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연에게 4번 온 우편엽서 ]
(1)
동연이 피아노에 열중하고 있을 때
“도련님~ 엽서 왔어요.”
가정부 아줌마가 들어오면서 엽서를 주었다
“어~? 엽서가 어디서 왔지?”
앞을 보니까 L이라고만 쓰여있다.
동연은 궁금해서 내용을 얼른 봤다.
-8일-
더위가 점점 물러가고 있어.
추위를 잘 타는 나는 벌써 추워짐을 느껴.
동연아! 너 죽음이란 거 생각해봤니?
난 생각해봤어.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내가 죽는 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넌 어떻게 생각되니? 나 좀 가르쳐줘.
난 요즘 너가 없어 쓸쓸하다.
윤 동연! 나 너 좋아해.
아니 내가 죽을 때까지 널 사랑할거야!
그럼 안녕.
-유리-
엽서를 본 동연은 왠지 섬뜻했다. 꼭 마녀같이만 느껴진다.
죽음을 생각하고 당돌하게 두 번 본 자기를 사랑 한다는 유리를
동연은 점점 이상한 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8일이라고 쓴 맨 위 엽서 가장자리의 글은 빨간색으로 썼다.
더욱 섬뜻해진 동연은 그 엽서를 찢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러나 곧
‘내가 너무했나?! 커가면서 그럴 수도 있는데’
하고 생각한 동연은 항상 유리한테 미안한 감정을 갖는다.
동연은 피아노를 계속 쳤다.
자기가 작곡한 곡을 열심히 연습한다.
영아의 생일이 10월 4일이라 그때 선사하려는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에 창가에 앉은 새도 찍소리 않고 듣는다.
한편, 영아는 방학동안 놀러다녀 숙제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쌍불을 켜고 책상에만 틀어 박혀있다.
그러나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능률이 안 올랐다.
“영아야! 공부하니?”
“아!~ 큰어머니 들어오세요.”
큰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영아는 하던 것을 덮고 큰어머니를 바라본다.
“영아야! 시간 있으면 내 심부름 좀 해주련?”
“무슨 심부름인데요?”
“네 큰아버지께서 서류를 놓고 가셨는데 갖다 달라고 전화가 왔지, 뭐니.
그런데 난 오늘 동창회가 있어 나가봐야 되니까 너가 좀 갖다드리렴.”
“알았어요. 이리주세요~ 지금 당장 갈게요.”
하며 영아는 큰어머니 손에서 큰 봉투를 받아든다.
그리고 영아는 곧 나간다.
큰어머니는 영아의 밝은 행동이 늘 마음에 든다.
-영동 시립 종합 병원-
간판을 본 영아는 단숨에 회전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들어서자, 깨끗한 유리와 하얀 가운 입은 간호사, 의사가 보이고
바닥은 반짝반짝하고 커다란 대합실의 웅성웅성한 소리는
어딜 봐도 병원의 진미를 볼 수 있다고 영아는 생각한다.
“간호사 언니, 최 일남 박사님을 찾는데, 어디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최 박사님? 그분은 지금 수술실에 들어가셨어.
그러니까 정형외과에 가봐라.
거기 앞에서 기다리면 한 1시간 전에 나오실거야,
그런데 넌 그분과 어떤 관계니?”
“예~ 그 분이 큰 아버지세요!”
“아 그래?, 3층에 계셔, 어서 올라가.”
영아는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인 뒤 서류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 똑같은 문이 즐비하다.
영아는 쭉 앞으로 걸어가 정형외과라고 쓰인 곳에 앉아 기다린다.
그때 앞방에서
“으악.”
하는 비명소리가 연달아나더니,
“우당탕 쿵! 탕!”
무언가 집어던지는 소리가 나자 담당 간호사와 의사들이 이어 뛰어들어 간다.
“꺼져, 꺼지라고!”
거친 소리가 병실에서 들리자
호기심 많은 영아는 열린 문사이로 안의 광경을 본다.
그 안에는 한 남자가 머리와 팔, 발에 붕대를 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직 학생인듯 하지만 키가 커서 그런지 좀 성숙해 보였다.
“학생! 왜그러니?! 좀 진정해야지?
간호사 진정제 놓아 진정시키도록!”
하며 팔과 몸을 잡는 6명의 의사,
겨우 소란이 사라지고 창문 밖을 쳐다보는
그 남학생은 어딘지 모르게 외로워 보인다고 영아는 생각한다.
“인규야! 이게 어찌된 일이냐, 응? 인규야.”
황급히 달려온 남학생의 어머니는
요란하리만큼 부티나게 차려입은 마나님이다.
“보기 싫어!, 빨리 나가세요! 왜 저 같은 자식을 찾아요?!
그 잘난 회장님만 찾으세요! 빨리 나가요! 보기 싫다고!!”
그걸 본 의사가 신경을 세우면 위험하다며 부인을 데리고 나간다.
“의사선생님 저앤 야구가 전부인 애에요.
다친 팔 다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네?”
“아 흥분 가라앉히시고 따라오십시오.”
하며 담당의사가 부인을 데리고 간다.
간호사가 약통을 들고 나오자 영아도 얼른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됐지?
야구를 한다고 그러던데 저런 심한 상태로는 앞으로 어려울지 모른다 던데,
에구... 불쌍하다’
영아는 그 남학생이 측은 했다.
“어! 영아 왔구나!”
수술실에서 겨우 나온 최 박사는 영아의 손에서 서류를 받아들고 나서
영아를 데리고 내실로 들어간 뒤 가운을 벗고 곧 영아와 함께 병원을 나온다.
“자! 우리 공주님께서 이 몸을 찾아왔으니 그냥 들어갈 수 있나?
영아 너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해보렴. 다 사줄테니.”
하며 큰아버지는 금태 안경을 바로 잡는다.
“어머! 정말이셔요? 큰아버지?”
“암! 정말이고말고!”
영아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한다.
“저~ 큰아버지 먹는 걸로 사주세요. 저기 보이는 L햄버거 집에서요.”
“좋아. 가지~.”
영아는 처음 있는 큰아버지와의 시간이
마치 따스한 친아버지를 만나듯 정이 솟구침을 느끼며 하루를 보낸다.
(2)
동연은 이번에도 또 한통의 엽서를 받았다.
거기에는 유리가 6일 후에 미국으로 되돌아간다는 얘기와
동연을 한번만 더 보고 싶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유리를 만나지 않는 쪽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엽서를 책상 서랍에 넣었다.
잊은 지 하루가 되고 나니 또 한통이 온 걸 보고
동연은 유리를 극성맞은 여학생으로 간주해버렸다.
만약 유리가 이렇게 극성만 안 부려도 싫지 않았겠다고 느낀
동연이 이틀에 한 번씩 오는 엽서를 보고 어지간히 이상한애로 본 것이다
하지만, 미안한 감정이 자꾸 드는 동연은
‘안되겠다. 주소를 쓰지 않은 채 보냈으니 연희에게 물어서 편지를 해야겠군.’
하며 동연은 연희의 전화번호를 몰라 고심하다.
영아한테 전화한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거기 최 영아네 집이죠?”
“맞는데요?”
“영아 친군데 좀 바꿔주세요.”
“난데, 누구니?”
“영아냐? 나 동연이야 너 연희 전화번호 아니?”
“알아 근데 왜?”
“응, 무슨 사정으로 전화 좀 할 게 있어서.”
“알았어. 762-0081”
“고맙다. 그럼”
영아는
‘뭐 이래’
하며 전화를 끊었다.
동연은 겨우 전화번호를 알아냈지만 유리 주소를 묻는 게
좀 이상하게 생각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동연은 연희한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희도 잘 모른다고 하자, 동연은 하는 수 없이 잊기로 했다.
그리고 또 이틀째가 되던 날 엽서를 받게 된 동연은
그 여학생의 끈질김에 놀랬다.
일주일 동안 4편의 엽서라, 동연은 엽서의 내용을 안 읽고
책상 서랍에다 넣으려다 우연히 내용이 휘갈겨진걸 보고
“얘가, 웬일로 글씨를 이 모양으로 썼지? 잘 쓸려고 애를 쓴건가?”
하며 동연은 엽서의 내용을 읽어본다.
-2일-
어느덧 떠날 날이 다가온다. 동연 정말 너가 보고싶어.
하지만 난 널 못찾아가 그러니까 나 떠나기 전 한번만 만나자. 부탁이야.
내가 널 기다리면서 버스정거장에 있는 시간이 무려 6시간이나 돼.
근데 넌 날 찾아오지 않는구나. 마지막 부탁이야.
떠나가기 전에 한번만 날 만나줘.
-유리-
이런 내용을 본 동연은 그제서야 이틀째에 보냈던 엽서를 보며
‘미국으로 가는 날이 곧 이구나’
하며
‘마지막’
이라는 글귀를 보고난 동연은 단숨에 인천행 버스표를 끊어 겨우 역에 도착한다.
동연은 자기가 너무 무심했구나 싶어 허둥지둥 찾았지만
그 유리라는 여학생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동연은 근처 벤치에 앉아 어두워 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유리는 오질 않는다.
동연은 아쉬움을 남긴 채 뒤돌아보다가 다시 서울행 차를 타고 떠난다.
(3)
그 후 동연은 단 한장의 엽서도 받지 못한다.
동연은 자꾸 유리의 엽서 내용이 기억 속에 맴도는 것을 느낀다.
‘왜 어린나이에 죽음을 생각할까?
왜 그토록 날 보고 싶었을까?’
동연은 미국에 떠난 유리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동연의 뇌리 속에는 자꾸 엽서의 내용과 교차하면서
유리가 죽는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띵동, 띵동”
“누구세요?”
“저 영아에요.”
“어머~ 언니?”
인아는 앞치마를 두른 채 문을 열고나서 뛰어 내려온다.
“아주머니, 동연이 좀 불러줄래요?”
영아는 상기된 얼굴로 동연이 오기를 뜰에서 기다린다.
“어머 영아~ 웬일이야!”
“동연아, 있지! 유리라는 여자애 알지?
인천에서 너가 만났다는 애.
그 학생이 며칠 전에 죽었대.
오늘 연희한테서 전화가 왔어.
자기 집으로 전보가 왔다고~”
그 순간 동연은
‘이게 무슨 소린가 불길하던 나날 동안 설마 했었는데’
하며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것도 모른 채 영아 얼굴만 멍하니 바라본다.
영아는 동연의 그런 표정 때문에 더 이상 말을 멈추고
동연의 집을 되돌아 나온 영아는 동연의 표정이 급변한걸 보고
‘왜 저렇게 놀라지? 나도 놀랬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며 계속 걸어간다.
동연은 멍하니 땅만 보다가 자기방인 2층에 올라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작곡도 하지 않았는데 처음 치는 선율이 계속 흘러나온다.
유리라는 여학생은 4년 전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
근 4년간 온갖 치료를 했지만 회복이 되지 않아
마지막을 한국에서 지내고 싶다고 한국에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하얀 천을 두르고 다신 오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