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의 추억 - 박정희
박정희 대통령의 시
꼭 시인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은유시가 따라 다닌다.
다른 어느 시보다도 사람에 감정을 울컥하는 시(詩)가 세상을 아름답게 해준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4년 8월 15일 광복절에 아내 육영수 여사를 잃고 어느 해인가
거제의 저도로 혼자 휴가를 떠나 와서
육영수 여사에 대한 애듯함을 몇 편의 시로 표현을 했다.
바쁜 국정의 순간에서도 잠시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몇 편의 시가
읽은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애린게 한다.
부부의 사랑이란
아니, 아내를 먼저 잃은 세상에 모든 남자들은 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육영수를 국민적으로 추앙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누군가 유고시를 책으로 만들어 주는 이가 없으니...
저도의 추억 - 박정희
해와 달은 어제도 오늘도 뜨고 지고
파도 소리는 어제도 오늘도
변치않고 들려 오는데
임은 가고 찾을 길 없으니
저 창천에 높이 뜬 흰 구름 따라
저 지평선 너머 머나먼 나라에서
구만리 장천(長天) 은하 강변에
푸른 별이 되어
멀리 이 섬을 굽어보며 반짝이고 있겠지
저-기 저 별일까
저 별일꺼야
추억의 흰 목련(1974년 8월 31일 밤 박정희)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산천초목도 슬퍼하던 날
당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는 겨레의 물결이
온 장안을 뒤덮고 전국 방방곡곡에 모여서 빌었다오.
가신 님 막을 길 없으니
부디 부디 잘 가오 편안히 가시오.
영생극락하시어 그토록 사랑하시던
이 겨레를 지켜주소서!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1974년 9월4일 박정희)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번이나 다짐했건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
그 우아한 모습,
그 다정한 목소리,
그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 당신의 그림자,
당신의 손때, 당신의 체취, 당신의 앉았던 의자, 당신이 만지던 물건
당신이 입던 의복, 당신이 신던 신발, 당신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이거 보세요' '어디 계세요'
평생을 두고 나에게 '여보' 한 번 부르지 못하던
결혼하던 그날부터
이십사년간 하루같이 정숙하고도 상냥한 아내로서 간직하여 온,
현모양처의 덕을 어찌 잊으리
어찌 잊을 수가 있으리!
남산 이린이 회관
당신이 먼 길을 떠나던 날(1974년 9월 15일 박정희)
청와대 뜰에 붉게 피었던 백일홍과
숲속의 요란스러운 매미소리는 주인 잃은 슬픔을 애닯아하는 듯
다소곳이 흐느끼고 메아리 쳤는데
이제 벌써 당신이 가고 한 달
아침 이슬에 젖은 백일홍은 아직도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매미 소리는 이제 지친듯 북악산 골짜기로 사라져가고
가을빛이 서서히 뜰에 찾아 드니 세월이 빠름을
새삼 느끼게 되노라
여름이 가면 가을이 찾아 오고
가을이 가면 또 겨울이 찾아 오겠지만
당신은 언제 또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한 번 가면
다시 못오는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아! 이것이 천정(天定)의 섭리란 말인가,
아! 그대여,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리!
당신이 그리우면(1974년 9월 30일 박정희)
당신이 이곳에 와서 고이 잠든지 41일째
어머니도 불편하신 몸을 무릅쓰고 같이 오셨는데
어찌 왔느냐 하는 말 한마디 없오
잘 있었느냐는 인사 한마디 없오
아니야 당신도 무척 반가워서
인사를 했겠지
다만 우리가 당신의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이야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내 귀에 생생히 들리는 것 같애
당신도 잘 있었오
홀로 얼마나 외로왔겠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당신이
옆에 있다 믿고 있어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당신이 그리우면 언제나 또 찾아 오겠오
고이 잠드오
또 찾아오고 또 찾아 올테니
그럼 안녕
우주의 저 멀리 돌아오지 않는 육여사(1974년 11월 1일 박정희)
한국의 밤은 깊어만 가고 초생달 밤하늘에 은빛의 별
슬픔을 안겨준 국민의 벗이여,
꽃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마음
우주의 저 멀리 돌아오지 않는 육여사,
한국의 바다에 해가 저물고
산 하늘의 새 날아 가도다.
세월은 유사같이 행복은 사라지고
꽃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마음
우주의 저 멀리 돌아오지 않는 육여사!
경부고속도로 개통테이프
비 오는 저도의 오후(1976년 8월 5일 박정희)
비가 내린다.
그다지도 기다리던 단비가 바람도 거칠어졌다.
매미 소리도 멎어지고 청개구리 소리 요란하다.
검푸른 저 바다에는 고깃배들이
귀로를 재촉하고
갈매기들도 제집을 찾아 날아간다.
객사 창가에 홀로 앉아 저 멀리 섬들을 바라보며
음반에 흘러나오는 옛 노래를 들으면서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명상 속에 지난 날의 그 무엇을 찾으려고
끝없이 정처없이
비오는 저 바다 저 하늘을
언제까지나 헤매어 보았도다!
저도 바닷가에 혼자 앉아서
똑딱배가 팔월의 바다를 미끄러듯 소리내며 지나간다.
저 멀리 수평선에 휜구름이 뭉개뭉개 불현듯
미소짓는 그의 얼굴 저 구름속에서
완연하게 떠오른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이가 있는 곳에는 미치지 못한다.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뛰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망연이 수평선을 바라본다.
수평선 위에는 또 다시 일군의 꽃구름이 솟아 오르기 시작한다.
흰 치마저고리 옷고름 나부끼면서
그의 모습은 저 구름속으로 사라져 간다.
느티나무 가지에서 매미소리 요란하다.
푸른 바다 위에 갈매기 몇 마리가 훨훨 저 건너 섬쪽으로 날아간다
비몽(比夢)? 사몽(似夢)? 수백년 묵은 팽나무 그늘 아래
시원한 바닷바람이 소리없이 스쳐간다.
흰 치마저고리 나부끼면서 구름속으로 사라져 간 그대!
저도의 추억을 모래밭에 적는 박근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