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씩 안동 중앙시네마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영화를 쭈욱 훑어보고는 곧잘 혼자 가서 보곤 한다.
오늘은 '캐빈을 위하여'에 눈길이 가면서 익숙한 제목임을 깨달았다.
일전에 지인이 끔찍한 소감문을 내 카페에 올린 기억이 나서 궁금하기도 하여 동료 두 명과 관람하였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였으나, 자기 일이 있는 엄마는 준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치 않는 아들을 낳는다.
그 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청소년이 될 때까지 엄마만 알 수 있도록 교묘하고도 잔인하게 고통을 준다.
그리고는 급기야 아버지와 동생을, 그리고 학교에서 엄청난 짓을 저지른다.
숨 죽이며 보는 내내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하며 불쾌감과 혐오로 이를 갈면서 끝까지 다 보았다.
밖으로 나와서는 '드라큐라보다 더 무서웠다'고 진저리를 치면서 캐빈의 원인과 까닭을 궁금히 여겼다.
'애정 결핍' 정도로 의견을 모은 뒤 으례 거치던 찻집 담소를 생략하고 우리는 부랴부랴 헤어졌다.
돌아온 지금 바로 그 지인이 쓴 글을 다시 찾아서 정독을 하였다. 두 번을 되풀이하여 읽었다.
그러나, 그의 다음과 같이 해석한 내용 전반에 대하여 나는 도저히 동의하기가 어렵다.
* 엄마는 자신의 헛똑똑함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 아파했다.
* 엄마는 겸손해 보였으나 그건 사회적 예의범절에 지나지 않았다..
* 엄마는 참사랑이 없고, 사랑의 유사함만 있고 책임과 의무, 그리고 외장된 가치들만 있었다.
* 출세지향적이며, 타인에 대한 정죄와 심판이 많은 오만한 여자고, 겉으로 화려한 것의 비극이다.
첫째, 엄마가 여행이나 저술을 하면서 자기 일로 바쁘지도 이름을 날리지도 않아 보였다. 오히려 아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
였으며 그것이 단지 책임과 의무감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조금도 화려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또한 엄마는 겸손해 보이지도, 출세지향적이지도, 오만해 보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저런 다양한 방법, 이를테
면 아들과 둘만의 외출을 시도하거나, 방을 뒤져서 뭔가 문제거리가 있나 컴퓨터도 살펴보는 시도를 하였을 뿐이다.
셋째, '뚱뚱한 사람은 늘 뭔가를 먹고 있다'는 평가를 한 적은 있으나, 그 정도로는 타인에 대한 정죄와 심판자로 볼 수는 없다.
노력하여 겨우 납득 될 만한 것이라고는,
1. 어쩌면 윈치 않은 임신이었기 때문에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에 대한 증오와 애정 결핍을 가질 수 있다.
- 그래서 엄마만 알도록 고통을 주었으며, 동시에 엄마에게 거짓말도 불사하는 사랑을 주는 간교한 짓도 하였고, 면회를 끝내고
엄마가 포옹을 해 줄 때 캐빈은 온순하였다.
2. 엄마와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이혼하려는 것을 엿듣고는 마침내 밖으로 폭발하였다.
- 안으로는 아버지와 동생을 죽임으로써, 밖으로는 학교에서 불특정 다수를 죽임으로서 엄마에게 복수하였다.
결론적으로,
1. 원치 않은 임신이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정신의학적인 면에서 알아 보아야겠다. 아직도 원인을 몰라 갑갑하고 속상하
다. 세상에는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는 공식이 들어맞지 않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 이 영화는 병자이거나 악마로 태어난 아들을 둔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영화일 뿐, 인간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폭력영화
라고 생각한다.
4. 행여 캐빈에 대하여 엄마의 잘못이나 책임으로 돌린다면 그건 전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사회의 억압이요 폭력일 뿐이다.
다른 이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기분 나쁜 영화다. 신생아 때부터 엄마에게만 가면 악을 쓰고 울어 대는 아이, 아버지 모르게 엄마를
고통에 빠뜨리고는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띄며 반응을 지켜보는 악귀.. 그런 아이의 결말에 대하여 과연 엄마의 잘못이라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끔찍한 살인을 저지를 때 왜 엄마만 살려 두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들어보자면 영화를 보라고 해야 하는데.. 참으로 난해하고 난감하다.
휴~, 충격과 감동으로 가슴을 흥건하게 적신 영화 '그을린 사랑'이 더욱 돋보이는 날이다. (끝),
첫댓글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괜히 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우리 사회에 많이 발생하는 '묻지 마 살인'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보수적인 사회일수록 묻지마 살인 같은 게 더 심해진다고 하네요.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기 때문이라네요.
내내 엄마의 관점에서 영화가 진행 되기 때문에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해석이 또 달라질 것도 같습니다.
다른 이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잘만 된다면야 세상 사는 일이 무엇이 어려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