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수행처
수좌가
어느 산중에 머무르든지 그곳이 수행처이고,
주린 배는 선열로서 채울 일이지
무슨 수행처니, 토굴이니 하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도 처음부터 개인 수행처를 생각한건 아니다.
깨달음의 길은 멀고 험난하고, 또한 기약조차 없다.
나도 한동안은
걸망 지고 구름처럼 떠도는 걸 원으로 세웠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마음이야 변함이 없지만,
이것도 나이라고 들고 자꾸 몸에 이상이 생기니
자연히 맘 편히 쉴 수 있고,
평소 꿈꾸어 오던 수행 도량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출가 무렵 몸이 많이 안 좋았다.
어찌됐건
그 인연으로 발심해서 출가했으니
제불보살님의 인도를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또한 불보살님의 가피로 아직까지
숨쉬며 수행하고 있으니 더욱 감격할 수밖에.
그러한
내가 출가할 때 세운 원 하나가
내 공부를 어느 정도 한 후에는
몸이 아파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스님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쉬면서 정진하고 또 몸이 회복되면 다시 대중처소로 나가서
정진할 수 있는 수행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이었다
종단이나 본사에서는 전혀 그런 쪽으로
관심조차 없으니 나 같은 무지렁이라도 나설 수밖에...
그분들을 위한
수행 공간은 무엇보다도 환경이 좋아야 한다.
인적이 드문
물 좋고 공기 맑은 곳이면 어느 곳이나 괜찮겠지만,
대중들이 같이 울력하며 먹고살 만한
넉넉한 채소밭과 찻물 걱정 안할 정도의 물,
그리고 가능하면 의지할 수 있는 산자락이 넓어
골골마다 토굴 한두 개씩 지어 자유롭게 정진할수 있으면 좋을 듯하다.
대중방은 언제든지 정진할 수 있게
개방을 하고 공양은 한곳에 모여 같이 한다.
수행은 서로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되
무문관 수행을 하든지
아픈 몸 회복을 .위해 자유롭게 정진을 하든지
혹은 그런 스님들을의 호하며 복을 짓는 정진을 하든지.
사부 대중이
---'수행'이라는 한마음으로 모인 공동체였으면 하는 것이다.
인연 따라 복력에 따라 수행처의 규모도 정해지겠지만,
움막이면 어떻고 초가집 몇 채면 또 어떠라.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꼭 이런 몸과 마음이 힘들고
아픈 수행자들이 맘 편히 쉬고 치료하고 다시
제방 선원으로 나가 정진할 수 있는 수행처를 만들어야 한다.
몸이 아파 수행도.
치료도 제대로 못 하는 스님들을 위한 공간을 만 드는 것.
이것이 내가 평생을 두고 원을 세우고 있는 것 중 첫 번째다
아래 그림은 언젠가 세워질 수행처를 형상화해서 만들어본 것이다
하늘이 잔뜩 흐려 있다.
바람도 꽤 쌀쌀하다.
오늘 아침 포단 위에서 왜 이리
설움의 눈물이 복받치는지 모르겠다.
그래. 울고 싶을 때 실컷 울자.
좌복 위에 엎드려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희미하게 들리는 빗소리에 일어나 보니 좌복에 눈물이 범벅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고,
외로움도 주지 않았는데
오늘 내 가슴에 쏟아지는 비,
누구의 눈물이 비 되어 쏟아지나.
어제 나는 사랑에 젖고 오늘 나는 비에 젖네.
바람 한 점 옷깃을 스쳐도 상처 받는 이 가슴이
오늘은 비에 젖고 외로움에 젖네
------<내 가슴에 내리는 비>
양인자 씨가 시를 쓴 것에
조용필이 부른 <내 가슴에 내리는 비)다.
이 노래 정말 잘도 만들었다.
아. 오늘은 정말 왜 이리 하염없이 눈물이 나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그렇게 즐겁게 해주던
비가 오늘은 나를 또 이렇게 울리는구나
비야, 억수로 쏟아져라
오늘은 너도 울고 나도 울고
어디 한번 부둥켜 안고 실컷 울어나 보자
오늘부터
큰절 사시예불 시간에 맞취
옷도 다 갖취 입고 가사를 수한 다음
법당 쪽을 향해 삼배씩 하기로 했다.
그리운 부처님을 향해서----
방 안에서 처음으로 입는 가사다.
제불보살님 전에 온 마음 모아 삼 배를 올리는데
또 왜 이리 눈물이 앞을 가리는지 모르겠다.
절할 때마 다 좌복 위로 눈물이 빗물처럼 뚝뚝 떨어진다
가사를 수하고 예불까지 마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내 외로움과 고통, 번민까지 끝까지 위로해주는 이는
그래도
부처님 밖에,
가사밖에 없구나.
비가 밤늦도록 내리고 있다.
장마가 시작되나 보다.
5. 31.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