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3 - 구시가지를 걸어서 절벽 위에 벤첼의 고리 성벽을 보다!
독일의 트리어에서 룩셈부르크 에 도착해 호텔을 정하고 걸어서 구시가지
에 이르러 미니트레인 인 페트뤼스 익스프레스 를
타고는 내려서 다시 아름광장 Place d'Armes 에서 벼룩시장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빅맥 햄버거 로 점심을 떼우고는 인포메이션 센터 를 둘러본
후에.... 걸어서 한 블록 옆에 있는 기욤 2세 광장 으로 찾아 갑니다.
기욤2세 광장 Place Guillaume 은 네델란드 왕으로 1,840년부터 10년동안 룩셈부르크 대공
이었던 기욤의 이름을 붙인 광장으로 자치를 인정해준 감사로 기마상 이 세워져 있습니다.
광장에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에서 세운 수도원 이 있으며 수사가 허리에 매고
있던 새끼줄과 관련하여 Knuedler (허리띠 매듭) 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여기 광장에 있는 대공 궁전 Palais Grand-Ducal 은 1,418년에 세워진 시청사가
불타자 1,573년에 재건하여 1,841년 부터 대공 궁전 이 되었다고 합니다.
1, 890년 기욤 3세 사후 현재 대공인 나소가 의 거성이 되었으며 직립자세로 근무하는
위병은 2시간 마다 교대 한다는데 5.45유로 티켓은 관광안내소에서 판매 한다나요?
대공 궁전은 오늘은 개방을 하지 않는다기에 다시 걸어서 성 미셀교회
Eglises St. Michel 를 지나서 보크 포대 쪽으로 향합니다.
이른바 보크의 포대 Casemates du Bock 는 절벽 언덕 위에 위치하는데
성벽 걷기 관광상품 인 “벤첼워크”의 출발지 이기도 합니다.
서기 963년에 아르덴 백작 지그프리트 가 보크펠젠이라 불리던 이 바위산에
요새를 쌓았으니...... 도시 "룩셈부르크의 역사" 가 시작된 곳입니다.
여기 페트뤽스 계곡 위에 절벽 낭떠러지 지형은 군사 요지 로
여기서 보는 알제트강의 경치 가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네요?
여기 벤첼의 고리 모양 성벽 Wenzelsmauer 이란 14세기 말에
대공 벤첼 2세 가 건설한 도시를 두른 고리모양의 성벽 유적 을 말합니다.
벤첼의 고리 모양 성벽 Wenzelsmauer 에 역사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1,867년 영세중립국
을 선포하면서 대부분의 성벽을 파괴 했지만 영세 중립은 1,948년에 포기 합니다.
또 벤첼 워크 Wenzel Walk 란 부르고뉴 공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의 지배를
받았던 룩셈부르크의 천년 역사 를 설명해주며 100분 동안 성벽을 도는 코스 입니다.
유럽에서도 전략 요충지인 룩셈부르크 는 16세기 부터 도시 성벽이 해체된
1867년 까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요새 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부르고뉴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프랑스 및 에스파냐 왕들 그리고
나중에는 프러시아인에 이르기 까지 유럽 열강들 이 거쳐 가면서 계속해서 발달했습니다.
성벽은 일부가 파괴되기는 했으나 요새는 수세기에 걸친 훌륭한 군사 건축물의 전형 으로
남아 있으니..... 룩셈부르크 시 는 2개의 주요한 로마 도로가 합류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963년 모젤 계곡 (Moselle valley) 출신의 지크프로이트 백작 은 트리어 지역의 성 막시민
(St. Maximin) 사원과 교체하려고 보크(Bock) 바위산 을 사들여 그곳에 성을 지었습니다.
그의 하인과 군인들은 성 주변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고, 정착지의 시장 광장인
비외 마르셰 광장 (Vieux Marche) 에서 부터 현대 도시가 싹트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시는 12세기 말경에 두 번째 방어벽 이 축성될 정도로 확장되었고, 15세기에
세 번째 방어선 이 구축되면서 그룬트 저지대 도심 지역을 에워싸게 되었습니다.
16세기 까지 룩셈부르크는 전략적이며 군사적인 요충지 가 되었으며 부르고뉴 가,
합스부르크 가, 프랑스 및 에스파냐의 왕들은 모두 룩셈부르크를 소유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 때문에 도시의 방어시설은 계속 확장 되었고 견고한 성벽이 축조되면서
“북 지브롤터 (Gibraltar of the North)”라는 명성을 갖는 요새가 되었다.
1867년 런던조약 조인과 함께 유럽 강대국들은 대공국을 영구 중립국 으로 인정했으며
그 결과 3개월 내 요새 철수 및 파괴라는 피해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180㏊에 달하는 견고한 요새도시가 개방된 도시로 변화 하였고 룩셈부르크 구 도시
지역은 보크 곶에서 서쪽으로 뻗어 있으니 처음으로 공작 가문이 확립된 곳 입니다.
보크 암벽 은 17세기~18세기 포대가 벌집 모양 으로 나 있는....
가장 큰 규모로 남아 있는 지하 요새 이기도 합니다.
또한 10세기에 건립된 성 미셸 교회 가 있는 중심가를 이어 주는 다리도 중요한데
훗날의 마르셰오푸아송 (Marche-aux-Poisson)은 중세 시대의 중요한 광장이 됩니다.
도시에 처음 생긴 넓은 공간이었으며 그랜드 두칼 궁전 (Grand Ducal Palace)
은 1244년 처음 지어진 공공건물과 시청이 있는 지역에 있습니다.
신성로마제국(독일) 황제를 배출하기도 했던 룩셈부르크는 생 폴 백작
피에르 드 룩셈부르크 의 딸 룩셈부르크 자퀘타 는 1,433년 17살에
영국왕 헨리 4세의 셋째 아들 베드퍼드 공작 랭카스터 존과 결혼 합니다.
그런데 프랑스계 플랜타지네트 왕조가 망한후 장미 전쟁 내란에서 남편이 사망
하자 기사 리처드 우드빌 과 재혼해 딸 엘리자베드 우드빌 을 낳습니다.
엘리자베드 우드빌 은 랭카스터 가문에 시집갔으나 남편이 장미 전쟁으로 죽자
적군인 요크 가문의 게승자 에드워드 4세와 결혼 해 영국 왕비 가 됩니다.
또 생 폴 백작의 선조 는 제1차 십자군에 참전 하는데..... 1,199년 가을
상파뉴 백작 이 주최한 마상 창시합에 참가한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마상 창시합에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 가 보낸 설교승의 부추김으로 십자군을
결의하는데 정작 결의의 주인인 상파뉴 백작이 죽은 후에도
블루아 백작 루이와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에다가 몬페라토 후작 보니파치오와 더불어....
생 폴 백작은 4명의 주전 에 속하게 되었으니 베네치아로 집결하였으나 병사도 모자라고
군자금이 부족하니 배삯도 완납하지 못하는지라 베네치아의 술수 에 넘어가
이집트가 아닌 기독교국 자라를 함락하고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라틴제국 을 세웁니다!
첫댓글 잘봤습니다
독일 가볼만한 곳들이 많아
참 좋네요
오래된 고풍스럽고...
개성있는 도시들이 많은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