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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굉장히 추운 겨울이었다.
아침에 운동을 하러 가다
우연히 동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는데
요 앞 xx 목욕탕에서
어제 새벽 사람이 죽어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싶어 몹시 추운데도 불구하고
잠시 걸음을 멈추어
아주머니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글쎄 103동 김씨 말이야..
그 젊고 건강했던 사람이 목욕탕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었으니 말이야..
처 자식만 불쌍하게 됐지..
정말 안됐어..쯧쯧..”
아주머니들이 말한 그 목욕탕은
나도 자주 이용하는 곳으로
사실 집과는 약 15분 정도로
집에선 거리가 꽤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난 굳이 가까운 곳을 가지 않고
그 곳을 고집했다.
순전히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목욕탕 자체는 오래되었지만
아주 깔끔한데다가 이상하게도
평소 이용하는 손님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보통 평일 낮에 가면 혼자 조용히 명상을 하며
탕에 있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을 뒤로 하고
길을 걷다가 갑자기 머리 속에서 스치듯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마 일주일 전이었을 것이다.
-탕내 수면 금지-
평소에 못 보던 팻말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탕에서 잠을 자지 말라는 말인가..뭐지..’
마침 쓰던 타월을 수거하던
주인 아저씨께
벽에 붙은 팻말의 의미를 물어보게 되었다.
“아저씨 저게 무슨 말인가요?”
갑자기 아저씨의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어두운 그늘이 뒤섞인
작은 표정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아..그건 탕에서 잠을 자면
몸에 해로울 수도 있네..
허허,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분명히 뭔가 얼버무리는 듯한 말투였다.
난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제자리로 고개를 돌렸고 눈을 감고
다시금 명상을 즐기고 있었다.
1년 가까이 이 목욕탕을 이용하긴 했지만
그 날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서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인데
목욕탕 구석구석 곳곳에
노란 종이에 빨간 글씨를 넣은 부적이
한 장씩 붙여져 있는 것이었다.
‘못 보던 것인데..
이런 것이 원래 있었나..
오늘따라 기분이 이상하다….’
그리고 그 날 난 집에 가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10톤 트럭이
바로 코앞 10cm 스쳐가는
작지만은 않은 사건을 겪고 말았다.
현재로 돌아가서.. 이 일이 잊혀질 쯤..
사흘 후였다.
또다시 끔찍한 사건은 터지고 말았는데
아침부터 동네는 벌써 발칵 뒤집어져 있었다.
“죽은 사람이 며칠 전에 죽었던 김씨 부인이래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두 눈을 부릅뜨고
탕에 둥둥 떠 죽어 있는 걸 발견 했다지?
아..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그 날 이후 목욕탕 주인 내외는
경찰의 의심 섞인 조사를 받을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사건 이후로
목욕탕을 애용하던 소수의 이용객도
발길을 완전히 끊게 만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 일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사실 그 당시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처지라
그다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 일은 거의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지게 되었고
얼마 후 무사히 시험을 끝내고
친구과의 술자리를 마지막으로
이제 본격적인 사건은 전개된다.
난 그 날 기분은 좋았지만
이상하게도 컨디션이 안 좋아
술을 많이 마실 수 없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니
새벽 2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문득 뜨거운 탕이 생각나 땀도 좀 뺄 겸
아무 생각없이
그 목욕탕 앞에 택시를 세우고 말았다.
잠시 후 입구로 들어선 나는
잠시 후 뭔가 이상한 느낌에 사로 잡혔다.
건물 내부의 불이 모두 꺼져 있는 것이었다.
목욕비를 계산하는 카운터에도
불이 소등되어 있었는데
tv는 아주 시끄럽게
어느 한 오락채널로 켜져 있었고
등을 돌린 앞모습을 알 수 없는
검은 머리의 어떤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저기 여보세요, 여기 계산 좀..
칫솔하고 샴푸 주세요.”
몇 번을 불러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봐요. 계산 안 해요?
그냥 올라갑니다.
나중에 뭐라고 하지 마세요. 그럼.. ”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계속 tv쪽으로 몸을 둔 채
내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할 수없이 난
어두컴컴한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갔고
술기운도 있고 해서 주위 환경에
그다지 무서움을 느낄 기분이 아니었다.
남탕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탈의실과 목욕탕 안쪽에는 불이 모두 켜져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아니 이 건물 내에 있는 사람은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
‘카운터의 그 여자..’
새벽의 목욕탕은 지독하게도 조용했다..
간간히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새벽의 정적을 깨고 있을 뿐이었다.
난 탕에 들어가 명상을 하다
문득 그 여자의 얼굴이 이상하게 궁금해졌지만
이내 기분이 나빠져 생각을 돌렸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그만 깜빡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난 문득 비릿한 냄새에 잠을 깨고 말았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운 것이 아닌가..
잠시 후 물방울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두운 목욕탕에
나 말고 누군가 있다는 것을
분명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소햏의 귀가 그걸 말해 주고 있었다..
누군가 이 어둡고 조용한 목욕탕 안에서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난 그때부터 긴장하기 시작해
극도의 공포상태에 빠져 들었고
심장이 왼쪽 늑골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그 당시 몰려드는 엄청난 공포심에
그만 미쳐버릴 것만 같았고
보이지 않는 사방을 미친 듯이 응시하기 시작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내 시야에
뭔가 보이기 시작했고 잠시 후 내 입에서
천천히 낮게 깔린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목욕탕 한쪽 구석에 마련된
앉아서 씻으라고 만들어진 자리들 중에
어느 한 거울이었다.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거울 중 하나에서
반사된 사람의 검은 형태가 비쳐지고 있었다.
즉,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구석 쪽 자리가
그 거울을 통해 비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여자가 등을 돌리고
검은 머리를 길게 내려뜨린
섬뜩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빗질을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서서히 머리가 내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난 그곳을 벗어나려고 미친 듯이 발버둥쳐 보았지만
이미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온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피로 물들인 빨간 눈동자와 눈을 마주친 난
그만 깔끔하게 정신을 잃는 수 밖에 없었다..
난 다음 날 아침에 발견돼 이틀간 사경을 헤매다
병원에서 깨어났고
병문안을 온 주인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날 주인아저씨는 영업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들어올 수가 있었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더욱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수도를 차단하면 물이 나올 수가 없는데
어떻게 탕에 뜨거운 물이 가득 들어가 있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듯한 표정이었다.
난 조용히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주인아저씨께 모두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번 일의 엄청난 내막을 들을 수가 있었다.
주인부부에겐 외동딸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0개월 전 그만 새벽에
집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고 했다.
물론 가해자는 뺑소니를 쳤고
아직도 이렇다 할 목격자가 없어
억울하게 가해자를 잡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 주인부부는 죽은 딸이 새벽이 되면
건물을 돌아다니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몇 달 후 103동 김씨 내외가
목욕탕에서 불가사의한 죽음을 당하게 되자
경찰은 목욕탕을 주시하기 시작했고
수사는 전혀 뜻밖에 해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목욕탕 주인부부의 딸을 치어 숨지게 한
그 범인이 바로 103동 김씨 내외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은 그림퍼즐처럼 빠르게
조각을 맞추어 그림을 만들기 시작했고
한편으론 정말 놀라움과 섬뜩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에필로그
1. 퇴원 후 얼마 뒤 그 목욕탕에 다시 가게 되었지만
내가 보았던 그 여자가 비치던 곳에는
거울 자체가 없었다.
2.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그 곳은
주인부부의 딸이 죽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결국 귀감이 있는 내게
누군가 암시를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3. 내가 목격했던 카운터의 여자와
목욕탕 거울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분명 동일 인물이었을 테지만
그것이 과연 주인부부의 딸의 원혼인지 아닌지는
아직까지 밝혀내고 싶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첫댓글 아니 굳이굳이 저길 왜가냐고 ㅠㅠㅠㅠ
왜 또 간겨;;
재밌다..
너무 재밌다.,
광기 그 잡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