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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이전(吏典) 제1조 속리(束吏)
12. 요즈음 향리들은 재상(宰相)과 결탁하고 감사(監司)와 내통하여, 위로는 관장(官長)을 가볍게 보고, 아래로는 민생을 들볶는다. 능히 이들에게 굴하지 않는 자라야 현명한 수령이다.
만력(萬曆 명 신종(明神宗)의 연호. 1573~1619) 이전에는 아전들의 횡포가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왜구(倭寇)의 침입이 있은 이래 사대부는 녹봉이 박하여 가정이 가난해졌고, 나라 안의 재물은 온통 오군문(五軍門)의 양병(養兵)에 쓰여졌다. 그래서 탐욕의 풍조가 점점 자라고 아전의 습속이 따라서 타락하여 수십년래 날로 심해져서 오늘에 와서는 극도에 이르렀다.
내가 민간에 있을 때 그 폐단의 근원을 탐구해 보니, 하나는 조정의 귀관(貴官)들이 뇌물을 받는 것, 또 하나는 감사가 스스로 제 주머니를 채우는 것, 다른 하나는 수령이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다.
아전이 재상과 사귀는 길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유배지에서 사귀는 것이요,
둘째는 궁중을 통해 사귀는 것이요,
셋째는 해유(解由)를 통해 사귀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사귀는 것이란 무엇인고 하니, 귀한 신하가 귀양 가게 되면 교활하게 기회를 관망하는 아전은 공손히 떠받들며 강개(慷慨)하고 충정어린 태도로 기절(氣節)을 숭상하고 의리를 좋아하는 자인 척한다. 귀한 신하는 처음으로 타향살이를 하게 되매 우울하기 그지없던 차에 갑자기 이런 사람을 만났는지라 감격이 골수에 사무친다. 방금(防禁)이 엄한데 이 아전은 서신을 통해 주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때 이 아전은 술과 고기를 대어주니, 그 귀한 신하는 못내 고마워서 저승에 가서라도 그 은혜를 갚을 것을 아전에게 약속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루아침에 판국이 뒤집혀 그 귀한 신하가 다시 등용되면 아전의 하늘을 태울 듯한 세력은 그 귀한 신하와 함께 솟아오르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귀한 신하는 영락되었어도 그 일당은 아직도 남아서 조정의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귀양 중에 하는 부탁을 재빠르게 들어주므로 그 귀한 신하가 귀양에서 풀려나기도 전에 이 아전은 먼저 이익을 누리게 마련이니 이것이 바로 아전들이 의리를 좋아하는 체하게 되는 이유이다.
교제를 이미 맺고 난 후에는 고운 명주베와 좋은 고기 등을 그의 집으로 실어들인다. 그래서 수령이 임지로 향할 적에는 그 귀한 신하가 이 아전을 먼저 부탁하고, 감사(監司)와 전별주를 마실 때 이 아전의 이름을 이미 듣게 된다. 그러므로 수령은 부임하는 날 이 아전을 앞으로 나오게 해서 대면하게 되고, 감사는 관하를 순행할 때 음식을 내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서 이 아전이 악한 짓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되니, 이것이 그 첫째인 것이다.
궁방(宮房)의 농장은 대개가 먼 지방에 있고 궁방의 자손들 중에는 또 권세 있는 집안이 많다. 그래서 그 농장을 관리함으로써 마침내 그들과 사귀고는 세력을 얻어, 위의 방법처럼 악한 짓을 행하게 되니, 이것이 그 둘째인 것이다.
이른바 유리(由吏) - 이방(吏房)이 구관(舊官)의 해유(解由)를 내는 자이니 이를 유리(由吏)라 한다. - 란 위인은 구관이 세력이 없으면 끊어 버리고 세력이 있으면 결탁한다. 그런데 그 결탁을 받는 자는 자기에게 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가 그런 줄은 모르고 그의 충정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뇌물 받은 것으로 선물을 삼고 부탁한 것을 가지고 애걸을 하며 힘껏 추천하면 이것으로 교분을 굳히고 세력을 얻어 모두 이상의 방법처럼 악한 짓을 행하니, 이것이 그 셋째다.
부임하는 날 여러 아전들을 불러놓고, “내가 떠나 오는 날 아무 재상이 어느 아전을 부탁하였는데, 이 영(令)이 내리기 전이니 깊이 다스리지 않겠으나, 오늘 이 영이 내린 후부터는 한 장의 서찰이라도 다시 관문에 들어오게 되면 그때에는 그 아전은 엄중 처벌하여 영구히 도태시키고, 다시는 서용(敍用)될 수 없게 할 것이다. 나는 결코 식언(食言)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는 두고 보아라.” 라고 한 다음 그 영을 크게 써서 판에 새겨 이청(吏廳)에 걸어 놓고, 만일 범하는 자가 있으면 약속대로 하고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오랜 동안 현성(縣城)에 있으면서 현령(縣令)의 출척(黜陟) 권한이 오로지 아전들의 손에 달려 있음을 보았다.
순영(巡營)의 저리(邸吏)가 현리(縣吏)와 상응하여 헛된 칭찬과 억울한 무고를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 이유는 감사가 이속들을 풀어서 염탐하는 동시에 그들을 심복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 잘못이 감사에게 있으니 수령으로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러나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선천적인 것이니 수령의 행위가 깨끗하여 아무런 허물이 없다면, 현리나 저리도 이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만일 불법 행위를 하면서 간활한 자에게 아부하여 그 해를 면하려 하는 자는 한 구멍을 겨우 막으면 또 다른 구멍이 터지니, 끝내 이익 될 것이 없다. 오직 자수(自修) 두 글자만이 피해를 멀리하는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원악향리(元惡鄕吏)에 대한 조문이 있는데 그 법률이 지극히 엄하다. 이와 같은 자를 사형에 처해야만 백성의 폐해를 제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령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으니, 감사와 비밀히 의논하여 법을 시행하도록 도모해야 마땅할 것이다.
《경국대전》에 이렇게 말했다. “원악향리란, 곧 수령을 조롱하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러 폐단을 만드는 자, 몰래 뇌물을 받고 역(役) 배당을 고르게 하지 않는 자, 세(稅)를 거둘 때 무법하게 거두어 남용하는 자, 양민(良民)을 차지하여 숨겨두고 사역(使役)하는 자, 농장을 널리 두고 백성을 사역해서 경작하는 자, 마을에 나다니면서 침탈(侵奪)하여 사욕을 채우는 자, 권세 있는 사람에 의지하여 본역(本役)을 요행히 피하는 자, 역(役)을 피해 도망하여 촌락에 숨는 자, 관의 위엄을 가탁해서 백성을 침학하는 자, 양가집 딸이나 관비(官婢)를 첩으로 삼는 자이다. 이와 같은 향리는 사람들이 고발하도록 하고, 또 본읍의 경재소(京在所) - 본읍 출신이 서울에 벼슬하여 재상이 된 자를 경재소라 한다. - 가 사헌부(司憲府)에 고발하게 한다. 그래서 진상을 캐물어 죄를 처단하되, 도형(徒刑)에 해당하는 자는 영원히 본도의 쇠잔한 역(驛)의 아전으로 소속시키고, 유형(流刑)에 해당하는 자는 영원히 타도의 쇠잔한 역의 아전으로 소속시킨다. 수령이 그것을 알면서도 허물을 물어 탄핵하지 않으면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로써 논한다.”
상고하건대, 법은 구비되지 않은 것이 아닌데 시행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조종(祖宗)의 제법(制法)이 이와 같은데, 까닭 없이 폐지하고 시행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경재소가 허물을 들어 탄핵하는 법은 상하 또는 중앙과 지방이 혈맥(血脈)이 통하여 잔약한 백성의 숨은 원통이 창달될 수 있게 한 것인데, 이 법이 폐지되자 군현의 소리(小吏)들이 거리낌 없이 방자하게 굴어 천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슬프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하랴?
[주-D001] 만력 이전 : 여기서는 임진왜란 이전인 조선조 전기를 가리킨다.
[주-D002] 오군문(五軍門) : 임진왜란을 계기로 설치된 훈련도감(訓鍊都監)ㆍ금위영(禁衛營)ㆍ어영청(御營廳)ㆍ총융청(摠戎廳)ㆍ수어청(守禦廳)의 다섯 군영(軍營)이다. 조선조 초기부터 내려오던 오위(五衛)의 제도가 없어지고, 그 대신 선조 때부터 숙종 때까지에 걸쳐 중앙의 방어를 위한 군영을 차례로 설치하였다.
[주-D003] 해유(解由) : 벼슬아치가 갈릴 때에 관아의 물품과 관리하던 사무를 후임자에게 인계하고, 호조(戶曹)에 보고하여 책임을 면하던 일이다.
[주-D004] 출척(黜陟) : 내쫓는 일과 올려 쓰는 일을 말한다.
[주-D005] 순영(巡營) : 감사가 직무를 보는 관아로 감영(監營)이라고도 한다.
[주-D006] 저리(邸吏) : 여기서는 영저리(營邸吏)를 말한다. 감영에 딸려 각 고을 관아의 연락을 취하던 이속으로 영주인(營主人)이라고도 한다.
[주-D007] 자수(自修) : 자기 자신을 닦는 일이다.
[주-D008] 사헌부(司憲府) : 벼슬아치의 규찰(糾察), 시정(時政)의 논난, 풍기(風紀)의 단속 등을 맡은 감찰기관이다.
[주-D009] 도형(徒刑) : 오형(五刑)의 하나로 복역 기한은 1년부터 3년까지 다섯 등으로 나누고 곤장 열 대 및 복역 반년을 한 등으로 하였다.
[주-D010] 유형(流刑) : 오형의 하나로 죄인을 유배(流配)시키는 형벌이다.
[주-D011]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 : 왕명을 어긴 자에 대한 형률로 《대명률 (大明律)》 〈이율(吏律)〉에 보이는데, 왕명을 어긴 자는 장(杖) 1백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今之鄕吏。締交宰相。關通察司。上藐官長。下剝生民。能不爲是。所屈者賢牧也。
萬曆以前。吏橫未甚。倭寇以來。士大夫祿薄家貧。而國中之財。盡入於五軍門養兵。於是貪風漸長。而吏習隨壞。數十年來。日甚一日。今至極盡地頭。余在民間。探究弊源。一。朝貴受賂也。一。監司自封也。一。守令分利也。
〇其締交宰相。厥有三路。一曰謫交。二曰宮交。三曰由交。謫交者何也。貴臣謫降。其奸猾揣時者。伸手擎之。慷慨忠憤。有若尙氣好義者然。貴臣初逢。流落窮愁沮蹙。忽遇此人。感鐫骨髓。防禁方嚴。而此吏通其書信。飮食方苦。而此吏繼之酒肉。他生冥報。與之相約。一朝世局翻變。龍起洛波。則此吏薰天勢焰。與之同隆。不惟是也。貴臣流落。猶有其黨。尙秉朝權。謫中所請。其施必迅。金鷄未唱。而先享其利。此吏之所以好義也。旣交之後。土紬細布。珍鱐大鰒。委輸其門。於是守令辭朝。先託此吏。監司飮餞。已聞其名。上官之朝。進而賜顏。行部之日。召而賜饌。於是退而行惡。無天無地。此其一也。宮房田庄。多在遠方。宮房之孫。又多權門。照管庄事。遂得締交。得勢行惡。亦如上法。此其二也。所謂由吏。吏房出舊官解由者。謂之由吏。 涼則絶之。炎則締之。受之者。不知我炎。但見彼忠。以賂爲贈。以囑爲乞。盡力推薦。以固其交。得勢行惡。皆如上法。此其三也。
〇上官之日。召群吏。令曰。我來之日。某宰託某吏。係是令前。始不深治。自今日下令之後。如有一尺之札。復入官門。則厥吏嚴刑一次。永汰勿敍。官不食言。汝其觀之。遂以此令。大書刻板。揭之吏廳。如有犯者。如約勿貸。
〇余久在縣城之中。見縣令黜陟。專在吏手。巡營邸吏。與吏相應。虛譽寃誣。惟意所欲。此由監司縱吏廉問。信爲腹心故也。曲在監司。非牧之所能救也。然是非之心。得於天賦。牧之所爲。淸明無累。則縣吏邸吏。亦不爲是。若其所爲不法。而謟附奸猾。欲免其害者。一孔纔防。一孔又潰。終亦無益。唯有自修二字。猶爲遠害之良策也。
〇大典。有原惡鄕吏條。其律至嚴。若是者。殺之而後。乃除民害。然守令無殺人之權。宜密議於監司。以圖行法。
經國大典曰。元惡鄕吏。操弄守令。專權作弊者。陰受貨賂。差役不均者。收稅之際。橫斂濫用者。冒占良民。隱蔽役使者。廣置田庄。役民耕種者。橫行里閭。侵漁營私者。趨附貴勢。邀避本役者。避役在逃。隱接村落者。假仗官威。侵虐民人者。良家女及官婢作妾者。許人陳告。亦許本官京在所。本邑人仕於京爲宰相者。名曰京在所。 告司憲府。推劾科罪。犯徒者。永屬本道殘驛吏。犯流者。永屬他道殘驛吏。守令知而不擧劾者。以制書有違律論。
〇案法非不具。患不行耳。祖宗制法如此。無故廢之不用。仰何故也。京在所擧劾之法。使上下中外。血脈流通。風聲振動。小民之幽冤隱痛。得以鬯達。此法廢而郡縣小吏。放恣無忌。天地不怕矣。噫。將若之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