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마르코 2,18-2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비록 세상의 겉모습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할지라도,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세상이 지닌 의미, 세상이 구현해야 할 가치에 근본적인 변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새로움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은 그 자리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이 없어 무시당하는 사람들, 불의에 억압받는 사람들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존엄하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정녕 희망 가득한 기쁜 소식이었지만,
부와 권력을 생명처럼 받들었던 사람들에게는 절망적인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어부들을 당신의 첫 제자로 뽑으셨습니다.
이전에 어느 누구의 눈길조차 받지 못했던 부르심 받은 사람들은 감격에 겨워
예수님을 따라나섰지만, 학식 있는 고상한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그들이 온전히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과 공동체로부터 소외되었던 회개하는 죄인들은 환호했지만,
이들을 배척함으로써 스스로 의롭다 자처하던 사람들은 분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벌을 받는다고 여겨졌던 병든 이들을 어루만져주시고
이들의 몸과 마음이 새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주위의 차가운 시선에 움츠려 있던 환자들은 새롭게 살맛을 되찾았지만, 이들에게 손가락질했던 겉만 성한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치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에 춤을 추었지만,
안식일 법 규정을 고집하며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움을 느끼고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소명에 충실했던 보잘것없는 사람들은 고유의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높은 곳에 오르려 다른 이들을 짓밟던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더불어 함께하는 삶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놓았기에 오히려 세상 이치를 모른다는 비웃음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환한 웃음을 지었지만, 오직 자신의 삶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었던 사람들은
머리를 떨구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기도하는 집인 하느님의 성전을 더럽히던 이들을 채찍을 들어 흩으셨습니다.
타락한 종교적 관행에 짓눌려 신음하던 사람들이 하느님께 다시금 기쁨의 찬양을 드리게 되었지만,
하느님을 빌미삼아 제 배를 채우던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예수님을 죽이려 달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세상에로 모든 이를 초대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당신과 함께 새로운 세상에 살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속되고 추한 삶의 방식을 내던지고 새로 태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함, 사랑, 진리, 정의, 헌신, 평화를 입고 나날이 새로 태어날 때에, 비로소 예수님께서 마련해주신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지나온 나날처럼 거짓과 불의를 일삼고 부와 권력을 탐닉한다며,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삶을 제멋대로 왜곡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노예로 삼으려는 불경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2000년 전이 아닌,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사랑 가득하면서도 엄중한 충고입니다.
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
*********
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마르코 2,18-22
새로운 삶을 살자.
요사이 시골길을 가다가 보면 참으로 초가집이 없고 새로운 농촌주택으로
별장 같이 집을 짓고 생활하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오늘 복음은 엣 것과 새것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는 말씀을 주시며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하십니다.
새아침 새날이 동녘에서 솟아오르며 새로운 날의 시작을 알리듯이
주님의 출현은 하느님의 나라가 동터 오르듯 새로운 시대를 일려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 계속 변화의 길을 가야합니다.
고정 관념, 습관적 사고방식, 관례에만 매어 있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할 만금 심각한 어제의 날을 지냈습니다.
왜관 성당에 형제 어머니의 장례미사 갔다가 계단을 잘못 딛고 넘어져 코가 깨지고 코피가 저녁 늦게 까지 줄줄 흐르고
어깨는 빠개지듯 아프고 다리는 뻐근 하고 내일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일어나겠나?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면서 “ 주님 내일 저에게 새날을 주시듯 일어나 주님의 일을 하도록 바랍니다.” 기도하고 일어나 보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가볍게 일어나 아침 기도를 드리고 새로운 날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겪고 있으면서 서로 불편한 관계가 일어납니다.
진보는 진보야 하지 보수를 따라 가려고 하면 이미 진보가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생각, 말 , 행동이 일률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성경의 하느님의 말씀을 해설하는데 과거 교회가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이면 새로운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교정하고 바르게 해야 합니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아야 한다는 말씀은 시대의 변천을 따라 변화되는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누가 주판을 놓고 계산 합니까?
계산기나 컴퓨터 안에 준비된 프로크램을 작동하면 찾고자 하는 결산이 나옵니다.
저는 늘 말하는 것이지만 50년 전에 마감하고 아직도 시대적 증표를 참고하여 사회와 교회를 보고 판단하고
새로운 삶을 계획합니다.
마음속 깊이 또 다른 교회의 전 세계 신학자들이 모여 새로운 결정이 니오기를 기대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두려움 없이 맞이하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분도회 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
**********
김현영 마태오 신부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마르코 2,18-22
새해의 달력을 바꿔달며 새로운 결심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불과 며칠 지나지 않은 듯한데
벌써 일월도 반이 지나갔습니다.
오늘의 거룩한 말씀은, 고난을 통해서 가장 위대한 분께서 가장 비천한 자리로 내려와
스스로 복종하는 법을 배우시고, 스스로 모범이 되시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고 알려 주십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서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맡은 사람들
즉 대사제는 자신도 연약한 인간이므로 무지하거나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동정할 수 있으며,
연약하기에 백성들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의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 말씀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도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동시에 가정과 직장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즉,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여 스스로를 삼가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의 준비를 갖출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 앞에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자리에 올랐으며, 쟁취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 착각하여 그 자리가 가지고 있는 권한과 힘을 남용하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자리는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주어진 자리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들은 자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 때문에 관계가 끊어지고 서로를 힘들게 합니다.
가정이라는 자리 역시 그러합니다. 이 자리는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부부의 사랑과 신뢰를 통해서 주어졌으며,
부부는 서로에게 복종하고 봉사함으로써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녀가 태어나고 이제 부부는 부모가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무한의 권한을 가져 명령하거나 지시하고 그것이 지켜지도록 감시하는 존재이거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들을 통해 대리충족하려는 것이 아닌, 자녀를 통해 주어진 부모의 자리를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설정하고, 설정한 바를 완성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부모는 가정을 제대로 꾸려갈 수 있으며, 자녀들 역시 부모의 그러한 모습을 통해 배우고
자신의 삶의 지표를 부모의 모범을 통해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과 신뢰의 결실로 세상에 태어난 자녀들은,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부모로부터 받는 모든 것을 당연시할 것이 아니라,
부모의 노력으로 얻게 된 재화나 사랑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녀라는 자리 역시 부모를 통해 주어진 자리이므로 부모의 소중함을 항상 되새기며,
가정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들의 이러한 노력은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초석이 될 뿐 아니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기초공동체를 통해서 오늘의 말씀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가정 뿐 아니라 교회와 국가의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에게 전해지는 하느님의 호소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던짐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낮추심을 보고 배우며
현 시대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새 술을 만들어 새로운 부대에 넣기 위해서 우리들이 먼저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내가 연약하고 결점이 많은 것처럼 다른 이들도 그러하다는 인식을 기초로
내가 소중하듯이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랑의 결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우리가 앞장서서 아름다운 세상과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새 술이라면 바로 내가 새 부대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산교구 김현영 마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