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았던 페루가 잠시나마 뉴스의 초점이 됐던 적이 있다. 일본인 이민 2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였다. 일본 대사관 인질사건때는 대통령이 직접 방탄조끼를 입고 진두지휘함으로써 전 세계 뉴스의 주인공이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영웅적인 시절도 잠시, 지금은 부패혐의로 권좌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서울에서 멕시코 음식점도 생기고 브라질식 추라코스를 하는 식당도 있긴 하지만 페루 음식은 아직까지 낯설다. 그나마 가끔 호텔 행사를 통해 남미 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있다. 독특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페루 음식을 시식해볼 기회가 있었다.
중세의 남아메리카에서는 산 사람의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치는 풍속이 있었다. 태양신은 늙어가는데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제물로 바치면 노화를 늦출 수 잇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데 에피타이저 중 하나로 쇠고기 꼬치가 나왔다.
소의 여러 부위 중에서도 심장을 사각으로 썰어서 꼬치에 끼워 구운 음식이었다. '역시 남미 음식의 풍미란 이런 것인가'하는 생각이 스친다. 전체적으로 이국적인 냄새가 났다. 칠리를 많이 사용해 매운 기운이 강했고, 살란트로 향도 물씬 풍겼다. 조개 껍데기 안에 흰살 생선을 마리네이드한 에피타이저도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샐러리와 실란트로 등 허브향이 강하게 풍겼다.
닭가슴살을 차조같은 자그마한 곡류로 옷을 입혀 튀겨낸 닭튀김은 맛이 색달랐다. 이 닭튀김을 퀴누아(Quinua)라고 부르는데 몇 천년 전부터 페루사람들이 먹어오던 전통음식이라고 한다. 곁들여지는 소스도 페루의 전통적인 독특한 소스들이었다. 아지(Aji)라는 소스는 마치 겨자소스처럼 누런 빛이 감도는 소스로 약간의 매운 여운이 감돌았다. 사우코(Sauco)라는 소스는 정글에서 채취한다는 블랙베리류의 달콤한 과실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칠리의 매운맛과 충돌하는 소스였다.
지중해와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듯한 차가운 새우 샐러드도 독특했다. 작은 가재로 모양을 낸 새우 샐러드는 세 마리의 차가운 새루을 가운데 올려놓고, 그 아래 파바 빈(Fava Bean)이라는 녹색콩과 하얀 치즈, 옥수수와 매콤한 아지소스로 맛을 냈다. 이렇게 먹은 후 메인 디시로 쇠고기 스튜가 나오고, 마라멜 향이 풍부한 끈끈하면서도 달콤한 무스를 디저트로 내놓았다.
남미에서는 칠레와인이 가장 국제적이지만 페루에서도 와인을 생산한다. 칠레와인은 프렌치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카베르네 소비뇬이나 메를로 품종을 사용하지만 페루 와인은 전혀 다른 품종을 사용한 것들이었다. 그란 틴토(Gran Tinto)라는 레드와인은 남미와인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말벡(Malbec), 타나(Tannat), 프티 베르도(Petit Verdot) 등을 블랜딩한 와인이었다. 상당히 가벼운 와인이라 육류와 같이 먹기엔 무척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화이트 와인들은 상당히 수준급이었다. 블랑코 드 블랑코(Blanco de Blancos)는 보르도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세미용(Semillon)과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을 블랜딩한 와인었는데 열대과일 풍미로 가득한 신선한 와인이었다. 디저트로 마신 암브로시아(Ambrosia)라는 와인도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드문 알빌라(Albilla)라는 포도 품종으로 만든 달콤한 와인이었다.
요즘은 서울에 앉아 먼 이국의 음식들을 맛본다. 처음에는 낯설어 보이지만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음식들이다. 색다른 향신료, 향기가 다는 허브, 특이한
재료의 쓰임새들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맛, 페루음식을 맛보면서 그런 이국의 느낌을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