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시리즈]
바닷바람이 들려주는 찬란한 이야기 - 태안을 이야기하다
| 지역 : 안면읍 창기리
| 소재 : 삼봉해수욕장
| 시대 : 현대
| 관련 : 관광자원 노을길
| 내용 : 삼봉해변을 둘러싼 지형지물에 대한 전설과 이름에 얽힌 유래.
도시를 벗어나 삼봉해변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의 바다.
| 작가 : 가옥관
검푸른 소나무 사이사이로 짭조름한 향기가 갯바람에 실려 온다. 콧방울 벌름거리며 맘껏 호흡하니 회색빛 도시의 빽빽한 조형물에 둘러싸여 숨 가쁘게 달려온 답답증이 한순간 후련하다. 그 자리에 멈춘 채 솔 숲 하늘거리는 들풀이 된다.
안면도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나게 되는 소나무 군락의 그늘 아래 해변길이 말쑥한 바다, 삼봉. 시골 동네 아저씨 같은 삼봉의 이름 유래를 찾아볼까.
전설은 대체로 슬픈 이야기가 많은데 삼봉의 전설도 애틋함이 물씬하다. 삼봉해변 첫머리에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세 개의 봉우리는 까마득한 옛적에 인색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죽은 세 자매의 무덤이라 한다. 그 앞에 또 하나의 작은 바위를 어부 아내의 화신이라 여겼으며, 바위에 뚫린 구멍은 승천하는 용이 수전노 어부를 데리고 나왔다 해서 ‘용난구멍’이라 전해진다. 요즘 시대에 황당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액면 그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어느 수전노 어부가 가족에게 어지간히도 못되게 굴어서 용이 끌어갔나 보다’라며 나름대로 각색을 해 본다.
삼봉의 인근 바다에는 ‘각시녀‘라는 바위섬이 있는데, 그곳은 파도가 거세고 수심이 깊어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어도 바다 밑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명주실 한 타래의 길이는 대략 50m라고 하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어선들은 그 지점을 지날 때 실에 바늘을 꿰어 넣고 가야 아무런 사고 없이 지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한다. 어느 날 혼인을 앞둔 신부를 태운 배가 그 곳을 지나다가 거센 풍랑에 그만 바다 깊이 침몰하여 신부가 죽었는데 그 후 바위가 생겼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그 바위가 한 맺힌 각시의 혼이 깃든 바위라 해서 각시녀로 부르고 있으며, 그 바위는 판판하여 금방이라도 물속에 잠길 것 같은데 만조가 되어도 바위 꼭대기는 물 밖에 드러나 있다고 한다.
언제부터 구전되는 이야기인지 모르나 구구절절 슬픈 전설은 모두 사람들이 지어낸 것인 줄 알면서도 사실처럼 들려지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 자연물이라는 대상에 의지하려는 습성이 나에게도 이미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어 그런가 보다.
세 봉우리 옆으로는 누가 갖다 놓은 것처럼 두 개의 바위가 우뚝 서 있다. 마치 사이좋은 남매 같다 하여 남매바위라 부르고 있으며, 그리 보아서인지 날씬한 바위는 연약한 동생 바위 같고 튼실한 바위는 듬직한 오빠 바위로 보인다. 그 맞은편에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바위는 선바위 혹은 촛대바위라 한다. 예부터 아이를 갖지 못한 아낙들이 돌을 갈아 떼어가거나 정성껏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으레 바다의 풍경만을 담으며 무심결에 지나쳐 왔던 곳에서 사실이든 허구이든 아름다이 전해진 이야기를 되새기며 한소끔 슬퍼졌던 마음에 한 걸음 한 걸음 의미 깊은 시간으로 차곡차곡 채워진다.
어디까지 걸어볼까. 어느 쯤에 동그마니 앉아서 바다를 즐겨볼까.
널찍한 여유를 부리니 삼봉해변은 마치 나만의 정원.
소나무 숲 오솔길의 보드라운 모래는 발바닥을 간질이고
선선한 그늘 아래 언뜻 언뜻 뺨을 스치는 솔내음도 나만의 선물.
일상의 북적이는 소란 속에서 빠져 나와 홀가분해진 마음을 더해 느릿하게 걸으니, 앗! 청솔모다. 아주 가까이 마주쳐 나는 신기하고 기뻐했지만 그 아이는 화들짝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잠시 멈춰 마주 바라보더니 촉빠르게 나무를 타고 사라진다.
삼봉해변은 아직까지 모래언덕을 그대로 보존하여 바다와 숲의 경계인 모래밭에서 서식하는 야생화들이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길가에 함초롬히 피어난 분홍색 해당화가 사랑스런 표정으로 나에게 손짓 한다.
아하! 해당화에게도 슬픈 전설이 아로새겨 있네.
옛날 아주 먼 옛날, 연인이 사랑을 속삭이며 해변을 걷고 있었다네.
그 때 갑작스럽게 큰 파도가 연인을 덮쳤다네.
남자는 여인을 뭍 쪽으로 밀어내고 자신이 그만 파도에 묻혀 죽고 말았다네.
여인은 남자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섧게 섧게 울었다네.
그 눈물이 남자의 몸에 닿자 그 자리에 분홍빛 해당화가 피었다네.
하늘과 키 재기 하는 나무마다 휘돌아 가는 갯바람이 활짝 펼친 손가락 사이로 매끄러운 스침이 신선하다. 그 바람 타고 왔을까? ‘삐리리 삐이’ 앙증맞은 꼬마새 한 마리. 날쌘 걸음으로 해변까지 나를 놀리듯 유인한다.
망설일 것 없지. 솔밭 오솔길을 벗어나 너른 해변에 발을 디디면 파도가 내뱉은 하얀 거품의 촉감을 만끽하며 폴짝이는 유쾌함을 누린다.
풋풋한 봄 바다의 세상이
썰물의 잔등 위를 타고 사라지면
한바탕 철새가 놀고 간 자리에
사람들의 여름이 영글어 진다.
오수를 누리는 갈매기의 희디흰 기지개.
수평선 가득 유영하는 빛의 조각들.
물비늘 반짝이는 바다 한가운데 아련하게 너울대는 등대도
가만사뿐 귀 기울이며 연인들의 속달거림을 훔친다.
본문은 태안군청에서 발행한 이야기책 [바닷바람이 들려주는 찬란한 이야기 - 태안을 이야기하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작가설명 : 가옥관
소주 가씨로, 태안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태안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온라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첫댓글 2017년 게재된 글인데
뚜버기님의 삼봉 현재 모습 게시글을 보고
벌써 7년이나 지난
내 글이 생각나 옮겨봅니다.
와~!!! 지기님이 책도 내셨군요.
그리 아름다운곳인데 어느 인간의 발상으로 그 모양을 만들어 놓았는지
아직도 마음이 거시기합니다요. 정 전망데크를 설치하겠다면 차라리
초입인 1봉쪽은 올라가는길이 있었으니 그쪽에다가
설치를 했으면 훼손도 덜 되고 덜 흉해 보였을텐데...
그 데크가 놓인 쪽에 참나리꽃이 무성했는데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