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김연종
시집 한 권 보내고 싶었는데 주소를 물어보기는 겸연쩍고 주소를 알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누구인지 가물거리고
혼사 소식을 들었는데 모바일 단체 청첩장이라 가기도 쑥스럽고 안 가기도 체면이 아니라
계좌번호만 확인했는데 날짜가 지나가 버리고
신문 동정란 보고 병원장 등극한 동창 소식 접했는데 축하 전화도 축하 난도 어색해서
우물쭈물하다 보니 어느새 퇴임 소식
부고를 접하고 망자 대신 장례식장을 확인하는데 주중에는 시간이 없고 주말에는 거리가 멀어
핑계 대신 반가운 계좌번호만 하릴없이 바라보고
보조미러를 달고
두 눈 부릅뜨고
귀 활짝 열고
말없이 '좋아요'만 누르고 사라진 지인에게
메신저를 통해 안부나 전할까
전화로 직접 목소릴 확인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들어가 보니
이미 페친 삭제
----애지 여름호에서
사각지대死角地帶란 무엇인가? 사각지대라는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말할 수도 있고, 어느 위치에 있음으로써 사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각도를 말할 수도 있다. 군사적으로 무기의 사정거리, 또는 데이터 및 관측자의 관측 범위에 있으면서도 지형 따위의 장애로 인하여 거울이 사물을 비칠 수 없는 구역일 수도 있고, 운동선수의 위치상 슈팅을 하기 어려운 각도일 수도 있다. 김연종 시인의 [사각지대]는 자기 자신의 위치, 입장에서 일상생활의 어떤 일들을 잘 처리하지 못한 반성과 성찰의 산물이며, 이 세상의 삶의 덧없음과 무료함이 사실 그대로 진솔하게 배어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김연종 시인의 [사각지대]는 맹점盲點이고, 가능하면 그런 짓들을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똑같은 실수와 똑같은 잘못을 범하는 맹점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맹점은 약점이고 과오이며, 크나큰 사건과 잘못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매우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맹점이란 어떤 일에 주의가 미치지 못하여 저지른 실수일 수도 있지만, 사각지대란 그 맹점들이 하나 하나 모여 크나큰 사건이 되고, 그의 삶 전체를 덧없음과 무료함으로 이끌게 된다. 덧없음
이란 어떤 의미도 없는 허망한 삶을 말하고, 무료함이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더없이 따분하고 신선한 충격이 없는 것을 말한다. 김연종 시인의 [사각지대]란 수많은 맹점들의 파노라마이며, 그 주제는 이 세상의 삶의 덧없음과 무료함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집 한 권을 보내주고 싶었는데 주소를 물어보기도 겸연쩍고 주소를 알만한 단서를 잡지도 못했다. 혼사 소식을 들었지만 모바일 단체 청첩장이라 가기도 쑥스럽고 안 가기도 체면이 서지를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집을 보내지도 못했고, 계좌번호는 확인했지만 혼사의 축의금마저도 보내지를 못했다. 신문의 동정란을 보고 동창생의 병원장 등극 소식을 접했지만, 우물쭈물하다 보니 어느새 퇴임 소식이 들려왔고, 부고를 접하고 장례식장을 확인했지만, 주중에는 시간이 없고 주말에는 거리가 멀어 가지를 못했다. 병원장으로 등극한 동창생에게는 축하 전화도, 축하 난도 보내지 못했고, 부고를 접하고도 조문은커녕, “계좌번호만 하릴없이” 바라보다가 조의금마저도 보내지를 못했다.
그렇다. 인간은 좀처럼 변하지 않으며, 그의 사유와 행동양식은 어느덧 체질화되고 고착화된다. 예수에 대한 맹신은 반기독교주의자들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고,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은 공산주의자들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는다. 사유재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온갖 불법과 탈법으로 이어지고, ‘국민의 첫째 가는 공복’을 자처하는 관료들은 그러나 좀처럼 그들의 특권과 특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전쟁 때 전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수많은 양공주들을 양산한 미군은 고마운 미군이고, 일제의 식민지배는 물론, 수많은 강제징용자와 위안부를 양산한 일본놈들은 나쁜 놈들이다. 가능하면 늘, 상냥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모든 예의범절을 다 지키고 싶었지만, 눈앞의 이익이나 벼락출세의 희소식이 아니고는 좀처럼 그 사소하고 자그만 일들을 잘 챙기지 못한다. 이러한 사유와 행동양식이 경직되면 그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반사회적인 자가 된다. 그는 단 하나의 사상과 이론만을 진리라고 믿는 광신도가 되거나 유아론적인 개인주의자가 되어, 자기가 자기 자신의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 하게 된다. “보조미러를 달고/ 두 눈 부릅뜨고/ 귀 활짝 열”어도 그처럼 어리석고 어처구니 없는 실수와 잘못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일까? 도덕이란 무엇이고 법률이란 무엇일까? 관습이란 무엇이고, 미덕이란 무엇일까? 부모형제란 무엇이고, 친구와 이웃들이란 무엇일까? 국가란 무엇이고, 종교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이고, 불행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와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지식인에게는 그 모든 사상과 이론, 또는 도덕과 법률들이 다 시시하고 {악령}의 끼릴로프처럼 자살을 하는 것이 최고의 선일는지도 모른다. 날이면 날마다 일상의 덧없음과 무료함을 참지 못해 “말없이 '좋아요'만 누르고 사라진 지인에게/ 메신저를 통해 안부나 전할까/ 전화로 직접 목소릴 확인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들어가 보니/ 이미 페친 삭제”라는 나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가난할 때는 먹고 사는 일만 해결되면 모든 근심과 걱정이 다 사라질 것 같았지만, 그러나 돈과 명예와 권력을 다 얻었는데도 일상의 덧없음과 무료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과 컴퓨터로 지구촌의 모든 곳이 실시간대로 연결되고 모두가 다같이 ‘한 형제--한 가족’처럼 살 줄 알았지만, 그러나 반사회적인 개인주의의 장벽은 더욱더 완강해지고, 일상의 덧없음과 무료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적 하층민들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가난이라면 상류계급의 인사들에게는 권태가 가장 무서운 질병이라고 할 수가 있다. 권태는 일상의 덧없음과 무료함을 낳고, 일상의 덧없음과 무료함은 수많은 맹점, 즉, 똑같은 실수와 똑같은 잘못들을 양산하며 이 세상 전체를 [사각지대]로 만든다.
수많은 맹점들과 맹점들이 모여 [사각지대]의 파노라마를 이루고, 그 사건들의 발생과 연속성이 김연종 시인의 좌절감과 절망의 원인이 된다. 가난보다도 더욱더 무서운 권태와 사각지대, 이 세상의 삶의 목표도 없고 의미도 없으며, 그 무엇을 해도, 그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 어떠한 신선한 충격과 삶의 활력이 솟아나지 않는다.
이 세상은 거대한 [사각지대]이고, 전쟁과 전쟁영화와, 또는 술과 마약과 도박과 섹스와 그토록 처절한 피비린내가 나는 이종격투기가 없으면 살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곳은 [사각지대]이고, 이 [사각지대]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장면은 페친 삭제이다.
‘묻지마 살인’은 ‘페친 삭제’의 대폭발이고, 김연종 시인의 [사각지대]의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비경이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