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를 추켜올려 입은 남자 외 1편
정시마
허리춤에서 한 뼘 높은 설정, 벽걸이 티브이처럼 허리가 매달려있네요. 중심이 느슨해지면 흘러내릴 오늘이 두려운가요. 허리가 궁지로 몰려 제자리 찾을 수 없는 건가요. 모든 진실은 거짓말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는 허리는 당신을 위해 지탱하는 게 아니었나요. 멜빵을 붙잡고 목보다 가는 자유를 올려야 했나요. 생각해봐요, 이십 대 허리 골반에서 돌아다니고 허리를 찾아 잡고 있는 삼십 대, 쫓기고 있는 논쟁의 허리는 마흔에서 설정되고 앵무새의 자폐성 같은 목소리만 늘어나네요. 당신 안의 기웃한 사랑은 없고 자존의 어깨 지나 망각의 허리는 가득 차올라 십자가 짊어졌나요. 오래된 화면처럼 검버섯 얼룩거리기 시작했나요. 절대적인 불안정은 누구의 것인가 생각해봐요, 리모컨으로 조정해볼까요. 당신 감정이 드러나는 허리선 찾아 채널을 고정시킬게요. 매일 산책하러 가는 그 시기 멈추지 않는 숨은 햇빛을 돌려드릴게요. 자꾸 떠밀려 오르는 잃어버린 십자가, 다신 내려올 수 없는 높이에 못 박혀있네요.
페인트 꽃
단층집 분홍 페인트칠을 한다. 롤러 따라 길이 생겨나고 웃음이 늘 길어서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집의 율동을 다시 포장한다.
벽 속 튼 살 매끈해진다. 틈새 숨죽인 먼지의 소리 화들짝 놀라 추녀 아래 묵은 시간을 덧칠한다. 초유를 먹은 분홍빛이 화르르 날린다. LPG통에도 개집 지붕 위로 티스푼만한 벚꽃이 피어난다.
웃니 다 드러낸 꽃잎이 만발하자 작은 새들도 오소소 모여든다. 이내 묽고 화사한 반죽을 덮어쓰자 문마다 낱개 포장을 마치고 발돋움 세운다.
양파 자루 마늘 자루 걸어둔 못 자국은 쉽게 스며들지 못한다. 집은 변명처럼 방금 전까지 한바탕 웃음 웃었다는 듯 새어나와 마당 감나무에서 인형 같은 꽃이 핀다.
─반년간지 『시에티카』 2014년 · 상반기 제10호
정시마
울산 출생. 200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