일가가 완성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홍진기의 맏딸 홍라희는 삼성 이건희의 아내입니다.
홍진기의 아들 홍석현은 중앙일보 회장입니다. 박정희 중앙정보부장 신직수 집에 장가갔습니다.
홍진기의 딸 홍라영은 5공 안기부장 노신영집에 시집갔습니다.
홍진기의 아들 홍석조는 검찰에서 고검장까지 지냅니다.
홍진기가 사돈 맺은 사람들을 좀 더 살펴보면,
신직수는 박정희가 5사단장 할 때 법무참모 였습니다. 대위였습니다. 그 연줄로,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후 이 젊은 애를 바로
검찰총장으로 임명했습니다. 36살. 대한민국 최고로 어린 검찰총장이고 앞으로도 기록이 깨지지 못할 겁니다. 신직수가 들어오자
검찰 간부들은 대거 사표내고 나갔고, 신직수가 검찰을 장악합니다. 신직수는 8년간 검찰총장을 지내고, 그 다음 법무부 장관
3년, 그리고 나서 중앙정보부장을 지냅니다. 박정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데, 1,2차 인혁당 사건을 만들어낸 것도
신직수입니다. 74년 유신으로 정권에 대해 여론이 안좋자, 가짜 간첩단 사건을 만들어내서 싹 쓸어버린 거죠. 민간인을 잡아다
간첩으로 몰아 죽여서 분위기를 평정하는...
노신영은 전두환에게 총애를 받아 안기부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입니다.
노신영은 안기부장으로 있으면서, 검찰에서 똑똑한 애를 뽑아 안기부로 보내라고 시킵니다. 그때 뽑혀온 게 정형근이었고, 노신영
밑에서 트레이닝을 받습니다. 정형근은 공안검사로 생활하다가 나중에 한나라당에 공천받아 국회의원으로 진출합니다. 한나라당에 검찰
출신 (특히 공안검사 출신들)이 우글거리는 데, 그 축이 됩니다.
곁다리 얘기지만, 한나라당에는 검찰 출신 의원들이 우글거리는 데, 타당에는 거의 없습니다. 한나라당에 16명, 17명씩 있는
데, 민주당에는 0명이거나 1명 그렇습니다. 이전에는 한나라당이 장기집권했으니 그리 갔다지만, 지난 10년 민주당이 정권잡아도
검찰은 한나라당으로 공천받으러 갔습니다. 검찰인맥이 완전히 한나라당과 얽혀 돌아가는 걸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최근에 (2008)
이건희-홍라희 부부는 딸(이서현)을 동아일보 김회장네에 시집보냅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사돈이 되는 순간입니다.
한편 홍진기 아들 중에 똑똑하다는 홍석조는 검사가 되었는 데,
검찰내부에 삼성 돈을 뿌리고 다니는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검찰이 삼성에 장악당했다느니, 삼성장학생이라느니 라는 말이 나오는 게 홍석조가 내부에서부터 포섭을 해온 결과이죠. 홍석조는 고검장까지 올라갔다가 삼성 도청테이프 사건이 터져서 물러났습니다.
그 도청테이프에서, 중앙일보 홍회장이 삼성 이학수 부회장을 만나 이건희 회장에게 받은 지시를 논의합니다. 누구에게 돈을 먹일까.
거기서 이번 명절에 홍석조더러 검찰안에 똑똑한 쥬니어들에게 돈 좀 주라고 하죠 라고 말하는 게 나오거든요. 이게 9시 뉴스에
방송타면서 홍석조는 물러나게 됩니다.
홍석조는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했습니다만... 네~ 결백할 겁니다. 그래서 삼성장학생 임채진이 검찰총장이 되었죠. 현 검찰총장
임채진이 삼성장학생인 것은 소문으로 떠돌다가 김용철변호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폭로하면서 알려졌고, 인사청문회에서 노희찬 의원이
삼성 베네스토 골프장에서 삼성 사장들하고 골프치면서 로비받은 적 있느냐는 질문에 기억이 안납니다 라고 임채진이 답변하는 게 TV
생중계 되면서.. 확정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삼성 그룹 법무실에서는 밖에서 검찰에 돈을 먹이고, 안에서는 홍석조가 먹이고.. 안밖에서 먹이면서 검찰을 장악한 것이죠. 검찰이
재벌들 수사할 때 봐주는 경향이 예전에도 있기는 했지만, 현재는 완전히 삼성 손아귀에 있습니다. 덕분에 검찰에 걸리면 타
재벌들이 삼성에 부탁을 하는 상황입니다.
대상그룹이 2008년 검찰수사에 걸렸을 때, 삼성에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잘 처리가 안된 모양입니다. 대상그룹 임세령이 삼성 이재용과 이혼하는 사유중 하나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했던 내용중에 신세계 그룹(이건희 누나)쪽 에서 검찰에 잡혀들어갔는 데 이건희가 조카를 봐주기 위해 손을 써줬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건희가 친가쪽에는 후한 데, 며느리 쪽에는 냉정했던 모양.
이렇게 해서 조중동-삼성-한나라당-검찰 이 연결됩니다.
결국 우리나라 기득권층 이라는 거대 카르텔은 이병철-홍진기 이 두 집안이 대한민국 전체에 영향력을 확장해 장악해가는 걸 포장해놓은 것입니다.
명박이나 박근혜는..얼굴마담에 지나지 않습니다.
몇년 지나면 갈아치울 얼굴마담이고, 실체는 이병철-홍진기 이 두 집안이 대한민국을 통채로 집어삼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찰, 언론, 한나라당에 계속 돈을 먹여 타락시키고 자기 말을 듣도록 길들인 거죠.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삼성 결탁설이 나왔을 때 좀 어이없고 웃겼습니다. 노무현과 삼성은 극과 극에 서있는 대칭점입니다.
시사IN에서 그 기사를 내보냈던 데, 제가 시사IN 참 좋아하지만 그건 정말 뻘구라 였습니다. 노무현을 친재벌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보고 삼성에 갖다 붙인 거였죠. 진보언론이 노무현 까던 수법이었는 데... 좀 웃겼습니다.
노무현이 홍석현을 기용해서 주미대사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적과의 동침이죠. 적인 데 너무 크니까 달래기 위해 뭐라도 하나 던져줘야하는..그만큼 삼성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지분이
큽니다. 홍석현이 주미대사 발령받은 날부터 중앙일보는 좀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삼성 도청테이프 터지면서 주미대사 그만두게 되자
중앙일보가 다시 노무현 까기 돌입하더군요. 그 이후 어찌해왔는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노무현더러 친재벌, 삼성과 결탁..
이런 건 정말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노무현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노무현이 재벌 좀 두들겨 팼으면 좋겠는 데 덜 패는 것 같다고, 노무현을 재벌에 갖다붙여서 욕했던 , 진보진영의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첫댓글 이건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방씨일가의 문어발 확장도 빼놓을 수 없구요.
글처럼 이렇게 일목요연하고 맥락을 갖추고 흘러온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대기업의 총수는 본래는 현대였고, 5대 기업 모두 권력에 의해서 한두번씩 박살나거나 그럴 뻔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깨지고 박살나는 틈에 삼성이 계속 살아남으면서 독점적 지위가 보장된 것이죠. 정주영 회장이 생전해 있었을 때 자동차산업에서 현대가 워낙 독보적이라 이를 박탈하려고 삼성이 정부에 막대한 로비를 하고, 결국 SM을 열지만 자본재를 외국에 매각하려는 김대중 정부때의 방침으로 해외에 팔려나갑니다. 지금도 자동차산업에서는 현대가 독보적인 지위이죠.
지금은 정경유착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사실 삼성이 조금이나마 다른 그룹에 비해 자유로울 수 있던 게 이병철 회장이 시작을 식품유통으로 했기 때문일 겁니다. 건설업은 도급이라는 수직식 구조와 대규모의 자금을 만진다는 이유로 권력과 재계가 불가분의 관계에 놓였지만(또 당시에는 허하벌판이었으니까 만들어야 할 것도 많았고), 식품유통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대우는 정격유착으로 커서 권력이 버렸기 때문에 망한 케이스이고, LG는 미리 발 빼고 해외로 나가 돌아다니면서 국내권력에서 조금 자유로운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 3자 합당으로 민자당이 만들어지면서 한국의 기득권층은 한번 비주류를 흡수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해서 과거 친일세력이었거나 군부세력이었던 자들로만 구성된 것은 아닙니다. 90년대 이후로는 여당인 국민회의나 열우당이 맘에 안찮다고 한나라당에 당원으로 가거나 거기서 정치입문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해서 지금은 정확히 모라고 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김영삼이 3당 합당에 참여한 것은 진짜 쓰레기 같은 행동인거 같습니다..그때문에 모든게 엉클어져버린게 아닌가 싶네요..그런데 노태우 당선시 대선에 김대중은 왜 출마했나요?
제가 알기론 원래 김대중이 나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김영삼이 자기가 대통령하고 싶어서 3당합당을 합니다. 그래서 표가 나뉘어서 노태우가 된거죠...그때 김대중이나 솔직히 3당하기않고 나온 김영삼이 됬다면 좀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습니다.
음? 제가 알기론 김대중,김영삼,노태우가 다 따로 출마해서 표가 갈려 어부지리로 노태우가 당선된 후 노태우가 김영삼,김종필과 합쳐서 3당합당 한걸로 알고 있는데..아닌가요?
우끼고야 님이 착각 하시는 겁니다...님이 말씀하시는건 87년 야당후보 단일화를 말씀하시는거같구요...3당합당은 그 이후에 노태우 정권하에서 이루어진겁니다...
아넵 그러네요...야당단일화였네요..제가 착각을 했네요
정확하게는 원래 87대선이전에 박정희때 김대중과 김영삼이 대선후보를 두고서 한판 붙어서 예상을 뒤업고 비주류인 김대중이 이겼는데,이때 김영삼이 경선 결과에 수긍을 했습니다. 그래서 87대선때는 이번에는 김영삼 차례다라는 여론이 높았는데, 김대중이가 그냥 밀고나갔죠. 여권의 공작이라는 애기도 있는데, 암튼 김대중 진영에서 4자 필승론을 믿고 나왔다는 애기도 있죠.
그리고 88총선때 예상을 뒤업고 김대중의 평민당이 제1야당이 되어버리고, 김영삼이 제2야당으로 밀려버린후에, 여소야대 정국속에서 노태우가 그 위기를 타파하기위하여 처음에 김대중에게 합당 제의를 하지만, 거절당하고 김종필, 김영삼과 합당을 했죠. 원래는 당시 민정당과 공화당이 서로 비슷한 계보라서 합당은 쉬웠지만, 아무도 김영삼까지 합당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영삼에게 충격을 받은 일부 경남 부산 세력과 김대중이 합치게 되죠.
노무현이나 이기택도 그에 반발해서 김대중과 합친거죠, 근데 문제는 3당합당이전까지는 지역 감정이 대구,경북과 광주, 전남이었고 경남 부산은 그렇게 심하지않았는데,3당합당이후 김대중측에서는 개혁적인 부산 경남 세력이 자기 편으로 올줄알았는데, 그냥 부산 경남이 톨채로 민자당으로 붙어버리는 바람에 호남고립화가 되어버리면서 아예 상대가 안되어버린거죠. 노무현이 김대중에게 붙었던 이유도 김영삼의 변절이었고, 3당합당으로 지역 구조가 더 심화되어버리는 바람에 3당야합이라는 소리가 나오게 된거죠.
3김 정치가 이 지역주의를 고착화 시켜 버린거죠..뭐 그들의 그전의 정치적 행보 역시 존중해야 하겠지만, 결국 이렇게까지 되버린 가장 큰 원인은 3김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무서울 뻔한건 당시 유엔사무총장자리가 거의 우리나라 몫이라는게 기정사실화 되는때 당시 주미대사 홍석현은 공공연히 유엔 사무총장 출마와 로비를 시도했지만 다행히도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귀환시키고 반기문카드를 내놓았었죠....유엔사무총장까지 됐다면 정말 상상만해도....
하지만 이 때문에 중앙일보와는 거의 악연 중에 악연이 되었죠..그리고 반기문카드는 정말 최고라고 봅니다. 울나라에서 반기문를 대신할 사무총장 인재는 없다고 보네요.
그래서 노통이 대단한 겁니다...개인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닌 국가와민족 더 나아가 세계평화까지 고려하신거죠...이건희의 처남이 유엔사무총장이다 이거 생각만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ㅠ.ㅠ...
반드시 기억속에 넣어둘 필요가 있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3자 합당을 두고 쓰레기 취급하는 일이야 민주세력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민주세력도 군부세력과 결탁한 바가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역정치를 타파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경상도권의 표에 대응하려고 김종필 총재와 연합을 한 일이 있었죠. 이 일로 이회창 후보가 낙선하고 최초의 정권교체가 일어납니다. 한국 정치사를 친일, 군부, 민주화세력으로 나눠놓고 그들의 다툼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이래서 그렇습니다. 이 시기의 정치가 거물 정치인들에 의해 판을 나눠먹던, 아직 정당정치가 도입되기 이전의 일들이라 실상 한국 정치사를 쓸 때 분기가 되는 건
국민경선이 도입된 2002년 16대 대통령때부터입니다.
87년 대선 당시에 왜 김영삼, 김대중 두 후보의 단일화가 없었나요? 두 정치 거물들의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대한 더러운 욕심이 아니었는지요..3당 합당 역시 그 욕심의 결과고, 김대중의 김종필에 대한 내각제개헌 약속을 근거로 한 단일화 역시 그 욕심의 결과..두 전 대통령을 보고 있으면 욕심이 인간을 얼마나 추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거 같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워낙 오랫동안 반군부세력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2명이 정치사에 이름을 내놓기 시작한 게 거의 개국 초기때의 일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낙선한 것만 5번인가?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좌에 앉으려고 했겠지요. 그리고 저는 정치계로 복귀한 것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일하게 남은 한국 역사의 거물이었고, 그 때 정권교체가 없었으면 현재의 정당정치는 생겨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는 솔직히 김대중이가 양보를 하는 것이 나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4자필승론때문이라는 애기도 있고, 여권 공작에 둘다 넘어갔다는 애기도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