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바른 길을 따라 수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주는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아마도 수많은
전생의 인연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모든 것을 걸고 수행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절에 다닐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도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철딱서니없이
그저 그렇게 지인들과 몰려다니기만 했다.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히 약했던 나는 갈 곳이 절 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인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던 어느날 지금은 입적하신 정일큰스님께서 계시던 보광사를 찾게 됐다.
처음 만난 정일 큰스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장경과 원각경, 법화경 등의 간경공부를 시켰다.
처음 지장경을 받았을 때에는 조금 읽다보니 괜히 무서워짐을 느꼈다. 그때는 경전을 버려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도반들이 “이 생에서 공부하지 못하고 죽으면 언제 공부하겠냐”며 나를 말렸고,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정일스님의 법회를 찾았다.
정일큰스님은 줄곧 내가 앉아 있는 곳을 쳐다보며 법문을 하셨다.
마치 나와 일대일의 대화를 나누듯. 그 때 스님이 해주셨던 얘기가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영가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항상 맑은 정신으로 경전을 읽어야 합니다.
내가 읽는 경전은 곧 영가에게 법문을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일심으로 경전을 보면 영가들을 천도할 수 있게 됩니다.”
스님의 말씀이 뇌리에서 잊혀지지가 않았다. 내가 지장경을 봐야 하는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3년을 하루 같이 독경에만 매달렸다.
그 당시 나는 몸이 약해 결혼을 하지못했고, 형제들의 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공부하던 3년간 낮에는 조카들의 부모대신 내가 그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틈틈이 경전을 봤다.
그 무렵 지인들을 통해 광명진언 수행을 알게 됐고, 지장경 공부와 함께 광명진언 수행도 계속했다.
처음에 정일 스님은 우리에게 지장경 300독을 숙제로 주었다. 그러나 스님의 숙제는 결코 쉽지 않았다.
매일 일과시간을 쪼개 경전을 봐야 하니 우리 중 누구도 편안하게 300독을 마친 사람이 없었다. 간신히 300독을 마칠 무렵
조금씩 자신이 붙기 시작했다. 500독, 700독…. 도무지 조금의 짬도 나지 않는 생활이 계속 됐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3년간 1000독. 그런데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어려서부터 병을 달고 살아 팔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던
내가 간경 수행을 할수록 팔다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식사량도 극히 적었던 내가 밥맛을 알기 시작했다.
가냘프기만 했던 내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그런데 수행을 계속할수록 무엇인가가 머리끝으로 몰리는 것을 느꼈다.
상기가 된 것이다. 결국 눈의 혈관이 터져버렸다.
그때까지도 난 내 상태를 알지 못했다. 그러다 급기야는 눈이 가렵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거울을 본 난 내가
며칠동안 토끼눈을 하고 살았음을 알게 됐다. 스님은 내 눈을 보고 다행이라고 했다.
만약 머릿속에서 혈관이 터졌으면 목숨이 위험할 뻔 했다고까지 했다. 그리고 이럴 때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며
수행을 멈추고 며칠 푹 쉬라고 하셨다.
상기병 이겨내며 지장경 1000독 회향
인생 스승 입적에 방황…수행으로 극복
수행이란 목표를 세우고 한번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밀어 붙어야 한다고 들었다. 도중에 어떤 이유에서든 그만두게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마냥 쉬라니….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도 내 목표를 이루고 싶었다. 지금껏 살아온 삶 속에 이처럼 내 스스로의 목표에 매진해온 기억이 얼마나 있던가.
때론 지나친 집착인가 싶어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내 스스로 수없이 되뇌이기도 했다. 하지만, 차돌과 같이 단단한
신심과 모든 것을 녹여버려야 얻을 수 있는 뜨거운 구도열을 가진 수행자들을 내 목전에서 봐오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지장경 독송을 녹음한 테이프를 찾기 시작했다. 내 눈으로 읽을 수는 없으니 들어서라도 한 독, 한 독 하자는
심산이었다. 이 방법이 맞는 수행법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휴대용 카세트에 내가 직접 녹음한 지장경 독송 테이프를 넣고 쉬지 않고 들었다. 앉아서든, 누워서든 끊임없이
귀로 들으며 지장경 독송을 따라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마침내 3년간 1000독의 목표를 이루게 됐다.
그 기쁨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길로 정일 스님을 찾았다.
나를 한 눈에 알아본 스님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동안의
경과를 말하고 나니 스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스님은 나에게 “근기가 있어 공부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라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이 뭣꼬’라는 화두를 내리며 미리 얘기를 해둘 테니 지리산에 있는 스님들의
선방에 들어가 정진하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재가자가 스님들과 함께 선방에 들어가도 되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이런 기회가 다시 없으리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무렵 나는 늦게나마 일반 대학에 진학해 못다한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정중히 스님의 뜻을 물리고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스님께선 그런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나신 눈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스님을 따르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바쁜 학업 중에도 나는 간경 수행과 함께 광명진언 수행을 병행하며
수행을 착실하게 이어나갔다.
수행을 통해 차츰 바뀌어 가는 내 모습에 스님도 화를 풀고 다시금 나의 공부를 이끌어주시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스님과의 그런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2004년 큰스님께서 입적하신 것이다.
스승을 잃은 뒤로 난 오랜 기간 방황해야만 했다.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채 지냈다. 다만, 생전에 스님께서 당부한 그대로 매일 지장경과 광명진언 수행 등을 이어갈 뿐이었다.
밤 12시가 넘도록 간경에 매달리다 염주를 손에 쥔 채로 잠이 든 날도 수없이 많았다.
언젠가 내 공부를 이끌어줄 인연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수행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이끌어주신
큰스님에 대한 보답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수행자의 삶을 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경전을 펼쳐든다.
내가 태어난 서기 1941년, 어머님은 백여 리 길을 멀다 않고 걸어서 부처님께 치성을 올리려 다니셨다.
새벽에 몸을 깨끗이 씻으시고 하얀 새 옷을 입고 공양미를 머리에 이고 100일 치성을 드렸다. 기도 가피로 태어난 이 작은 몸은 속세에 태어나 춥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벗어나 오욕락을 즐기던 청년시절을 보냈고, 중년에는 거듭되는 사업 실패로 자살까지도 생각했을 정도의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부인의 권유로 사찰을 찾게 되었다.
그 곳이 관음성지이면서 나한도량인 강화 보문사이다. 1989년 10월 그믐 석굴을 들여다 보니 정신없이 절들을 하는가 하면, 염불소리가 꼭 안 맞는 노래를 합창하는 것같이 들렸다. 부처님께 인사 드릴려고 석굴 법당에 들어서니 머리가 아파와서 못 견디어 합장 반배만 하고 나왔다.
잠이 모자라 기도 마치고 주무시는 스님 방에서 눈 좀 붙이다 코를 몹시 골았던지 기도하라고 야단치시는 스님 때문에 쫓겨나오던 일과 겨우 법당에 들어가 앉아 철야기도에 동참하다 배가 고파서 밥 좀 달라고 졸라댔던 일 등이 떠오른다.
그렇게 처음 절에 다녀와서 중고자동차 매매상사에 출근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차량구입 상담과 중고차량 팔아달라는 전화가 많이 오며 사업이 잘 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기도처만 다녀오면 생각 이상으로 일이 잘 풀렸다.
처음에는 절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절을 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던 세배절로 얼마를 했는지 옆에 있던 거사님이 합장하고 무릎 굽히고 오체투지하는 절을 알려주셨다. 염주돌리며 절하는 방법은 우리집 보살이 일러주었고, 그대로 따라하며 절을 늘려나가니 점점 신심이 나기 시작하였다. 50배, 108배, 1000배, 2000배를 잠 안 자고 철야를 절로 시작하여 절로 끝마치곤 하였다.
하루는 어떤 거사님이 내가 하는 사업이 무어냐고 묻기에 자동차 관련 사업이라고 하니 관음기도도 좋지만 집에 가면 반야심경을 매일 쓰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 오다가 문방구에 들러 갱지를 사다가 한글로 반야심경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이닦고 세수하고 천수경 1편을 읽고 반야심경을 1번 쓰는 것을 매일 반복해서 했다.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반야심경을 한글과 한문으로 번갈아 가며 쓰고 반야심경 해석서도 자주 읽어가며 기도하다보니 반야심경은 자연히 외우게 되었고 절에서 행사 때마다 회향하고 소지할 때 함께 소했다.
요즘엔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한두 번 웃는 기도, 화 안 내는 기도, 방생기도, 금녀기도까지하며 불법을 수행하고 있다.
조계사 법회는 물론이고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강화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 월정사를 거쳐 3대 적멸보궁, 건봉사, 봉정암, 오세암, 백담사 등 유명사찰을 다니면서 몸에 서리는 인연에 따라 항상 기도하는 마음을 이어가고 있다.
1989년 늦은 가을, 백담사를 거쳐 오세암에 도반들과 처음 기도를 갔더니 법당건립 불사를 하고 있었다. 3년에 갚을 거라고 생각하고 기둥불사를 하였더니 뜻밖에 그 이듬해에 불사비를 다 정리할 수가 있었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홍련암 관음기도는 자주 가는 편이었다. 토요일 저녁 밤 9시경에 출발하여 홍련암에 도착하면 새벽 2시경 준비하고, 새벽예불 보고 아침공양 마치고 잠시 눈붙이고 사시예불 후 점심공양하고, 출발하여 돌아오면 월요일 출근에 지장이 없어 자주 홍련암 찾았었다.
하루는 새벽예불 중 천수를 끝내고 관음정근을 마치고 스님이 축원하시는 동안 가부좌하고 합장한 자세로 눈을 잠깐 감은 것 같은데 누군가가 녹색의 파란 책 2권을 주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아침공양 시간에 어떤 보살이 서울 보광사에 계시는 정일 스님을 친견한다기에 함께 상경하여 스님을 친견하였는데 그 분이 지장경과 테이프를 주시면서 이제부터는 지장기도를 하라는 것이었다.
4·19, 5·16을 국무원 사무국(현 총무처)에서 보내면서 야간대학 중퇴로 항상 기회만 있으면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기도처로 기도만 다니다보니, 천수경 반야심경을 외우고, 절하고 기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불교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지라 문을 두드린 곳이 조계사 불교대학이다. 불교학, 불교미술, 불교복지학과 각종 경전 등을 공부하였고, 밀교 강좌나 법화경 특강은 부처님 법을 수행하는 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1994년 11월 18일 새벽에는 이를 악물고 치성한 음욕을 다스리는 기도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기도에 돌입하였다.
기도는 자기와의 싸움 즉 자기 마음을 어떻게 이겨 억제하고 다스리느냐에 기도성취가 있는 법이다.
처음 작심은 누구나 잘 하지만 끝맺고 회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가는 기도를 해본
불자만이 아는 일이다. 건강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이 쉽지
부인도 남자로 보고 친구같이 보고 돌과 같이 보여져야 금녀기도가 가능하리라 본다.
일주일에 3번 이상 부인 곁에 가던 사람이 처음 한 달 참기까지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멍해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6개월이 되니 조금 안정이 되고 1년이 넘으니 기도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매일 지장경을 독송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배우고 실천 수행 정진하여 3년 기도를 마치고 보니 성취감과 함께 마음이 안정되면서
기도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기는 것이었다.
2년만 더하자 작심하고 잘 참아준 우리집 보살에게 이야기하니 승락을 하여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기도 중 알 수 없는 감동을 받아 많은 감사의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리고 얼마 후 영등포 중고자동차 매매단지내
매매상사를 인수하게 되면서 사업도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조계사 불교대학 졸업 당시에는 몇몇 학우들에게 복지문제를 상의하기도 하였으나 나에게 부족한 것이 많아
나름대로 계획한 일이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조계종 종단사태를 보고 스님들의 노후대책이 하루속히
수립되어야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대원을 세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를 한다.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다시 태어났다. 부처님 법을 바르게 믿고 수행정진하였기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더욱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현재 맡고 있는 조계사 거사회 활동과 조계종 포교사단
염불봉사팀장 소임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서 하고 있는 불교공부도 성실히 해나갈
것이다. 이 모두가 감사·회향의 밑거름이 되리라.
아울러 죽는 날까지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힘 닿는 데까지 좋은 일을 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수행정진해 갈 것을 부처님전에
거듭거듭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중생은 번뇌망상을 끊임없이 기르는 ‘멍텅구리’”라고 말하는 정일스님은 그렇기 때문에 경전을 수백수천번 읽어 진리를 체득해 번뇌를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일러주신다.
◇수행자라면 하나의 화두를 가지고 적어도 3년동안은 쉼없이 정진해야 득력할수 있다고 강조하는 정일 스님.
◇17일 보광사 대웅전에서 열린 건설교통부 불자회 수계법회에서 법문하는 정일스님.
9살 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슬픈 눈망울을 본 이후 다시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는 스님. 헌 책방에서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구해 읽으며 염불에 열중했고, 그래서 불문에 귀의(출가)할 것을 결정할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던 스님. 출가 후 금오, 춘성, 전강, 동산 스님 등 선지식들을 찾아 수행자의 도리를 배우고, 50년 수행생활 동안 부처님 말씀에 한 치 어긋남도 없이 살려고 노력해온 스님이 정일(正日)스님이다.
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는 서울 우이동 보광사로 스님을 뵈러가는 날, 울긋불긋 낙엽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며 ‘무상(無常)’의 도리를 몸으로 전하고 있었다. 시자 현중스님의 안내로 보광사 1층 스님의 처소에 들어 삼배의 예를 올리자, “상(相)내는 일이라 극구 사양했는데 … 차나 한잔 합시다”라며 스님은 자애롭게 맞아 주신다.
스님은 지난 79년부터 보광사에 주석하고 있다. 서울 조계사에서 출가해 범어사, 망월사, 동화사, 용화사, 통도사, 백련사 등지에서 참선수행하던 스님이 북한산에 토굴을 짓고 수행하고 있는 제자를 격려하기 위해 상경한 것이 계기가 돼 서울에 머물게 됐다. 이 때 한 재가불자가 스님에게 현 보광사 터를 기증했는데, 그 터에 보광사가 건립되어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의 오롯한 수행도량이 되어 오고 있다.
“부처님의 법은 중생들의 생각을 가지고는 털끝만치도 건드릴 수 없는 자리기 때문에 실천하지 않고서는 그 법을 깨달을 수 없어요. 그래서 경전을 읽고 육바라밀을 실천해 기초를 다져 화두를 드는 것도 부처님 법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지요. 신도들에게 경전을 수백번 읽도록 하는 것은, 화두를 들어 본래 마음을 볼 수 있는 단계까지 끌어 올리는 데 그 목적이 있지요.”
보광사의 ‘신도교육 프로그램’은 엄격하고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보광사를 처음 찾은 불자는 우선 광명진언을 하루 1000번씩 21일간 외우고 천도재를 지낸다. 그리고 <지장경> 300독, <금강경> 100독, <관세음보문품경> 50독을 마치면 천도재를 또 올린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불제자로서 몸과 마음의 번뇌를 한 꺼풀 벗었다는 뜻에서 지내는 천도재는 <선가귀감> 50독, <원각경> 300독, <법화경> 30독을 할 때마다 계속돼, 다시 한번 <선가귀감>을 50독 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때 정일스님은 교육을 이수한 불자를 불러 공부를 자상하게 점검하는 한편 ‘이 뭣꼬’ 화두를 준다.
“우리의 머리 속에는 번뇌망상과 눈으로 익힌 알음알이만이 가득차 있기 때문에, 경전을 한두번 읽어서는 그 오묘한 진리를 체득할 수 없어요. 번뇌망상의 척도로 잰 것인지 모르고 그것이 진짜인줄 알고 우쭐해 하지만 본래 모습을 보기에는 어림없지요. 경전을 알음알이로 해석하고 불법을 세우는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무리 읽어도 알지 못합니다. 수백 수천 번 경전을 읽게 하는 것은 인과(因果)를 알고 그 속에서 번뇌망상을 보고 본래 자성을 깨달아서 실천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정일스님은 스님이나 불자에게 경전을 읽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 외에도 육바라밀을 함께 실천해 불법을 체득하는 경지에까지 올라서야 한다고 항상 가르친다. 스님에게 있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라는 육바라밀 즉, 육화정신은 불법을 배우는 불제자들의 실천적 생활 윤리이다.
스님은 제자들을 엄격하게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님은 상좌들에게 매일 관음정근 5만독을 시켰다. 스님은 상좌들의 눈과 말, 숨소리 등을 낱낱이 살피며,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기를 게을리 않았다. 그래서 스님의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한 상좌들은 어김없이 종아리를 걷어 올려야만 했다. ‘공부의 엄격함’을 논하면 정일스님이 원로 스님들 중 단연 으뜸이라고 주위 사람들이 평할 정도다.
그런데 정일스님 스스로가 워낙 엄격하게 수행하기 때문에 스님의 수행생활은 그대로가 제자들이나 신도들의 귀감이 된다. 스님은 망월사 천중선원에서의 천일기도를 통해 ‘목숨을 내놓은 정진’을 했다. 천일동안 기도정진하며, 기도를 시작하기에 앞서 몸과 마음의 나쁜 기운을 없애는 뜻으로 새벽마다 ‘냉욕’을 거르지 않았다.
당시 망월사에서는 춘성스님이 주지로 전강스님이 선원장으로 주석하고 있었다. 정일스님이 망월사를 찾은 것도 큰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해보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천일기도를 하겠다는 스님에게 춘성스님은 “왜 천일기도를 하려느냐, 여우가 되려고 하느냐”며 여운을 남겼다. 스님은 천일기도를 마치고 자신의 수행을 점검받기 위해 춘성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정일스님 앞에 큰 원을 그려놓고 “들어가도 30방, 나가도 30방”이라고 일갈했다. 정일스님이 당황해 가만히 서 있자 춘성스님은 30방을 때렸다. 정일스님은 춘성스님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때 춘성스님은 또 30방을 때리고 “수고하셨습니다”라고만 답했다.
“처음엔 춘성스님의 말과 행동에 담긴 뜻을 알지 못했지요. 다시 선방으로 돌아와서야 ‘말놀음에 빠지지 말라’는 가르침임이 느껴지더군요. 불법은 언어의 경계가 미치지 않는 자리에 있어요. 출가 전에 청계천 헌 책방에서 <선가귀감>을 구해 읽었는데, 천일기도를 마친후 다시 <선가귀감>을 읽었어요. 읽을수록 그 의미가 분명해지더군요. 그 과정에서 머리 속에서 우글거리는 번뇌가 뚝뚝 떨어져 나가고 명료해졌어요. 번뇌가 떨어져 나간만큼 몸과 마음의 도리가 바르고 착해져, 거기서 저절로 환희심이 생겨나요. 수행정진이란 한 두 번으로 결판이 나는 일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꾸준히 해야 합니다.”
정일스님은 수좌들 사이에서 ‘중단 없는 수행’으로 유명하다. 망월사 천중선원을 비롯해 스님이 수행처로 삼았던 용화사 법보선원, 통도사 영축총림 선원, 범어사 금어선원 등에서 각각 3년을 기본으로 수행했고, 그 기간동안 입선 때는 참선수행을, 방선 때는 염불수행을 했을 정도로 수행자의 본분을 잃지 않았다. 수행자라면 하나의 화두를 가지고 적어도 석삼년 동안은 한번의 쉼 없이 정진해야 하고, 그래야만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고, 점검 과정에서 스승의 질타를 받더라도 다시 선방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정일스님은 간화선만을 고집하지 않고 묵조선이나 위빠사나 등 대·소승의 모든 수행법을 포용한다. 스님은 “요새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한다. 각각의 강과 하천도 모두 대해로 모인다. 흘러가는 것은 과정일 뿐이다. 단지 열심히 하면 된다.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 본심을 본다고 했을 때 몸과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는 위빠사나도 좋은 수행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느 하나에 집착해 머문다면 문제가 된다. 또한 모든 과정을 지나 구경의 단계를 넘어야 할 때는 화두참구, 간화선을 해야 한다. 간화선은 망상의 구름을 걷고 본심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마지막 과정을 지나지 않으면 방편에 떨어진 외도일 뿐이며, 번뇌망상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스님에 따르면 사람은 가죽 주머니에 달라붙은 귀신이다. 즉 번뇌망상이 사는 집과 같다. 중생들이 편을 가르고 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번뇌망상을 뒤집어쓰고 나름대로 나타난 그 경계 즉, 자기가 본 것이 제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귀신의 버릇이라, 그 껍데기를 벗지 못한 생태에서는 내내 귀신일 뿐이다. 그래서 스님은 중생을‘멍텅구리’라고 부른다.
“전도몽상된 이 모든 생각을 부처님 가르침으로 개혁해야 해요. 개혁하는 방법이 바로 인과법과 육바라밀이죠. 그 과정에서 환희심을 알게 되면 수행력은 눈덩이처럼 커지는 거지요.”
스님의 이러한 생각은 5년 전 부산에 보광사를 지으며 개원한 유치원의 교육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5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교육감상을 3번이나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정일스님의 남다른 불교교육관이 있어 가능했다. 유치원에서는 원생들에게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자’는 것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인과법이다. 유치원에는 제법 규모 있는 텃밭이 있는데, 이 곳에서 어린아이들은 직접 채소를 키우고, 그 변화의 과정을 기록하며 변화의 원인까지도 찾아서 쓰고 있다. 이 과정을 거친 아이들은 자연히 생명을 하나의 독립적인 개념으로 보지 않고 서로 연결된 상호 공동체로 보게 된다.
“그 어린 머리로 ‘자기 얼굴은 자기가 만든다’는 생각을 할 정도라면 교육의 성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의 공부도 수행과 같이 하나 하나 관찰해서 이해시키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자기를 관찰하는 깊이가 더해질수록 자연과 자신 혹은 식물과 자신의 관계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이때 인연법을 공부하는 것이죠.”
순수함으로 불법을 쉽게 받아들인 아이들의 경우처럼, 스님은 많은 불제자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끄달림 없이 받아들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마음공부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복을 짓는 일’이다. 정일 스님은 오늘도 그 이치를 밝게 비추며, 불제자들이 그 맛을 알도록 열심히 이끌고 있다.
“지금도 선방에서 함께 참선수행하며 제자들을 격려하고, 때론 경책하기 위해서는 매를 드는데 망설이시지 않으시지만, 그 과정에서 저희들의 수행의 정도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제자들의 말처럼, 정일스님은 70세의 나이에도 수행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선객이자, 자신의 성취를 제자들에게 철저하게 전해주는 엄격한 스승이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스님은 1956년에 조계사에서 금오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이어서 40여 년간 망월사, 범어사, 용화사, 통도사, 백련사, 만덕사 등의 선방을 돌며 참선수행했고, 해인사, 불국사, 용화사, 정각사 선원장과 선학원 중앙선원장을 역임했다. 특히 망월사에서는 천일기도를 성만했으며, 이후에도 한시도 게으르지 않은 수행과 투철한 용맹심으로 후학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현재 선학원 이사장을 맡고있는 정일스님은 서울 우이동 보광사에 주석하며 만나는 인연마다 공부의 핵심을 짚어 주고 계시다. 스님의 자상한 가르침 덕분에 매일 수많은 대중들이 “스님의 법문은 들으면 들을수록 ‘공부 욕심’이 생긴다 ”며 1km 남짓한 오르막길을 걸어 보광사를 찾고 있다.
큰스님은 한평생 유명산천을 구름처럼 물처럼 떠돌며 오직 염불과 참선수행에만 전념함으로써 눈이 열린 선지식으로 알려진 분이다.
세수로 85세임에도 이날 스님은 간절히 법을 묻는 20여 명의 불자들을 향해 마음을 다스리며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구정녕 일러주셨다. /편집자
▷ 어떤 수행법으로 마음을 닦는 게 좋습니까?
“염불이 근기에 맞으면 염불을 하고 참선이 맞으면 참선을 하면 된다.
염불이든 참선이든 모든 것에 도가 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서 일념이 되면 부처의 길이 열린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일념으로 가면 도를 이루는 길이라는 점에서 똑같다.
다만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
공부하지 않으면 백천억 겁을 살아도 괴로움에서 못 벗어난다.”
▷ 간화선에는 1700공안이 있는데 어떤 화두로 공부하는게 바람직한가요?
“어떤 것이든 다 중요한 공안들이다.
다만 1700공안 중에서도 이치로 아는 선, 즉 의리선(義理禪)은 곤란하다.
따라서 마땅히 ‘이뭣고’ 공안이나 ‘판치생모(板齒生毛)’,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공안을 들어야 한다.
나머지 공안은 지식과 이치로써 풀어낼 수 있어 궁극의 경계에 도달하기 어렵다.”
염불이든 참선이든 일념이 중요
▷ 화두를 잘 드는 방법이 있습니까?
“화두를 제대로 참구해야 일념도 된다.
예컨대 처음에는 ‘조주 스님이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없다고 했을까?’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점차 화두가 ‘왜 그랬을까?’ ‘왜?’로 짧아지게 되고 그렇게 지속되다 보면 의문만이 가득한 일념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일념 또한 번뇌망상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일념에는 착도 망상도 없다.
일념인데 거기에 어떤 것이 붙을 수 있겠는가.”
▷ 공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조주 스님 이후 지금까지,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조주 이전보다도 도인이 나오지 않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믿음이 부족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믿는다.
공부를 하려면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초보불자의 경우 믿음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지장경』을 읽어야 한다.
『지장경』을 천독 이상 독송하게 되면 믿음이 견고해진다. 이 바탕 위에서 염불도하고, 참선도 해야 한다. 『지장경』 독경은 일종의 기초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장경』에 대해서는 스님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왜 하필 『지장경』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부족해서 나오는 소리다.
살생하지 말라, 사음하지 말라 등 마땅히 행해야 할 것들을 적어 놓은 경을 두고 비하의 소리가 나올 수 있는가.
아직 기초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금강경』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의 사구게를 들려준 들 알아들을 리 있겠는가.
지장경은 세속의 학력으로 친다면 초등학교에 해당한다. 집을 지을 때 터전에 해당되는 경이다.
지장보살은 이 우주에 안 계신 곳이 없다. 우주에 꽉 차 있는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중생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보살이고 기본이 되는 보살이므로 대원본존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담임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하는 보살이다.”
▷ 이곳에 오다가 『금강경』의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을 놓고 토론을 벌였습니다.
덕산 스님이 어떻게 했어야 노파에게 떡을 얻어먹을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 이런저런 사변을 붙이는 것은 망상이다.
마음자리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분별심이 자리할 곳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사실 법이란 것이 물을 것도 답할 것도 없는 것이다.
묻고 답하는 사이에 이미 그르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지식이고 수행을 통해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과 지식은 서로 상관이 없다. 허깨비일 뿐이다.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도 허깨비 놀음이다.
오직 한 법으로 돌아가 일념이 되어야 한다.
일념이면 모든 것이 끊어진다.”
▷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진리는 아는 것이 아니다. 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당신의 가르침을 뗏목에 비유한 까닭은 가르침 자체가 방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착을 끊으려면 일념이 되어야 한다.
일념이 되면 망상이고 착이고 붙을 곳이 없다.
과거 미래 현재 어디에건 마음엔 과거와 안팎이 없다.
내가 질문 하나 던지겠다. 여기에 컵이 있다.
이 컵이 네 마음 안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밖에 있는가?
아는 이 있거든 일러보라.…(침묵)… 마음엔 안과 밖이 없다.”
믿음 견고해야 깨달음도 가능
▷ 염불과 참선의 병행은 어떻습니까?
“염불로 신심을 다지고 화두로 마음을 깨닫는 것이니 공부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안 될 것은 없겠지만 결론적으로는 하나에 전념하는 것보단 못하다.
우물을 파더라도 한 우물을 파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수행을 하면서 경계할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공부가 좀 된 사람들은 자칫 교만심에 빠지거나 자기도 모르게 상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고 도가 높아질수록 마장도 거세지는 법이다.
공부하는 이는 마땅히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에 매몰돼 헤매는 것이 무릇 거의 모든 수행자들의 공통된 병이다.
요즘 보면 간화선만이 최상이고 묵조선은 하급으로 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념의 경계에 오르게 되면 화두건 상이건 착이건 아무것도 없는 의단의 상태가 되어 말이 끊어진 상태에서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묵조라 했는데 이를 두고 분별심을 갖는 일이 횡행하니 한심한 일이다.
처음부터 비쳐볼 수 있다면 화두가 무슨 소용인가? 날개도 나지 않은 새끼 새가 날겠다고 날치니,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떨어져 죽을 것이 확실해 대혜 스님께서 화두(공안)를 제시한 것인데, 이제와서 화두선이 최상이고 묵조선은 보잘 것 없다고 하니 개탄스런 일이다.
허깨비 놀음에 휘둘리지 마라
▷ 저희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수행을 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으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수행해서 마음공부를 한 결과라야 끝내는 보람이 있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데에 허깨비 놀음에 휘둘려선 안된다.
나라는 생각, 너라는 생각, 영원하다는 생각,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있다는 생각을 깨뜨리고 그 허깨비 망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면 성낼 것도, 욕심을 부려야 할 것도 다 사라진다.
딱히 꼬집어 나랄 것이 없는데,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흔들릴 연유가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서든 평상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도를 이룬 것이다.”
등산화를 준비하기를 잘 했다.발목까지 빠지는 눈 때문이다.정읍에서 타고온 택시는 산 아래 작은 절인 연화정사 앞에서 돌아갔다.인적 없는 백색(白色)천지의 눈길을 30여분 올랐을까.목덜미에 땀이 밸 무렵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정읍시 칠보면의 칠보산 사자봉 석탄사(石灘寺).신라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지만 세간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천년고찰이다.깎아지른 산비탈에 선 모습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구도자같다.10여년전부터 이곳을 수행도량으로 삼고 있는 이 절의 조실 청소(晴韶·81)스님을 만났다.문병차 전주의 전북대병원을 막 다녀왔다는 노장(老長)은 인사를 건네자 법문으로 단도직입(單刀直入)이다.
“불법(佛法)은 문자나 말을 좇아가면 거리가 천리여.법은 그냥 살아 있지 표현할 수가 없어.조주 스님이 ‘마음은 부처가 아니다(心不是佛).지혜는 도가 아니다(智不是道)’라는 말이 맞느냐고 묻자 남전 스님은 ‘안맞다’고 했어.‘그러면 네가 일러봐라’고 하자 남전 스님도 그 말밖에 못했거든.왜냐,불법이란 말로 뱉으면 틀린단 말이야.그러나 말로 내놓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말로 하는 것이지”
노장은 “불법이란 하늘이나 자연이나 진리라 해도 다 같은 소리”라며 “일월(日月)이 모든 중생을 비춰 주고 따뜻하게 키워줘도 아무 상(相)이나 걸림,분별이 없는 것처럼 내 마음도 그래야지”라고 했다.어떻게 해야 불법을 알 수 있을까.노장은 “남을 의지하지 말고 내가 나를 발견하면 그게 진리이고 자연”이라고 설명한다.스스로 공부해서 자성(自性)을 보라는 얘기다.
“공부란 누구에게 기대는 게 아니라 누구나 갖고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거야.공부의 공(工)은 사람이 땅을 밟고 하늘을 등에 지고 있는 것이고,부(夫)는 하늘(天)을 뚫는 것이지.스스로 노력해서 진리가 하늘을 뚫는 게 공부라는 거야”
노장은 공부를 하려면 계율부터 지켜야 한다며 오계(五戒)를 하나하나 일러준다.내 목숨이 아까우면 남의 목숨도 아까운 줄 알고 살생하지 말라고 한다.특히 “육식을 하면 자비종자,착한 종자가 사라진다”고 강조한다.노장은 또 ‘불음주계(不飮酒戒)’에 금연을 추가한다.담배를 피우면 악취가 나서 좋은 신들이 접근하기 꺼리기 때문에 보호받을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내 몸을 받은 부모의 은혜를 귀중히 생각하라는 거야.제 부모는 대접하지 않고 자식만 귀여워하니 나중에 자식들도 제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 하는 거야.생일이 되면 부모가 날 낳으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나 슬퍼하고 눈물 흘리지는 않고 술과 고기에 노래나 부르니….제 부모한테 불효한 놈이 어찌 공부인,진리인이 되겠나”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저녁 공양(식사)이 들어온다.오후 5시,산사의 저녁은 무척 이르다.식구가 조촐해 한 방에 모두 모여 앉아 공양을 든다.밥이며 찬이며 보통 밥그릇에 담았지만 노장의 식사법은 발우공양이나 다름 없다.식사후엔 밥그릇,국그릇,찌게 냄비까지 물로 말끔히 씻어서 마신다.
“바르게 사는 게 불법이고 도(道)야.진인(眞人),도인(道人)은 바르게 사는 사람이고.남의 물건 욕심 안내고 남 욕하지 않고 술,고기 안 먹으면 걸릴 게 없고 시비당할 일이 없어.그렇지 않으니 걸리게 되고,어떻게 하면 안 걸리나 점쟁이나 찾아다니지”
“참선은 혼자서 나무를 베고 배를 만들어 타고 가는 것이고,염불은 남의 배를 빌려 타고 가는 거라 더 쉽지.비유하자면 참선은 자력수행이라 좁쌀만한 돌을 놓아도 물에 가라앉지만 염불은 섬만한 돌도 배 위에 있어 가라앉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야.게다가 참선이 좋기는 하지만 자력으로 극복하기 어렵고 자칫 잘못 들어갈 가능성이 많아”
노장은 “화두를 일러주는 사람은 많아도 공부의 길을 잡아줄 사람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했다.불법은 아는 법(지식)이 아니라 보는 법이라 보지 않고서는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그렇다면 염불로도 견성(見性)할 수 있을까.“염불을 하면 극락세계로 가기 전에 내 자성도 알게 된다”고 노장은 설명한다.
“공부하면서 나중에 잘 안되면 어떡하나 걱정하면 안 돼.논두렁을 베고 죽겠다고 생각하면 돼.그러면 실제로는 논두렁 베고 죽는 일이 없지.하지만 잘 살려고 거짓말하고 탐내면 고생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노장은 “염불이든 참선이든 마음을 뭉쳐서 일념이 돼야 진리가 통한다”면서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겁시즉일념(無量劫是卽一念)’이라는 법성게의 한 구절을 들려준다.한 생각이 무량겁이요 무량겁이 곧 한 생각이라는 뜻이다.
노장은 새해를 어떻게 맞을까. “평생 공부해서 부처님은 못 돼도 조사(祖師)는 돼야 하는데 나는 초등학교 2,3학년 밖에 안돼요.그래도 말을 하는 건 초등학교도 가지 못한 사람들한테 길을 일러줘야 하기 때문이야.해는 가고 몸은 늙어지는데 공부는 뜻대로 되지 않으니 얼마나 원통해.땅을 치고 울 노릇이지”
노장의 구도열이 놀랍다.밤새 산사를 뒤흔들어대던 눈보라도 아랑곳 않을 태세다.하산하는 길,발자국 없는 눈길을 걷는 발걸음이 상쾌하다.
◇10여년전 정읍 석탄사 인근의 산으로 나가 포행정진중 바위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청소스님.
*약력
·1921년 충남 청양 生
·1951년 예산 수덕사에서 지선스님을 은사로 득도
·문경 대승사, 선산 도리사, 승주 송광사 등에서 참선 수행
·1991년 정읍 석탄사 주지 취임
·現 정읍 석탄사에 주석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으면 부모보다는 자식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입니다. 이것은 이치에 안맞는 일이예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근본을 생각한다면 금방 이해가 갈 겁니다. 부모한테는 많은 빚을 졌는데 오직 자식만 생각한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일체중생을 다 자식처럼 사랑하면 그것이 곧 대자비지요. 자식만 사랑하고 부모를 받들지 않는 건 편중된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자비입니다. 따라서 아무 복이 될 수가 없어요.
우리는 부모나 형제 자매, 친지, 이웃들이 가깝다 하여 무심한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가까운 이들일수록 예의를 갖추고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스님들도 마찬가지예요. 기본 도리인 5계중 한 계라도 파한다면 부처님 말씀을 배반한 것이기 때문에 입적하는 그 날까지 꼭 지켜야 합니다.
나는 5계중에서도 특히 ‘살생을 금하라’는 덕목을 스님뿐만 아니라 평소 신도들에게도 강조합니다. 인간이 내 목숨같이 사랑하고 보호해야할 미물들을 마구 잡아 먹으니 그것 자체부터 틀려진 겁니다. 자신의 생명이 귀중하면 남의 목숨도 존귀하게 여겨야지요.
생명 존중은 우선 스님들부터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스님들은 모든 중생의 부모요 스승이기 때문에 항상 행동을 되돌아 봐야 합니다. 부모가 고기를 먹는데 안 먹을 자식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스님들은 고기를 먹으면서도 일체 걸림없이 본분만 잃지 않으면 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부처님말씀엔 그런 것이 없어요.
하지만 계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으면 생각끝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처음부터 계를 잘 지킨다면 그것이 부처지 중생이겠습니까? 참고 또 참으면서 실천에 옮기는 것이 계를 잘 지키는 비결입니다. 다시 말하면 극기를 통한 자기 확신을 가져 마음을 다 잡아야 합니다.
절을 할 때 삼천배를 목표로 잡고 시작하면 이천오백 배쯤 되면 고비가 오고, 천 배를 계획으로 잡고 시작하면 칠백배쯤 되어 고비가 옵니다. 목표가 삼천배였을 때의 천 배는 수월하지만, 천 배를 목표로 했을 때는 같은 천배지만 더 힘듭니다. 즉 처음 출발할 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천배를 하더라도 아예 삼천 배를 할 작정으로 시작한다면 천 배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란 자기가 다잡기 나름입니다. 극기로 자신을 통제하면 새로운 자신감과 용기가 생깁니다. 어떤 유혹에 빠졌을 때 ‘내가 물리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하려고만 한다면 온 몸에서 솟아나는 힘으로 과감히 뿌리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불자들도 계를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생각만 열심히 하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망상이 됩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불가와 인연이 깊었던 것 같습니다. 유년시절을 충남 공주에서 보냈는데 14세 되던 해부터 틈만 나면 수덕사에 와서 지냈습니다. 며칠을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절이 좋아져 시간 가는줄 몰랐지요. 그때마다 나를 찾으러 온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이렇게 사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스님들에 대한 동경과 수행자들의 삶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어요.
6·25전쟁이 발발한 이듬해 수덕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행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50여년의 수행 생활을 돌이켜 보면 특별히 은사스님을 두고 정진하기 보다는 홀로 포행과 참선을 통해 부처님의 진리를 깨우치려고 노력했지요
그래서 유일한 나의 은사스님이였던 수덕사 지선스님의 가르침은 평생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하루는 은사스님이 나를 불러 “남전스님에게 조주스님이 말하기를 ‘마음은 부처가 아니요, 지혜는 도가 아니다(心不是佛 智不是道)라면 허물이 있습니까?’하고 물었거든. 그러니 남전스님의 말씀이 ‘있다’고 대답하자 다시 조주스님이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하니 남전스님이 ‘마음이 부처가 아니며 지혜는 도가 아니다’라고 똑같은 대답을 했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하고 물었습니다.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묵묵부답하자 스님이 설명하셨지요. “마음이 부처가 아닐 것 같으면 마음을 내놓고 뭐가 있겠어. 그런데 허물이 있다고 했거든. 그것은 우주 자연 만상이 그대로 도(道)란 뜻이지. 개구즉착(開口卽錯), 즉 입을 열면 틀렸어. 시비를 가리는 것 자체가 옳은 일이 아니야.” 그래도 내가 이해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스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졌지요. “부처님께서 팔만 대장경을 설하였는데 나중에는 한마디도 설한바 없다고 했거든. 그 도리를 잘 파악해야 해. 하지만 우주 자체가 그냥 그대로 도이지만 말을 안하면 어리석은 중생에게 보여줄 방법이 없잖아. 모두가 방편이지. 비유컨데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려면 손에 물이 묻어야 되며 불에 탄 사람을 구하려면 손에 연기도 쐬야 하고 불도 손에 닿아야 하는 것처럼 연기도 불도 모두 방편이야. 하지만 방편이 없으면 중생에게는 보여줄 도리가 없는 거야.” 하시면서 한가지 일화를 더 말해 주셨습니다.
“조주스님의 제자가 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이 ‘없다’고 했거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자 또 ‘무(無)’라고 대답했어. 또 있어. ‘무엇이 조사가 온 뜻입니까(祖師西來意).‘ 하니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하고 말했어. 어떻게 널빤지 이빨에 털이 날 수가 있겠어. 그런데 바로 이런 두가지 화두가 아주 뚜렷하고 크게 보여주는 소식이야. 그러니까 우리 불법은 무자에 떨어져도 안되고 말머리에 떨어져서도 안돼.” 이 말이 끝나자 나는 무엇엔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내 화두는 ‘판치생모’가 됐지요. 참선하는 사람들이 무엇엔가 애쓰다 보면 의심이 자리잡게 됩니다. 이것이 곧 의정이요 의단입니다. 바로 그때가 중요합니다.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자는 철저히 의심해 그 의심을 뭉치고 뭉쳐 의단(疑團)을 형성해야 합니다. 의단은 의심이 크고 견고해 일체의 잡 생각이나 집착, 욕망 등이 조금도 일지 않게 됨을 말하는데, 의단이 굳건해지면 자신도 세계도 하나의 의심덩어리일 뿐 다른 것은 추호도 없게 됩니다. 조주선사의 ‘무’자를 예로 들면, ‘무!’ 하는 화두를 들면서도 조주스님의 말뜻을 여의면 안됩니다. 말머리에 떨어지지도 말고 무에도 떨어지지 말라는 뜻이지요. 그냥 ‘무’만 가지고 있으면 그건 무기입니다. 무기공(無記空). 그래서는 제대로 공부를 못합니다. 소되고 말되어서 시주빚 갚을 일밖에 없지요. 그러니 항상 조주스님의 뜻을 여의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힘이 생기고 말머리가 줄고 그냥 보입니다. 그때가 바로 묵조(默照)의 경지예요. 이렇게 화두를 올바로 들어 참선을 하다보면 나중에는 그냥 보게 됩니다. 하지만 작은 깨달음과 단계적 수행경지를 인정하지 않는 화두 참구는 ‘중생 아니면 부처’식의 극단적 가치관을 형성시켜 불교의 보살도 정신, 보시정신, 포교의지를 등한시 하게 됩니다.
참선 장소는 꼭 절이 아니어도 됩니다. 자기 마음자리를 잡은 사람은 토굴이나 개인 선방과 같이 혼자 있는 곳이 좋습니다. 하지만 마음 자리를 못잡은 사람은 가능한 절에서 훌륭한 선지식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수행하는 것이 좋겠지요.
참선도 중요하지만 초발심자들에게는 염불 하기를 먼저 권합니다. 불교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제대로 된 화두를 들지 않고 참선을 하다가 부처님과의 인연을 끊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에 드리는 말이예요. 참선이 곧바로 가는 길이긴 하나 어렵고 체득 기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염불은 돌아가긴 해도 탄탄대로라 최소한 악도에 떨어질 염려는 없어요. 다시 말해 염불은 헛길이 없이 한 만큼 공덕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염불을 할 때 주의할 점이 있어요. 부처님께 의지하려는 마음에 의해 기복적으로 염불을 한다면 그 의지하려는 나약한 마음 때문에 원치 않는 불행이 가중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약한 마음을 뜯어고쳐 주는 방법은 오직 고통 밖에 없다는 것을 ‘내면의 부처님’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부처가 되기 위해 염불을 한다면, 그 거룩한 행위는 ‘유유상종의 법칙’에 의해 좋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유유상종의 마음법칙은 같은 성질끼리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예요.
참선과 염불은 깨우친다는 도리에서 보면 같은 맥락입니다. 참선하다 염불하면 다를줄 알았는데 결국 그 둘의 도리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없이 긴 시간도 한 생각이고(無量遠劫卽一念), 한 생각 또한 한 없는 시간(一念卽時無量劫)이라는 법성게의 도리 그대로죠. 참선이든 염불이든 일념이면 둘이 아닙니다. 목적은 틀리다 하더라도 올바로 관찰해 나가는 것은 같은 겁니다. 그 자리가 바로 생사가 끊어진 자리이자 여래의 자리입니다. 선은 도달하면 깨달아버리는 자체가 있고 염불은 삼매에 들면 모든 티끌이 벗어진다는 것이지요.
흔히 선법문 하는 것을 보면 ‘염불은 관문이 아니다. 선만이 관문이다’하는데 그건 말에 떨어진 것입니다. 염불도 올바로 한다면 관문이 안 나올리 없지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이 한 구절로도 홀연히 깨친 도리를 보면 참선문이나 염불문이나 간경문이나 다 같은 보리의 문이지요.
참선과 염불을 통한 정진도 중요하지만 일상 생활속에서 선업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불자로서 꼭 해야될 일입니다. 착한 일을 하되 상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해와 달이 만물을 환하게 비추지만 비춘다는 상을 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컨대 지나가는 사람에게 뺨을 맞으면 황당해 하면서도 사소한 일로 치지만, 자신이 잘해준 사람에게 빰을 맞으면 오래도록 분한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사소한 예지만 내가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었다는 착이 남은 탓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잘 하되 했다는 상이 남아 있으면 업이 쌓입니다. 아상이 남아있으면 선의 나무를 심었어도 잘못되면 악의 과를 거두게 되지요. 그러니 일체 상을 여의어야 합니다. 이처럼 모든 상을 여의는 것이 바로 불법입니다. 이 법은 그림자 없는 나무로 불을 때서 일체 운해를 말리는 도리입니다. 즉 그림자 없는 나무로 불을 때서 안개, 구름 같은 잡티를 말리듯이 열심히 수행 정진해 모든 번뇌 망상을 없애는 것입니다.
나는 공부가 안되거나 번뇌망상이 들면 혼신을 다해 지장보살님께 매달립니다. 관음기도도 좋지만 지장 기도를 해보니 힘이 많이 생겼습니다. 왜 이제야 지장보살님을 찾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부처님 말씀에도 관음·문수·보현 보살을 비롯해 모든 부처님은 백겁을 두고 모셔왔더라도 한치 앞에 있는 지장 보살을 불러 소원성취하는 것이 빠르다고 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엔 헛된 것이 없음을 깨달았지요.
진언에는 관세음보살 멸업장진언이 있고, 지장보살 멸정업진언이 있는데 그 진언에는 두 보살님 밖엔 없어요. 관세음보살님은 그냥 업장을 멸한다고 했지만 지장보살은 정해진 업도 멸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지장보살의 공덕을 안 뒤로는 하루에 십이만번씩 지장보살을 외며 염주를 돌리고 있습니다. 꾸준히 하다보니 틀이 잡히고 힘도 생겨 겉으로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염주를 굴리며 기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밥을 의식해서 먹는 것이 아니듯 염불이든 기도든 매일 식사를 하듯이 꾸준히 해야 공덕이 쌓입니다.
우리 불자들도 많은 시간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반성하고 선업을 쌓기 위해 하루 한 번이라도 열심히 정진하세요. 꼭 절에 가야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언제 어디서라도 몸을 낮춰 절하고 참선하는 장소가 바로 법당이요 도량입니다. 자기일을 하면서도 틈틈히 마음을 한데 모으고 간절하게 염불이나 참선 기도를 하면 불법의 진리에 한걸음 다가서는 것입니다.
하늘 천(天) 자만 봐도 한 일(一)에 큰 대(大), 즉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라는 거지.
그것은 곧 중생들이 깜깜한 정도로 모르고 있는 우주자연의 진리를 찾으라는 거야."
노장은 석가모니불이 태어나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한 것도 스스로 '독존(獨尊)이라는 뜻이 아니라 누구든지 갖고 있는 진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발견하면 독존이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각자가 높고 존귀하고 하늘아래는 뜻이다. 또 예수가 '나를 따르라'고 한 말도 각자 자기의 진리, 곧 '나'의 실체를 찾으라는 말로 해석한다.
큰 신(神)을 믿든 작은 신을 믿든 거기에 의지하면 무당이요,
내가 나를 발견하면 진리고 자연이라는 것이다.
노장은 공부를 하려면 계율부터 잘 지켜야 한다며 오계(五戒)를 하나하나 일러준다. 계를 지켜야 마음이 정해지고 그래야 지혜가 나와 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장은 우선 내 목숨이 아까우면 남의 목숨도 아까운 줄 알고 살생하지 말라고 한다.
특히 "육식을 하면 자비 종자, 착한 종자가 사라진다"고 경계한다.
"사람이 만물의 어른이면 미약한 자를 도와줘야지 약하다고 잡아먹으면 되나. 그러면 미약한 놈들은 다 죽을 것 아닌가. 미물이라고 자연에 태어난 건 사람이나 똑같은 거야. 그런데도 도와 주기는 커녕 잡아서 입에 넣어버리니 기가 막힌 노릇이지. 누가 내 살이 맛있다고 먹으면 어쩔 거야?
그 인과(因果)를 어떻게 갚으려고 그러는지. 천당과 지옥이 그래서 생긴 거야."
오계의 두 번째인 '불투도(不偸盜·도둑질하지 말라)'를 설명하려던 노장이 갑자기 낮에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꺼낸다. 병원 화장실에 갔더니
휴지를 필요한 만큼만 쓰지 않고 마구 풀어서 그냥 버리더라는 것이다.
"제 것이 아니라고 그러는 모양인데 이 우주에 내 것 아닌 게 어디 있어. 내 물건 남의 물건 차별해서는 안 되는 거야"라며 나무란다.
'불사음(不邪淫·음행을 하지 말라)'이라는 세 번째 계율에 관련해서는
"불자라면서 미인을 보면 속으로 탐내는 사람이 많다"면서 "바르게 사는 게 도(道)"라고 지적한다.
노장은 또 거짓말을 하면 불행해진다고 경고하고(不妄語),
술과 함께 담배도 '불음주계(不飮酒戒)'의 적용대상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담배를 피우면 선신(善神)들이 도와주려 해도 악취 때문에 가까이 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내 몸을 받아준 부모의 은혜를 귀중히 생각하라는 거야. 제 부모는 대접하지 않고 자식만 귀여워하니 나중에 그 자식들도 제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 하는 거야. 양로원에 보내거나 제주도에 갖다 버리지. 생일이 되면 부모가 날 낳으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나 슬퍼하고 눈물 흘리지는 못할 망정 술과 고기에 노래나 부르니‥‥.
제 부모한테 불효한 놈이 어찌 공부인, 진리인이 되겠나?"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저녁 공양(식사)이 들어온다. 오후 5시, 산사의 저녁은 무척 이르다. 식구가 조촐해 한 방에 모두 모여 앉아 공양을 든다. 밥과 찬은 보통 밥그릇에 담았지만, 노장의 식사법은 발우공양이나 다름없다.
식사 후에 밥그릇, 국그릇, 찌개냄비까지 물로 말끔히 씻어서 마신다.
"바르게 사는 게 불법이고 도(道)야.
진인(眞人), 도인(道人)이란 바르게 사는 사람을 말하는 거지.
남의 물건 욕심 안 내고, 남 욕하지 않고,
술·고기 안 먹으면 걸릴 것도 없고 시비 당할 일고 없어.
그렇게 않하니 걸리게 되고, 어떻게 하면 안 걸리나 점쟁이나 찾아다니지. 바르게 살지 않으면 어떻게 공부가 되겠나? 목이 끊어지는 일이 있어도 바르게 살아야 해."
바르게 살아야 성불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장은 공부하는 방편으로 참선보다는 '아미타불'을 염불하라고 권한다. 평생 참선으로 살아온 수행자가 뜻밖이다. 그러나 설명을 듣고 보니 근가가 달리는 중생들을 위한 배려의 말씀이다.
"참선이나 염불이나 간경이나 다 해탈하는 길이지만
참선은 혼자서 나무를 베고 배를 만들고 타고 가는 것이고
염불은 남이 만들어 놓은 배를 빌려 타고 가는 거라 더 쉽지.
비유하자면 참선은 자력수행이라 좁쌀만한 돌을 놓아도 바로 물에 가라앉지만 염불은 섬만한 돌이라도 배 위에 얹혀 있으니 가라앉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야.
전라북도 정읍시 칠부면 반곡리 389번지 석탄사, 들길 논길 지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을 몇 번이나 가로지르고 산길로 들어선 지도 한참, 가도가도 석탄사는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굽이굽이 돌아드는 첩첩산골의 청량한 복을 누릴 수 있음에도 짐짓 볼멘 소리가 기어나온다. “큰스님, 어찌하여 이 깊은 산골에 계시나이까?”
하지만 그 마음은 불자들과 함께 격의없이 말씀을 나누고 계신 청소 큰스님의 아름다운 미소 속에서 깊은 환희심으로 바뀌었다.
스님, 이 얘기 저 얘기 듣고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아 이 먼데까지 와서 부처님 법에 대해 물어야지 얘기 들으러 왔어요. 얘기야 얘기꾼이 더 잘 하지. 나는 얘기 잘 못해요.”
스님, 불법(佛法)은 무엇입니까?
“불법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교법을 말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보신 진리의 실상을 말로 듣고 알 수 있겠어요? 불법은 자기가 수행해서 스스로 보는 도리예요.
또 견성(見性)이라 성품을 본다고 하지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우주의 실상을 환히 보셨어요. 아미타 부처님도 팔만대천세계를 걸림없이 밝게 보고 두루 비춰 주십니다.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도 중생들의 고통을 다 보시고 구제해 주십니다.
거듭 말하지만, 사량분별하던 중생이 스스로 수행해서 일체를 보고 해결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불법 가운데 중생이 있고 중생 가운데 불법이 있어요.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 모두가 불법을 볼 수 있는, 다시 말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이 있다고 하신 것을 굳게 믿고 수행해야 합니다.
수행의 힘이 안 생기면 보는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공부하는 사람은 힘들지요. 처음부터 볼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수행도 생각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다 하다 보면 보여요. 비유컨대 불법은 저 하늘의 해란 말입니다. 말머리(話頭)는 손이에요. 유명한 화두 중의 하나인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 알지요? 어떤 학인이 조주 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여쭙자 조주 스님이 ‘무(無)’ 했단 말이에요.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 저 고물고물한 벌레에게도 불성이 있다 했는데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 했는고? 했을 때 말머리(화두)가 손이고, 불법은 해입니다.
염불할 때 ‘나무아미타불‘ 하는 마음도 역시 손과 같아요. ‘아미타불‘ ‘아미타불‘ 일념으로 염송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眞)과 가(假)가 둘이 아님을 알 수 있어요. 손이 해를 가리킬 때 이게 손이지 해는 아니거든요. 그러나 손을 뚫어지게 보면 해와 손이 둘이 아닌 도리가 나옵니다.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무슨 공부를 하든지 아주 일념이 되면 관(觀)이 나오고 보게 됩니다. 그처럼 불법은 보는 도리예요. 일념이 못 되었기 때문에 보지 못하지 일념으로 간절히만 하면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 ‘환히 보여 주었으니 눈 있는 자 와서 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본다는 것에 집착되어 우리가 사물을 보듯 어떤 경지가 보이는 건지 궁금합니다.
“경지가 보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보인다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알아야지 말해줄 수 없는 것이고, 말로 물어서 알려고 해도 안 되는 도리입니다.”
그러다 보니 불법을 어렵게 느끼고 대부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불법을 보는 길을 일러주십시오.
“내가 일념이 되면, 생각 생각이 짙으면 보는 도리가 생깁니다. 얘기를 들어서 알려고 하면 되지 않지만 일념으로 하다 보면 보이는 것입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말머리(화두)를 잡고 자꾸 의심을 하다 하다 보면 보이는 도리가 생기고 또 염불하는 사람은 생각 생각 아미타불을 끊이지 않고 염하면 보입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자나깨나 일념에서 그놈이 주인공이 되어 하면 보는 도리가 나온다는 것뿐입니다. 처음에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하는 것처럼 말머리가 길지만 하다 하다 보면 생각만 하면 척 들어오고, 더 익으면 일으킬 것 없이 비춰보는 겁니다. 그게 조(照)라, 조사묵조(祖師默照)라, 잠잠히 보고 있으면 일월과 같은 도리가 나와요. 물어서 알려고 하지 말고 내가 노력으로 알려고 해야 해요. 물어서 알라고 하면 거리가 멀어요. 노력이 세면 나오는 거예요.”
보이게 되면, 즉 진리를 깨닫게 되면 마음의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불법은 해와 같다고 했지요. 불법을 본 것, 즉 진리를 깨달은 상태도 마치 해와 같습니다. 해가 일체중생을 비추되 비추었다는 상(相)이 없지요. 내 마음도 해와 같이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남한테 조금 잘하고서 그 사람이 나한테 서운하게 하면 속상해하는데 불법을 보면 뭇 중생을 비추었어도 비추었다는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그 사람이 잘 하고 잘못 하고에 걸림이 없고 누구한테든지 절대 평등한 마음이 되고 늘 평온하지요. ‘내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나를 대해’하며 서운해하고 또 상대방이 조금 잘해주면 좋아하고 이렇게 희로애락에 젖어 사는 게 중생살이라면 부처는 일월(日月)과 같이 그저 비추었다는 상도 없고 저절로 일체 중생을 비추어 살리는 것입니다. 참말로 불자라면 누구든지 수행해서 불법을 보고 일월과 같은 마음이 되어 세상을 환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부처가 되고 관세음보살이 되고 지장보살이 되어 세상을 밝히는 일월이 되면 이 세상이 그대로 불국정토입니다.”
수행 단계마다 그 경지가 다를 듯합니다. 뒷사람들을 위해서 그 수행 단계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내가 따로 설명할 게 없어요. 저 법당에서 심우도(尋牛圖) 봤지요. 그게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단계, 수행 단계를 비유한 거라. 본심을 소에 비유한 것인데, 자기의 본심인 소를 찾아 나서서(尋牛) 소 발자국을 봤잖아요(見跡). 그것도 힘이 조금 생긴 거예요. 나중에는 소가 보인단말야.(見牛), 힘이 더 생겨서 쫓아가서 소를 잡고(得牛), 소를 길들여(牧牛) 오는데 다 공부하고 싸우는 비유입니다. 그렇게 조금 조금 힘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소를 타잖아요. 소를 타고 우리 집에 돌아와서(騎牛歸家), 도망갈 염려가 없으니 소를 잊어버리고 안심한 경지(忘牛存人)가 오고, 다시 소도 없고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을 깨달아(人牛俱忘),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여실히 보고(返本還源), 중생을 건지기 위해 거리에 나가는(入廛垂手) 그때가 다 성취한 겁니다. 대 성취를 한 거지요.
처음에 발자국 보고 꼬리를 볼 때도 나름대로 힘이 생긴 거예요. 처음 힘이 생겼다고 하는 것은 마음도리가 해 같은데 해를 보긴 봤으되 비오는 날 구름이 끼고 안개 낀 날 해가 반짝 났을 때 해를 본 것과 같아서 그것 가지고는 맑은 하늘을 못 만들잖아요. 모든 안개 구름 걷혀서 백일청천을 만들면 그게 부처님 경지와 같은 겁니다. 스스로 수행을 해서 해와 같이 되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부촉하신 불자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도 이 높은 산중에 계신 것처럼, 불법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이끌어주지 않는다고 불만의 소리가 높습니다.
“바르게 살다 가는 것, 옳게 보여주는 것이 포교지 다른 게 없어요. 사실 입전수수의 경지에 가지도 못했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면 중생에게 도움 될 게 없어요. 말 없는 가운데 평생을 바르게 살면 혼자 있어도 만인과 함께 사는 것과 똑같습니다. 혼자 있을 때나 시장 가운데 있을 때나 바르게 살면 그 공덕이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바르게 못 살면서 포교한답시고 저잣거리에 나와 휘젓고 다니면 제 차도 못 몰면서 남의 차 고친다고 수선떠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중생에게 빚만 지고 업장만 두텁게 쌓을 뿐입니다. 또 실력이 없는데 누가 곧이 듣겠습니까? 그 꼴이 나는 남의 닭 일년에 한 마리씩 잡아 먹는데 너는 왜 하루에 한 마리씩 잡아먹느냐고 탓하는 것과 꼭 같으니 무슨 이익이 있겠어요?”
그렇지만 부처님처럼 우주의 실상을 본다는 것은 사실 아득한 일이고 안 만큼, 본 만큼은 가르쳐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인즉슨 옳은 말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공부 열심히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4학년생을 가르치기는 박사보다 나을 수 있어요. 그런데 불법 공부는 일반 공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좀전에도 말했지만 그냥 그대로 자기가 잘 살면 그 공덕이 남에게도 가게 되어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해서 사람들이 불교는 포교에 소극적이라고 비판들을 하는 모양인데 진리의 세계는 그런 게 아니에요. 본질을 봐야 하고, 현실적으로 불교가 발전이 되든 쇠퇴를 하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하다 안 될지라도 근본부터 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못 받아 들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편과 수행방법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은 하나인데 그것도 제대로 못 알아 들으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어쨌든 부처님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너도 성불할 수 있다, 진리를 볼 수 있다는 부처님 말씀을 믿고 수행정진해야 하는데 진리는 볼 생각도 않고 부처님 옷자락만 잡고 잘 되게 해달라고 빌어요. 아들 학교나 들어가고 취직이나 하게 해달라고 빕니다. 어린아이가 태산 같은 금덩어리는 놔두고 껌 하나 달라는 형국이에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참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너무나 자비로우셔서 방편을 써서 중생들 뜻대로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렇게 차츰차츰 절에 왔다갔다 하면 마음이 차츰차츰 참진리를 찾고 진리를 보고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연 없는 중생은 부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태산을 보여주고 태산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신 부처님께서 중생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고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사들 가운데에는 예불을 도외시하는 분들도 있는데 스님께서는 참선수행을 하시면서 기도와 염불을 병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수행해서 힘을 얻기 전에는 내 힘으로 하기 벅차니까 먼저 깨달으신 부처님께 조른 겁니다. 불보살님은 우주에 꽉 차 있어요. 지장보살님도 관세음보살님도 여기에도 꽉 차계세요. 그렇다고 형상으로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으로 비추어서 봐야 합니다. 형상으로 뭐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꾸 형상을 보려 하면 전부 마구니 권속이 됩니다. 그런 생각을 내게 되면 마구니들이 먼저 와서 그들의 노리개감밖에 안 돼요. 무당되고 도깨비 고 점쟁이밖에 안 되니 주의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 한 번 부르면 관세음보살과 통화가 된 겁니다. 지장보살을 부르면 ‘누구야’ 불렀을 때 통하듯이 통한 것입니다. 또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은 그 위신력이 무변신이기 때문에 한생각이면 통하고 누구든지 기도를 간절하게 되면 불보살님이 가피를 주십니다. 나 역시 수행할 때 장애없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도를 했고, 불보살님의 가피로 순조롭게 수행할 수 있었지요.”
스님께서는 평생 참선수행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자들에게 염불을 권장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니에요. 가지는 여러 갈래지만 뿌리는 하나이듯이, 다리는 둘이지만 목은 한목이듯이 한 가지에요. 불법으로 가는 길은 참선 줄 잡은 사람하고 염불 줄 잡은 사람 등이 있는 것처럼 길은 여럿이라도 불법은 하나지 둘이 아니에요. 참선을 해서 득력을 했든 염불을 해서 득력을 했든 다 그 소식이 그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소리 들었지요? 십년 공부를 해서 도를 얻고 보니 나무아미타불이란 말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그냥 도로아미타불이에요.
나는 나름대로 참선해서 조금 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중생들은 참선으로 어렵단 말입니다. 참선이 좋기는 좋은데 제대로 하는 이가 별로 없어요. 참선은 불법으로 가는 가까운 길이로되 가는 길이 여럿입니다. 희미한 길을 가게 되기도 하고 헛길을 걷기도 하는 등 참선은 최상승법인 만큼 위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염불은 하면 한 만큼은 공덕이 있어요. 설사 제대로 못하고 속으로 했다 해도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 불자들에게는 염불을 하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그저 많이 많이 해야 합니다. 워낙 생각이 깊은 데 들어가면, 생각이 깊으면 보는 것입니다. 염불은 간절히 사무치게 해서 뇌에 배겨야 합니다. 한 생각 염으로 하면 빠르고 송으로 하며 더딘고로 되도록 염으로 해야 빨리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염불을 하루에 십만독 이상씩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참선해서 힘을 얻었기 때문에 관(觀)으로 죽 나가니까 십만독을 했지 외우게 되면 삼만 독 하기도 힘들어요. 아미타불 관으로 꿰버리면 십삼만 독도 가능하지요. 불자들에게 적극 권장하다가 내가 말년에 아미타불을 염한 것은 이 세상은 고해바다이기에 극락세계로 회향하기 위해서입니다. 극락세계에 아미타부처님 회상에만 가면 영원한 수명을 얻고 성불할 수 있습니다.”
너무 어리석은 질문인 듯한데 보통 마음 속의 극락을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세상사람들이 승속간에 극락세계를 말하면서도 시인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유심극락이라 해서 극락이 마음에 있다 하는 것도 맞기는 맞지만 서방정토 극락세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하나도 그른 것이 없습니다. 극락세계를 부인하면 부처님을 부인하는 것과 한가지입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간절한 염원으로 건설해 놓으신 극락에서는 누구든지 다 성불할 수 있습니다. 지극한 안락을 누리기 위해 극락왕생을 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진실로 성불하기 위해 극락에 왕생해야 합니다.”
스님의 출가 인연 이야기, 수행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저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출가하시기 전에 이미 공부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6·25 후에 절에 들어왔으니 늦게 들어온 편인데 이 법은 늦게 들어오고 빨리 들어오는 데 있는 게 아니에요. 전생인연인지 열댓살부터 출가하고 싶어서 절에 드나들었는데 절에만 가면 자꾸 아버님이 끄집어내고 끄집어내고 하셨지요. 그래서 계속 출가가 늦어졌지만 집에 있으면서도 늘 마음은 절에 가있었고 항상 참선하고 기도를 했지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49재를 지내드리고 꿈을 꾸었는데 참말로 희한한 것을 보았어요. 향비가 내려서 이 우주의 똥이 싹 씻겨져내리는, 똥이 흔적도 없이 씻기는 꿈을 꾸었는데 그렇게 환희로울 수가 없었어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입산해서 오늘날까지 흔들림없이 살고 있습니다.”
스님 수행하시는 가운데 숱한 체험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많아서 얘기할 수도 없고, 공부 속에서 얘기라 하지 않는 얘긴데, 할 필요도 없고...환골탈태라고 해야 할까. 수행을 하다보며 제 몸을 해부도 해봐지고 뇌수술도 해봐지고… 물론 꿈이지요. 몸이 백골로도 되는 것을 느끼고 다 보입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마음은 물론이고 몸 자쳬가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내 몸뚱이의 나지만 나중에는 우주의 나가 됩니다. 초보자는 이 몸뚱이가 나지만 공부를 하다보면 내 마음, 내 몸뚱이 우주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대자연 우주 진리와 하나되고 또 더불어 함께사는 중생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소아(小我)가 대아(大我)가 되고 진아(眞我)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지요.
왜 수행을 해야 하는가 하면 수행을 통해 소아를 버리고 대아, 진아가 되었을 때 세상일에 임해서도 수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만일 사장이라면 자기 욕심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공심으로 사원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회사를 운영하게 되고, 사원 또한 제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과 사원, 자연과 사람 등이 세상 만물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수행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그야말로 그대로 이 땅에 불국정토가 꽃필 듯합니다. 참으로 행복해지는 그 도리를 모르고 분망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한말씀 더 부탁드립니다.
“바르게 옳게 살아야지요. 도(道)란 다른 게 없어요. 바르게 사는 데에서 도가 나옵니다.
사람은 무엇보다 부모를 의지해서 나왔으니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새끼만 이뻐서 죽어요. 부모 위해 쓰는 돈은 아까워하고 자식 위해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아요. 부모에게 빚은 잔뜩 져놓고 돈놀이 같은 자식사랑만 하고 있으니 어디 이치에 맞습니까?
또 내 목숨이 아깝거든 남의 목숨도 아껴주고, 계(불살생, 불투도, 불망어, 불사음, 불음주) 잘 지키고 양심껏 바르게 사는 게 부처지 다른 게 아닙니다.
특히 스님네들은 계율에 철저해야 합니다. 내가 실력이 있어서 계에 걸림이 없다 해도 중생을 위해서 계를 지켜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기는 고기 먹으면서 애한테 고기 먹지 말라고 하면 어디 말을 듣습니까? 계는 터전이기 때문에 터전 없이는 집을 못 짓습니다. 막행막식은 터 안 닦고 집 짓는 것과 같습니다. 실로 계율을 안 지키면 중생을 포기하고 중노릇 포기하고 부처님 배반하는 사람입니다.
계를 잘 지키면 설사 본지소식이 없다 해도 부처님 권속이고, 설사 본지소식이 조금 들어왔다 해도 계를 안 지키면 마구니 무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기도 염불 참선 등 자기에게 맞는 것을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세상살이가 답답해서 도저히 안 될 때 일심으로 부처님께 매달려 기도하면 불가사의한 도리가 나오니 사람의 힘으로 안 될 때 지성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앞에서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스스로 수행해야 합니다. 염념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이 세상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부터라도 염불하고 참선하세요. 승속을 막론하고 수행해서 이 자연과 내가 우리 모두가 둘이 아니고 한몸임을 깨달아 부처로 보살로 살아가는 그날, 이 땅에 정토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불제자의 본분사입니다.”
2002년 새해를 맞아 호남의 한 산사에 주석하며 정진 중인 청소(靑昭) 큰스님을 친견하고 부처님 공부 잘하며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물었다.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청소 큰스님은 염불과 참선 정진을 통해 개안(開眼)의 경지에 오른 선지식으로 주변에 알려져 있는 스님이다.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려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내용이 보도되는 것을 극구 사양하시는 스님의 간곡한 뜻에도 불구하고 새해 벽두 법보신문 독자들에게 큰스님의 청량 법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불경함을 무릅쓰고 스님의 말씀을 정리해 게재한다.(편집자)
“옛날 조주(趙州)가 아직은 으스스 추운 이른 봄날 남전(南泉)을 찾아갔어요. 남전은 마침 양지 바른 곳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가 조주를 보고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지. 그러자, 조주가 ‘네,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고 했거든.
이에 남전이 ‘그럼 서상은 벌써 보았겠군.’하고 떠보는 거라. 조주가 답하기를 ‘아뇨, 서상은 모릅니다만 와여래(臥如來)는 보았습니다.’라고 받아 쳤어. 그러자 남전이 ‘허 이놈이 보통이 아니구나’라며 내심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아서는 ‘네게 스승이 있느냐?’고 물었지. 그러자 조주가 대답하길 ‘아직 추운 계절인데 스승께서 건안(建安)하시니 무엇보다도 다행입니다’라고 했다는 거라.
이렇게 남전과 조주의 만남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의 경지란 지식이나 의리로 따져서 아는 게 아닙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통해야 되는 것이지. 1700가지 공안이 있다고들 하지만 대개가 의리에 떨어지는 것들이란 말이지. 공부하는 이는 마땅히 조주의 무(無)자 화두나,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뭐꼬와 같은 공안을 참구해야 합니다. 이런 화두들은 의리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 경계를 그대로 치고 나가는 것들이거든.”
“ 세상을 다 맑히고 푸르게 할 법력 지녀 ”
청소(靑昭) 스님(82). 법명처럼 세상을 다 맑고 푸르게 할만큼의 법력(法力)을 갖췄다는 입소문이 자자한 숨은 선지식이다.
스님은 현재 호남의 한 산사에 주석하고 있다.(스님과 사찰대중의 뜻을 존중해 주석 도량은 밝히지 않는다) 주석처는 의상스님이 창건했다는 구전이 전해내려 오고 있는 고찰답게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위에 단출하게 세워져 있다. 그러나, 도량 전체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스스로 그림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스님의 법향(法香)이 충만해 있다.
친견 허락이 쉽지 않아서 부득이 저지른 “취재가 아니라 그저 법문을 듣기 위해 찾아 뵙는 것”이라는 ‘거짓말’을 모를 리 없으실 터인데도 스님은 별 내색도 없이 인사 끝나기가 무섭게 법의 경계를 설명하기에 바쁘다. 누구든 찾아와 법을 물으면 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스님의 천성이란다.
“세상에, 하루에 열 명이 찾아오면 열 번 법문을 하십니다. 큰스님에겐 거절하거나 꺼리는 표정이 없어요. 그저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당신 입가에 하얗게 마른침이 고이도록 말씀을 그칠 줄 모르시지요. 보다못해 대중들이 좇아 들어가 말리곤 할 정도니까요. 큰스님의 침 한 방울도 우리들에겐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법문을 하는 스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몇 컷 촬영을 하자, 주지 스님이 부리나케 좇아 들어와 찍지 말라고 호통을 치신다. 다 반갑지 않고, 신문에 나는 것도 싫다는 말씀이다. 그런 와중에도 스님은 웃음을 지긋이 머금은 채 부드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잠시 후 소란이 가라앉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법문을 이어 나갈 뿐이다.
“ 정법 쇠약해 지기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
얼마 전, 염불수행으로 유명한 한 중국스님이 한국에 와서 여기 저기 법회를 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지. 그분이 대전에 왔다고 해서 내 달려가서 이것저것 물었어. 그렇게 이름이 난 사람인데도 영 아닌 것이라. 법이 쇠약해지기는 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게 없는 모양이야. 참 걱정이 커요. 불교는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닌데 말이지. 머리로 아는 것은 다 무너질 수밖에 없어.
도인으로 알려진 사람들도 잘 두고 보면 대개가 의리선에 빠진 경우가 허다해. 분명한 것은 의리선으론 절대로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지. 선을 하되 일념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 일념이 되어 정진을 계속하면 그 일념이 단단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보이는 것입니다. 법은 보는 것이지 아는 게 아니란 말이지. 이렇게 일념이 되어 관(觀)하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어 있어요. 한 가지만 꿰뚫어 알면 다 알게 되어 있는 것이지.”
청소 스님이 제시하는 바른 공부의 첫 단계는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다. 예불문에도 나오듯이 계향(戒香)과 정향(定香)이 있고, 거기에서 해탈향(解脫香)이 나오고 해탈지견(解脫智見)에 이르듯이 계는 공부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계 지키는 사람이 점차 줄어드는 것은 이런 점에서 볼 때 큰일이라고 지적한 스님은 기초 공사를 하지 않고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서 공부를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마구니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고 강조한다. 도인은 마음도 바르게 가져야 하지만 행동 또한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인 것이다.
스님은 특히 재가자들에게 효행(孝行)에 소홀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바른 행동의 으뜸이 효라는 것을 한 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효를 하지 않는 사람은 공부성취의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고, 효행이 각별한 사람이어야 공부를 성취할 가능성이 큰 사람으로 생각하면 틀림없다는 것이다.
청소 스님은 또 염불이든 참선이든 간경이든 다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훌륭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마치 손가락 다섯 개가 있으나 그 뿌리는 팔뚝 하나인 것처럼 어느 문을 택하든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는 식의 험담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일반인은 참선보다 염불을 ”
모든 게 다 부처되는 자리예요. 참선만 옳고 염불은 그르다는 그런 말이 어디에 있나. 난 오히려 일반인들에겐 염불을 권하고 싶어요. 왜냐. 염불을 하면 나도 모르게 부처님과 가까워짐을 느끼게 된단 말이지. 정이 든다 이 말이요. 염불을 열심히 하다보면 삼매에 들고, 마침내 일념이 되어 거기서 공부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참선 공부가 좋기야 좋지만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아요. 방법을 일러준다고 하는 사람조차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어떻게 참선을 통해 마음자리를 볼 수 있겠는가. 소위 선지식이라는 분들의 행동을 보시오. 수좌들이 찾아가서 법을 물으면 대뜸 ‘너 오매일여하냐?’고 묻고는 ‘그렇다’고 하면, 벽력처럼 소리를 지르며 ‘저 놈 내쫓아라.’고 한단 말이지.
이런 현실에서 참선공부로 도인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참선, 간경, 염불 중에 어떤 방법을 택하든 일념이 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육조스님도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는 금강경 구절을 듣고 확철대오했다고 하지 않는가. 간경이든 염불이든 삼매에 들어 일념이 되고, 거기서 보면 이뤄지는 것입니다.”
청소 스님은 요즘 의리에 떨어져 도인 행세를 하는 가짜가 없지 않다며 이들을 향해서도 고언을 삼가지 않는다. 비난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 바른 정법 선양을 위해 의리선사들은 가면을 벗어 던져야 하고, 그것이야말로 정법안장의 줄기를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소신에서다.
강원의 강사가 아무리 글을 잘해도 참으로 도가 없으면 제대로 된 강사라고 할 수 없으며 일등 강사가 되려면 선지(禪旨)가 있어야 하고, 계행은 구속하고 억압하는 게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이고, 그 근본은 효라는 것이 스님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생존해 계신 부모에게는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돌아가신 부모에겐 천도재나 제사를 정성껏 모시는 것이 효의 기본이라는 것. 자식에게 잘하면 겨자만큼의 복을 짓지만 부모에게 효도하면 태산같은 복을 짓는다고 거듭 강조한 스님은 그 이유로 부모는 근본이고 자식은 끝머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근본을 저버리고 변죽만 울리는 짓을 그만두고 부모를 제일로 끔찍하게 봉양해야 하고 다음으로 동기간, 그 다음이 자식이라고 순서까지 일러준다.
“ 효도는 태산같은 복 짓는 기회 ”
1년전 지금의 주석처로 오기 전까지는 토굴생활을 하며 우리 나라의 유명 산천을 두루 섭렵한 스님은 은사가 누군지(스님은 애써 밝히려 하지 않았다)도 모를 정도로 은유자재한 삶을 살아왔다. 그런 스님에게 상좌 또한 있을 리 만무하다.
비록 이것저것 물으려던 당초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2시간 가까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을 정도로 스님의 법문은 감동적이다. 절을 하고 물러 나오는 기자를 향해 스님은 문밖까지 나오시면서 “공부해요. 꼭 공부 열심히 해. 일념이 되면 되는 거야. 그러나 뭐든 열심히 해요.”라며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배웅의 손짓을 보냈다. 지극한 마음으로 합장인사를 올린 채 눈이 살짝 덮인 산길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몹시 가벼웠다.
정일큰스님께서는 신도들에게 생전에 지장기도를 많이 권하시고 광명진언 기도도 많이 권하셨습니다.
청소큰스님께서는 지장보살본원경 1,000독을 소리내어 읽어 마치시기를 이 법문뿐아니라 주석하고 계신 전북 정읍 석탄사 법회때도 자주 말씀하신다고합니다. 하루1독도 좋고 2독도 좋고, 3독도 좋고 그 이상도 시간이 되시는 분은 소리내어서 많이 읽으시면 좋습니다. 최소한 하루에 일독은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장보살염불을 쉼없이하여 무량한 가피를 입었다는 청소큰스님의 말씀도 나옵니다.
지장경은 읽는 공덕이 아주 크고 유연영가천도와 업장소멸에 영험이 큰 경전이니 지장경 1,000독 봉독을 광명진언 또는 지장보살염불과 함께 마치시는 분이 많으셨으면하는 바람입니다.
광명진언은 지장기도와 아주 조화가 잘되는 진언이니 열심히 같이 외우시면 좋습니다.
그리고, 지장기도는 특히 영세계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도이기에 여러 경계에 대해서 자주 여쭈시면서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첫댓글 나무지장보살마하살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_()_
좋은글 감사합니다 _()_()_() 나무지장보살마하살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_()()()_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