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 지나 피안의 세계로
산사(山寺)는 한자 의미 그대로 산에 자리한 사찰이다. 고려시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불교는 국교와 같았고, 그래서 경주의 황룡사나 분황사 등과 같이 대도시 한가운데에 큰 사찰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통일신라 말 이후 선종이 발달하면서 사찰들이 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조선시대 이후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1) 정책에 의해 도심 사찰은 다수가 강제로 철폐되고, 유교 시설 등으로 개조되었다. 그런 가운데 억불 정책을 간신히 피한 산사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한국 사찰의 주류가 되었다.
이처럼 특유의 조건에서 발달한 한국의 산사 문화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한국의 산사 7곳(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 경상북도 안동시 봉정사,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 충청남도 공주시 마곡사, 전라남도 순천시 선암사,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이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산사를 찾으면 먼저 멋진 숲길이 맞이한다. 속세를 벗어나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다. 우리나라 산사는 대부분 초입에 조성된 멋진 숲길을 자랑한다. 호젓하고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저절로 심신이 상쾌해지고 영혼이 맑아진다. ‘성역’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는 듯하다. 아름다운 산사의 숲길로는 해남 두륜산 대흥사 숲길이 대표적이다. 하늘이 안 보일 정도의 울창한 십리 숲 터널이 끝나는 곳에 있는 해탈문(解脫門)에 들어서면, 두륜산이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별천지가 펼쳐진다. 일주문에서부터 1㎞ 정도 이어지는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 부안 내소사 전나무숲길, 합천 해인사 홍류동 계곡 숲길,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 숲길, 경주 기림사 숲길, 의성 고운사 숲길, 양산 통도사 소나무 숲길 등도 너무나 좋다. 특히 통도사 숲길은 최근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2)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다른 산사의 숲길과 달리 보행 전용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산사를 수놓는 초목은 수행의 도반이기도
산사 숲길을 지나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이 수놓아 ‘피안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산사의 매화나무, 꽃무릇, 배롱나무는 수행자들이 그 성품을 생각하며 수행의 도반으로 삼고자 심었다. 가장 먼저 고매(古梅)가 봄소식을 전한다. 매화 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고매는 특히 오래된 산사에 많다. 화엄사 각황전 앞 홍매, 선암사 백매와 홍매(선암매), 통도사 홍매(자장매), 백양사 홍매(고불매) 등이 해마다 이른 봄이 되면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끌어들인다.
무더운 여름에는 배롱나무 고목들이 피운 꽃들이 산사를 수놓는다. 영동의 백화산 반야사의 배롱나무는 산사 배롱나무 중 최고일 것이다. 수령 500년이 넘었다는 이 나무가 꽃을 피운 모습은 보는 이들 누구든 탄성을 지르게 한다. 부처에 대한 꽃 공양을 목적으로 대웅전 앞 양쪽에 심은 고창 선운사 배롱나무를 비롯해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 밀양 표충사, 김제 금산사, 김천 직지사, 양산 통도사, 하동 쌍계사, 장성 백양사, 서산 개심사, 계룡산 신원사 등의 배롱나무도 여름 산사를 붉게 수놓는다.
배롱나무 꽃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할 때, 산사 주변은 또 다른 붉은 색으로 물든다. 꽃무릇이 주인공이다. 꽃무릇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사찰 주변은 보름 정도 선경 같은 별천지로 변한다.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김제 금산사 등이 유명하다.
겨울철에는 푸르른 동백나무숲과 그 붉은 꽃이 볼거리다. 전각 뒤쪽에 30m 정도 폭의 긴 띠 모양으로 조성된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이 대표적이다. 강진 백련사, 구례 화엄사, 해남 대흥사와 미황사의 동백나무숲도 아름다운 산사 풍광을 더하는 데 한몫한다. 옛 절터인 광양 옥룡사지의 동백나무숲은 사찰 동백나무숲으로는 최대 규모일 것이다.
불교 문화유산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중심 법당
부처를 대신하는 불상을 모시고 있는 법당은 최고 장엄(莊嚴)3)의 대상이다. 그래서 중심 법당은 건물의 기초인 기단을 비롯해 법당의 문, 법당 안의 벽과 천장, 불상의 좌대 등 당대 최고의 조각가와 불화가 등이 최선의 솜씨와 정성을 다한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법당 처마와 천장 등 안팎에 장엄해 놓은 용조각과 단청, 불상 위 천장에 별도로 만들어 놓은 닫집, 다양한 벽화, 수미단의 조각 등은 우리나라 불교 문화유산의 정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법당의 꽃살문도 마찬가지이다. 부안에 있는 개암사와 내소사, 서산 개심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논산 쌍계사, 완주 화암사, 부산 범어사, 대구 동화사, 영천 은해사, 경산 환성사, 강진 무위사, 양산 통도사, 해남 대흥사 등의 중심 법당에서 불교 문화유산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영주 성혈사 나한전의 꽃살문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산사에서 유형적 아름다움과 더불어 무형의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1) 숭유억불: 유교를 건국이념이자 통치사상으로 숭상한 조선왕조에서 전대 왕조인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억압한 정책.
2) 무풍한송로: 소나무를 춤추게 하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길.
3) 장엄: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에게 올려 장식하는 일.
글, 사진. 김봉규(<절집의 미학>, <현판기행>, <불맥, 한국의 선사들> 저자)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3-05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