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산(三峰山 222.1m)은 태인도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가 셋이어서 얻은 이름이나 나는 ‘셋’을 헤아리지 못했다.
정확히 어디에서 보아야 ‘삼봉’인지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으나 176.1m봉과 66.1m봉을 아우르는 듯하다.
삼봉산 전망데크에선 섬진강하구와 주위 조망이 훤히 열린다.
태인도(太仁島)는 전라남도 광양시 섬진강 하구에 위치한 섬.태안도(泰安島)·대안도(大安島)·태인도(泰仁島)등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태인(太仁)을 포함한 이 이름들은 모두 ‘크다’라는 의미에 유교적 개념을 담은 지명이다.
이 섬에는 김여익(金汝瀷, 1606-1660)이 우리나라 최초로 김 양식을 한 ‘김시식지’가 유적으로 보존되고 있어 답사를 겸하여 삼봉산 들머리로 삼았다.
천왕산(天王山)은 천황산 또는 문필봉이라고도 하며, 이 산이 보이는 곳에 재사가인(才士佳人)이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정상 남쪽능선은 청룡등으로 용의 혈, 산아래 능선은 거북형으로 구룡농주(龜龍弄珠)형이라고 한다.
망덕산(望德山)은 호남정맥의 끝자락으로 ‘덕을 보게 해달라는 뜻’인지, 아님 ‘망을 본 산’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호남정맥(湖南正脈)은 백두대간 주화산(珠華山)에서 내장산을 지나 영산강과 섬진강 유역을 가르다 광양 망덕산(197m)에서 끝나는 398.7㎞의 산줄기.
망덕산아래 바위벼랑에는 이채한(李採漢)이 세운 반구정(伴鷗亭) 정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새로 건립하여 부석정(浮石亭)이다.
이채한은 1728년 정희랑(鄭希亮)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부호군(副護軍)에 제수된 인물.
천왕산과 망덕산을 가르는 도로엔 출렁다리가 개설되어 있다.
시산제 행사장은 ‘별헤는 다리’와 ‘해맞이 다리’를 건너서 닿는 ‘배알도해변공원’.
배알도’는 ‘망덕산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어디 절을 하는 대상이 망덕산뿐이겠는가?
그 뒷전에는 천왕산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설파하고 있음이다.
섬진강변 데크를 걷노라면 ‘윤동주 유고보존 정병욱가옥’이 있다.
이 건물은 윤동주 시인의 친필원고가 온전히 보존되었던 곳.
윤동주(1917~1945)는 1941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이 원고를 그의 친우인 정병욱(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922~1982)에게 맡겨 이곳에 보관되다가 광복 후 1948년에 간행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이 가옥은 정병욱의 부친이 양조장과 주택을 겸해 지었으나 지금은 개축하였다.
삼봉산 코스: 김시식지-가족묘-삼봉산(222.1m)-데크전망대-계단--임도-동방국밥(3.35km,1시간 20분) ※ 차량이동.
천왕산·망덕산,배알도: 굴다리-(주)대신-천왕산-194.5m-태인대교 이정표-출렁다리-망덕산-부석정-화장실-정병주가옥(윤동주 유고보존)-배알도(별해는다리-해맞이다리)-배알도 수변공원(7km,3시간)
산행궤적.
파일.
삼봉산은 3.35km에 1시간 20분.
천왕산, 망덕산과 배알도는 딱 7km에 3시간이 걸렸다.
천왕산과 망덕산의 고도표.
천왕산과 망덕산, 그리고 배알도(별헤는 다리~해맞이 다리).
표지기를 미리 준비하였으나 천왕산의 氣에 제압되고, 주위 조망에 매료돼 천왕산 표지기 다는 걸 놓쳤다.
네비엔 '광양 김시식지(광양시 태인동 829-1)'를 입력하였고, 삼봉산 산행 후 12시에 3~400m 아래 큰도로변(동방국밥)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몇 채의 한옥 건축물이 담장 안으로 보인다.
이곳이 '김시식지'로 해은(海隱) 김여익(金汝瀷, 1606-1660)이 처음 김양식을 시작하였다.
김여익은 영암군 학산면 몽해(夢海)에서 태어나 1636년 병자호란이 일자 의병을 일으켜 종형 김여준을 따라 청주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을 하게 되자 고향을 떠나 장흥(長興) 동백동(冬栢洞)을 거쳐 1640년 태인도(太仁島)로 들어와 김을 시식하였다.
맞배지붕의 해은문(海隱門)을 들어서니...
정면에 4칸 팔작지붕의 영모재가 있다. 영모재와 출입문 삼문(海隱門)은 1919년에 지었다.
영모재는 현재 광양김시식지의 구심점이며 매년 음력 시월 십 일 종중에서 시제를 모시고 있다.
편액을 살펴보니 영모재(永慕齋).
석촌(石邨) 윤용구(尹用求) (1853-1937)선생의 글씨다. 선생의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조선말기~근대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다.
자는 주빈(周賓), 호는 석촌(石邨,石村)·해관(海觀)·장위산인(獐位山人), 여러 벼슬을 거쳐 예조·이조의 판서를 지냈다.
마루위에 걸린 상량문.
영모재 옆의 비석은 인호사사적비.인호(仁湖)는 태인(太仁)의 옛이름. 이 사적비는 1991년도에 세운 것.
우리들이 해은문을 들어서자 영모재에 있던 해설사가 부리나케 뛰쳐 나온다.
해설사를 중심으로 빙 둘러서 해설사의 해설에 귀기울이다 김역사관 안으로 들어갔다.
김 양식의 역사와 김 명칭의 유래가 적혀있다.
내 고향은 낙동김으로 유명한 낙동강 하구인 명지·녹산·송정 지구.따라서 김 양식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늘 보아온 터라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 명칭이 태안도 김 여익의 성인 '김'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된 것.
나는 어릴 때부터 그저 '낙동김'과 '전라도김'으로만 구분하였다.
'낙동김'은 한 속(100장)을 결속할 때 반으로 접은 모습이었고, '전라도김'은 100장이 편 채로 묶여져 있었다.
그게 내가 구분하는 방법.
영모재 뒷편에 있는 '김시식유물전시관'의 좌측 문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어릴 때 보아왔던 도구들이 눈에 익었다. 저 커다란 대소쿠리는 김을 씻을 때 쓰던 도구.
유물전시관 뒤편에 있는 인호사(仁湖祠)는 공의 위패와 묘표문를 모시기 위해 1994년에 지은 것.
용지마을 앞의 김시식지 유래비는 1999년 공이 처음 김을 양식했던 애기섬에 속했던 곳으로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이리저리 바삐 카메라를 돌려대다 회원들이 모두 밖으로 나온 것을 알았다.
산길은 언제나 마을골목에서 헷갈리기 쉬운 법. 김시식지 옆을 지나 '태인저수지' 좌측으로 붙는다.
저수지로 향하다 뒤돌아 본 모습. 좌측에 김시식지가 보인다.
계단과 스텐울타리까지 설치된 산길.
뒤돌아본 모습.
고갯마루에선 밭 우측으로 진행...
밭 농로를 따르다 다시 산길로 붙는다.
잘 정비된 무덤길이다.
돌아보면 우측으론 태인초교에서 올라오는 길.
잘 닦여진 등로.
금세 커다란 표석이 반기는 삼봉산에 올랐다.
삼봉산에서 광양제철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바다건넌 남해.
현수막을 앞세우고...
기념사진.
그런 뒤 살짝 내려서면 데크 전망대.
광양은 바다를 끼고 있어 공단이 들어서기 딱 좋은 곳.
멀리 하동 금오산은 인상착의가 유별나다.
준비해간 표지기.
데크계단을 내려서자...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 동편둘레길을 따랐더니 잘못 들어섰다. 더 갔어야만 오롯이 능선을 따를 수 있었는데.
포장임도에 내려서 조금 진행했더니...
삼거리.
일행들이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갑시다." 좌측 비포장 임도는 참 걷기 좋은 길.
그늘 숲을 들어서...
싱글벙글 걷는 건 완전 힐링.
뒤돌아 삼봉산을 올려다 보지만 "어데어데가 삼봉이고?"
큰 도로에 내려서 우측 도로변을 걸어...
김시식지 입구에 도착을 한다. 우리 버스가 기다리기로 하였으나 아직 김시식지에 대기중이란다.
동방국밥 3~400m 위에 김시식지가 있다. 나도 일찌감치 요기를 하였고, 그런 뒤 모두 버스에 탑승하였다.
네비엔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210-58'을 입력하여...
고개마루의 '(주)대신' 앞에 버스를 세웠다.
산길은 '(주)대신' 정문 좌측.
입구에서 안내판과 이정표를 확인한다.
안내판.
'(주)대신' 좌측으로 들어가 금세 천왕산 이정표가 안내하는...
좌측 산속으로...
매실이 익어가는 산길을 오른다.
세멘트길에선 다시 이정표의 길안내를 받아...
목계단이 놓여진 길을 따르니...
머위가 지천인 묵밭. 우리 어머니가 좋아하는 머위지만 패스.
데크 시설물이 있는 지점이...
氣가 펄펄 살아나는 천왕산 고스락.
천왕산 안내판.
내려설 능선을 바라보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좌측 출렁다리 건넌 망덕산.
조망이 좋아 미처 다 헤어리지 못한 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섬진강 건넌 하동 금오산.
천왕산 아래엔 또다른 범상치 않은 모습의 바위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표범? 도마뱀?
194.5m봉에서도 여전히 못다한 천왕산의 氣가 뿜어져 나온다.
"날 좀 보소" 자꾸만 손짓하는...
하동 금오산.
강건너 가야산(?).
주위를 둘러보다...
태인대교 이정표에 닿았다. 나물에 심취하여 망덕산을 포기한 사람이 탈출하는 곳.
좌로 꺾어 내리막을 내려서자 출렁다리 직전에서 B팀들이 거꾸로 올라오고 있다.
태인대교 이정표에서 내려갈려고 한다는 것.
출렁다리에서 바라보는 망덕산.
다리 건너...
망덕산 산길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안내도·이정표와 함께 있다.
사유지 울타리를 돌아 무덤위로 반듯한 산길.
돌아본 모습.
바위 옆 계단을 타고...
정수리에 올라서...
산하를 내려다 보다...
조금 더 오르자 △195.9m 삼각점봉이다.
망덕산 정상석은 조금 더 가야 만날 수 있다.
망덕산이 호남정맥의 시발점.
망덕산의 안내판.
산정을 조금 내려서자 천혜의 바위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Wow! 남해고속도로는 섬진강을 가로질러 동으로 내달리고, 그 건너에 군계일학의 금오산이 버티고 섰다.
범상치 않은 모습의 바위가 있어 허리를 숙이고 사진에 담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바위가 떠 있어 부석(浮石)이다.그래서 정자의 이름도 부석정이 된 것.
바위에 음각된 선자(仙者)들의 흔적.
그 아래의 정자는...
부석정(浮石亭). 아까 그 바위에서 이름을 따온 것.
섬진강 너머 금오산과 우측으로 깃대봉, 그리고 연대봉까지.
그 아래에 있는 바위는 세끼를 업고있는 거북이를 닮았다.
더 진행하다 만난 전망대에선 배알도가 보여...
줌인해 보았다.
섬진강은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전북·경남·전남의 3개도 550리를 굽이돌아 망덕포구에서 그 여정을 마무리해 남해로 흘러든다.
질러가기 위하여 약수터 방향으로 조금 진행해 보았으나...
군자는 대로.
망덕산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는 지점이 들머리.
예쁜 화장실이 있다.
이제부터 강변으로 난 데크를 걷다가...
새로 개축한 가옥으로 다가가...
안내판을 살핀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다.
무료로 개방하지만 굳이 안으로 들어가 성가시게 할 수도 없어 그냥 바깥의 자료만 카메라에 담았다.
시간에 쫓겨 주마간산.
시인과 정병욱 교수.
어렵게 보관한 유고는 해방 후 빛을 보게 된다.
시인과 교수는 5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같은 하숙집에서 친구처럼 지냈다는 것.
유고를 보존한 정병욱 교수 부모.
시산제 행사시간에 쫓겨 바쁜 발걸음을 하다 배알도에 이르는 '별 헤는 다리'를 바라본다.
'별 헤는 다리'라는 이름은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 가져온 것.
'별 헤는 다리'는 곡선을 그리며 설계되어 운치가 있었다.
배알도.
배알도 해운정(海雲亭)으로 오르는 데크계단.
엔조이 광양.
'해맞이 다리'를 건너다 돌아보는 배알도와 '별 헤는 다리'.
행사가 예정된 배알도 수변공원.
이미 준비가 완료된 상태.
2년여를 코로나로 휴행하다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재개된 첫 산행이니 천지신명께 산행개시를 알리게 된 것.
그것도 망덕(望德) 천왕)(天王)을 배알(拜謁)하는 배알도에서...
뒷풀이는 광양 현지에서 조달한 싱싱한 남도의 맛.
보리숭어다.
-별 헤는 밤 -
계절이 지나 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 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 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 동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