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100년을 살기는 쉽지 않다. 기업이 100년을 생존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 수명은 15년에 불과하다. 창업한 지 30년 이내에 80% 이상의 기업이 사라진다. 낡은 기술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신기술, 치열한 경쟁, 경기 침체와 시장 환경의 변화, 정치·사회적인 변화…. 모두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이자, 성공을 낚아챌 수 있는 기회이다. 100년 이상 된 기업들은 어떻게 그런 위협을 이겨내고 성공했는지 성공과 장수의 비결을 탐색해본다. 오스트리아 서부 티롤주의 작은 마을 바텐스(Wattens)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 마을'이다. 알프스 산맥으로 둘러싸인 이 작은 마을엔 크리스털 관련 제품으로만 연 매출 25억유로(약 4조원)을 올리는 115년 역사의 스와로브스키가 있다. 스와로브스키 본사와 생산 공장, 창사 100주년 기념박물관인 '스와로브스키월드' 등이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모여 있다.
이 작은 마을이 스와로브스키로 인해 뿜어내는 저력은 무섭다. 작은 읍 규모도 안 되는 인구 8000명의 마을에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70만명이 스와로브스키월드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주민 1인당 평균 소득은 3만3000유로. 오스트리아 전체 1인당 평균 소득보다 30%나 높다. 주민의 70% 이상이 스와로브스키나 관계사에서 일하는 덕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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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간에서 시작된 115년의 역사세계 크리스털 시장의 80% 이상 점유율을 기록하는 압도적인 강자(强者) 스와로브스키는 버려진 헛간 같은 공장에서 탄생했다. 보헤미안 지방의 유리 세공 기술자였던 다니엘 스와로브스키가 115년 전인 1895년 바텐스의 폐공장에 크리스털 생산·가공공장을 세웠다. 1883년 빈 국제전기박람회에서 에디슨 등 당대 최고 발명가들이 출품한 산업 기계에서 영감을 얻어 세계 최초로 인조 크리스털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 직후였다. 그 기계가 오늘날 연간 200억개의 인조 크리스털 원석을 생산하고 샹들리에, 액세서리, 망원경 등 10만개 종류의 크리스털 제품을 생산하는 스와로브스키의 '씨앗'이 됐다.
창업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창업 이후 세 아들과 함께 10년간의 연구 끝에 115년 역사 속 철저히 지켜진 기업의 '특급 비밀'인 크리스털 커팅(절삭) 기법을 개발한다. 이 커팅 기법은 전 세계 크리스털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스와로브스키의 원천 기술이다.
커팅 기법은 인조 크리스털 업체엔 생명과 같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은 평균 28면의 커팅면을 가진다. 다른 인조 크리스털 생산 업체들은 평균 12면 안팎의 커팅면을 갖고 있을 뿐이다. 크리스천 림믈 마케팅 매니저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은 천연 보석이 아닌데도 보석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다"며 "특급비밀인 커팅기법을 통해 다이아몬드에 비견되는 투명도와 광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원석을 만드는 기술도 기밀이다. 원료가 모래(석영)와 소다, 산화납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어떤 방식으로 제조되는지는 가족 이외에는 전수되지 않는다. 스와로브스키는 기술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특허도 등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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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와로브스키의 창업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가 크리스털 원석을 만들기 위한 원료 배합 실험을 하고 있다.
가족도 능력 검증돼야 입사
자신 속한 공정만 알 수 있어
스와로브스키는 115년 동안 철저한 가족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스와로브스키의 지분은 약 150명의 스와로브스키 일가가 나눠 가지며, 5세대들이 경영 전반에 포진하고 있다.
창업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세 아들에게 자신의 지분을 정확히 3등분해 배분했다. 그리고 "앞으로 스와로브스키의 지분은 가족 내에서만 거래하고 후세대에 공평하게 배분한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그 원칙은 지금까지 지켜진다.
이런 가족 경영 원칙은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창업자의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도 경영에 참여하는 일부만 공장 전체의 시설 구조를 볼 수 있다. 공장은 10개가 넘는 각 세공 단계별로 철저히 나눠져 있으며, 생산 직원들도 자신이 속한 단계의 공정만 알 수 있다.
가족 경영 원칙이 1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특정 가족 구성원이 회사 내에서 절대 권력을 갖는 것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분율이 아무리 높아도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없다. 8명의 이사회 멤버가 정하는 인물이 회장이 된다. 회장 임기는 2~3년 정도. 이사회의 합의가 있으면 연임도 가능하다.
가족이라도 경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다니엘 스와로브스키의 외증손자인 로버트 북바우어 스와로브스키 소비재 사장은 "지분율이 높은 가족이라도 회사에 입사하려면 최소 2~3년 견습 기간을 거쳐야 하고 외부에서 10년 이상 전문성을 쌓은 뒤에 입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스와로브스키 본사의 안드레아 브라운 홍보부문 사장 집무실을 찾았을 때 한 중년 남자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나는 브라운 사장의 운전 기사니 없는 셈치고 편히 얘기를 나누라"고 말했다. 브라운 사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내내 "맞아요" "그렇습니다"라고 장단을 맞추다, "일이 있다"며 일어섰다. 그가 방을 나서자 브라운 사장은 "바로 저 사람이 창업자의 외증손자인 게르노트 랑게스(Langes)"라고 말했다.
게르노트 랑게스는 현재 스와로브스키의 지분 1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였다. 브라운 사장은 "지휘 고하에 상관없이 상하, 좌우 어떤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편하게 할 수 있는 기업 문화가 스와로브스키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족 경영은 경영진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적용된다. 직원 중에서도 5대째 스와로브스키에서 일하는 사람이 10%에 달한다. 스와로브스키 직원들은 퇴사한 후에도 주택보조 등 회사의 복지제도 혜택을 그대로 누릴 수 있다.
브라운 홍보부문 사장은 "강력한 주인의식을 가진 경영진과 직원들이 자유로운 기업 문화 속에서 상상력에 기반한 기발한 제품과 디자인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