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Who am I ?)
by Sri Ramana Maharshi(라마나 마하리시)
♧ "나"는 누구인가?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이 몸은 내가 아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내가 아니다.
말하고, 움직이고, 붙잡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다섯 가지 운동기관은 내가 아니다.
생각하는 마음도 내가 아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도 내가 아니다.
♧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나면
그것들을 지켜보는 깨달음 그 자체(awareness)만이 남는다. 그것이 바로 "나"다.
♧ 그 각성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
그것의 본질은 실재(Sat), 의식 (Chit), 지복(Ananda)이다.
♧ 어느 때에 "참된 나"(眞我)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인식이 사라질 때 "참된 나"를 깨달을 수 있다.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인식과 "참된 나"에 대한
깨달음과의 관계는 뱀과 밧줄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길을 가던 사람이 길에 떨어진 밧줄을 뱀이라고
잘못 오인하는 경우 그 뱀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밧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생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그릇된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참된 나"를 깨달을 수 없다.
♧ 어느 때에 현상계가 사라집니까?
현상계에 대한 모든인식과 행위의 원인은 마음이다.
따라서 마음이 사라지면 현상계도 사라진다.
♧ 마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
마음이란 "참된 나"의 안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힘이다. 그것은 모든 생각을 일으킨다.
생각과는 별개의 독립된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생각이 바로 마음의 본질이다.
또 생각과는 별개의 독립된 현상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꿈이 없는 깊은 잠을 잘 때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따라서 현상계도 없다.
그러나 깨어 있을 때나 꿈꿀 때에는 생각이 있으며 따라서 현상계도 있다.
거미가 몸밖으로 거미줄을 뽑아냈다가
다시 거두어들이듯이 마음도 바깥으로 현상계를 투사했다가 다시 안으로 거두어들인다.
마음이 "참된 나"의 밖으로 나올 때 현상계가 나타난다. 따라서 현상계가 나타날 때 "참된 나"는 나타나지 않으며 "참된 나"가 나타날 때 현상계는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의 본질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마음은 "참된 나" 만 남고 사라져 버린다.
"참된 나"가 바로 아트만(Atman)이다.
마음은 항상 무엇엔가 의존하고 있으며
흘로 존재할 수는 없다.
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마음이다.
♧ 마음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탐구해 들어가야 합니까?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생각은 "나"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이 일어난 다음에 다른 생각들이 일어난다. 이는 마치 1인칭이 있고 난 연후에 2인칭과 3인칭이 있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마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 어떻게 하면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까 ?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계속
탐구해 들어감으로써 가능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계속하면
다른 생각들은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마치 다른 장작들을 다 태운 뒤에 스스로도 타버리는 불쏘시개 장작처럼 사라지는 때가 온다.
그러면 그때 깨달음이 드러난다.
♧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생각이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놓치지 말고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나에게"가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이렇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하면
마음은 점점 그 근원으로 향하게 되고
생각은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 다른 방법으로 마음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까?
이 방법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다른 방법을 통해서 마음을 조절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호흡조절을 통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호흡이 조절되는 동안만이며 호흡이 흐트러지면 마음이 다시 작용하기 시작한다.
사실 마음과 호흡의 근원은 같다.
마음의 본질은 생각이고 최초의 생각은 "나"라는 생각이며 이것이 바로 에고(ego)인데, 바로 이 에고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호흡도 시작된다.
따라서 마음이 가라앉으면 호흡이 조절되고,
호흡이 조절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나 깊은 잠을 잘 때에는 마음이 사라져도
호흡은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신의 뜻이다.
그럼으로써 육체가 유지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 육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깨어 있는 상태와 삼매 상태에서는
마음이 가라앉으면 호흡이 조절된다.
호흡은 거친 형태의 마음이다.
마음은 죽기전까지 육체안에서 호흡을 유지하며,
죽음과 동시에 호흡을 가지고 가버린다.
따라서 호흡조절 훈련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마음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호흡조절과 마찬가지로 신의 형상에 대해 명상을 한다든가, 주문(만트라)을 외운다든가, 음식을 절제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신의 형상에 대해 명상을 하거나
주문(만트라)을 외우는 것은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잡다하게 있으면
생각 하나하나의 힘은 약해지지만
한 생각만 있으면 마음이 집중되어 그 힘이 강해진다.
이러한 마음상태에서는 자아탐구가 쉬워진다.
♧ 대상에 대한 생각들이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 모든 생각들이 언제 없어집니까 ?
진아에 대한 명상이 깊어짐에 따라
그 생각들은 사라져 간다.
♧ 시작 없는 과거로부터 계속되어 온 이 대상에 대한 생각들이 모두 없어지고, 순수한 "참된 나"로서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합니까?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를 따지지 말고
"참된 나"에 대한 명상에 모든 힘을 기울여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