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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 여행기 제 7부
"스꾸냥산은 야생화의 천국이외다!"
-스꾸냥산-청두-그리고 작별-
7월 12일, 아침 7시 스꾸냥산을 향해, 단바 유스호스텔을 떠난다. 경찰의 통행불허로 인해 여정에 없던 2박을 바로 이 유스호스텔에서 묵었다.
전날 통행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온 바로 그 파출소 앞에 양광이 게스트 하우스 주인과 운전수가 와 있었다. 이미 어떻게 약을 써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경찰은 우리의 여권번호를 적은 후 통과시켰다.
<우리를 데릴러 온 운전수>
본래 3일간 일정이었던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스꾸냥산은 2일 일정으로 바뀌어 버렸다. 따라서 본래의 계획이 축소되어 야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중간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창밖으로 흙탕물이 흐르는 강이 보였다가, 비를 맞고 초록을 흠뻑 머금은 산과 들이 보였다. 중간에 보이는 관광 명소도 지나치고 일륭의 스꾸냥산을 향해 차는 무섭게 달렸다.
<스꾸냥산으로 오는 중 관광 명소로 보이는 곳>
스꾸냥산이 있는 르롱(日隆: 일륭)이라는 작은 도시는 칙칙하고 무거워 보이는 도시였다. 많은 관광객을 예상하고 만들어 놓은 대형 건물이 손님이 없어 문이 닫혀 있었다. 관광객도 거의 보이지 않고, 지나다니는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단지 현지 주민에게 희망이 있다면 앞으로 2년 뒤에 청두까지 고속도로가 뚫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서울 사람들이 밀어 닥쳐야 장사를 해 먹고 살 수 있듯이, 그곳 사람들에게는 청두에서 관광객이 밀려오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인 듯이 보였다.
<르롱시내 전경>
<양광이(阳光熠:양광습) 게스트 하우스. 이집의 아들 “양하오”가 보인다.>
<게스트 하우스 내부. 안에는 뱀술을 포함한 온갖 잡것이 다 있다.>
점심을 먹고 창핑꺼우(长平沟: 장평구)로 떠난다. 봐야할 곳은 많고, 시간에 쫓기고, 비는 내리고 갈 길은 멀다. 장핑꺼우는 위 지도에 나와있듯 그 계곡의 길이가 30km나 된다. 정말로 이 계곡의 묘미를 즐기려면 말을 타든, 도보로 가든 며칠 일정을 잡아, 마음 먹고 가야한다.
우리는 라마사라는 절까지는 버스로 갔고, 그 다음 도보로 당백고도보다 조금 더 올라갔다가 시간에 쫓겨 내려와야만 했다. 안내 책자에 따르면 이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사원이나 마을을 방문하여 장족의 문화를 접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런 것은 위 3개의 계곡 중 바로 장핑꺼우가 유일하다고 한다.
<창핑꺼우 입구>
<라마사 사원에서 바라본 창핑 꺼우>
<도보 중에 나타나는 나무>
바닥은 질척거리지만 길 위에 나무 판자를 잘 깔아 놓아서 걷는데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한참을 가다보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으니 바로 나무 줄기를 둘러싸고 있는 이끼류다. 한 나무에 기생하여 살 수 있는 식물이 수백종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이 나무에도 여러 종류의 풀이 기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진도의 관매 초등학교에서 이런 기생 나무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규모 면에서 여기가 훨씬 더 방대하고 그 층이 두껍다고 해야할 것이다. <참고: 나의 관매도 여행기>
<산신령의 수염을 연상시키는 이끼류>
<당백고도> 한참을 가다 보면 계곡의 폭이 넓고 물속에 죽어 있는 나무들이 병렬해 있는 진풍경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쉬면서 음식을 먹도록 탁자가 놓여져 있고, 조그만 가게도 있다. 바로 옆에는 2008년 5월 12일 문천 대지진 때 굴러 내린 돌이라는 큰 바위와, 이를 안내하는 광고문이 눈에 띈다. 나중에 구채구에 갔다 오면서 목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2008년 문천 대지진으로 그 지방은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사실 여기서 문천까지는 상당히 멀다. 그런데도 그 여파로 여기에도 이런 바위가 굴어 떨어졌다는 것은 지진의 참상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당시 65000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도 100만명이 부상을 입거나 이재민이 되었다고 한다.
<문천 대지진으로 떨어진 돌>
<바닥이 질퍽거려서, 나무판자 길이 없다면 말을 탈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길이 계속 이어진다.>
나는 판자로 된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걸어갔다 오려고 했다. 이미 앞서서 갔다 오는 사람들이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다. 조금 더 걸어 가면 아직 멀었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더 걸어가면 갈수록 내가 정해 놓은 목적지는 더 멀어져 간다는 것이다. 날이 저물어 더욱 속도를 내며 걸었다. 그러다가 너무 속도를 냈는지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죽기를 각오하고 더 갈까 망설이는데, 어디서 벼락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놈아, 약간 모자라게 살라 했거늘, 약간 넘치게 살려고 하느냐?" 내가 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위해 모험을 하느냐? 그때 생각난 것이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이었다. 죽을 줄도 모르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인간이다.
한 농부가 땅만 충분하다면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고, 악마도 무섭지 않다고 큰 소리쳤다. 이를 듣고 악마는 그를 유혹에 빠뜨리기로 한다. 농부는 개인 땅이 없는 소작인이다. 그러던 중 저축한 돈과, 새끼 말 한 필과 꿀벌 절반을 팔고, 아들을 하인으로 보내고, 형에게 모자라는 돈을 빌려서 간신히 약간의 자기 땅을 마련한다. 농사는 풍년이 들어 빚진 것을 모두 갚았지만, 그는 점점 더 많은 땅을 원하게 되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고, 또 다른 땅을 찾아 바시키르의 유목지로 간다. 그 곳의 촌장은 본인이 하루 동안 걸어서 돌아다닌 하루치의 땅을 모두 천 루블에 팔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쉼 없이 초원을 걷고 또 걸었다. 마침내 출발지로 돌아왔을 때, 농부는 피를 토하고 죽어버린다. 결국 죽어서 땅에 묻힌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정확히 2미터 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톨스토이: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목표를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고 내려오는 길은 훨씬 더 푸근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산천초목이 나에게 환영의 미소를 보내고 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 세상의 몇 만분의 일도 구경 못하고 죽는다. 되는대로 구경하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 이 나이에 내가 할 일이다. 사실은 이 글을 쓰면서도 "오늘 몇 시까지 끝내야지, 잘 써야지," 등의 생각들이 내 머리 속에 들어 있었지만, 갑자기 "되는대로 써야지, 안 되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다.
<걸어 나오면서 보이는 나무>
<다시 입구로 돌아와 원주민의 집안을 잠시 기웃거려 보았다.>
<르롱 시내의 수퍼마켓. 앞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육포가 눈길을 끈다.>
<양광이 게스트 하우스 집의 개: 눈이 어디 있는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노상 잠만 잔다. 늑대의 피를 받아서 인지 야행성이라 밤에만 돌아다닌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7월 13일, 멀리 스꾸냥산의 한 자락이 조금 보이다가 다시 안개에 묻힌다.>
<하이쯔거우로 가는 길목이다.>
하이쯔거우(海자溝)는 스꾸냥산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 길이는 약 20키로다. 바닥에 잔도(판자로 놓은 길)이 없어서 비만 오면 그야말로 다닐 길이 없는 곳이다. 초입에서부터 약 한, 두 시간 동안 산 언덕 전체가 꽃밭이다. 지금까지 보았던 야생화가 듬성듬성 나 있는 모양새라면, 이곳의 야생화는 그야말로 머리에 나 있는 머리털처럼 끝도 절도 없이 촘촘하게 박혀있다.
<하이쯔거우로 가는 산 위에서 왼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이런 산 길을 한 없이 간다.>
<중간 중간에 나타난 안내 표지판. 한국의 지리산 안내판을 연상시킨다.>
꽃밭이라! 내가 생각하는 꽃밭은 어렸을 적 우리집 옆 텃밭에 자라던, 맨드라미, 봉숭아가 꽃밭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갈 때 그리고 학교에서 올 때, 들어가 검은 고무신으로 벌을 잡던 붉은 자운영 논이 꽃밭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 이전에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한 언덕에 끝없이 펼쳐진 바로 스꾸냥산이 꽃밭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여기에서 촬영했어야 했다. 멀리 구름으로 반쯤 뒤덮인 스꾸냥산을 배경으로 온갖 들꽃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 폭동은 이제 한 줌의 얼음처럼 차갑다. 끝없이 펼쳐진 꽃 꽃, 꽃은 온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살아서 이런 곳에 와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다. 내 이제 더 무엇을 바라랴.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숨을 쉬지 않아도 가슴이 벅차다.
흩뿌리는 비를 맞아가며 마냥 걷는다. 저 구름은 나를 잡아보라 하고 저 하늘은 날 바라보라 하네. 꽃 빛깔에 취하고, 꽃 향기에 취해 나는 아무 말 없이 걸을 뿐, 그저 아무 말없이 걸을 뿐. 지금도 내 옷 소매에는 그날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지금도 내 눈섭에는 그날의 추억이 스며들어 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와 함께 묵은 한국 사람이 한 사람있었다. 그날 우연히도 그분과 함께 산에 올랐다가 함께 내려왔다.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한 그 사람은 현재 천진에서 아파트를 얻어 혼자 산다고 했다. 대학에 등록하여 중국어 공부도 하고, 공원에 나가 붓글씨 연습도 하고, 중국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하고, 또 중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과 등산도 다니면서 산다고 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금전적으로 어려워 사표를 내려했던 이야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는 약 1개월 간의 일정으로 사천성 일대를 돌거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도 그와 합세해서 한 번 돌아다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 혼자라면 그를 선뜻 따라 나섰겠지만, 아내도 옆에 있고, 또 내 나름으로 가보고 싶은 곳도 따로 있어서, 미련을 남긴 채 그와 헤어져야 했다. 꽃은 사람을 취하게도 하고, 제 정신이 들게도 하나보다.
꽃밭을 지나면 진흙 구덩이가 나온다. 스꾸냥산은 바닥이 질퍽한 진흙으로 되어 있는데, 장마철이라 그야말로 귀신도 빠지지 않고는 걸어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여기 진흙 구덩이다. 말이 다녀서 푹 파인 좁은 길에 물이 가득 고여 넘쳐 흐른다. 얼음판처럼 바닥이 미끄러워서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흙탕물에 덜푸덩 엉덩방아 찧는 것은 시간 문제다. 동양인은 특히 한국인은 아주 조심스럽게 피해가는 듯 했고, 서양인들은 빠지건 말건 그냥 걸어가는 듯 했다. 온간 신경을 써서 발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요, 빠지건 말건 푹푹 걸어갔다가 나중에 씻어내는 것이 서양인의 태도인 것 같았다.
<어느 서양여자>
<마부도 피할 수 없는 진흙 구덩이>
<대피소>
본래의 목표는 호수가 있는 화해자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길이 나빠서 중간에 있는 대피소까지 가니 더 이상 걸어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 전 같았으면 죽음을 무릅쓰고 더 걸어 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과감히 중도에서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중도에서 포기하는 것의 통쾌함을 내 더 일찍 알았다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이다. 대부분의 중국인들도 여기 산장까지만 왔다가 돌아가는 듯 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창핑꺼우와 마찬가지로 며칠 일정으로 산에 올라야지 어차피 하루 일정이라면 이 산의 반의 반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을 사서 먹는데 중국인들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여러 명이 말을 타고 가는데, 마부의 수를 줄이기 위해 맨 앞에 있는 말과 맨 나중의 말에만 마부가 함께하고, 중간에 있는 말에는 마부 없이 관광객이 말을 타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중간에 마부가 없는 말에 탔던 사람이 말에서 떨어져 다쳤다고 한다. 그런 경우 과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하는 문제였다. 누가 책임을 질지, 어떤 결론이 났는지 모르지만, 어차피 마부는 보험도 들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고 마부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니, 결국 떨어진 놈만 손해 보는 쪽으로 결말 났을 것이다.
<약 1분 동안 잠시 스꾸냥산의 모습이 보였다가 다시 사라진다.>
다시 내려오면서 꽃밭을 본다. 비를 머금어서 인지 꽃은 더욱 활기차고 생기가 돈다. 아침에 올라갔을 때가 30대의 꽃이라면, 비름 촉촉히 맞은 꽃은 20살이 채 안된 소녀의 꽃이다.
멀리 간간히 보이는 마부와 말, 듬성듬성 나타나는 도보 여행자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야크, 그리고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염소 모든 것이 "전원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비를 맞고 용감히 걷는 사람, 비를 피해 우산을 쓰고 들꽃을 감상하며 걷는 사람,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기 위해 징기스칸처럼 말을 몰고 달리는 마부, 떼를 지어 일렬로 조용히 걷는 일본 노인들, 시끌벅적하게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걸어가는 서양 젊은이들---모든 것이 바로 여기에서 공존한다.
그날 밤, 상추에 삼겹살이 들어왔다. 삼겹살이 너무 커서 그집 아이에게 가위를 가져오라고 했다. 왜 가위를 가져오라고 했는지 영문을 모르는 주인집 아이 "양하오"는, 초등학생 아이들 종이 접기 할 때 쓰는 조그만 가위를 가지고 들어왔다. 다시 큰 가위를 가져오라고 하니 다시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진짜 안방 큰 가위를 가져왔다. 그 가위로 삼겹살을 자르는 것을 보고 놀라는 아이의 표정이라니! 한국인들 이상도 하다고 했을까 아니면 한국인들 머리가 좋다고 감탄을 했을까? 아마 양쪽 다 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위로 고기 자르는 것은 한국인뿐이 없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도 가위로 고기를 잘라 본 적이 없다. 하기야 어렸을 때, 자를 고기가 있어야 칼로 썰건, 가위로 자르건, 입으로 물어 뜯건 했을 터인데, 없는 고기를 어떻게 자른다는 것이냐?
맥주와 조그만 백주술이 5병이 들어왔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듯한 사람들이 전기 난로 주위에 몰려들어 홀짝홀짝 그 술을 다 마셨다. 일부는 옆에서 옷을 말리고, 신발을 말렸다. 그리고 끝없이 이야기하며 스꾸냥산의 밤은 흘러갔다.
7월 14일 아침 6시 15분, 어둠을 뚫고 청두를 향해 우리의 찝차는 출발했다. 물으나 마나 길에는 돌이 떨어져 있고, 흙이 쌓여 있었다. 수직의 바위를 깎아서 만든 길이어서 인지, 자동차는 터널처럼 생긴 바위 밑 길을 바람처럼 달렸다. 굽이치는 물과 뱀처럼 굽어진 도로를 돌고돌아 무서운 속도로 자동차는 경주한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여름이다라는 것을 내 몸이 먼저 알고 옷을 벗으라고 했다. "아이구 이제 더워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몸은 청두에 와 있었다.
<청두 오는 길>
<중간에 잠깐 쉰다.>
<중간에 쉬면서 과일을 사먹는다>
<청두에 도착>
<따이루라는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젊은이들. 청두 시내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동승하여 길을 안내하고 돈을 받는 사람>
그날 저녁 마지막 만찬이 있었다. 심스코지 게스트 하우스 식당에서 종파티를 벌린 것이다. 볶음밥, 감자튀김, 샐러드 등의 요리가 나왔다. 모두들 고생은 했지만 왜 그런지 내일 헤어진다는 것이 아쉬운 듯 했다.
나는 한국을 출발할 때, 하마터면 오지 못했을 일이 생각이 나서 그 문제를 꺼내 들었다.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여 부부 중 한 사람이 여행을 못 가게 된다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하겠는가?" 부부가 함께 가지 말아야 한다는 쪽보다는, 혼자라도 가야한다는 쪽이 더 많았다. 나중에 욕을 먹든 어떻게 되든 아마 나도 혼자 여행을 갔었을 것이다.
<일행이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한다.>
다음 날 즉 7월 15일, 아침 6시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공항으로 출발하는 사람들을 전송하러 호텔 밖으로 나왔다. 일행 12명 중, 9명은 귀국 길에 오를 예정이고, 주선생님은 운남성 여행에 합류하기 위해 쿤밍으로 떠날 것이다. 나와 아내 두 사람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일단 주저 앉고 보는 처지가 되었다.
택시를 타는 동료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왜 그리 쓸쓸한지, 그리고 마음이 왜 그리 허전한지, 내 마음을 표현하기 힘들다. 전에는 항상 함께 이동하고 함께 귀국했었다. 그러나 어쩌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보니, 이산가족의 슬픔이랄까, 헤어져야 할 사람들의 운명이랄까, 알 수 없는 서글픔이 가슴 한 구석에 파고 들었다.
그러나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은 헤어져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언젠가 또 이런 종류의 여행을 해서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난다면, 적어도 그 시간 그 자리에서만은 그들과 정말로 뜻있고 보람있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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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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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우~! 이렇게 길고 상세한 여행기....
정말로 대단하심니다... 잘보고 여행을 하듯이 ....기분에 빠져들게 하는군요...
알바트로스님의 필력이 대단하신 듯,, 시인 아니면 수필가라고 생각되는데요.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제 자신이 시공을 뛰어넘어 사천성 여행에 함께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육당 최남선의 심춘순례의 대를 이을만한 정말 대단하고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기행문이었습니다. ^ ^
가보진 않았지만 간거같은 기분이 드는건 아마도 선생님의 마음이 내용에 녹아 들어가 있어서 그런가봅니다
글을 읽으면서 즐거웠고 글을 읽으면서 감동받아서 사천성은 꼭가바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내요
잘읽고 갑니다 ^^
이번 사천성 여행후기를 읽는 내내...
여행 중 가지고 오신 여행 책자를 간간히 읽어주시던 친절한 곽선생님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듯 했습니다
소년의 감성과 청년의 기운과 장년의 장쾌함과 노년의 여유로움을 두루 겸비하신
곽선생님과 함께한 사천성 여행... 오래오래 기억될 듯 합니다..두분 모두 늘 건강하셔요~
저희와 헤어지고 이후 두 분만 떠나신 여행 후일담도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
어느덧 사천성 여행이 끝났군요. 좋은 사진 좋은 글 감사합니다.
구채구가셨던 이야기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안녕하세요. 곽선생님께서 여행기간 내내 틈틈히 준비하셨고 돌아오셔서 며칠동안 힘들여 정리하신 여행기를 단숨에 읽었습니다. 오래전의 일처럼 가물가물했던 기억들을 덕분에 새롭게 반추할 수 있었습니다. 무임승차하는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철저히 준비하신후 여행을 즐기시고, 멋진 여행기를 남기고자 여행에 몰두하셨던 곽선생님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멋진 여행기 속에서 곽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모선생님과 더불어 늘 즐겁게 여행하시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 기원합니다.(좋은 그림들 퍼가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지요........???)
사천성 함께 가신분들 사진은 여행기가 끝나면 정리해서 보내 드릴 예정입니다.
언제 일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곳은 하루종일 걸어도 좋겠네요. 야생화 언덕은 꼭 가보고싶네요
누님,,,,하루 종일 걸으면 힘들어요,,,,,ㅎㅎㅎ 쉬엄쉬엄 걸으셔야죠,,ㅎㅎㅎ
생생한 후기가 다음 사천성(동티벳) 여행에 참여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주 좋은 참고 자료가 될듯합니다,,,,생생한 후기 정말 감사합니다,,,,!!!!
이 여행기도 참 좋아요. 매번 경탄합니다. 이제는 선생님의 훌륭한 글에 대한 숭배의 마음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훌륭한 묘사와 더불어 지나치게 욕심내지 않게 된 삶의 여유 또한 빛나 보입니다.
다음에 중국을 여행하게 되면 곽선생님을 다시 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