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4. 우수영
2019. 4. 금계
4월 1일, 목포 공용버스정류장 대합실 대형거울 앞에서 셀카를 찍어본다. 오늘은 우수영에 가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차비 5000원, 운행 시간 30분.
우수영은 내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년 반 동안 근무했던 곳. 해남에서도 가장 인심 좋은 곳, 좋은 추억이 많이 남았던 곳. 봄마다 한 번 이상 들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곳.
우수영정류장에서 내려 맨 먼저 찾은 곳은 5일 시장. 우수영중학교 박 교장선생님은 장날만 되면 새벽같이 행정실장을 앞세우고 시장으로 나가 숭어, 상어, 도미, 농어 등 펄떡펄떡 뛰는 생선들을 사다가 포를 떠서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방과 후에 선생들을 과학실로 불러다가 먹였다.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잔치판이니 교사들이 고분고분 교장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을 리 만무했다.
자고로 병사들하고 교사들하고 일꾼들하고 백성들은 잘 먹여야 뒤탈이 없다.
현대식당에는 늘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그 동안 돈을 잘 벌었는지 나 중학교 근무할 적에는 이름만 현대식당이지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제는 이름에 걸맞도록 깔끔한 현대판 식당이 되었다.
우수영(문내면)의 중심가. 중심가라고는 하지만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좁고 한적한 거리다.
우수영중학교. 충무공 동상만 예전 그대로이고 학교 건물은 몽땅 뜯고 새로 지었다. 나는 이 학교 근무할 때 한국교육신문이 공모하는 교단수기에 ‘즐거운 도서실’을 써내서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도서실만 즐거운 게 아니라 이 학교 근무하는 내내 날마다 즐거웠다. 교장, 교사들, 학부모들과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고 학생들도 천진난만하고 교사들을 기꺼이 따랐다.
나는 저렇게 규모가 아담하게 작고 조금쯤은 허술한 시골 당구장을 무척 사랑한다. 이름만 보아도 ‘즐거운 당구장’이다. 즐거운 도서실, 즐거운 학교, 즐거운 시장판, 즐거운 가정, 즐거운 노인, 즐거운 시민, 우리 모두의 인생이 즐거운 인생이어야 하지 않을까.
중심가를 좀 더 걸어가니 충무공을 모신 현충사가 나온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군청에서 돈을 많이 들여 새로 건립한 것 같다.
“신은 죽지 않았사옵니다. 신한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그 적은 배로 일본의 대군을 맞이하여 대승을 거둔 곳이 바로 여기 울돌목이었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로 싸우면 살 것이다.”
충무사 바로 곁에 ‘이충무공 명량대첩비’ 비각. 1688년 건립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경복궁 어느 구석으로 처박혔다가 1947년에 우수영으로 옮겨왔고 원래 섰던 이 자리에 다시 세워진 것은 얼마 안 되었다.
충무사 언저리에 ‘시간의 ........’이라는 현대식 조각 작품이 서 있다.
시간은 저 탑의 네 군데 구멍을 통하여 들어가서 놀다가 싫증이 나면 살며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이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의 자유지만 해석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자유다.
나는 저 휑하니 뚫린 시간의 광장 안에서 김민식이 충무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명량’에 나오는 수군들의 함성과 빗발치는 화살과 총탄 소리를 듣는 듯하다.
우리 집 족보에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에 의하자면 내 조상님은 임란 때 충무공을 보좌하는 수군이었다 한다.
‘시간의 .....’이라는 조각상 뒷 담장에 그려진 벽화. 사람과 동물들이 합심하여 줄다리기를 하는 동화적 세계.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벽화가 퍽 재미있다.
해남군 문내면 예비군부대 사무실에 걸린 현판.
“만약 호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명심하라, 호서지방 영서지방 영남지방 사람들이여! 호남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가 없었을 것임을. 광주학생독립운동도 그렇고, 전두한 군사반란정권과 목숨 바쳐 싸운 5.18도 그렇고, 우리 민족정기를 똑바로 앞세운 것도 호남부터였다는 것을.......
어쩌면 저 고목은 명량해전의 현장을 지켜보았을지도 모르겄다.
농촌 인구가 해마다 줄어들자 해남군 문내면의 여러 초등학교를 통폐합하여 새로 하나의 초등학교를 지었다. 그 바람에 문내초등학교는 폐교되었다.
정원 한가운데 비석에 쓰여 있기를, ‘참되거라, 바르거라.’
폐교된 문내초등학교에도 새봄이 찾아왔다. 정원에는 예쁜 명자나무꽃, 개나리꽃, 박태기나무꽃이 피었지만 반가이 맞아줄 학생들이 떠나버려 쓸쓸하기 짝이 없다.
문내초등학교 운동장 가 잔디 위에 세워진 조각 작품. 하얀 회를 칠한 손목 둘이 맞잡고 있다. 예전 우리 할머니가 성당에서 타 오신 구호품 밀가루포대에 찍힌 한국 국민과 미국 국민이 악수하는 그림이 떠오른다.
‘법정 선배님께 길을 묻다’
문내초등학교 운동장 가에 세워진 법정스님 초상화. 법정스님의 생가는 문내초등학교에서 남쪽으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1932년 우수영에서 출생. 우수영초등학교 25회 졸업.
우수영 선두리, 우수영 항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법정스님의 생가 터가 있다. 예전에는 파란색 양철지붕 아래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아마도 군청에서 매입하여 집을 쓸어버리고 황무지로 변한 것 같다. 앞으로 또 무슨 멋들어진 건물을 세울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텅 빈 충만’을 위해서라도 그냥 텅 비워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김영한 여사(1916-1999)는 가난에 못 이겨 스스로 기생이 되었다. 백석 시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백석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백석은 ‘자야’라는 이름만 지어주고 이별한다. 후에 고급요정 ‘대원각’의 주인이 된 자야는 ‘백석문학상’에 2억 원을 내놓았다. 법정스님을 만난 자야는 대원각 4000평의 대지와 건물과 전 재산을 기부하려고 한다.
“받아주십시오.”
“그런 호화로운 건물은 받지 못하겠습니다.”
10년이나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조계종 산하의 ‘길상사’로 바뀌고, ‘자야’는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게 되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편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법정스님의 생가 터에서 큰스님의 귀한 가르침을 받고 간다. 마음이 복잡한 사람들은 텅 빈 스님의 생가 터에서 마음을 탈탈 비우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부두 언저리에 ‘정재 카페’. 우수영 주민들의 생활용품을 활용한 카페. 팥죽 4000원. 점심으로 한 그릇 주문했다. 팥이 참 곱게 갈리고 걸쭉하고 칼국수도 매우 부드럽고 쫄깃하였다.
‘정재’란 이쪽 지방에서 ‘부엌’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실재로 정재에 차려진 탁자에서 팥죽을 맛나게 먹었다.
정재! 얼마나 다정다감한 말인가. 아궁이에 걸린 무쇠솥, 나무주걱, 벽에 걸린 다리미와 인두를 감상하며 나는 설탕을 넣어 다디단 팥죽을 천천히 깨물며 5,60년 전의 침침하던 정재를 회상했다.
풍로 - 옛날에 바퀴를 돌려 바람을 일으켜서 낟알의 껍질이나 까끄라기를 날려 보내던 장치. ‘정재카페’는 유서 깊은 제일여관을 재구성해서 옛날의 추억을 일으키도록 전시해놓았다.
세월에 찌든 헌 손수레 위에 지게, 삼태기, 홀태 등 농기구가 전시되어 잠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느낌을 준다.
정재카페 벽면에 걸린 대소쿠리, 체, 짚방석, 짚신, 망태기.
정재카페 전시실에 걸린 옛 시장 풍경 드로잉 작품. 데생. 소묘. 연필 그림.
정재카페 전시실에 걸린 옛 사진. 곱기도 하여라. 소박하기도 하여라. 옛 사람들이 그립기도 하여라.
정재카페에 걸린 사진, 1965년 해남군 문내면사무소 직원 일동.
우수영에서 바라다본 울돌목 위의 진도대교와 산꼭대기의 진도전망대. 언젠가 진도전망대에서 가이드를 동반한 일본 관광객들을 만났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일본 관광객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는지 퍽 궁금했다.
오후 두 시 넘어 우수영에서 출발하여 추자도 경유 제주도로 가는 퀸스타 2호.
사람만 444명 싣는 쾌속선. 추자도 거쳐 제주도까지 3시간 걸린다고.
우수영 관광유람선 ‘울돌목 거북배’. 하루에 몇 차례씩 운항한다고.
우수영 부두 터미널에 걸린 사진. 달마산 미황사.
우수영 부두 터미널에 걸린 사진. 해남 송지면 땅끝 전망대
우수영 부두 터미널에 걸린 사진. 울돌목 위에 세워진 쌍둥이 다리 진도대교.
낡아가는 고택.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집도 허물어지고 쓰러지고 사람도 늙고 죽는다. 우리의 세계는 확고부동한 실재가 아니라 만화경 속처럼 시시각각 형상을 달리하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의 실상은 텅 빈 공허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텅 빈 공에서 출발하여 텅 빈 공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잠시 없음에서 있음으로 튀어나왔다가 이내 있음에서 없음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
우수영의 민가.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허술한 돌담이 사랑스럽다. 나는 낡고 스러져가는 것들, 조금쯤 초라하고 쓸쓸하고 서러운 것들을 사랑한다.
방글방글 벌어진 매화꽃 너머로 훈풍을 머금은 봄볕이 괴괴한 마당에 살포시 내려앉아 미풍에 흔들린다. 대지에 미만한 봄볕을 황홀하게 바라보며 나는 봄마다 태양교의 신도가 된다.
오늘도 우수영으로 봄나들이 나와서 봄볕을 듬뿍 받으면서 구경 한 번 잘했다. 하늘이시여! 감사하고 또 감사하나이다.
넉넉하고 포근하고 인심 좋은 우수영, 고마워! 안녕! 또 올게. (끝)