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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대문인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광한
<슬픈 꽁트>
낭만(浪漫)에 대하여
김광한
<낭만(浪漫)이란 실현성이 매우 적고 환상적(幻想的)이면서 아름다운 미래를 지향하는 이상적(理想的) 낙천적(樂天的)인 상태를 말한다..낭만이란 말은 프랑스 로망, 로맨스가 일본으로 흘러가 낭만으로 된 것이라 한다.>
우리들의 젊은 시절, 애수(哀愁)란 미국영화가 있었습니다.흑백(黑白)영화였는데, 거기에 나오는 올드 랭 사인이란 주제 음악이 지금도 우리들의 귓전을 아련한 추억으로 이끌어 가곤 합니다. 워낙 오래된 영화라서 주연 배우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화면에만 나올 뿐, 지금쯤 저 세상에서 다른 살림을 차리고 있겠지요. 아무튼, 그 영화의 주제는 매우 단순한데, 그 영화의 줄거리나 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아마도 낭만 때문이겠지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인줄 뻔히 알면서도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하는 것 모두가 착한 심성(心性)을 가진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과연 그 영화를 본다면 옛날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주인공인 ‘로버트 테일러’는 영국군 장교이면서 명문가(名文家)의 장남인데 비해 여주인공인 ‘비비 안 리’는 생계를 위해 무대(舞臺)에서 춤을 춰야하는 무희(舞姬), 이 두 사람은 한해가 저물어 가는 사교장(社交場)에서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누게 되고, 이윽고 남자는 전선(戰線)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남자의 전사(戰死)통지, 당연히 여자는 슬퍼하고, 그러나 여자는 다시 생계를 위해 몸을 팔게 되고, 그런데 전사통지는 잘못 된 것이란 걸 알게 되고부터 영화는 심성들이 착한 관객들을 울립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런던 교(橋)에서 죽은 연인의 마스코트를 들여다보는 남자주인공의 늙었지만 품위 있는 고뇌의 모습에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소중한 낭만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요즘의 조직 폭력배들이 오로지 돈하나 때문에 회칼을 들고 설쳐대는 그런 영화에서 과연 낭만을 발견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냉혹한 현실에 살면서 과연 이런 유의 허황된 낭만이라 이름 하는 것들이 필요할까마는 사람이란 때로는 조금 바보 같은 맛이 있어야 사람의 냄새가 나고 각박한 현실을 살면서 숨통이 트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낭만이란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순수한 마음이라 할진데, 사람이 나이가 들어 이런 유의 낭만적 이야기를 많이 가진 사람이 정신적 부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수(歌手) 최 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에서도 나와 있지만 지금 이 나이에 무슨 낭만이 있겠냐만, 그래도 아련하게 남아 있는 추억의, 바보스럽기도 하고, 조금 우스꽝스런 이야기 속의 우리는 시간의 방(房) 속에서 아직도 어린 애들처럼 순수(純粹)를 얘기할 수 있어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남들처럼 영악스럽지 못해 70년 동안 살아오면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계 동팔 씨, 환갑(環甲) 지나 칠순 고개가 바짝 다가온 그에게 낭만적 사건이 찾아온 것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문과대학을 나와서 취직을 한 것이 잡지사를 비롯한 주로 종이와 연관된 경제적으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직업을 전전하다 보니 이 나이까지 굶어 죽지 않고 살아온 것만 다행이라 여기는 그에게도 낭만꺼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습니다.너절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바로 한 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한통의 전화가 집으로 걸려 왔습니다.
낮이었습니다.
“동팔 선생님이시죠?”
“예, 그렇습니다만.”
상대의 음성으로 보아 20대 후반의 아가씨 같았습니다. 직장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나이가 돼, 주로 집에서 시간이나 축 내는 그에게 이름을 또박또박 대면서 아는 체하는 아가씨, 도대체 누구일까? 가끔씩 밀린 전화요금 내라는 아가씨의 요금 독촉 전화 말고는 걸려올 전화가 없는데....
“저, 미스 고예요. 아시겠어요?”
“미스 고?”
“왜, 있잖아요. 옛날, 벌써40년 됐나...”
40년 전의 여자라면 목소리도 늙어 세월의 때가묻어 있어야 할 텐데 목소리는 20대 후반이니 도대체 누구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습니다.
“미스 고? 뉘신지 제가 나이가 들어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잘 기억이 안 나는 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해 주시지요.
“옛날 ‘시대일보’ 기자로 있던 미스 고예요. 이젠 아시겠지요.”
계동팔 씨는 그제 서야 간신히 과거의 방(房)속에 갇혔던 ‘파일’을 찾아냈습니다. 그 파일은 60년대 후반, 지금처럼 사는데 아직 주눅이 들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잠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팔 씨는 금방 ‘엔돌핀’이 돌았습니다.삶의 샘물이 치솟았습니다. 미스 고,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그의 일생에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런 여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미스 고, 사랑스런 여자, 그렇지 않아도 죽기 전에 한번 찾아보고 싶은 여자였습니다. 그런 여자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오다니, 참으로 낭만적이었습니다. 잘하면 재미있는 이야기 꺼리 하나 생기게 됐다는 생각에서 가슴이 설f레였습니다.
“미스 고? 생각이 나요. 그런데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어요?”
“다 아는 방법이 있지요. 제가 기자생활을 했다는 거 잊으셨어요? 호, 호.”
“그렇지요, 고춘자 기자. 고춘자 기자님 맞지요?”
“그럼요. 제가 바로 고춘자에요.”
동팔은 모처럼만에 재래식 이름을 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즘에야 순 한글로 ‘아름’이니 ‘별님’이니 하는 이름이거나, 서양식으로 ‘리처드니’하는 이름을 만들어 호적(戶籍)에까지 올리지만 우리의 젊은 시절의 여자이름이란 것이 일본식 이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일본식 이름인 ‘미찌꼬, 하나꼬’의 뒷 자(字)인 자(子)를 뒤에 붙임으로서 여자라는 것을 알릴 정도였으니까요. 일테면, 자(子)자(字) 돌림이 흔했지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네 글자 가운데 하와 동자만 빼고 ‘춘자’, ‘추자’ 등등 한문(漢文)자 가운데 붙이기 좋은 이름은 모두 동원한 시절이 있었던 것입니다. ‘춘자’도 그렇게 탄생했다고 생각하면 되겠지요.그녀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당시 인기 있던 만담가 장소팔 선생의 상대가 고춘자였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그녀는 동팔에게 있어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낭만 같은 것을 만들어 준 장본인(張本人)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동팔은 춘자와의 만남을 기대 했고 ,그 기대는 30년 만에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동팔은 그녀에게 먼저 만나자고 제의하는 것이 그녀의 가족들, 특히 그녀의 남편에게 어쩌면 무례함을 줄 것 같아서 주저가 됐습니다.혹시 인생 말년에 험한 꼴 당하는 건 아닌지. 그런데 그녀가 먼저 만나자는 제의를 해온 것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가 바로 봉천동인데 선생님도 거기더군요.”
동팔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몇 십 년 동안 자신의 집 근처 어딘가에서 서성거리면서 자신을 엿봤을 것이라는데 대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문협에서 발행한 문인 주소록에 새까맣게 기재(記載)된 동팔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이지요. 약속 장소는 동네의 야산(野山) 입구, 날씨가 좋다는 핑계로 돈 들어가는 장소를 피해 정한 곳이었습니다. 오후 8시,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시간대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동팔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녀가 왜 자신을, 그것도 40년 만에 만나자고 했을까? 그동안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슬하에 자녀는 모두 성장 했겠고, 어쩌면 할머니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소리는 40년 전의 그것과 똑 같았습니다. 동팔은 그녀와 함께했던 지난날의 ‘파일’을 생각하느라고 한숨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주변머리가 없어선지 총각시절이나 지금이나 변변하게 연애 한번 못한 동팔에게 있어 그녀는 딱 한번 스쳐지나간 비중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때, 그녀와 함께 했던 낭만 꺼리는 대략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은행잎이 보도에 깔린 덕수궁 돌담 길, 불란서 시인(詩人)인 구르몽의 시(詩)가 자주 등장합니다.
‘시몬,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는가.
오늘도 그대는 낙엽 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대의 하얀 얼굴을 생각 한다‘
고춘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던 돌담길의 추억, 그녀의 이름이 다소 품위와 거리가 멀어선지 그냥 미스 고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미스 고는 결혼 같은 거 생각해 보았어요?”
“아뇨. 전 결혼 않기로 했어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의 주인공 ‘알리사’와 같은 생각이군요.”
한껏 인격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읽은 책들의 주인공들이 모두 동원이 되는 것은 상식이었습니다. 주로 편지에 동원 되는 문구는 ‘젊은 벨텔의 슬픔’에서 따 썼고, 여자와 만나더라도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남자는 멀찌감치 앞서 가고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 뒤쫓아 오는 것이 상례였던 시절, 가끔씩, ‘패티페이지’의 노래, <아이 윈트 유어 웨딩>이 거리에서 울려 퍼지면 바보스럽게 눈물을 짜던, 그 젊은 사람들, 그 여자들, 이시가와.다꾸보꾸의 단가(短歌) ‘한 줌의 모래’를 읊조리면서 시인이라도 되듯 급조(急造)된 시(詩)를 써 갈기던 문학 지망생들, 영화(映畵)는 또 어떤가, ‘르네.끌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알랑.드롱’의 남방셔츠가 그럴듯해 저마다 ‘알랑.드롱’이 된 듯이 울긋불긋한 남방셔츠를 입고 폼을 잡던 그 시절의 청년들은 악인(惡人)들이 결코 못되었습니다. 형이하학(形而下學)보다 형이상학(形而上學)을 추구하던 많은 사람들, 그들의 얼마는 이 세상을 떠났겠고, 남은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의 짧음에 안타까워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동팔은 그녀를 만남으로서 그때의 ‘파일’을 회수(回收)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와 결혼을 약속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지금의 부인을 만나 길고 지루하고 재미반푼어치도 없는 인생살이를 하기 전까지의 낭만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아무튼, 미스고와 나눈 수많은 형이상학적인 대화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동팔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습니다. 나이는 칠순에 가깝겠지만 목소리로 보아서 적어도 시장바닥에서 자반 고등어나 생선을 파는 아줌마 같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그녀와 만나면 그 시절의 거리, 남산 길이라든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또는 덕수궁 옆 돌담길을 걸어 봐야겠다는 생각도해 보았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의 저 편,70년대의 낭만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은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이튿날,
동팔은 30분전에 미리 나가서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동팔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녀는 미스고, 30년 전의 그녀였습니다. 유난히 까만 눈동자, 하얀 얼굴, 그리고 옴폭 들어간 보조개, 웃을 때마다 고른 치열 등등 이제는 의젓한 사모님이 돼있겠지 하는 생각에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마침내 보름 달이 쟁반만 하게 떠올랐습니다. 주위가 훤했습니다.
동팔은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가끔씩 이웃집 강아지가 동팔의 곁에와 짧은 다리를 반짝 들고 오줌을 깔기고 냅다 도망을 쳤습니다. 오늘 따라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인기척과 함께 발자국 소리가 났습니다. 키가 작은 어떤 할머니가 털색깔이 지저분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것이었습니다.
웬 할망구가, 힘들여 길을 내면 문둥이가 먼저 지나간다고, 재수 없게 스리, 낭만 꺼리 잡치게,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 난장이만한 할머니가 동팔의 곁으로 아장아장 앙증맞게 걸어와 묻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동팔 선생님이 아니신가요?”
동팔이 그 할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머리는 서리가 내려앉고 밉상스럽게 살이 찐 볼따구니에 심술이 매달려 있는 것 같은 할머니가 동팔을 보고 히죽 히죽 웃는 것이었습니다. 동팔은 그 할머니가 미스 고가 시켜서 보낸 사람이려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물었습니다.
“동팔 선생님 맞죠?”
“그렇습니다만? 할머니는 뉘신지요?
그러자 할머니의 입에서 70년대의 꾀꼬리와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저, 제가 미스 고에요.”
“할머니가 미스고라고요?”
휘영청 교교한 달빛이 그들의 온 몸을 감쌌습니다. 순간 동팔은 전 날 꿈꾸었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달빛 속으로 함몰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월은 젊음을 압류한다지만 이렇게 잔인하게 빼앗아 갈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녀의 품위 없이 늙은 몸과 입성이 보잘것없는 차림새, 그리고 결코 고급스럽지 않은, 추레한 늙음에, 낭만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경험을 통해 이런 유의 할머니들에게 나오는 소리는 뻔한 것들이었습니다. 지나온 날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받은 탐탁치 못한 이야기들,주로 애들의 눈치를보니 싸구려 요양원에 넣을 것같다느니 하는 말이 전부일 것 같아 동팔은 가능하면 어서 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미스고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실망하셨죠?”
“아뇨. 그런데 고 여사(女史)님은 어디서 사시는지요?”
미스고가 그 말을 제지했습니다.
“여사라고 하시지 마시고 그냥 미스고라고 하세요.”
“그래도 연세가 만만치 않으신데,”
“연세라뇨?”
“그럼 다른 호칭이라도 있나요?”
미스고는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아직도 70년대의 방(房)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동팔은 웬만하면 미스고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너무 상태가 조악(粗惡)스러워서 미스 고란 소리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한껏 치켜 주고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고 여사님도 칠순이 얼마 남지 않았죠? 자녀들은 출가를 시키셨나요?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지요.”
하면서 화제를 일반적이고 극히 사무적인 것으로 돌렸습니다.
자신을 만나자는 용건이 무엇이냐는 것이지요. 이렇게 세월의 때가 짙게 밴 사람이 낭만을 얘기한다는 것은 정신병자거나 시대착오적인 사람만이 하는 치졸(稚拙)한 짓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동팔의 곁에 앉더니 예상한대로 자신의 고생스럽던 지난날을 한숨을 섞어 가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그 자식이 사기꾼인지 누가 알았어요. 결국 이혼을 했지 뭐예요. 두 번째 만난 사람역시 사업가인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알 동냥아치이지 뭡니까. 한마디로 신세 조졌지요. 새끼 둘을 낳아 키웠는데 이 것들이 제 애비를 닮았는지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연애질만하고 툭하면 경찰서에 불려가 골치를 썩이지 뭡니까.”
미스고의 마지막 기억은 그녀가 어떤 사기꾼 고시합격자와 결혼하기로 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동팔의 수첩에서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35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동팔은 그녀의 앞날이 좀더 잘 풀려서 사모님 소리를 듣는 인생으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35년이 잘 엮어지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미스고, 즉 춘자는 침을 튀기면서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주위 사람들을 질타하였습니다.
남편과 자식, 그리고 중풍을 맞아 누워 있다는 그녀의 어머니, 오빠, 동생 등등 모두가 원수(怨讐)들이었습니다.
동팔은 이런 이야기야 인생 수기(手記)같은데서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지난날의 낭만(浪漫)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오히려 시간낭비로 생각해서 틈을 봐 일어서려 했습니다. 그런데 미스고의 입에서 뭔가 툭 땅바닥으로 떨어져 모래 속으로 묻히는 것이었습니다.
미스고가 깜짝 놀라 허리를 굽혀 찾았습니다.
“어, 내 이빨이....”
미스고의 틀니가 너무 흥분을 한 탓에 웃 잇몸에서 툭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동팔이 얼른 그것을 주워 손수건으로 잘 닦아 그녀에 건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추락하는 틀니에는 날개가 없습니다. 너무 흥분하지마세요.인생이란 것이 다 그런 것 아닙니까? 남아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세요. 미워하는 시간보다 사랑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세요.”
동팔의 공자님 같은 말에 그녀가 이를 악 물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도 해봤죠. 그런데 잘되질 않더군요. 목사(牧師)나 신부(神父)들도 마찬가지더군요. 죄다 도둑놈들 같아요.당최 믿을 만한 놈 하나도 없더군요”
상처를 안겨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그녀는 세상 사람들 거의 전부를 불신하고 있었습니다. 동팔은 자신이 믿는 천주교(天主敎)의 교리와 신앙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을 하려했으나 잘못하다가는 증오와 미움으로 단단히 무장한 그녀에게 봉변을 당할 것 같아 꾹 참았습니다. 동팔은 문득 그녀가 불쌍해졌습니다. 무엇인가로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아무래도 정신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이 더 나을 것같은 생각에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그녀를 다시 만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동팔은 그녀의 거칠고 주름진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 손은 일찍이 덕수궁 돌담길이나, 장충단 공원을 함께 잡고 걸었던 낭만이 가득 들어 있던 따뜻하고 사랑스런 손이었습니다.
미스고가 위 틀니가 빠져서인지 바람 소리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서새님, 죄소해요.”
그리고 용건을 말했습니다. 아무 보험이라도 좋으니 하나 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보험관계 때문에 동팔을 만나자고 했던 것입니다. 잇몸에 틀니를 채우자 다시 70년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웬만하면 생명보험(生命保險)으로 하세요. 다들 그걸로 하지요.”
그녀와 헤어질 때 이웃 전파사에서 ‘아! 옛날이여!’란 노래가 어떤 여가수의 목소리로 암팡지게 흘러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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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대문인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