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넘은 뒤로 자빠져도 코 깬다'는 말이 있다. 인근에 '물 반 고기 반'이라는 해운대 해수욕장을 옆에 두고도
밤낮으로 땀을 뻘뻘 흘리던 차에 약 한달전부터 친구들과 1박2일 지리산 대원사계곡으로 피서를 가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갈지자 행차로 올라오는 '카눈' 때문에 모처럼의 피서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지리산에서 발원해 내려오는 대원사계곡물은 한 여름에도 발을 담그면 차가울 정도로 시원하다. 차로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동네에 '산꾼들의 쉼터'가 있는데 진주에 있는 허선생이 자주 가는 단골집이라 그 집에서 친구들이 모여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던 것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도 있다. 국어 사전에는 성격이 너그럽지 못하면 대인관계가 원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모가 나다'고 하면 모서리가 툭 튀어 나온 모양을 말하고 자연현상에서나 인간세상에서나 툭 튀어 나온 부분은 먼저 부딪쳐 모지라지기 마련이라는 의미다.
여름철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해수욕장중에 자갈로 된 자갈마당이 더러 있다. 영도 태종대도 있고
거제도, 홍도에도 있다. 그곳 해안가 자갈마당에는 자갈이 모두 동굴동굴한 몽돌로 돼 있다. 파도로 돌들이 서로 부딪쳐 모가 없어진 것이다.
송나라 형지(荊氏) 땅에서는 가래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잘 자란다. 사람들은 기다렸다가 나무의 둘레가 한 뼘 이상으로 자라면 베어다가 원숭이를 매는 말뚝으로 사용한다.
서너 뼘 이상 나가는 나무들은 대들보감으로 베어진다. 일곱 내지 여덟 뼘에 이르면 높은 사람이나 부자들의 관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형지의 나무들은 뛰어난 재목들이어서, 이처럼 하늘이 내린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도끼나 자귀에 찍혀 쓰러진다.
대개의 사람들은 남보다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겉모습을 꾸미고, 지식을 쌓고, 힘을 기르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결국 출세를 향한 끝 모를 경쟁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 거대한 탑을 쌓게 만들었다. 하지만 높은 탑일수록 유지하기 어려운 법. 비옥한 형지 땅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쳐 오르기만 했던 가래나무, 뽕나무, 잣나무들이 사람의 눈에 쉽게 띄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것처럼,
이기심 때문에 경쟁적으로 쌓아올려진 탑들도 큰 바람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보통 남이 이룩한 업적이나 성취를 보고 자극 받아 목표를 정하고 노력을 한다. 따라서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경쟁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한 경쟁에 앞서 우리는 장자가 던지는 엄격한 경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웃자란 나무가 먼저 베어지는 것처럼 더 높이 쌓여 위용을 뽐내는 탑일수록 태풍 앞에 더욱 무기력하다는 경고를 무시했다간 큰 코 다친다.
어찌됐건 태풍 카눈이 올라오니 우선 시원해서 좋다. 온도가 근 10도 가까이 떨어졌다. 바람도 불고 비도 흩뿌린다.
마치 더운 마당에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듯 시원하다. 물이 증발하면서 주위의 열을 빼앗아 가면서 냉동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맑은 계곡물에 발 담구고 등물치며 피서할 꿈은 사라졌지만 태풍이 찌는듯한 더위를 식혀주니 우선 살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