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와 풀잎
기혁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음료를 고르며 생각한다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알루미늄 캔 최종 선택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차곡차곡 쌓이게 될 동전과 거리를 오가는 목마름은 어떤 문명의 비호 아래 등가가 되는가? 빌딩에서 떨어져 납작해진 영혼처럼 콜라에도 전생이 있다는데 사람으로 인해 아름다운 것은 사람밖에 없다 자연은 허공에 투전구를 만들고 동전 대신 생활의 밀고를 넣으라 한다 김빠진 미래를 벗어날 수 없는 탄산처럼 개봉된 희망이 멀건 설탕물로 변해갈 때 거리의 목마름은 또 다른 목마름을 부르고 나는 누군가의 식물이었던 시절을 용케도 기억해 낸다 햇살과 벌떼 구름과 소나기가 저마다 인격을 지니고서 빼곡한 지하철의 무표정에 투서를 쓰던 저녁 불가능한 광합성의 사연이며 개미와 지렁이의 종전협정 따위를
대지에 뿌리내린 존재처럼 베껴오곤 했다 그때는
사람이 떠나가면 식물성도 출구를 찾고 뿌리는 망상의 탯줄이 되어 시선마다 잔뿌리를 남긴다 잔뿌리와 잔뿌리가 겹치는 주마등을 더러는 본능이라 불렀지만 어떤 주마등 불빛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옥상 흡연실 금이 간 자판기 앞에 서면 수천 번 머뭇거린 알루미늄 캔의 주저흔이 보인다
담배를 권하며 어색한 인사를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식물처럼 허공과 대화하고 바람의 근황을 묻고 작은 몸짓에도 가슴이 출렁거리는데 육식보다 채식을 좋아한다던 그의 콜라와 마음이 아프면 이슬 쪽으로 눕는다던 그의 목소리가 사이렌보다 크게 궤적을 그리던 상공에서
나도 차고 어두운 내부의 결로를 겹쳐본다 높다는 건 살고 싶다는 뜻이지 난간을 벗어난 마침표가 한 점 투명으로 떠서 내려온다 풀잎을 닮은 초행草行의 문장 끝에 삶의 중력이 반짝거린다 재활용 마크로 구분해 온 투신의 잔해를 잊은 채 눈물은 다 찌그러진 영혼의 원본을 마중하는 것이다
ㅡ웹진 《님Nim》(2026, 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