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옛 마을에는 마르지 않는 우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해오곤 했다. 아무리 가뭄이 심하고 날이 뜨거워도 언제나 한결같이 시원한 물을 뿜어주는 마을의 수호신 같은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가에는 여인네들이 모여 매일같이 빨래를 하고, 일을 하며 수다를 나누었고, 꼬맹이들은 돌멩이나 나뭇조각 등을 던지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사내들은 훤한 낮에도 자연스럽게 등물을 했고 여인네들은 어두워지면 조용히 모여서 깔깔 웃으며 수욕을 즐기곤 했다.
그래서 우물은 온 마을의 사랑방이고 만남의 장소였다. 그 우물과 뗄 수 없는 단짝이 있으니 바로 두레박이다. 우물의 물을 끌어올리는 두레박은 모든 마을사람의 손에 익숙한 정겨운 벗이었다. 힘이 센 장정들은 철철 넘치는 두레박을 힘껏 끌어올려 쉽게 많은 물을 퍼 올렸고, 힘이 약한 여자들이나 어린 아이들은 힘에 맞게 적당한 양의 물을 끌어올리곤 했다. 마을사람들의 손때가 자르르한 두레박줄은 언제나 윤이 나고 매끄러웠다. 가끔 찰랑거리는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네 아주머니나 누님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깜짝 놀래키고 싶은 묘한 장난기가 들기도 했다.
사람의 힘에 의지해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쓰던 시절 우리의 우물은 언제나 넉넉한 물을 공급해주곤 했다. 한 번씩 우물을 들여다보면서 저 속에는 무슨 신통이 있어서 이렇게 물이 솟아나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손으로 젖는 펌프가 나와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면서부터 우리에게는 하나 둘 뚜껑이 덮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우물을 들여다 볼 여유도 기회도 살아져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손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던 시절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다. 이후 전기펌프가 유행하더니 지하수를 직접 끌어올리는 수중펌프로 대체 된지 오래다. 이제는 어떤 마을에 우물이 있다고 하면 아직도 우물이 남아있나하고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며칠 전, 절대로 마르지 않던 어떤 산사의 샘이 말라버렸다. 아무리 가물다고 해도 샘이 마를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깜짝 놀라 샘으로 달려갔다.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헛바람만 뿜어낼 뿐 물이 나오지 않았다. 샘의 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샘과 연결된 전기펌프는 과열되어 있었다. 서둘러 모터의 플러그를 뽑고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이유는 허망할 정도로 단순했다. 식구 중 한 명이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몇 시간동안 방치하는 바람에 그만 샘이 바닥을 드러내고만 것이었다. 샘물이 많이 고인다고 해도 전기펌프로 끌어올리는 양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이 사건 이후로 식구들에게 두레박을 사용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한 번씩 던지곤 한다. 그러면 다들 농담처럼 하는 말인 줄 알지만 사실 속으로 진지한 고민을 담고 하는 말이다. 우리의 샘에 얼마만큼의 물이 고이는 줄도 전혀 모르고, 그저 수도꼭지만 틀면 무한히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샘물을 보고 그것이 소중함을 느꼈으면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물 부족 국가로 꼽히고 있고 가뭄이 심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금 괜찮다고 수도꼭지의 물이 늘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첫댓글 사실이고 말고 물 아껴야지요.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