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구장] 가족과 함께하는 ‘광양전용구장’
수수하고도 한적함이라는 느낌을 주는 작은 도시 광양. 그 안에서 차를 타고 제철로 이동하는 길에 커다랗고 웅장한 규모의 오래된 경기장의 모습이 선뜻 눈에 들어온다. 바로 ‘광양 축구전용구장’이 주인공이다. 오랜 장거리 여행 끝에 편안한 내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저 ‘편안함’과 ‘아늑함’이라는 색채를 물씬 뽐내고 있는 경기장의 모습 속에서 아련한 추억의 시간이 가슴 한 곳으로 다가온다.
K-리그가 열리는 날이면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삼삼오오 경기장을 찾는 아이들이 눈에 띄지만 경기가 없는 날이면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같은 존재로만 남게 된다. 웅장한 스탠드, 본부석에 걸린 전남 드래곤즈의 단체 사진이 계속해서 ‘비행’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광양전용구장 ⓒ 정선녀
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의 15년 추억을 담고 있는 광양전용구장. 공 하나에 시민들도 모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평등했고, 모두가 하나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전남을 응원했다. 광양전용구장은 ‘가족 같은 편안함 그리고 인간적인 곳’이다. 언제든 두 팔 벌려 반겨줄 것 같은,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것 같은 가족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세워진 광양전용구장은 전남드래곤즈와 12년의 역사를 함께 해가고 있다. 그동안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모두 담고 있는 광양전용구장을 찾아 과거-현재-미래를 바라보았다.
옛 광양전용구장의 모습 ⓒ 전남드래곤즈
광양전용구장은 전남 광양시 금호동에 위치해 1992년에 세워졌다. 면적 3,172,6평으로 좌석이 13,486석이지만 약 20,009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다. 광양전용구장을 사용하는 전남드래곤즈는 1994년 12월에 창단하여 1995년부터 K-리그에 정식으로 참여해왔다. 창단 2년만인 1997년 컵대회와 리그를 치루며 인정을 받아 K-리그 명문 구단으로 우뚝 솟았다.
# 가족같은 경기장
광양의 중마동으로 향하는 길 ⓒ 정선녀
광양전용구장은 1992년 포항에 이어 두 번째로 축구전용구장으로의 모습을 선보였다. 하지만 프로축구를 위해 만든 팀이 아닌, 포스코 직원들을 위해 세워진 경기장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던 포스코 소장은 직원들이 일을 하다 쉬는 시간에 축구를 하며 쉴 수 있는 경기장을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과거에 원형의 경기장이 아닌 서포터석이 없고 그곳은 잔디였다. 잔디에서는 직원들이 도시락도 먹고, 축구하는 동료들의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비록 프로축구 선수들이 사용하는 구장이 아니었지만, 전남에 팀을 만드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프로게임을 할 수 있는 경기장의 모습으로 점차 변모하였다. 축구팬들이 염원하던 축구만 하는 경기장이 포항에 이어 광양에도 생긴 것이다. 전남드래곤즈와 함께해온 광양전용구장, 조용한 광양에서 활기를 불어넣어온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조용한 마을, 광양에 도착하다
광양 중마버스터미널의 모습 ⓒ 정선녀
창밖으로 펼쳐진 광양은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었다. 어느새 광양중심지를 지나 ‘중마버스터미널’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차에 몸을 싣고 광양전용구장으로 향했다. 10분정도 공장의 굴뚝 사이로 경기장 스탠드가 보였다. 경기가 없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몇 아이들 그리고 몇 대의 차들만 보인다. 조용한 광양 금호동의 모습이다. 이곳에서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언제 조용한 마을이었냐는 듯,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기를 불어넣는다. 바로, 광양전용구장은 조용한 광양에 활기를 불어주는 그런 곳이다.
광양전용구장 본부석 외곽의 모습 ⓒ 정선녀
낡은 의자와 빛바랜 외벽. 오랜 세월 함께 한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기장의 추억을 회상하게 만들었다. 경기장에는 외곽으로 향하는 문이 많았다. 그리고 스탠드도 경기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했고, 서포터석에는 등받이 없는 의자들이 보였다. 한바퀴를 돌아 다시 본부석으로 향해 필드로 내려가 보니 필드와 관중석이 아주 가까웠다. 선수들의 숨소리도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 이곳에서 관중들은 선수들을 가까이서 느끼고 함께 호흡하는 한다. 몇 곳이 달라졌지만 필자가 처음 찾은 광양전용구장의 오랜 추억은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경기장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경기장이 위치한 광양 금호동의 모습과 제철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경기장에서 조금 떨어져 위치한 스탠드 ⓒ 정선녀
광양전용구장에서 바라본 금호동의 모습 ⓒ 정선녀
경기장에는 선수들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휘날린다. 자세히 들여 보면 선수이름과 함께 개개인 다른 기업체의 이름이 적혀있다. 경기가 있던 날을 아련히 떠올려 본다. 현수막 앞에 직장인들이 모여 현수막에 적힌 선수들을 응원한다. 바로 기업체에 소속된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한 기업체에 선수 한명씩 자매결연 맺는다. 선수과 직원들이 같이 식사도 하며, 그 기업체에 하나의 명예 직원이 되는 것이다.
광양전용구장을 함께 둘러보던 전남의 김종건 홍보팀장으로부터 광양전용구장의 첫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이곳은 프로게임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제철소 직원들의 경기장이었어요. 하지만 전남드래곤즈 창단의 움직임이 보이면서 광양전용구장을 프로축구를 할 수 있는 시설로 다시 준공했죠. 저희 광양전용구장에는 많은 문들이 있어요. 모든 문을 열면 관중들은 빠른 시간에 조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두었죠. 그리고 경기장에 관중들이 더 늘어날 것을 대비해서 규모를 넓힐 생각에 스탠드를 경기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웠어요. 이제 경기장에 지붕만 있다면 비올 때 관중들이 경기를 보다 편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원정 서포터석에 위치한 전광판의 모습 ⓒ 정선녀
경기장은 팬들과 함께 하기위해 많은 발전을 해왔다. 전남드래곤즈는 주주사인 포스코와 함께 지난 96년 6월 원풀형 조명타워 설치했고, 2000년에는 기존의 단순문자 표시 전광판이 아닌 Full Color 전광판으로 교체설치를 했다. 전광판 완공 이후 하프타임에 전광판 퀴즈 이벤트를 열어 자연스럽게 팬들을 참여시켰다. 생각보다 더 큰 호응을 얻어 꾸준히 팬들과 함께하는 경기를 진행 중이다.
# 추억속으로
1995년 3월 25일 광양전용구장에서 첫 경기인 아디다스컵이 개막했다. 13,486석인 경기장에는 15,000명의 관중이 찾아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서 응원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모든 관중이 전남을 응원하며 경기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노상래를 앞세우고 김도근을 조커로 출전시켰으나 첫 출전의 부담감 때문인지 전남은 전북을 상대로 3대0으로 패하고 말았다.
“1995년 3월 아디다스컵이 첫 게임이었어요. 상대는 전북이었는데 3대0으로 졌어요. 하지만 분위기는 정말 좋았어요. 그때 당시에 저희 경기장이 꽉 찼으니까요. 광양전용구장에서의 첫 골이 비록 페널티킥 이었어요.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골을 넣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죠. 지금 줄어든 관중을 보면 많이 아쉬워요. 95년부터 3년간 관중동원 1위였던 곳인데, 이렇게 관중이 없으니 많이 속상하죠.” - 첫 경기에 출전하고, 첫 골을 넣은 김봉길 선수 (현 전남드래곤즈 코치)
하지만 전남은 프로에 들어 온지 2년만인 1997년, 프로에 빠른 적응을 했다. 정규리그에서 10승 6무 2패로 2위를 차지했고, 아디다스컵에서는 준우승을 했다. 그리고 FA컵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면서 첫골의 주인공 ⓒ 정선녀 감독상에 허정무 감독, 최우수선수상에 김정혁, 득점상은 노상래가 차지했다. 그 후 명성에 걸맞게 2000년 대한화재컵과 2003년 하나은행FA컵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며 명문구단 다운 면모를 보였다.
경기장을 둘러보면서 전남 김종건 홍보팀장과 과거를 회상했다.
“96년에 허정무 감독이 취임을 했어요. 그분의 능력은 좋은 성적으로 반영이 되었죠. 매 경기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꽉 채웠어요. 그때 서포터즈도 없을 때라 상대 서포터즈가 오는 것도 없고, 그저 경기장엔 전남을 응원하는 팬들로 가득이었죠. 모든 관중이 전남을 응원하니까 상대팀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고, 선수들은 팬들의 응원에 ‘무조건 이겨야한다’ 싶었데요. 그때의 인기를 반영하듯 경기장 주변에는 포장마차가 많이 생겼고, 그때 장사가 너무 잘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전남이 골을 넣거나 이기면 단장님이 기쁨을 함께하자며 포장마차로 나가 음식을 사기도 했죠.”
1995년부터 3년 동안 최다 관객동원이라는 기록을 남긴 전남은 2002년 7월 7일 광양구장 최다관객을 수립했다. 월드컵의 열기가 채 가시기 전 열린 K-리그 개막식이었다. 대전과의 개막전에서 당시 프로 신인이었던 박종우가 골을 넣으며 1대0으로 전남이 승리를 거둔 경기였다. 경기장 최대 수용인원 20,000명을 훌쩍 넘어선 23,000여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좌석은 13,000천석밖에 되지 않아 10,000명이 넘는 관중은 계단에 앉거나, 서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그때 당시 월드컵스타로 거듭난 김남일과 김태영을 보기위한 소녀 팬들이 만원세례의 원동력이었다. 비록 이날 김남일과 김태영이 부상으로 벤치를 지켰지만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와 팬들의 성원에 기억에 남는 경기가 되었다.
리모델링한 본부석의 모습 ⓒ 정선녀
그때 당시의 경기장은 VIP석이 따로 있지 않아 모두 평등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모두 함께 라는 ‘가족’같은 이념속의 광양전용구장의 모습이었다. 97년 그해는 팬들의 호응으로 경기장에는 없던 버스노선도 생겨날 정도였고, 2002년 최다관객을 수립한 K-리그 개막전에서는 교통의 불편함에도 많은 관중은 가까이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러 경기장을 찾았다. 팬들은 인간적인 경기장에 매료되었고, 선수들은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을 위해 최고의 플레이로 보답했다. 필자는 그때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다.
전남의 노란 유니폼을 떠올리면 노상래, 김도근, 김태영과 같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플레이어가 불연 듯 스쳐갈 것이다. 하지만 이 선수들이 처음부터 스타는 아니었다. 전남에 있으면서 인정을 받아 스타플레이어로 거듭났다. 그들은 광양의 역사와 함께해온 전남의 산 증인들이다. 노상래는 95년 득점왕⋅신인상을 97년 FA컵 득점상, 98년 키카골을 수상하는 등 많은 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김도근은 98년 프랑스월드컵 대표로 뽑혔고, 김태영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큰 활약을 펼치며 2005년 은퇴와 함께 K-리그 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본부석 내에 위치한 전남을 빛낸 선수들 ⓒ 정선녀
김태영은 전남드래곤즈에서 데뷔해 전남에서만 11년 동안 250경기를 뛰며 한 그라운드에 몸을 담으며 수비수로 맹활약을 했다. 지난 2005년 11월 6일 광양전용구장에서 공식 은퇴식을 했다. 선발로 출전해 그라운드를 누비며 활약을 펼치던 김태영은 후반 11분 양상민과 교체되어 나왔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경기가 끝난 직후 필드로 나서 홈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서포터석으로 향한 김태영은 자신을 꾸준히 응원해온 서포터즈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다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 더 넓게, 더 크게
광양을 연고로 하고 있으나 광양에서도 광양제철에 위치한 경기장으로 인해 제철 쪽 시민들을 중심으로만 관중으로 동원하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남구단에서는 관중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작은 광양만을 연고로 하지 않고, 팀 이름과 같이 전남 시민들을 대상으로 팬을 모으고 있다. 즉, 전남드래곤즈의 광양 팬이 아닌, 전남드래곤즈의 전남 팬을 모으기 위해 가까운 순천, 여수 등 전남지역에 전남드래곤즈 TV홍보를 하고 문자로 안내와 광고를 하고 있다. 그리고 교통에 불편한 점 때문에 순천과 여수는 특정적인 장소를 정하고 경기를 보기위해 그곳에 모인 팬들에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 한 두시간전에 팬들을 태운 차량은 전남드래곤즈 경기가 있는 광양전용구장으로 이동하고, 경기가 끝나면 다시 되돌아가는 것 까지 해결해주고 있다.
광양전용구장 ⓒ 정선녀
“지금 이 시설이 광양 중앙에 위치한다면 교통편도 수월하고 더 많은 팬들을 확보했겠지만, 그곳에 있다면 이렇게 종은 시설을 갖추지 못했을 거예요. 광양제철이 외진 곳이라 버스도, 택시도 잘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보니... 교통시설만 좀 해결된다면 좋을 텐데... 그리고 작은 곳이기 때문에 주변 분들만 경기장을 찾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광역화를 생각하고 있어요. 순천과 여수같은 가까운 곳이 있는데, 그곳에 더 많은 관중이 모인다면 저희가 그 관중들을 외면할 수 없으니까 더 많은 대책들이 세울 거예요.” - 구단 관계자
이러한 전남은 끊임없이 시대에 발맞춰, 팬들의 눈높이에 맞춰 생각⋅실행하고 있고, 어린 팬들 그리고 전남지역의 팬들로 팔을 뻗어 바로 앞을 바라보는 마케팅이 아닌 10년 후 전남드래곤즈의 선수와 팬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노을 진 광양전용구장 ⓒ 정선녀
# 앞으로도 많은 추억이 담길 이곳...
광양전용구장 ⓒ 정선녀
오후를 향해가는 시간, 경기장에 서늘한 바람이 스친다. 경기장에서 바라본 파란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있다. 선수들이 게임을 뛰던 필드위에는 참새들이 모여든다. 경기장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주변 모습을 봤다. 나무들의 푸름이 느껴지고, 하늘에는 해가 지고 있다. 12년 동안 선수들의 추억을 담고 자라온 광양전용구장... 이곳에서 앞으로도 쓰여 질 역사 그리고 추억... 다시 97년의 함성을 함께 들을 그날까지 광양전용구장도 많이 변할 것이고, 직원들도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직접 이곳을 찾아 광양전용구장만의 운치를 직접 느껴봐야만 이곳의 특별함을 알게 될 것이다.
취재 후 찾은 광양연습구장 ⓒ 정선녀
석양 빛이 드리워진 광양연습구장 ⓒ 선문식
K-리그 명예기자 정선녀
첫댓글 경기장은k-리그에 딱 적합한 경기장 .....지붕만 있으면 ㅠㅠ최고일텐데...그리고 진짜 교통편은 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